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선정된 FIFA100 에는 골키퍼가 9명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가장 잘 나가던 올리버 칸, 부폰 등이 있었고, 전설적 선수인 레프 야신, 고든 뱅크스, 제프 마이어, 피터 슈마이켈도 있었지요. 헐, 벌써 6명을 썼네요. 벨기에의 장마리파프, 터키의 레츠베르 까지 하면 8명. 남은 한 명이 바로 구소련의 명골키퍼 리나트 다사예프 입니다. 블로그에 이 선수 이야기만 없었기 때문에 (웃음) 오늘은 다사예프 이야기를 정리해 봅니다.
프로필
이름 : Rinat Fayzrakhmanovich Dasayev
생년월일 : 1957년 6월 13일
신장 : 189cm
포지션 : GK
국적 : 구소련 / 현 러시아
국가대표 : 97경기 (구소련 역대 2위)
80년대 세계에서 손꼽히던 명골키퍼 리나트 다사예프 이야기
다사예프는 고향팀 볼가르 아스트라한에서 축구 생활을 시작하는데, 뛰어난 가능성을 인정받으며 1977년 소련의 명문클럽 스파르타크 모스크바로 이적하게 되었습니다. 약 10년 동안 335경기를 소화하면서 두 번의 리그 우승에 공헌하였고, 80년대에만 6번의 소련 최고의 골키퍼로 선정되었습니다. 뿐만 아니었지요. 1982년 소련 올해의 선수상, 1988년 IFFHS 선정 세계최우수 골키퍼로 선정되면서, 80년대 손꼽히던 명골키퍼로 인정받았습니다. 80년대 소련 국가대표팀의 캡틴이었으며, 큰 키와 좀처럼 골을 허용하지 않는 모습 등이 강렬했기에, 철의 장막 이라는 무서운 별명도 가지고 있습니다.
장신을 살려서 공중볼 처리에 강했고, 뛰어난 반사신경을 무기로 슈팅을 잘 막아내는 게 장기였습니다. 안정감도 탁월했다고 평가받았으며, 월드컵에도 3차례 출장한 바 있습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유로88을 손꼽을 수 있습니다. 소련은 잘했고, 조별리그에서 네덜란드와 잉글랜드에게 승리를 따내며 1위로 4강 진출에 성공합니다. 4강에서 이탈리아를 잡았고, 결승까지 올라간 소련. 그리고 결승에서 만난 상대는 네덜란드! 이미 조별리그에서 한 번 붙어봤던 네덜란드와 다시 마주했기에, 소련은 우승도 충분히 바라볼 수 있었지요. 소련은 잘 해왔지만, 네덜란드 반 바스텐의 마법같은 골이 터지며 아쉽게도 패배. 준우승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88년 다사예프의 포스는 뛰어났고, 최고의 골키퍼 상도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소련은 80년대 후반부터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을 추진합니다. 적극적으로 외교를 추진하고, 개혁과 개방에 가속도를 냅니다. 이것은 축구선수에게도 기회가 열리는 셈이었지요. 드디어 국외이적이 허용됩니다. 해외로 나가서 외화를 열심히 벌어보라는 의미였습니다. 다사예프 같은 명선수는 거의 국외이적 초기멤버로서, 1988-89시즌 해외 진출에 성공합니다. 라리가 세비야로 이적한 것이지요. 이 곳에서 3시즌을 보내고, 30대 중반의 나이로 현역에서 은퇴하게 되었습니다. 유로88에서 소련이 우승했더라면, 혹은 좀 더 일찍 해외이적의 길이 열렸다면, 다사예프는 더욱 유명한 골키퍼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어찌되었던 커리어 중 빅타이틀은 얻지 못했으니까요.
1980년 올림픽 3위, 1988년 유로 준우승 등 굵직한 대회 때 마다 꾸준하게 활약했고, 1982년 월드컵에서는 눈부신 선방으로 이름을 날린 바 있습니다. 소련 국가대표로 97시합 출장, 블로힌에 이어서 역대 출장 2위 기록이 되었지요. 은퇴 후에는 축구계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코치로도 활약했고, 비교적 최근에는 2018년 월드컵을 러시아에서 유치하기 위해서 노력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2018년 월드컵은 러시아 개최가 되었고요. 한국어 위키백과 문서 2018년 FIFA 월드컵에 가보면 다음과 같은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좌상단에는 중년의 다사예프씨가 보이네요.
동영상을 찾아봤는데, 마땅히 연결된 영상이 없어서, 멋진 선방 5개 모음 영상을 소개합니다. 중간에 살짝 다사예프가 나오고, 볼만합니다. 정리하자면, 레프 야신에 이어서 소련의 전설적 골키퍼로 평가할 수 있는 다사예프이며, 80년대 세계에서 손꼽히던 명골키퍼로 정리될 수 있겠습니다. 애독해 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리며, 좋은 하루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