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제가 어린 시절만 해도, 발해를 꿈꾸며 같은 곡들이 큰 유행을 타고 했었습니다. 지금 아이들이라면, 뭐야 그 곡은? 이렇겠지요. 한편, 1940년에 발표된 신라의 달밤 같은 노래도 있었습니다. 어르신들이라면 현인 같은 가수를 잘 알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여하튼, 오늘은 고대 정치의 마지막 파트로, 발해를 살펴볼텐데요. 다행히도(?) 혹은 불행히도(!) 발해는 역사적 기록이 많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분량이 다소 적어 공부하기에는 약간 편할테지만, 시험에 한번씩 꼭 나오기도 하므로, 잘 체크해둔다면 좋겠습니다.
우선 발해 건국은 대조영이 동모산에서 698년에 건국 합니다. 자, 이제 훗날 926년에 거란에게 멸망한다로 오늘은 끝? 하하, 아닙니다. 국사를 암기만 한다면 그건 슬픈 일입니다 ㅜ.ㅜ. 일단 발해 건국을 가지고 문제가 자주 나오는 편은 아닐테고, 발해하면, 8세기에 있었던 무왕과 문왕에 대해서 확실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습니다.
무왕, 어쩐지 강력한 무(武)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서쪽의 당나라와 무력 충돌을 하면서, 영토를 상당히 넓혔다고 평가됩니다. 특히 북만주 지역을 장악 했습니다. 인안 이라는 연호를 사용했으며, 멀리 있는 산둥 지역과 요서 지역까지도 공략하는 등, 발해의 힘을 보여주는 왕입니다. 발해는 돌궐, 그리고 일본과 외교관계를 유지했다는 것도 체크할 포인트 입니다. 당연히 점점 커져가는 발해를 좋게만 보지 않는 나라들이 있겠지요? 특히 당나라와 발해 북동쪽의 흑수말갈족은 상당히 발해를 견제했습니다. (여담으로, 중국 역사 교과서에는 발해는 속말말갈족이 수립한 정권이라고 표기되어 있다고 합니다. 당나라 현종이 대조영을 발해군왕으로 책봉했다며, 마치 중국사의 일부로 가르치기도 합니다.) 자, 중국사라, 과연 그럴까요? 더욱 살펴봅시다.
문왕 이 들어서면, 정책을 다소 변경합니다. 동아시아의 절대강국 당나라와 사이가 좋지 못하다면, 심한 경우 전쟁도 발생할 수 있겠지요. 문왕은 상당히 친화적인 외교노선 을 걷습니다. 친당, 친신라를 표방하며, 당나라에 사절과 유학생을 보내기도 하고, 신라와는 교통로인 "신라도"를 열기도 합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문왕 역시도 연호를 사용했으며, 결정적으로, 일본에다가 이렇게 국서를 보냅니다. "나 고려왕 대흠무는..." 즉, 발해는 중국 역사가 아닌 것입니다! (※당시 고구려는 고려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외교 문서에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발해인 317명의 성씨를 분석하면, 많은 순대로, 대씨가 90명, 고씨가 56명... 이렇게 나옵니다. 지배층은 고구려계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지요. 다른 측면에서 말하자면, 정체성은 누군가 규정해 주는 것이 아니라, 직접 규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친당 정책을 쓰면서도, 정체성은 분명히 고구려 계승국 임을 외교문서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에서 발해가 대단히 영리해 보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요.)
당나라를 포함한 중국은 전통적으로 이국끼리 싸움을 붙이는 이른바 "이이제이" 정책을 사용합니다. 서로 싸우다가 당나라(중국)에게 구애와 도움을 구하면, 그 때 비로소 도와주거나 흡수하거나 하는 셈입니다. 그러므로 당나라 측에서는, 한반도 남북국 시대에 발해와 신라도 이간질 시키고, 서로 분열되기를 원했을 테고요. 그런 시대 상황에서도 문왕은 우리 발해는 겉으로는 친당을 하면서도, 신라와도 교류를 열어보려고도 하고, 일본과도 외교노선을 열어놓습니다.
한편, 발해에는 5경이라는 대도시가 있었습니다. 상경, 동경, 서경, 남경, 중경 이렇게 5개가 있는데, 문왕 때 동모산에서 수도 이전을 해서, 중경으로, 다시 상경으로 옮겨집니다. 상경이 실질적 수도 역할을 했다고 보는데, 여하튼 발해의 5경 15부 62주는 종종 문제의 보기로 언급되니 체크해 둘 필요가 있네요.
자 이제 9세기 발해 최전성기, 선왕 에 대해서 살펴봅시다. 이 때 발해는 요동까지 진출하며, 실로 엄청난 영토를 자랑하는데, 당나라에서는 발해를 두고 "해동성국"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바다 동쪽에 번성한 나라를 네 글자로 줄이면 해동성국 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말이에요. 우리는 이제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아니 9세기까지 그토록 번성한 나라가, 왜 926년에 갑자기 망하는가? 입니다. 직접적인 이유는 거란의 공격에 의한 멸망 입니다만, 또한 부연 설명으로 귀족 간에 싸움이 일어났었다 라고 말하는게 일반적입니다만, 몇 가지를 더 생각해 봅시다.
일부 학자들은 백두산이 폭발하면서, 발해 지역이 쑥대밭이 되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백두산의 화산재가 저 멀리 일본에서 발견될 정도로 엄청난 폭발이 있었기에, 발해는 갑작스럽게 추락할 수 밖에 없었다고 보는 설이 있습니다. 백두산은 엄연한 휴화산으로서, 언제 폭발할지 아무도 모릅니다. 천년 주기로 폭발한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렇다면 딱 요즘이 폭발 무렵 아닙니까 -_-;;; (가끔 뉴스에서 2014, 2015년에 펑 한다는 설도!) 헉? 물론, 과거처럼 엄청나게 큰 폭발이 될 가능성은 적다고 합니다.
또 한 가지 현실적인 이유로는, 이원적 민족구조를 손꼽을 수 있습니다. 발해는 지배층이 소수의 고구려인이고, 피지배층이 다수의 말갈인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아까 언급한 것처럼 대씨와 고씨 등이 지배층 가문이었고요. 자, 그렇게 놓고 볼 때, 외부에서 거센 침략이 들어올 때, 과연 모두가 힘을 합쳐서 싸울까요? 발해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내야 한다고 결사항전을 할까요?
냉정히 볼 때, 말갈인 입장에서는 싸울 동기가 확연하게 떨어집니다. 그러므로, 소수의 지배층만 가지고는 다수의 군사와 싸워서 이기기 어렵습니다. 즉 발해 지방에 사는 사람들을 모두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강력한 사상이 없었다면, 발해는 외부 침략에 갑자기 무너질 수 있는 근본적 위험요소를 안고 있었던 셈입니다. 소수가 독점지배하고 다수가 지배받는 구조는, 위기에 강하기 어렵습니다. 다르게 말해서, 이원구조를 유지하며, 배타적인 정책을 펼친 발해의 통치구조도 하나의 몰락원인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신라의 멸망도, 진골들이 다 해먹다가, 백성들이 등을 돌려서 고려에게 민심이 넘어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겠고요. 여하튼, 아무 이유 없이 해동성국으로 불린 강국이 주저 앉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발해는 대략 이 정도로 개관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다음 문서에서는 시험대비용으로 (...) 문제나 지문, 선택지에 단골로 등장하는 부분을 살짝 정리해 보겠습니다. 가령,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한 근거와 당나라의 영향을 받은 부분이 무엇인지 살펴보는게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적어도 발해 관련 상세내용들도 올킬해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하.
오늘의 영감은 무엇으로 할까요? 오늘 내용 중에 "이이제이"는 생각을 아주 많이 해 볼 필요가 충분히 있습니다. 이이제이를 작가 루쉰식으로 이야기 한다면, 이렇게 쓸 수 있습니다. 한 노예가 지금 배가 너무 고픕니다. 그런데 옆을 보니 어떤 노예가 간신히 끼니를 해결하고 있어요. 화가 난, 또는 질투심에 사로잡힌 노예는 당장 달려가서 그 끼니 나도 좀 달라면서 거세게 싸우고 정신이 없습니다. 그렇게 노예끼리 싸우느라 정신줄 놓다 보면, 정작 "내가 누구 때문에 노예가 되었는지, 왜 노예로만 살아가야 하는지" 잊어버리고 맙니다. 노예의 진짜 적은 누구입니까, 당연히 옆의 노예가 아닐 것입니다. 당신을 노예로 만든 사회구조가 첫 번째 적이며, 거기에 물들어서 생각하는 것을 중단해 버린 스스로의 마비된 안일함이 두 번째 적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누가 우리를 이간질 시키는지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뉴스를 내보내면서, 어떤 뉴스를 덮어버리는지 생각해 볼 필요도 있습니다. 무엇이 더 중요한지는, 누군가가 정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가 바른 사고와 바른 행동을 하기 시작하면, 잘못된 구조가 더 잘 보이지 않을까요.
혹여 이 땅의 아이들이 사회에 진출해서, 아무리 노력하고, 애써봐도, 자꾸 가난해진다면, 그것은 "당신이 못나서, 가치가 없어서, 그런게 절대로 아닙니다" 옆의 친구들이 너무 잘나보이고, 내가 초라해 보인다면, 그것 역시도 "내가 부족해서 그런게 절대로 아닙니다" 잘 생각해 봅시다. 서로 원망하고 싸우고, 비난만 가득하면, 결국 누가 자꾸만 웃게 되는지요. 나쁜놈들 전성시대를 만들 것인지, 나쁜놈들이 벌을 받고 죄값을 치루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 것인지는, 바로 우리 모두가 나서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누군가의 노예로 살아서 행복한 인생은 거의 없습니다. 스스로를 자학하기 보다는, 부디 힘들더라도 자신을 더 소중히 여기기를 꼭꼭 응원합니다.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