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스타열전

#145 미오드락 벨로데디치, 동구의 베켄바우어

시북(허지수) 2020. 10. 2. 23:23

 

 동구권의 축구스타를 생각해 본다면, 미오드락 벨로데디치의 이야기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의 별명은 무려 "동구의 베켄바우어" 였지요. 아니 과연 어떤 선수였기에, 이 정도의 격찬을 들을 수 있었던가! "동유럽의 마라도나"로 불리던 루마니아의 레전드 - 게오르게 하지와 더불어 루마니아의 명선수로 손꼽히는 벨로데디치의 이야기로 한 번 떠나봅시다.

 

 프로필

 

 이름 : Miodrag Belodedici
 생년월일 : 1964년 5월 20일
 신장/체중 : 183cm / 79kg
 포지션 : DF
 국적 : 루마니아
 국가대표 : 55시합 5득점


 동유럽의 베켄바우어, 벨로데디치 이야기

 

 세르비아 국경과 가까운 소콜이라고 하는 마을에서 태어난 벨로데디치. 그는 1982년 루마니아의 명문팀 스테아우아 부큐레슈티팀에 몸담으면서 본격 축구인생을 시작합니다. 그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1986년 UEFA 챔피언스컵(현 챔피언스리그)이겠지요. 슈테아우아는 이 해 FC바르셀로나를 물리치고 우승트로피를 차지하게 됩니다. 당시 21세에 불과했던 벨로데디치는 침착한 수비를 발휘하면서 바르샤의 공격을 봉쇄했고, 경기는 승부차기 끝에 슈테아우아의 승리! 이것은 동유럽 클럽팀이 최초로 유럽정상에 오른 쾌거이기도 했습니다. 이 무렵 슈테아우아는 국내리그에서도 4년 연속 정상에 올랐지요. 이미 1984년에 벨로데디치는 국가대표로도 선출되었습니다.

 

 그런데 벨로데디치의 경우 부모님이 세르비아인이었고, 본인 스스로도 (세르비아 등이 속해있던) 유고연방의 명문 "레드스타 베오그라드"에서 뛰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공산주의 정권은 선수의 해외 이적을 인정하지 않았지요. 결국 벨로데디치는 1988년에 망명이라는 강수를 두게 됩니다. 이렇게 하여 벨로데디치는 유고에 망명해서 레드스타에 입단하는 데는 성공하지만, 유럽축구연맹은 법적으로 문제가 된다고 판단하여, 1년간 출장정지를 내립니다. 루마니아 정부는 더욱 험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반역이다! 징역 10년!

 

 다행히도 1989년은 루마니아의 혁명의 해. 챠우세스크 22년 독재정권은 이렇게 붕괴됩니다. 벨로데디치에게 내려진 정치적 죄도, 사라지게 됩니다. 드디어, 레드스타 베오그라드(=츠르베나 즈베즈다)에서 활약할 수 있는 문이 열린겁니다! 곧바로 그는 중심 선수로 자리 잡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동구의 강호 레드스타는 1991년 UEFA 챔피언스컵을 획득하게 되지요! 긴 역사를 자랑하는 UEFA 챔피언스 무대에서, 서로 다른 두 팀에서 우승을 경험한 첫 번째 선수가 바로 벨로데디치 였습니다 :)

 

 전성기 그의 수비력은 정말 훌륭했다고 평해집니다. 유연한 기술은 물론이고, 판단력이 뛰어나서 흐름을 잘 읽어내고, 시야가 넓었습니다. 끈덕지게 대인방어를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고, 수비진 전체를 커버하면서 수비라인을 견고하게 구축하는데 능했습니다. 찬스를 만들어 내기도 하고, 리베로 적인 역할도 훌륭히 감당했습니다. 그리하여 동유럽의 베켄바우어라는 별명까지 붙게 됩니다.

 

 이름값이 높아지자, 유럽의 유명한 클럽팀들도, 우리팀으로 오라고 손짓합니다. 1992년 스페인의 발렌시아팀으로 이적합니다. 그리고 수 년 전 망명사건 때 논란이 컸었던 루마니아 대표팀도 복귀하게 되지요. 대표팀에서는 안정감 있는 수비로 기둥같은 역할을 잘 감당하며, 1994년 미국월드컵 참가! 발데라마가 있던 콜롬비아전 때도 좋은 수비를 보여주었고, 미국전에서는 한 골도 허용하지 않습니다. 루마니아는 조1위로 16강 진출을 했고, 놀랍게도 16강에서는 무려 강호 아르헨티나도 침몰시켰지요. 8강전 스웨덴과의 경기는 2-2 로 승부차기까지 갔는데, 승부차기에서 벨로데디치는 통한의 실축을 했고, 이로 인하여 팀은 8강전에서 탈락하고 말았지요. 그의 화려한 명성을 생각해보면 참으로 아쉬웠던 순간이겠지요.

 

 90년대 중반, 서른이 넘어서 부터는 벨로데디치는 부상 등의 영향도 있고, 조금씩 페이스가 떨어져 갑니다. 스페인에서 4년, 멕시코에서 2년간 선수생활을 했고, 선수생활의 마지막은 친청팀인 루마니아의 슈테아우아팀으로 돌아와서 선수생활을 했습니다. 유로2000에서도 잠깐 얼굴을 비추면서, 팀의 8강 진출에 공헌하기도 했습니다. 2001년 현역에서 은퇴했으며, 이후 루마니아 U-20 대표를 지도하기도 했네요.

 

 오늘 이야기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1994년 월드컵 실축하면 결승전의 이탈리아선수 바조를 많이들 기억하실 것 같습니다. 그도 영웅에서 역적까지 단 한 번의 슈팅 때문에, 그 짐을 짊어져야 했지요. 벨로데디치 역시 그 한 번의 슈팅 때문에 종종 회자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만 불리기에는 다소 아쉽다고 생각했습니다. 개인적 바람으로는, 동유럽에는 벨로데디치 같은 이름을 날리던 훌륭한 수비수도 있었음을 생각해 주신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애독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이번 시간은 특집으로 루마니아 공영방송의 94년 월드컵 한 장면을 준비했습니다.

 그렇죠. 한국이 독일을 이기는 것처럼, 축구란 해봐야 아는 것입니다!

 

 2010. 10. 04. 초안작성.

 2020. 10. 02. 가독성 보완 및 동영상 추가 - 축구팬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