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리만큼, 아주 오래전부터 써야겠다 써야겠다 해놓고도 미뤄두던 선수가 약간 있는데, 그 중에 한 명이 유고의 특급선수였던 10번 스토이코비치 입니다. 새해에는 영감이 떠오르면, 바로 바로 실행에 옮기던지, 메모를 하던지... 그 느낌을 잘 살려야 겠다 생각도 해봅니다. 여하튼, 오늘은 유고슬라비아의 별으로도 불리는 최고의 선수였던 스토이코비치의 제법 긴 이야기로 출발해 볼까 합니다 ^^
프로필
이름 : Dragan Stojković
생년월일 : 1965년 3월 3일
신장/체중 : 175cm / 72kg
포지션 : MF, FW
국적 : 세르비아 (구 유고슬라비아)
국가대표 : 84시합 15득점
90년대 유고가 낳은 최고의 판타지스타 - 드라간 스토이코비치 이야기
아주 어린 꼬마시절부터 공을 좋아했던 소년은 16살이 되자 프로선수 생활을 시작합니다. 유고의 명문팀도 아니었지만, 단연 눈에 띄는 플레이를 하던 이 소년은 18살 때인 1983년 국가대표로 발탁됩니다. 유고의 4대 명문팀 출신도 아니었고, 그야말로 매우 특별한 경우였지요. 스토이코비치는 이윽코 유로84에서 대회 최연소 득점자로 이름을 날리며, 서서히 주목을 받습니다. (참고로 20년이 흘러서 유로2004에서 루니가 최연소 득점기록을 깹니다 ^^)
스토이코비치는 1986년 드디어 유고의 명문팀 츠르베나 즈베즈다로 이적합니다. 막대한 이적금과 함께 어떻게든 저 선수를 데려와야겠다는 일념이 뭉친 결과였지요. 당시 감독은 스토이코비치의 실력 뿐만 아니라 정신력도 매우 높게 평가했는데, 20대 초반의 나이에 그를 캡틴으로 임명합니다. 그리고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국내리그 제패가 시작되지요. 유럽굴지의 유고연방 테크니션들인 프로시네츠키, 사비체비치 등이 함께 뛰면서 이들은 1988년, 1990년 리그우승을 차지합니다. 게다가 10번 캡틴 스토이코비치의 활약은 무서웠지요. 4시즌 연속 두 자리수 득점에, 2번의 리그MVP를 수상합니다. 챔피언스무대에 나가서는 최강팀 AC밀란과도 맞붙으며, 득점포를 날리는 등 스토이코비치는 이미 유럽에 이름을 휘날리고 있었습니다.
화려한 볼터치, 강력한 중거리 슈팅, 그는 마법사 였으며, 판타지스타 였습니다. 자유로운 드리블과 결정적인 패스를 날리는 센스, 그리고 프리킥도 뛰어났습니다. 유럽에서 손꼽히는 테크니션이었습니다. 존재감 발군의 캡틴이었지요. 1990년 월드컵 유럽예선, 유고는 예선에서 같은 조에 있던 강호 프랑스를 떨어뜨리며, 8승 2무로 월드컵 무대를 밟습니다. 그리고 조별리그에서도 서독과 함께 나란히 16강에 진출하지요. 16강에서는 강호 스페인을 만났지만, 유고는 잘 했습니다. 그야말로 마법같은 플레이를 펼치며 홀로 2골을 넣은 스토이코비치의 대활약으로 2-1 유고는 승리를 따냅니다. 8강에서는 마라도나가 이끌던 아르헨티나를 만나지요. 이 때도 마라도나와 비교할 수 있을만큼 눈부신 플레이로 엄청난 주목을 받습니다. 경기는 승부차기까지 갔고, 아쉽게도 유고는 8강에서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또한 1990년에는 프랑스의 마르세유가 스토이코비치의 영입을 시도하게 되는데, 당시 프랑스축구 사상 최고 금액인 4500만 프랑을 지불하고 데려옵니다. 그러나 가혹한 시련은 찾아오지요. 경기 중 치명적인 무릎 부상이 찾아오고, 현역은퇴를 고려해야 할 만큼 재기가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경기에 나서는 시간은 확연하게 줄어들었고, 가끔 중요한 경기에서 몇 번씩 뛰는게 전부였습니다. 게다가 유고연방은 나눠지면서 유로92도 참가하지 못했고, 94년 월드컵의 기회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4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러갔고, 마르세유는 그의 부활을 바라면서 재계약을 희망하지만, 스토이코비치는 거부하고, 단호한 결단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선, 일본으로 날아가게 되었습니다. 제이리그 였지요. 당연히 처음 일본에서는 뭐 이런 철지난 30대 아저씨를 데려오냐는 우려도 없지 않았습니다.
실로 오랜만의 스토이코비치의 부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격이 다른 플레이를 보여주면서, 팬들을 사로 잡았고, 그의 미친 존재감은, 훗날 제이리그의 자산이라고 불릴 만큼 확고한 명성을 쌓아갑니다. 1995년, 스토이코비치는 일본무대에서 17골 29어시스트를 날리며 당당히 리그MVP도 수상하게 되었지요. 이듬해에는 AT마드리드에서 오라고 손짓하지만, 이왕 자리 잡은 제이리그에서 끝까지 열정을 불사르기로 결심했나 봅니다. 이후 오랜기간 제이리그 나고야 클럽팀에서 계속 활약합니다.
그리고 유고연방은 이제 각각 민족을 따라 나뉘었으며, 국제무대의 출전제약들이 하나 둘 풀려갔고, 유고슬라비아의 캡틴 스토이코비치는 팀을 잘 이끌며, 실로 8년만인 98월드컵 본선출장에 성공합니다. 유고는 16강에 오르는 등 저력을 발휘했으나, 막강 오렌지군단 네덜란드의 베르캄프, 다비즈에게 골을 내주며 아쉽게 1-2로 석패했습니다. 이후 2001년을 끝으로 국가대표로도 은퇴하지요. 2001년이 사실상 현역 마지막이었습니다. 제이리그에서 눈물의 은퇴식을 합니다. 시간은 그렇게 또 한참 흐르고...
2008년 드디어 나고야 감독으로 돌아온 스토이코비치! 현역 시절에도 화끈한 성격과 뛰어난 실력으로 팬들의 열광적 지지를 받았던만큼, 기대도 컸습니다. 특히 2009년에는 유명한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시합 도중에 상대방 골키퍼가 경기를 멈추고자 잠깐 공을 밖으로 차내는데, 벤치에 있다가 갑자기 달려나와 그 공을 그대로, 즉석에서 52m 롱슛을 날리는 기묘한 일을 감행! 게다가 그게 골인이 됩니다 -_-; 과연 과거 레전드의 포스... 돌아온 것은 감독님 퇴장이었지만, 팬들은 또 한 번 놀라움에 환호성과 감탄을 보내지요. 유튜브에서도 조회수 백만을 넘기며, 엄청난 화제를 모았고, 미셸 플라티니도 이 골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웃음)
2010년에는 나고야의 첫번째 리그우승을 이끌면서, 제이리그 사상 최초의 최우수선수, 최우수감독을 모두 경험한 인물이 되기도 했습니다. 부상으로 고생도 하고, 또 지구를 거의 반바퀴 돌아서 프랑스리그에서 제이리그까지 와서는 그 나름의 성공신화를 써내려가고 있다고 볼 수 있겠네요. 화제의 골과 함께, 스토이코비치의 진짜 실력들이 담겨 있는 전성기의 드리블로 휘젓고 다니는 유튜브 영상을 덧붙이며, 오늘 이야기를 마칠까 합니다. 어쩌면 그의 이름이 생소할 수 있겠지만, 직접 그의 활약들을 봤던 분들이라면, 늘 가슴 속에 남아있는 스타다운 스타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네요. 애독자님들께 늘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힘내서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