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불멸의 연인 (Immortal Beloved, 1994) 리뷰

시북(허지수) 2013. 3. 8. 16:23

 베토벤과 음악을 다루고 있는 명작 영화, 불멸의 연인을 살펴볼까 합니다. 베토벤의 인생을 그려내고 있는, 전기 형식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미스터리를 좇아나가는 전개감도 상당히 재밌습니다. 베토벤이 정말 사랑했던 불멸의 연인이라면, 당연히 음악이겠지! 라는 저의 허접한(!) 추리력도 전혀 통하지 않았습니다. 베토벤의 감각적인 클래식 음악들을 사랑한다면, 이 영화, 한 번쯤 시간내서 본다면 좋은 선택이 아닐까 싶습니다. 배경음악들은, 런던 교향악단이 직접 연주를 다루었기 때문에, 눈만 아니라, 귀까지 즐거울 수 있을테니까요.

 

 저는 물론 음악을 사랑하고, 악기를 좋아하지만, 재능은 영 꽝입니다. 베토벤 같이 존경받는 대가들은 도대체 어떻게 영감을 얻으며, 무엇을 생각했기에 위대한 유산들을 남길 수 있었는가. 영화 불멸의 연인을 보고 있으면, 그 힌트를 얻게 될 것입니다. 더욱이 베토벤은 청각장애로 후년에는 고생을 많이 하고, 글로서 의사소통을 했던 것을 고려해본다면, 그 놀라운 재능과 집중력의 비결이 참으로 궁금해집니다. 버나드 로즈 감독의 해답을 생각해보며, 저는 두 가지 키워드로 요약정리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일상", "예민함" 입니다.

 

 

 일상에서 답을 찾는다 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겠지요. 등잔 밑이 어둡다 라는 교훈은, 가까이 있는 것을 잘 모른다 라는 의미로 통용되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 저는 등잔 밑에 대해서 자꾸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얼마나 등잔 밑을 충실하게 바라볼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가까이에 있지만, 밝은 곳에 시선을 빼앗겨서, 정작 어두운 곳을 놓칠 때가 많습니다. 베토벤은 누구보다 예민했던 사람이기에, 그 일상의 어두운 부분에서도 영감을 얻을 줄 알았습니다. 베토벤의 비극적 슬픔과 아름다운 열정을 저절로 사랑하게 되는 영화 속으로 이제 들어가봅니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겉으로 보이는 베토벤의 모습은 괴짜에, 난폭하며, 감당하기 곤란한 사람으로 묘사됩니다. 천재들이 그렇듯, 주변의 시선은 안중에도 없고, 자신의 내면을 철저하게 소중히 다루는 모습이 초반부에 압권으로 펼쳐집니다. 그는 피아노 앞에서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면서 연주하고 있는 동안에는, 음악과 완전히 하나가 됩니다. 베토벤에게 음악이란 피부와도 같았을 것입니다. 자신을 감싸고 있는 절대로 뗄 수 없는 그 무엇. 그래서 음악이 도중에 중단되면, 그는 견딜 수 없어 합니다. 날카로운 칼에 피부가 베여서 피가 흐르는 모습, 이것이 베토벤을 사로 잡고 있는 감성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이 오면, 베토벤은 격렬하게 표현합니다. 의자를 던지고, 하염없이 절망하기도 하며, 아무 잘못없는(!) 유리창까지 박살나기도 합니다. 여관주인의 말을 빌리자면, "정말 말하기도 싫은 인간"이 베토벤의 모습 중 하나지요. 기품이 넘치고, 우아하며, 여유로운 베토벤의 모습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습니다. 거의 언제나 어딘가에 사로잡혀 있고, 한 번 결정한 선택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광기에 가깝게 밀어붙입니다. 일상을 이토록 뜨겁게 살면서, 상처투성이가 되는 인간을 저는 좀처럼 보지 못했습니다. 멋있다고 표현하기에는 조금 곤란하고, 불덩이 같은 사람이라고 쓰면 그래도 조금 나을 것 같습니다.

 

 자신의 의견을 막무가내로 표현하며, 주변 사람을 상처 입히기도 하고, 도무지 감당하기 어려운 그 이름 베토벤! 그의 삶은 지나치게 예민했고, 그로 인해서 피곤하고, 쉬지 못하는 영혼이 되어 갑니다. 누가 이 사람을 말릴 수 있단 말인가요. 베토벤은 사랑에 빠지면서 더욱 격렬해 집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 아들뻘 되는 칼에게 헌신하기도 하고, 또 때로는 빗방울이 거세게 몰아치는 날에도, 사랑하는 이를 만나기 위해서, 모두가 미쳤다고 말려도, 마차를 타고서 달려갑니다. 감각적인 그의 음악만큼이나, 그의 삶은 더욱 감성에 가득차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베토벤이 들려주는 고백은 그야말로 소름돋습니다. "음악이란 사람의 마음을 맑게 해주고, 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하는거, 나는 그런게 아니라고 말하겠네, 음악이란 그저 작곡가의 내면을 말해주는 것이야. 듣는 사람이 아니라, 나의 감정이 중요한 거라고." 다시 말해, 베토벤에게 음악이란, 누군가의 귀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소통의 기구였던 것입니다. 이 대목이 너무 좋아서, 하마트면 음악적 영화보다가 펑펑 울뻔 했습니다 (웃음)

 

 이런 의미를 배경으로 깔아놓고 보자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마차가 빗속에서 거칠게 달려가지만, 아무리 해도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않을 때 그 처절한 감정을 들려주는 음악이란" 그야말로 그 존재 자체로 마법이 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우리가 음악을 통해서 위로 받고, 힘을 얻고, 또 즐거울 수 있는 것은, 우리를 사로잡는 마법같은 음악들이 우리의 감성을 선명하게 잘 표현해 주기 때문이 아닐까요. "음악은 감정을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운 마법" 영화에서 얻을 수 있었던 값진 영감이었습니다.

 

 저는 가끔 사람들이 즐겨 듣는 음악리스트를 살펴보면서 놀라곤 합니다. 우울해 보이는 사람이, 실제로도 우울한 음악을 즐겨 듣는 경우가 많고, 경쾌한 사람이, 밝은 음악을 좋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처음에 저는 음악이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게 맞구나 싶었는데, 지금은 조금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그 음악이 자신과 잘 맞고, 자신의 느낌을 잘 표현해 주기 때문에, 그 리스트에 들어가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영화 마지막 장면에 가서는 그야말로 놀랍고도 엄청난 감동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베토벤은 지금 절망적인 상황이거든요. 5년 넘게 곡을 만들어 내지 못했고, 한물 갔다는 소리를 듣고, 동네 꼬마들에게까지 놀림 받는 상황, 게다가 그의 개인사 마저 뼈아픕니다. 아들뻘인 칼이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며, 자신을 내팽겨쳤고, 그의 내면은 지금 상실감, 좌절감으로 가득 들어차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들려줍니다. 그 유명한 곡을 마침내 완성해 세상에 내놓습니다. 유네스코의 유산이라는, 예술계의 전설적 걸작, 그 유명한 교향곡 9번입니다. 4악장의 환희 장면을 보면서, 저는 희열을 느낍니다. "그 모든 이루어지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다는 것은 이 얼마나 아름답고 기쁜 일인가"

 

 리뷰를 마치며, 저는 이루어지지 못함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때로는, 칭찬과 박수를 들을 때보다, 거절과 비난을 들을 때가 더 많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음에도, 삶에 대해서 기뻐할 수 있음을, 삶에 대해서 아름다워할 수 있음을, 오늘에 대해서 감사할 수 있음을, 교향곡 9번을 통해서 듣게 됩니다. 얻어 맞고, 방황하고, 통곡하고, 인생의 검은 그림자 앞에서, 어두운 등잔밑을 뚜렷하게 보면서도, 환희의 송가에, 기쁨의 노래를 작곡해 헌사할 수 있는 인간이라는 놀라운 존재. 수 세기 앞에서, 치열한 삶을 살다간 예술가 앞에서 브라보를 외치며 글을 마칩니다. / 2013. 03.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