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누리교회

2004년2월15일/모르드개의 흥망(청년설교7)/홍종일목사

시북(허지수) 2012. 4. 17. 22:07

- 2004년 창신교회 청년부에 계실 때의, 홍종일 목사님 설교문.

에스더 3장과 6장

1.왕궁의 문지기
페르시아의 도성 수산궁의 문지기로 모르드개라는 유대인이 근무를 했습니다
성경에는 단순히 문지기라고 표시했지만 단순한 수비병이 아니라
적어도 수문장정도의 자리에 있었던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바로 현재 페르시아 왕의 아내인 와스디의 사촌오빠였습니다
그것도 단순한 사촌오빠가 아니라 고아가된 와스디를 딸처럼 키워온 사촌오빠였습니다
포로의 후손으로 두남매가 서로 의지하며 자랐기에 여늬 사촌오누이보다도
더 정이 깊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르드개는 한마디로 막강한 배경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여하튼 이 사람은 자기의 사촌여동생이 왕후가 된 뒤에도
여전히 왕궁의 수문장자리에서 충실히 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2.왕암살 음모를 적발하다
우연히 내시 빅단과 데레스 두사람의 왕암살음모를 발견하고 이를 와스디에게 알려서
왕의 목숨을 구하게 되는 엄청난 공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보통 왕궁에는 여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페르시아의 왕궁에는 하렘이라고 해서 후궁들이 기거하는 여인들만의 궁전이 따로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거세하지 않은 남자들은
해가지면 수비병사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궁을 나가야 되고
단지 궁안에는 거세한 내시들만 거하게 되고 이들이 왕을 가까이서 모시게 됩니다
따라서 내시들의 권한은 엄청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왕들은 내시들을 총애할 수밖에 없었고 여러 가지 권세가
내시들에게 집중되었습니다

자 성욕을 충족시킬수 없는 욕구불만의 내시들은 권력과 돈에 남다른 집착을 보이게 되고
자연적으로 권력과 부의 획득을 위한 음모가 끊일새가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궁전은 내시들의 음모가 득시글대는 복마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귀가 엎드려 있는곳

3.그러나 상은 없었다
페르시아에서는 특별히 왕의 암살 음모가 비일비재했고
따라서 왕들은 자기의 숙소를 수시로 바꾸면서 암살을 모면하려 애쓰는 등
왕의 안전에 무엇보다 많은 관심과 노력이 기울여 졌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암살음모 더구나 왕을 가장 가까이서 모시는 내시들의 암살음모를
모르드개가 적발해서 왕의 목숨을 살리는 큰 공을 세웠던 것입니다
당연히 큰 상을 내려야 마땅합니다

분명히 와스디가 모르드개가 왕의 암살음모를 적발했다고 아하수에로 왕에게 이야기하고
왕의 앞에서 모르드개의 이름이 왕실일기에 기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왠일인지 모르드개에게 어떠한 상도 내려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모르드개가 와스디의 사촌오빠라는 사실을 왕이 알았더라면
사정이 조금 달라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허나 왠일인지 모르드개는 와스디에게 왕후가 되고 난 다음에도
그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왕에게 알리지 못하도록 했고
자기와의 관계도 밝히지 못하게 했던 것입니다

4.상은 엉뚱한 사람에게
왕은 이 암살음모에 접하자마자 혼비백산해서 하만을 불러서
이 음모를 밝히게 했고 두명의 내시를 취조하여 증거를 잡고는
그들을 처벌하는데 정신이 팔려서
정작 모르드개에게는 어떤 상도 내리지 않고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그런데 더 황당한 것은 이 사건을 취조한 하만에게 왕이 총리대신의 직위를 내려
벼락출세를 시켜버린것이었습니다

솔직히 왕암살 음모를 적발하는게 어렵습니까 사람을 고문해서 증거를 밝히는게 어렵습니까
분명히 암살음모를 밝히는게 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왕은 모르드개의 공에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하만에게 높은 상을 내려
그를 총리대신으로 승격시켜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제 왕은 왕궁문을 지날때마다 모두 하만에게 꿇어앉아서 경배하도록 명을 내렸습니다
이렇게 되자 자연 사람들은 앞다투어 그에게 경배하며 아부하여
그의 환심을 사기에 바빴습니다
기가찹니다

도데체 저 자리에 앉아야 할 사람이 누구입니까?
자 여러분 어떻습니까
모르드개는 든든한 빽이 있었습니다
그는 빽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여전히 문지기였고
왕의 암살음모를 적발한 엄청난 공을 세웠음에도
엉뚱한 사람이 그 공을 가로채어서
여전히 문지기에 불과하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적은 수고를 한 하만에게 제일 큰 공이 돌아가고
하만이 총리대신이 되어서 거들먹거리게 된 것입니다

그것도 매일같이 그의 눈앞에서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5.하나님 때문에 위기에 빠지다
하만이 벼락출세를 했기 때문에 왕은 다른 대신들이 그를 투기하고 시기할까봐서
그에게 경배하라는 특별명령을 내려두고 있는 상황에서 하만이 궁문을 지날 때
많은 신하들이 그를 만나서 그 앞에 즐겨이 무릎을 꿇고 경배하였는데도 불구하고
모르드개만은 절대로 그 앞에서 무릎도 꿇지않고 경배도 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엎드리는데 고개를 뻣뻣이 들고 서있는 모르드개를 하만이 보았지만
그래도 자기가 모르드개의 공을 가로챈 것이므로 애써서 그 무례를 무시하였습니다
물론 속으로야 부글부글 끓었지요
이놈 어디 두고보자
그러나 화만내고 두고보자고 속으로만 벼를 뿐 어떤 구체적인 행동은 취하지 않았습니다

이를 보고 동료들은 처음에는 왜 너는 절을 하지 않느냐고 위협합니다
그러나 그 위협이 먹혀들지 않자 이제는 좋은 말로 절을하도록 권고합니다
이건 유혹이지요
그래도 거절하자 화가 난 동료들은 그가 어떻게 되는지를 보기위해
하만에게 모르드개의 출신 민족을 고합니다

모르드개의 출신 민족은 유대인입니다
여러분 왜 유대인인것이 하만에게 문제가 되는지 아십니까?
그러고 보면 모르드개가 일전에
에스더에게 자기의 민족을 고하지 말라고 당부하던 말이 생각납니다

페르시아는 적어도 127개 민족으로 이루어진 다민족 국가이며
각 민족을 포용하는 관용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유대인인것을 알리지 말라고 했을까요?

그것은 사람들이 유대인을 싫어했기때문입니다
왜 싫어했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섬겼기때문입니다
이상하지요?
하나님을 섬기는것 하고 사람들이 유대인을 싫어하는것 하고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사실 페르시아 사람들은 조로아스트교를 국교로 하지만
역시나 다른 민족의 여러신들도 함께 섬겼습니다

즉 다신교를 믿었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유독 유대인만은 신은 하나님 한분뿐이라면서 자기네들이 믿는 신들을
우상취급을 하니 어찌 사람들이 유대인을 좋아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더 큰 문제는 하만이 바로 아말렉의 왕족이라는 것입니다
아각사람은 바로 아말렉족의 왕가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열심히 읽었다면 이스라엘과 아말렉과의 피비린내나는
싸움의 역사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초대왕 사울이 제일먼저 한 것도 바로 아말렉을 친 것이었고
하나님은 아말렉을 모두 진멸하라는 무시무시한 명령을 내릴 정도의 원수였던 것입니다

바로 이 원수지간인 아말렉의 왕족인 하만이 안그래도 미웠던 모르드개가
유대인인것을 알자 즉시로 태도를 돌변해서
모르드개를 해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불쾌하게 여겼던데서 이제 구체적으로 모르드개를 죽일 계획을 세웁니다
왜냐면 그가 절대 용서하지 못할 유대인이므로

6.악인들의 계획
하만은 모르드개가 유대인임을 알자
모르드개 혼자만 죽이는 것이 너무 가볍다고 생각해서
아예 이번 기회에 유대인들을 전부 몰살시키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리고는 왕에게 나아가 유대인들을 참소합니다
당시 동방의 왕들은 현인신으로 여겨졌고 그렇게 경배를 받았습니다
하만에게 절하는 것도 바로 이 왕에게만 하는 신에 대한 경배를
총리대신에게까지 하도록 한것이기 때문에
우상숭배를 금하는 율법에 따라 모르드개가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바로 이겁니다
즉 하만은 왕에게 왕은 신으로서 모든 백성들이
왕께 경배를 드리고 왕께 예배하는데 유독 유대인들만은 왕의 신상에 절하지 않고 섬기지 않고
이를 우상이라고 멸시한다
만일 이들을 그대로 둔다면 나쁜 물이 다른 민족들에게도 퍼져서
왕의 권위가 떨어지면 왕이 제국을 다스리는데 크게 어려움이 있을것이며
감히 왕께 맞서는 이들에게 왕은 신위를 보여서 다스려야 할 것이라고 왕을 꼬드깁니다

세상에 모든 거짓말은 들통이 나도 아부만은 결코 들통이 나지 않는다고
이러한 아부가 왕을 얼마나 기쁘게 했는지
왕은 즉각 유대인을 멸하는 조서에 도장을 찍고 말았습니다

그전에 물론 하만은 왕에게 은 일만 달란트의 거액을 뇌물로 드렸고
하만은 유대인들을 죽이고서
그들의 재산을 빼앗아서 뇌물로 나간 금액을 보충하게 될 것입니다

이른바 꿩먹고 알먹고 이고 누이좋고 매부좋고의 식도 되는 기가 막힌 계교를 꾸민것입니다

7.그러나 하나님은 잊지 않으신다
마침내 유대인 몰살조서는 전국각지로 퍼져나가고
조서의 시행을 위한 준비가 이루어 지고 있을때
하만은 왕후 에스더의 잔치에 왕과 단둘이만 초대받는 영광을 누립니다

기분이 좋아서 잔치자리를 물러나던 하만은
모르드개가 자기를 보고 움직이지도 않고 경의를 표하지도 않는것을 보고는
유대인을 몰살하는 그 날까지 기다릴 수 없을만큼 화가 치밀어서
그를 죽일 방법을 자기의 아내하고 모사들과 의논을 하고는
그를 장대에 달기위해 왕의 승인을 얻기위해 이른아침 왕의 침전앞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십규빗의 높은 나무에 모르드개를 달려고 나무장대도 준비하고...
모르드개를 먼저 죽이고 왕후의 잔치에 나가려고 희희낙락하며
왕이 기침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8.전화위복
한편 그날 밤 왕은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사실 페르시아의왕들은 암살을 겁내어서 밤에 처소를 옮기며
불면의 밤을 보내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특히 변덕장이에다가 독재자였던 아하수에로 왕은
더많은 신변의 위협을 느껴서 불면의 밤들을 보내는 날이 많았는데
이날도 이런저런 이유로 잠이 오지 않아서 문득 자기의 지난 날들을 반성하려는 생각으로 왕의 궁중일기를 읽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왕이 직접 읽지는 않겟죠
신하가 일기를 가져다가 펴고 읽는데 참 희한합니다
하필이면 몇 년전 모르드개가 빅다나와 데레스의 왕 암살 음모를 적발한 대목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 많은 내용가운데 하필이면 그부분을 읽게 되다니........

왕은 즉시로 신하에게 모르드개에게 어떤 상을 주었는지를 물어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어떤 상도 주지 않았답니다
세상에 이럴수가 있습니까?

자기에게 가장 큰 공을 세운사람에게 어떤 상도 내리지 않았다니
그래서 왕은 급히 왕명을 전할 신하를 찾았는데
바로 그때 왕의 침소앞에 있던 사람은 하만이었습니다

하만은 모르드개를 나무에 빨리 달고 싶어서 아침을 기다리지 못하고
왕궁의 문을 여는 새벽부터 와서 왕이 기침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왕은 하만을 불러서 하만에게 “내가 가장 기쁘하는 사람에게
어떤 상을 내려야 하겠는가?”고 물어보았습니다

왕이 가장 총애하는 사람이 하만말고 또 누가 있겠습니까
즉시 하만은 자기에게 상을 내릴 줄 알고는 평소에 자기가 하고 싶었던 일들을
모조리 이야기 합니다

즉 본문에 나온대로 왕의 말에 그 사람을 태우되
왕복을 입히고 왕의 총신이 그 말의 고삐를 잡고는 성중을 다니면서
‘왕이 존귀케하기를 기쁘하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것이라’고 외치고 다녔으면 좋겠다고
이야기 합니다

하만은 문제의 상받을자가 자기인줄 알고 그런 이야기를 한것인데
놀랍게도 상받을 사람은 자기가 아니라 자기의 원수인 모르드개가 아닙니까!

정말 기가차고 부끄럽고 원통합니다
하루종일 모르드개의 말고삐를 잡고 성중에서 고래고래 외치고
그는 부끄러움과 번민에 싸여 집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모르드개를 나무에 달겠다고 이를 허락해 달라는 말은 정작 꺼내지도 못한채로
나중에는 하만의 총리대신의 자리가 모르드개에게 가고
그가 모은 모든 재산과 집은 에스더의 차지가 됩니다

하하
하나님은 그런분입니다
아마 하만은 총리대신으로 엄청난 치부를 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왕에게 은 일만 달란트를 뇌물롤 바치죠
여하튼 그 엄청난 재물과 애써서 가꾼 집은 모두 자기의 원수의 손에 넘어가고
자기와 그 열아들은 모두 자기가 준비한 그 나무에 달리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부당하게 자기의 공을 다른이에게 빼앗겼습니까?
내가 세운 공인데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습니까?
오히려 자기가 세운 공으로 인해서 출세한 원수가 자기를 핍박합니까?

그런데도 하나님은
정의와 공의의 하나님은 도데체 아무 응답이 없습니까?
오히려 소위 자기 자녀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대적을 이롭게 하는
정신나간 신인것 같습니까?
아니 이 세상에 하나님의 공의란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습니까?

그러나 내가 주어진 자리에서 묵묵히 인내하며 충성한다면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에게 주어질 것임을 저는 믿습니다

비록 현실이 나를 불만족 스럽게하고
나의 믿음을 흔들어도 끝까지 하나님을 믿고 나간다면
정말로 뜻하지 않았던 장소에서 뜻하지 않았던 놀라운 축복이 여러분을 기다릴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
왜입니까?
그는 공의로운신 하나님이며 사랑의 하나님이며
그의 백성을 눈동자같이 살피시고 계신 전능자이시기 때문입니다.

- 홍종일 목사 (現 정관영암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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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영암교회는 가정교회 운동, 가난한 이웃을 섬기는 운동, 쉼을 소중히 하는 운동 을 하고 있습니다.

부산 기장군 정관면 백운공원 옆 / 함께 하고 싶으신 분은 strongbell@한메일 / stronghjs@네이버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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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올린이의 이야기 (개인적인 이야기이며, 아래부터는 시북군의 이야기 입니다.)

 출세를 위해서, 성공을 위해서, 자신의 영혼까지도 파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더 좋은 줄을 타고, 더 좋은 백을 가지기 위해서, 더 좋은 간판을 달고, 그것들을 마치 당연하다고 여기면서 휘두르기 위하여, 현실은 점점 피비린내 나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묵묵히 자신의 갈 길을 가거나, 자신의 신념을 지키면서 살면 바보라고 멸시당하거나, 다들 그렇게 사는데 너는 왜 그러냐 고 무시하기도 한다.

 얼마 전 하얀거탑의 한 부분을 보다가 그만 눈물이 나고 말았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한 어떤 의사가 원칙을 꿋꿋하게 지키느라 성공하지 못한채 아직도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의사 보다 더욱 인기를 끌고 있는 모습을 보고, 나는 그만 그 씁쓸함에 눈물이 나고 말았다. 어제는 가게에서 일하는데 어떤 사람이 신형 아우디 자동차를 가게 앞에 주차하고 가게를 들어오더니 반말부터 툭툭 내뱉고 찾는 물건이 없다며 끝까지 반말으로 일관하며 나가버린다. 그 사람의 뒷모습이 어찌나 한심스럽던지... 돈의 신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기억하고 계신다. 불의하게 얻은 재물은 분명 멸하시며, 자신의 자리에서 정직하게 최선을 다하는 자를 사용하신다. 거짓말은 언젠가 들통나게 되어 있으며, 타인의 자리를 훔치는 것도 때가 되면 진실은 밝혀지게 되어있다. 기독교인이라면 적어도 정직해야 한다. 그리고 굴하지 않아야 한다. 돈의 신에도. 권력의 신에도. 기독교인에게 신이 있다면, 그것은 타인을 사랑하는 그 마음 이어야 한다.

 이상의 말들은 이상적인 헛소리 임에 분명하다. 요즘 같이 어려운 세상에 남을 도우면서 살아야 한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자신의 간판 타이틀을 조금이라도 더 과시해서 인정받아야 할 판국에, 바보 돌아이 처럼 자신의 자리를 빼앗기고도 멍청하게 가만히 있어보라니, 말이 안 되어도 한참 안 된다.
 그러나.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최대한 남과 더불어서 살아가야 한다. 허영심과 자리에 대한 집착 대신에, 비록 가난할 지언정 영혼을 팔지 않고 자신이 믿는 세상을 위해서 걸어가야 한다.

 하나님은 기억하신다. 그러니 그대 억울하고 힘들지라도 기도하고 오늘 하루에 최선을 다하라. 그리고 정직하라. 세상의 유혹에 맞서 싸우라. 우리들이 이 피비린내 나는 세상을 사람냄새 나는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바꿔야 하지 않겠는가.

by 시북 (2008년 2월의 글)

 페르시아의 저 나무 작대기로 죽이는 형벌은 십자가 만큼이나 잔인하다고 한다.
 쉽게 말해 나무 작대기로 몸 아래에서부터 등까지를 (장기를 잘 피해) 찔러놓고, 서서히 죽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십자가처럼 상징적인 죽음이었다. 하만은 이렇게까지 해서 후환을 완벽하게 없애버리고자 했다.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더럽고 잔인한 방법으로...

 그런데 역설적으로 거기에 당하는 것은 자신이다.
 잠언에도 나오지만, 악인이 스스로 덫을 놓고, 거기에 걸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자기가 걸릴 줄은 몰랐겠지...

 결국 뿌린대로 거둔다고, 선한 사람이 선한 곳에 올바르게 심으면, 그 열매가 악하기가 힘들다.
 반대로 악한 마음만을 항상 담고 있으면, 그 마음은 부메랑이 되어서 자신을 치기 마련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칼을 내리라 고 말씀하셨다. 분노는 잠깐의 만족은 줘도 평화를 주지 못한다.
 기독교인은 심판자가 아니라,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기다리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자기 뜻대로 일을 계획대로 착착 해나가던 사울은 망하지만,
 치명적 실수 속에서도 하나님을 울면서 찾던 다윗은 주가 기뻐하신 것처럼... (2010년 8월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