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Bedevilled, 2010) 리뷰

시북(허지수) 2013. 5. 14. 23:58

 영화를 좋아하는 지인에게 물었습니다. 요즘 TV에서 자주 해주는 인상적인 제목의 영화가 있는데, 김복남 어쩌고... 웰메이드 잔혹 영화라는데 어떤 느낌이었어? 제게 돌아오는 불친절한(?) 답변은, "보고 싶으면 보든지!" 였습니다. 그 때, 살짝 감을 잡았습니다. 이 작품, 무엇인가 굉장한게 있을꺼야! 시작부터 빨려들어가는 내용은, 끝날 때까지도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거침없이 밀어붙입니다. 여러가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잔혹 영화 속으로 출발해 봅니다. 복수극 좋아하는 분들께, 감히 양손으로 추천하는 작품입니다!

 

 영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이 전해주는 주요테마는 불친절한 인간들에 대한 핏빛 복수이지만, 전개 방식은 상당히 괴로운 측면이 있습니다. 주인공 김복남양은 영화 초반부터 중반까지 내내 가혹하리만큼 잔인한 현실에 시달리기 때문입니다. 과연 짐승인지, 인간인지, 분간이 안 될 만큼, 욕망으로 썩은 내가 진동하는 인간들 앞에서 복남이는 처절하리만큼 당하고만 삽니다. 슬픔을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고된 서울살이를 하고 있는 예쁜 친구 해원의 시선에서부터 이야기는 출발합니다. 해원은 괜히 피곤한 사건에 휘말려 들었다가,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나쁜 행동들을 차라리 모른 척 하고 지나가 버렸으면, 평온한 일상이 계속되었을텐데요. 목격자로서 증언을 하는 행위가, 오히려 삶의 부담으로 느껴지는 대목은 씁쓸합니다. 오늘날 만연한 생각들인,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라는 심정으로 나쁜 일들을 그저 외면하거나 침묵으로 건너뛰는게 당연시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극한까지 밀어붙인 사회가 등장합니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바로 복남이 살고 있는 무도 입니다. 이 외딴 섬에서는, 힘이 곧 정의가 되었고, 나쁜 일들이 무엇이든 정당화 되는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이 세계에서는 남편이 아내를 때려도 상관 없고, 남편이 다른 여자와 잠자리를 공공연하게 가져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법이 통하지 않는 세상이 온다면, 얼마나 끔찍한 모습이 될지, 한 편의 영화를 보면 너무나 잘 알 수 있습니다. 무법천지에서는 사회적 약자가 "차라리 죽는게 나은 생지옥"이 잔인하게 펼쳐질 뿐입니다. 친구 해원은 무덤덤하게 조언을 해주는데, 다 큰 성인이니까, 알아서 하라고 냉정히 쏘아붙이는데요. 현실은, 의지할 곳 없는 복남이가 알아서 탈출을 시도했다가는 그야말로 죽기 직전까지, 거의 다리가 부러질 만큼, 두드려 맞을 뿐입니다.

 

 더욱 가슴 아프게 느껴지는 것은 법이 없는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법은 존재하기는 하나, 실행되지 않으므로, 보이지가 않습니다. 따라서 강자들은 법을 우습게 알며, 거짓말을 남용하며, 위선의 가면을 쓰고선, 낄낄대는데 능숙합니다. 사람이 죽어도, 태연하게 약자에게 죄를 뒤집어 씌울 수 있고, 진실을 가볍게 덮어버리면서, 면죄부를 얻어갈 수 있습니다. 이걸 바꿔 말해서, 법이 실종된 사회라고 말해도 좋겠지요. 지위를 누리는 인간들은 탐욕동맹을 결성해서, 복남이를 "이방인" 취급해 버립니다. 잘못된 건 전부 복남이 탓, 잘못된 것은 모두 약한 인간 탓으로 돌려서 돌을 던져버리면 그만입니다.

 

 외딴섬 무도는 얼마든지 현대 사회를 풍자하는 모습일 수 있습니다. 해원이가 살짝 고백하듯이, 서울 생활은 이 미친 섬 생활보다 더 힘들 수 있다고 폭로하는 장면이 그렇습니다. 약자에게 심하게 잔혹하고, 강자들은 미쳐서 날뛰어도 벌받지 않는 이상한 사회를 꼬집는 듯 느껴졌습니다. 더욱이 개인주의가 만연해서, 힘든 순간 도와주려는 사람은 없고, 가까운 동료조차 적으로 느껴지는 조직 생활의 어두운 이면은, 해원 역시도 괴로움 속에서 살고 있음을 슬프게 보여줍니다. 잠깐 쉬고 오라고 해서 머리를 식히고자 휴가를 떠났더니, 도착한 문자는 비정규직 해고 통보 입니다. 조금은 극적으로 전개되고 있음을 염두하더라도, 어디까지나 현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쓰라린 단면입니다.

 

 먹먹하게 찍어 누를만큼 가슴이 무겁고, 안타까운 것은, 정작 서울의 약자와 무도의 약자가 서로 손잡고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해원은 사실을 알게 되어도 지켜보려는 입장에만 서 있을 뿐, 복남의 처참한 현실 속으로 동참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상징적인 영화 초반의 장면 그대로 입니다. 가까운 친구의 절실한 구원 요청에, 해원의 마음은 자동차의 검은 창문 처럼 올라가서 닫힐 뿐입니다. 그리고 영화는 중반부터 각성한 복남양의 매력적인 잔혹극으로 무섭게 반전됩니다.

 

 특히 할머니가 절벽 끝 코너에 몰렸을 때까지도, 단 한 마디의 사과나 반성이 없다는 것은, 오늘날 기득권을 누리는 세력들의 모습과 너무나 똑같아서 섬뜩하게까지 느껴졌습니다. 간단히 말해, "너는 계속해서 우리의 노예로 살아야지 이X야, 이제 우리 편들 오면 너는 또 죽도록 맞는거야" 입니다. 복남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왜? 언제까지? 다음에 뭐? 더 이상 가짜는 그만!"

 

 그리하여 복남은 스스로 서울행, 아니 삶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자신의 삶을 개처럼 만들었던 모든 인간들에게, 조금의 망설임 없이 다가갑니다. 모든 적들을 쓸어버리고, 마지막으로 복남양이 해원의 품에 안겨 있는 모습은 단 한 가지를 속삭이는 듯 느껴집니다. 삶의 행복했던 순간은 15년전 함께 소박하게 리코더를 불던 그 시절인데... 그 벅찬 감격의 시간을 이렇게라도 다시 맞이하게 되니 좋구나... 라는 그녀의 마지막 느낌은, 제가 정확한 언어로 묘사할 역량이 부족하네요.

 

 영화는 해원의 각성과 함께 훌륭하게 마무리 됩니다. 이걸 다시 태어난 기분 이라고 표현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깊은 무게감을 선물받았습니다. 좋은 인생이란, 결코 저절로 주어지는 게 아니구나. 마찬가지로 정의로운 사회, 공정한 사회, 법이 존재하는 사회 역시도, 저절로 주어지는 게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타인의 아픈 상황과 현실에 대해서, 냉정한 태도로 방관만 하지 않도록 더 노력해야 합니다. 약자에 대한 무관심이 가득한 사회야 말로, 폭력의 사회로 가는 가장 가까운 모습임을 선명하게 볼 수 있던 작품.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이었습니다. 진상의 거인들에 맞서는, 용기 있는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의 현실은 앞으로 밝아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을 미치게 만드는 병든 사회구조는 결코 영원히 지탱되지 못할 것입니다. 친절한 사회로 가기 위해서, 내가 먼저 친절해 지도록 노력했으면 좋겠네요. 휘갈겨쓰는 장문리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힘써 친절 유지중 ^-^;) / 2013. 05.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