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퍼시픽 림 (Pacific Rim, 2013) 리뷰

시북(허지수) 2013. 8. 6. 23:33

 최근 웹상에서는 "기대하지 말고 영화를 보면 괜찮은 작품" 이라는 묘한 평가가 나올 때가 있습니다. 이 말은 두 가지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기대를 크게 했다가 실망을 했다는 이야기 이기도 하며, 한편으로는 그래도 볼만은 했었다 라는 평가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본다면 퍼시픽 림이야 말로, 딱 이런 평가에 어울릴 법 합니다. 로봇의 압도적 크기에 감탄하게 되면서도, 어쩐지 살짝 지루한 전개나, 특별한 감동은 없는 전개에 실망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어쨌든 2천억에 달하는 제작비를 투입해서, 화려하게 펼쳐지는 로봇 장면들은 충분히 볼만하겠고요.

 

 이런 영화는 역시 영화관에서 봐야지! 라고 주장하며, 7월에 극장에서 보았는데, 연출력 면에서는 괜찮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다만 흡입력 면에서는 어딘지 극으로 끌어들이는 힘이 다소 부족한 느낌은 받았습니다. 지구가 당장 "카이주(괴수)"로 인헤, 엄청난 위험에 처해있지만, 거기에 당황해 하고 힘들어 하는 다수의 모습은 별로 보이지 않고, 상대적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소수 로봇의 힘은 강조되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강력한 아군의 힘만 보여주는 건 아닙니다. 다른 세계에서 계속 건너오는 카이주들은 위협적이며, 점점 학습하는 능력을 통해서, 그 힘이 "진화"해 나갑니다. 반면 이들을 막아내려는 거대 로봇 프로젝트는 몇 번의 실패를 경험하면서, 급기야 "프로젝트 폐기"로 내몰리고 있고요. 어떻게 본다면, 통쾌 상쾌한 영화라기 보다는, 위기를 돌파해 나가는 "의지와 희생"을 그리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 인상적인 대목들 위주로 후다닥 리뷰를 써보겠습니다. 하하.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같이 보았던 지인은, 왜 혼자서 조종하지 못하는 건데? 라면서 소박한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극중에서는 거대 로봇 조종, 이른바 "드리프트"를 하게 되면, 인간의 뇌가 강한 압박을 받기 때문에, 그 과부하를 두세사람이 나누어서 감당한다고 친절히 설명되고 있습니다만, 어쨌든 1인승 로봇은 아니라는게 재밌습니다. 자연스레 누군가 파트너가 필요하지요. 보통은 아주 가까운 사람, 이를테면 가족이나, 형제가 함께 하면서 거대 로봇을 조종해 나갑니다. 두 사람이 생각의 동조를 할 때, 부담이 적으려면, 아무래도 함께 살아온 사람이 익숙하기 때문이겠지요. 우리가 가족의 단점까지도 가급적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것도 이와 유사합니다. 일종의 운명을 같이 하는 사이랄까요.

 

 그런데 영화는 시작부터 주인공인 롤리 베켓이 하나뿐인 대체불가능한, 소중한 파트너를 잃는 장면을 그려냅니다. 롤리도 곧장 실의에 빠지며, 로봇을 더 이상 타지 않으면서 살아가지요. 다시 한 번 로봇을 타보라는 제안을 받아도, 롤리는 "다시는 그런 극단적 고통은 경험하고 싶지 않다"며 완강히 거부합니다. 영화에서 처럼 극단적 경우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비슷한 입장에 놓일 때가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정말 열심히 해오다가, 어느 순간 커다란 충격이 일어나고, 다시는 쳐다보지 않게 되는 것이지요. 생각하기 조차 싫은 트라우마랄까요. 방위군 사령관 펜테코스트는 더 이상 파일럿이 없다며, 간절히 롤리의 복귀를 청하고, 이렇게 다시 거대 로봇의 품으로 돌아온 롤리. 여전히 현실은 어렵고, 아군은 이제 거의 마지막 위기까지 몰려 있습니다.

 

 잠시 롤리 입장이 되어본다면, 그에게는 "하나의 꿈"이 완전히 박살나 있는 상황입니다. 수년 전, 함께하던 형제를 눈앞에서 잃었고, 그렇다고 당장 누군가 새로운 파트너를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습니다. 간단히 말해, "상처받은 영혼"인 셈이지요. 그런데 영화는 진행될수록, 저마다 사연이 있고, 상처받은 영혼임을 하나둘 말해줍니다. 사령관 펜테코스트는 힘겹게 약에 의존해서 버텨나가고 있으며, 차갑게 보이는 엘리트 여성 마코 모리도 실은 어린 시절의 잔혹한 기억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무신경 하게 다른 세계에서 점점 빠른 속도로 건너오는 카이주의 괴물스러움에 비해서, 아군은 참으로 인간적입니다.

 

 영화의 주테마는 "극복"으로 읽을 수 있겠지요. 롤리와 마코의 새로운 조합은 완전히 붕괴하는 것 같다가도, 끝내 서로 완전히 달랐던 두 사람의 정신이, 하나로 이어지는 과정은 인상적입니다. 남을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하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로도 읽을 수 있고, 하나의 꿈이 사라지더라도, 새로운 꿈은 다시 열릴 수 있다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한편, 카이주를 막기 위해서 타이밍 좋게 해결책을 던져주는 코믹한 과학자 콤비의 조합도 "함께"라는 비슷한 테마로 볼 수 있습니다. 서로의 길을 인정하지 않던 두 사람은, 막판이 되어서야 너도 옳을 수 있음을 받아들이고, 함께 힘을 모읍니다.

 

 어쩌면 인간이 멋진 것은, 거대한 로봇을 만들 수 있어서가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함께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돈만 되면 역겨운 카이주의 생체 기관까지도 팔아치우는 "돈에 환장한" 존재가 인간이지만, 한편으로는 숭고한 자기 희생의 길을 당당히 걸어가는 존재가 인간이기도 하니까요. 카이주의 덩치가 점점 커지고, 한입꺼리인 인간을 가볍게 생각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이 가진 가능성의 무게는 대단합니다. 죽음을 각오한 연이은 공격에 의해서, 인류는 다른 세계의 위험으로부터 구원받게 됩니다. 롤리와 마코는 세상을 구한 새로운 영웅이 되겠지요.

 

 이렇게 결말을 알고서, 다시 영화 중반으로 되돌아 가본다면, 한 때 평범한 노동자로 살아가려고 했던 롤리의 모습이 꽤나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과거를 모두 잊고서, 그저 조용히 살고 싶다는 마음이 참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그런데 인생이란 묘하게도, 결국 하고 싶은 방향으로 움직여 간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몇 년씩 방황하기도 하고, 다른 길을 경험하기도 하지만,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끝내 "발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운명적이랄까, 희망적이랄까,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스스로의 인생이 보잘 것 없거나, 너무 평범하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변화는 종종 우리 곁을 찾아와서, 용기를 내보라고 속삭일 때가 있습니다.

 

 그 때 한 번만 더 용기를 내보고, 시도를 해본다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인생의 실패나, 과거의 아픈 추억은 결코 우리를 발목잡기 위해서 있는건 아닐테니까요. 음, 리뷰를 마치며, 연금술사의 작가 파울로 코엘료가 말하는 "역경"에 대한 정의를 써두면 좋겠습니다. "역경이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기 위해 아주 먼 옛날 고안된 유서 깊은 도구입니다." 왜 나의 인생은 매일 비이고, 잿빛인가? 라고 생각된다면, 그 뒤에 혹시 무지개가 펼쳐지는건 아닐까 라고 상상해 보는건 어떨까요.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보며,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을 실사판으로 보는 느낌을 살짝 받기도 했는데, 저는 올해 에반게리온 파를 보면서, 이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인간은 그토록 약할지라도, 그 존재의 가능성 만큼은 절대로 약하지 않습니다." 퍼시픽림에서의 영감도 비슷하게 쓸 수 있을 듯 하네요. "인간의 과거는 그토록 아플지라도, 그가 가진 현실의 가능성 만큼은 비할 데 없이 시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약함과 과거에 집중하기 보다는, 현실과 가능성에 집중하는 현명함이 있다면 좋겠습니다. 거대 로봇은 멋지고, 사람의 의지는 더욱 멋집니다! / 2013. 08.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