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껴두었던 책, 꾹꾹 눌러가면서 읽은 책, 들여다 보고 있는 시간 보다는, 몇 번이나 멈춰서 며칠씩 생각에 잠기게 만들었던 책,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 입니다. 첫 대목부터 유시민은 거침없이 멋진 생각들을 펼쳐보입니다. "20세기 세계사는 소수의 비범한 사람들이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을 구원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수없이 많은 소냐와 두냐들이 좋은 세상을 만든 것이다." 세상의 발전이 다수의 깨달음으로 진행되어 간다는 믿음, 저는 이것이 참 좋습니다. 인간의 존엄과 품격은 특별한 소수가 아닌, 강력한 내면의 힘을 가진 평범하고 지혜로운 사람들에 의해서 얼마든지 구현될 수 있습니다. 그런 평범한 한 사람으로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평생의 꿈이기도 하고요 :)
책 중반부 맹자의 이야기는 정신을 맑게 해주는 저력이 느껴집니다.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귀함을 지니고 있건만 생각하지 않아서 모를 뿐이다. 남이 귀하게 해준 것은 진정 귀한 것이 아니다. 조맹이 귀하게 해준 것은 조맹이 천하게 할 수 있다"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생각하느냐가 그래서 중요합니다. 스스로를 가능성의 존재로 규정하고,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피하지 않고, 나아가 즐겁게 맞이하는 삶. 그 당당함을 매일 꿈꾸고 소망할 때가 저는 많습니다. 그래서 맹자 말처럼 "뜻을 얻었을 때는 백성과 함께 그 길을 가고, 그렇지 못하면 홀로 그 길을 가는" 대장부의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함부로 영합하지 않는 인생이 된다면, 그 고결함이 사랑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이하 198p) "때로 보상받지 못하는 노동이라 할지라도 인간에게 유용한 것을 만드는 일에 즐거움을 느끼면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 그 아름다움을 마음에 깊숙히 간직하려고 곱씹어가며 많이도 읽고 읽었습니다.
저자 : 유시민 / 출판사 : 웅진지식하우스
출간 : 2009년 10월 27일 / 가격 : 13,800원 / 페이지 : 320쪽
이제 오십대가 넘어선 유시민은 노련하고, 경륜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예컨대 공산당 선언과 함께 반드시 다윈의 책 종의 기원도 읽어볼 것을 권합니다. 높은 이상만을 바라봐서는 안 되며, 이기적 본성을 버리지 못하는 인간까지 함께 생각해 볼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현실의 이해타산을 무시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선 안 된다는 따끔한 일침이 참 현명하게 느껴졌습니다. 또한, 인간이 여전히 이타주의와 자기희생이라는 고귀한 도덕적 재능을 가진 존재임을 망각해서도 안 되고요. 그러므로 사람을 너무 긍정적으로도, 너무 비관적으로도 볼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사람은 역시 가능성의 존재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이기적으로 뿜어져 나올 수도 있고, 이타적으로 뿜어져 나올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한 쪽을 너무 강요하면서,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버리는 걸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베블런의 유한계급론을 친절하게 풀어써 주셨는데, "부는 생활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수단의 지위에 머무르지 않고 그 자체가 목적이 된다" 라는 대목은 현대 사회를 이해하는데 커다란 도움이 됩니다. 현대는 야만의 모습이 "금전적 겨룸"으로 전환되었을 따름이라는 예리한 지적은 굉장히 마음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끝없이 비교를 통해서 더 많은 부를 축척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우리네 모습들. 그 직업이 무슨 일을 하느냐 보다는, 얼마를 벌고, 얼마나 안정적인가를 살펴보는 모습들. 그리하여 돈이 안 되는 일은, 무의미하게 처리해 버리는 경향은 한 번쯤 반성적으로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유시민은 인간에 대해서 과소평가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변화에 똑같이 노출되어 있어도 사람들의 반응은 서로 다르다"는 걸 주목해 볼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받아들이겠지만, 누군가는 거부합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이 더 유연하게 대처하는가? 저자의 결론은 인상적입니다. "자신에 대해,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 사회제도에 대해 더 넓고 깊게 이해하고 성찰하는 지성적인 사람일수록 더 유연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후, 저는 숨막힐듯한 압박감이 밀려들어옵니다. 대한민국과 일부 청년층의 보수화 경향, 그리고 타 집단을 무차별 비난하는 어린 친구들의 문화에 대해서 꽤 우려하던 차에, 그 배경이 혹시 유연함을 거부하고, 생각하기를 집어치웠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던 겁니다. 그저 남의 주장에 편안하게 올라타서, 남을 비난하는 즐거움에 속박되어 버린게 아닐까 라는 꽤 무거운 생각이 들었고요.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급하기 때문에, 관계나 제도에 대해서 "고민 대신 적응"부터 해놓아야 한다는 가치관이 널리 확산되고 있기에, 성찰하고 고민하는 사람이 점점 줄어드는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고민과 성찰은 "돈이 안 되는 소모적 행위"로 처리되어 버리니까요.
19세기 엄청나게 판매된 "진보와 빈곤" 이야기는 진실을 적나라하고 선명하게 이야기 해줍니다. "진보와 빈곤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은 경제활동과 인간 생활의 중심지 땅을 가진 사람이 모든 진보의 열매를 독식하기 때문이다." / "부의 분배가 매우 불평등한 사회에서는 정부가 민주화될수록 사회는 오히려 악화된다. 국민이 부패를 부러워하는 모습이 되면, 송장만 남은 나라는 운명의 삽에 의해 묻혀서 사라지고 만다" 그러므로 부패한 모습에 저항하지 않고 부러워하는 순간, 우리는 되살아날 희망을 던져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참담한 현실을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우리에겐 내면의 힘이 있어야 하며, 맑음을 사랑하는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같이 더러워지기를 작심하는 순간, 이익에 눈멀어 자폭스위치를 누르고 있음을 명심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진리보다는 이익이라는 게 여전히 강력하게 통하고 있지만, 그래서 근본적 변화는 이룰 수 없는 꿈으로 남을 것 같지만, 그래도 실패하고 좌절하면서 한 걸음이라도 더 가깝게 다가서려는 "진리의 벗"들이 세상에 존재하기에, 저는 매일을 더 힘내서 살아갈 커다란 위로를 얻곤 합니다. 더 좋은 세상을 위한 친절, 용기, 그리고 행동, 거기에는 표현하기 먹먹한 감동이 있습니다. 모두가 이익만을 좇아서 살지 않는다는 것! 그게 참 좋았습니다.
책의 후반부, "종국적으로 인터넷 포털까지 남김없이 그들의 통제 아래 들어가게 될 것이다." 라는 대목은 굉장합니다. 얼마 전 저는 포털의 댓글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의견을 들었습니다. 처음에 들었던 생각은, 그렇게까지 권력이 제멋대로 하겠나 싶었지만, 최근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생각해보면, 권력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환경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음을" 어느 때보다 절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공된 정보만 제공되고, 흐르게 된다면, 우리는 존경받는 정부와 반대자는 다 빨갱이 라는 이분법의 세계를 살게 될지도 모릅니다. 신문사와 대기업들의 이익과 즐거움을 위한 나라, 그리고 반대파는 몽땅 묶어 "적으로 비난하는" 나라가 되면, 결국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은, 개인의 자유로운 삶임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통제와 조작의 나라, 이른바 빅 브라더의 시대가 의외로 가까운 건지도 모릅니다.
마치며 - 유시민의 통찰 중에 이 대목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습니다. "이상이 아무리 좋아도 적절한 방법을 찾지 못하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좋은 사회에 대한 이상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 함께 나누는 사회, 타인을 배려하는 사회, 상식이 통하는 사회, 계층 이동이 가능한 사회, 나아가 (돈이 아닌) 사람을 생각하는 사회. 그런데 적절한 방법에 있어서는 길을 잃고 방황 하고 있는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기득권은 자본과 미디어의 힘을 통해서 막강한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고, "보이지 않는 방법 속에서" 지쳐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하튼, 저는 앞으로 눈부신 이상을 현실로 만드는 "적절한 방법"을 오래도록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신영복 선생님이 이런 표현을 했습니다. "자기의 처지에 눈이 달려 있기 때문에 누구나 자신의 시각과 이해관계에 매몰되기 쉽다" 편협하지 않게, 겸허한 태도로, 계속 걸어갈 수 있는 용기를 소망합니다. 살아갈 인생이 아직 더 많이 남은 청춘이라면, 자신에게 매몰되지 않는 삶, 잘못을 정당화 하지 않는 삶, 그래서 멈춰서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산다면 좋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이번에도 두서 없이 써내려간, 장문리뷰가 되고 말았네요. 이쯤에서 마쳐야 겠습니다. / 2013. 09.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