축구스타열전

이탈리아 최고의 리베로 프랑코 바레시 (AC밀란의 전설)

시북(허지수) 2008. 1. 26. 17:17


프랑코 바레시, 그는 세계 축구계의 레전드다.

 운이 좋았다. 일본 웹서핑에서 그의 동영상을 구해서 볼 수 있었다. 이건 뭐 말이 필요 없는 영상인 듯 하다.
 AC밀란의 혼이자, AC밀란의 전설. 프랑코 바레시. 세계 최고의 수비수 중에 한 명인 그에 대해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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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월드컵 바조와 함께


 프로필

 이름 : 프랑코 바레시 (Franco BARESI)
 생년월일 : 1960년 5월 8일
 신장/체중 : 176cm / 70kg
 포지션 : DF (CB) - 수비수 (중앙수비수)
 국적 : 이탈리아
 소속팀 : AC밀란 - 세리에A 532경기 / 16골 (등번호 6번)
 국가대표 : 81경기 / 1골
 월드컵기록 : 1982년 우승, 1990년 3위, 1994년 준우승

 바레시의 이야기

 먼저 1994년 월드컵 이탈리아 VS 브라질, 그 유명한 결승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바레시는 자신의 전설이 된 등번호 6번을 달고 출장한다. 당시 이탈리아의 수비진에는 코스타쿠르타, 말디니 등의 초호화 멤버로 구성되어 있었고, 10번은 판타지스타 로베르토 바지오 가 달고 있었다. 이탈리아는 우승후보였다. 그 누구도 섣불리 승부를 예측할 수 없었다. 결국 경기는 승부차기로 가게된다.

 많은 축구팬들이 기억하다시피, 여기서 바조는 PK실축으로 인해 월드컵 축구역사에 영원히 기록된다. 그런데 바조만 실축한 것이 아니었다. 당시 첫 번째 키커로 나온 선수가 바로 프랑코 바레시였는데, 그 역시 PK를 실축하고 만다. 비록 비난의 화살은 거의 바조에게로 쏟아졌지만 말이다.
 팬들이 그를 비난할 수 없었던 것은 그는 이미 34살의 노장이었고, 이제 더 이상 월드컵무대에서 볼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이탈리아의 주장이며, 세계최고의 리베로 라고 까지 평가받았던 그를 볼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그것이 그의 국가대표 마지막 81번째 경기였다.

 프랑코 바레시가 리베로 라고 평가받는 이유는 패스가 뛰어나며 오버래핑을 종종 한다는 것이다. 현대 축구에서 측면수비수 (사이드백 : SB) 가 오버래핑을 하는 경우는 종종 볼 수 있지만, (예로서 폭발적인 오버래핑의 호베르투 카를루스, 이영표도 오버래핑 후 센터링을 올리곤 한다) 중앙 수비수가 뛰어나오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스타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홍명보가 대표적이라 하겠다.

 홍명보는 그의 책에서, 자신이 제일 존경하고 닮고 싶어하는 모델선수가 바로 프랑코 바레시 라고 말하였다. (홍명보의 통쾌한 중거리슛을 기억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축구에서 리베로라고 하면 이렇게 앞으로 종종 나오는 중앙수비수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홍명보를 비롯하여 많은 수비수들이 존경하는 선수가 바로 프랑코 바레시이다.

 바레시가 공격적인 면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정도 되니까 월드컵 결승전 승부차기 1번 키커를 하지!)
 그럼 바레시의 수비는 어떠했을까? 바레시의 수비는 경이적인 수준이다. 일대일 능력도 탁월했을 뿐만 아니라, 특히 오프사이드 트랩을 구사하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뛰어났다. 게다가 바레시는 리더십도 대단했는데, 오죽하면 그를 대표하는 멘트 중에 하나가 IL CAPITANO (주장) 일까. 지능적이고 전술적인 플레이를 즐겨했기 때문에 공격수들은 그를 넘어서기가 쉽지 않았다. 한 마디로 수비감각이 엄청난 선수라 할 수 있다.

 AC밀란의 혼

 프랑코 바레시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AC밀란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는 14살 때 AC밀란 유스팀에 입단하면서 축구인생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데 (18살 때 데뷔전을 치른다), 놀라운 것은 그는 단 한 번도 다른 팀으로 옮기지 않고 은퇴까지 AC밀란에서만 뛰었다는 사실이다. 당시에도 프로선수들이 팀을 옮기는 일은 비교적 흔한 일이었는데, 그는 이런 저런 오퍼에도 응하지 않고 오로지 AC밀란만을 위해서 출장하였다.

 AC밀란의 암흑기라고 할 수 있는 1980년~81년 시즌이 있었다. AC밀란이 승부조작에 관여한 사건이 터진 것이다. AC밀란은 세리에B로 강등되었고 우울한 시즌을 계속해서 보내는 그 순간에도, 그는 등번호 6번을 달고 묵묵히 AC밀란을 위해서 뛰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AC밀란은 그 유명한 오렌지 삼총사 (반바스텐, 루드굴리트, 레이카르트) 를 영입하고, 1987년~88년 시즌에 드디어 정상에 선다. 1978년~79년 시즌 후, 정확히 9년만의 우승이었다. 그리고 이 기세를 몰아서 UEFA챔피언스컵 (현 챔피언스리그의 전신) 88년~89년, 89년~90년 연속 우승을 차지한다. 1993년~94년 시즌에서 AC밀란은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만난 FC바르셀로나를 4-0 으로 완파하며 또 다시 정상에 선다.

 이 때의 멤버들은 가히 AC밀란의 전설적 황금기라고 할 수 있는데, 밀란의 시대를 의미하는 밀란 제네레이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90/91 ~ 92/93 시즌까지 리그에서는 무려 58경기 연속 무패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AC밀란이 다시 일어나는 그 중심에 프랑코 바레시가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라 하겠다.

 1997년 6월 23일. AC밀란에서 36살의 나이로 26시합을 뛰고, 프랑코 바레시는 은퇴를 한다. AC밀란의 전설이 되어버린 그의 은퇴에 수 많은 팬들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의 등번호 6번은 AC밀란의 영구결번으로 지정된다. 그리고 그는 1999년 AC밀란이 100주년을 맞이해서, AC밀란 최고의 선수의 영예를 얻게 된다. 그는 정말로 AC밀란의 혼이라 불리기에 전혀 손색이 없는 레전드였다.

 현재 그는 AC밀란의 유소년팀 감독을 맡고 있다. 바레시의 팬으로서, 그가 훗날 AC밀란의 감독이자 명장으로 거듭나서 AC밀란을 다시 한 번 챔피언스리그 정상에 올려놓을 날을 기대해본다. 그라면 분명 그렇게 해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렇다, 프랑코 바레시는 사실 앞으로 또 하나의 전설을 쓰게 될 이름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