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스타열전

센추리 클럽 입성! 데이비드 베컴 이야기!

시북(허지수) 2008. 4. 1.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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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Beckham : From Wikipedia

 데이비드 베컴. 드디어 그가 국가대표 100경기에 출장하면서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다섯번째로 센추리클럽에 입성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1998년 월드컵에서 스물세살의 베컴은 잉글랜드의 역적으로 비난을 한몸에 받기도 했습니다. 어려움도 많이 겪었던 베컴이었습니다. 어느덧 10년이 흘러 베컴은 2008년 3월 드디어 국가대표 100경기의 위업을 이루어냈습니다. 필자의 50번째 축구선수 포스팅이자, 현역 선수로는 처음으로 포스팅하게 되는 데이비드 베컴. 오늘의 이야기 주인공은 바로 베컴입니다.

 프로필

 이름 : 본명 David Robert Joseph Beckham (보통 데이비드 베컴으로 부릅니다)
 생년월일 : 1975년 5월 2일
 신장/체중 : 182cm / 74kg
 포지션 : MF / 오른발
 국적 : 잉글랜드
 국가대표 : 100시합 17득점 (2008년 3월 26일까지의 기록)
 현재소속 : LA갤럭시

 데이비드 베컴, 역적에서 영웅으로. 센추리 클럽에 가입하기까지.

 우선 베컴은 어떤 선수인가 살펴보겠습니다. 주로 오른쪽 미드필더에서 활약하면서 크로스를 기막히게 날려주는 전형적인 측면 미드필더입니다. 정확한 롱패스와 세트플레이에서도 훌륭한 실력을 보여줍니다. 베컴은 정확한 크로스로 어시스트도 많이 올렸습니다. 특히 크로스 실력과 함께 유명한 것이 바로 프리킥 실력. 베컴은 예리하게 날아가는 프리킥을 워낙 잘 차서, 현재까지도 세계에서 손꼽히는 프리키커이기도 합니다.
 
 베컴을 향해서 스피드가 떨어진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베컴은 파워와 스피드로 승부하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모든 게 완벽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베컴이 오베르마스의 스피드, 조지 베스트의 드리블 실력을 갖춘다면 그것은 축구 게임에서나 볼 수 있는 에디트 (조작된) 선수일 것입니다 ^^

 베컴은 비록 스피드가 빠른 편은 아닙니다만, 열심히 경기장에서 뜁니다. 수비에 공헌하는 것도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베컴보고 프리킥만 잘 찬다, 크로스만 잘 올린다고 평가절하 하는 것은 분명 그 선수의 일면만 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보는 사람마다 관점은 다르겠지만 말입니다. 하하.) 베컴은 겉으로는 화려한 이미지 입니다만, 축구선수로서의 베컴은 화려한 선수라기보다는 어떤 경기에도 열심히 뛰는 선수라고 평가하는 것이 더욱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팀을 위해서 철저하게 플레이하는 베컴선수는 훌륭한 프로이기도 합니다.

 베컴은 맨유가 배출한 선수로 1995년부터 본격적으로 활약을 펼칩니다. 20살 때 일이었습니다. 이듬해 1996년 국가대표로도 선출되었습니다. 베컴은 타고난 천재 신동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20살 때부터 맨유의 중심선수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베컴이 물려받은 등번호 7번은 멀리는 조지 베스트, 가깝게는 에릭 칸토나 선수가 사용하던 번호였습니다. 베컴은 맨유의 에이스로 점차 자리를 잡아갑니다. 1998-99시즌 챔피언스리그 MVP선수가 바로 데이비드 베컴이었습니다. 2001-02시즌에는 28경기 출장에 11골이나 넣는 등 맨유의 간판스타로, 꾸준하게 훌륭한 실력을 발휘했습니다.

 2003년부터는 레알마드리드에서 활약합니다. 좌 피구, 가운데 지단, 우 베컴. 말 그대로 판타스틱한 미드필더 호화진용이었습니다. 하지만 레알마드리드와 맨유는 스타일이 다른 팀입니다. 베컴의 멋진 롱패스와 크로스는 맨유 시절과 달리 레알마드리드에서는 별로 필요하지 않게 되었고 (스페인 팀들은 이른바 뻥축구를 별로 선호하지 않는 편입니다. 테크닉을 중시하는 편이지요.) 오른쪽 미드필더는 결국 피구의 자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베컴은 보다 낮은 위치에서 플레이를 해야만 했습니다. 피구가 이적한 후에야 베컴은 원래 주포지션인 오른쪽 미드필더 자리에서 안정감을 되찾았고, 서서히 다시금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피구가 베컴보다 낫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레알 마드리드 스타일에서는 피구가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그렇게 되었을 뿐입니다. 원래 선수와 스타일이 잘 맞아야 더욱 빛이 나는 법이니까요. 피구나 베컴이나 모두 훌륭한 명선수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유명선수만 왕창 있으면 모든 게 잘 될 것이라는 오만함을 버려야 합니다. 축구는 결국 조화가 있어야만 가능한 경기입니다. 하모니. 바로 그겁니다. 잘 어우러 질 때, 강팀이 될 수 있는 것이지요. (물론 최근에는 돈 많은 팀이 트로피를 싹쓸이 해가는 추세입니다만...)

 2006년 (06-07시즌) 이번에는 카펠로 감독이 레알 마드리드에 부임하게 되었고, 베컴은 다시 한 번 어려운 시련을 만나게 됩니다. 카펠로 감독은 베컴보다는 레예스, 호비뉴 같은 젊은 선수들을 주축으로 팀을 운영해 나갔고, 베컴은 시즌 도중에 이번 시즌을 마치고 LA갤럭시로 갈 것이다 라고 밝혔습니다. 이 일로 인해 카펠로 감독에 제대로 찍힌 베컴은 이후 벤치신세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베컴은 어떻게 했을까요. 정답은 바로 베컴은 항상 똑같았다는 것입니다. 앞서 밝혔듯이 그는 화려한 선수라기보다는 철저하게 열심히 하는 선수입니다. 베컴은 변함없이 열심히 연습하고 운동했습니다. 베컴은 그런 선수였습니다. 보다 못한 라울과 구티 선수가 카펠로 감독에게 베컴을 출장시켜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리고 리그 후반부터 드디어 베컴은 주포지션에 주전으로 복귀하게 됩니다. 열심히 연습하는 성실한 베컴은 확실히 누구보다 잘찼습니다. 레알 마드리드도 기세를 올립니다. FC바르셀로나를 맹추격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극적으로 4년만에 대망의 30번째 프리메라리가 정상에 섭니다. 레알 마드리드 팬들은 베컴에 찬사를 보냈습니다. 오히려 카펠로 감독이 욕을 많이 먹었지요 (웃음) 이후에 카펠로 감독은 "베컴의 실력을 잘못 평가했었다" 고 발언하며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기도 했습니다. 카펠로 감독은 2008년부터는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을 맡고 있는데, 베컴의 국가대표 100번째 출장 경기 역시 당연히 카펠로 감독이었습니다. 카펠로 감독은 주전으로 베컴을 기용했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악연이라고 하기에도 좀 그렇고, 참으로 인연이 독특합니다. 사이가 다시 좋아진 것 같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두고 볼 일이겠지요. 베컴은 현재 발언대로 이적해서 LA갤럭시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자 이제 국가대표 이야기 입니다. 100시합을 뛰면서, 지금의 영광이 있기 까지, 시련의 시간들도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1998년 프랑스월드컵. 16강전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베컴은 시메오네 선수에게 보복성 태클을 날리며 퇴장을 당하고 맙니다. 그리고 승부차기 끝에 잉글랜드는 탈락하고 맙니다. "10명의 사자와 1명의 어리석은 젊은이" 잉글랜드에서 난리가 납니다. 그 한 명이 바로 베컴이었으며, 베컴은 역적으로 몰리면서 엄청난 비난을 받았습니다. 한동안 팬들의 야유가 그칠 줄 몰랐고, 살해위협까지 받았으며, 이후에 아들의 유괴사건도 있었고, 더이상 축구선수로 제대로 플레이 못할 것이라는 평가까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축구 때려치고, 화려한 외모를 자랑하는 인기를 살려서 연예인 하는 게 객관적으로 더 나은 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베컴은 언제나 그렇듯이 묵묵히 성실하게 연습하고 노력합니다.

 시간이 흘러 2002년 한일 월드컵 유럽 예선. 피말리는 치열한 승부가 계속되었습니다. 잉글랜드의 본선진출도 참으로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유럽 예선 최종전 그리스와의 경기. 베컴은 주장이었습니다. 잉글랜드는 지면 탈락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경기는 유리하게 흘러가지 못했습니다. 치열하게 흐르던 경기는 후반 종료직전까지 1-2 로 잉글랜드가 지고 있었습니다. 그대로 끝나는 듯 했습니다. 잉글랜드의 예선 탈락이 눈앞에 아른거렸습니다. 추가시간, 불과 이 몇 분이 잉글랜드의 운명을 바꾸게 됩니다. 그 주인공은 "역적" 베컴이었습니다. 베컴의 그림같은 프리킥이 그대로 골망을 가릅니다. 극적인, 정말 극적인 동점골이었고, 잉글랜드는 본선 진출에 성공하게 됩니다. 바로 베컴의 그 황금의 프리킥으로 말입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이제 더 이상 베컴을 역적으로 부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구세주로 불리기도 하는 등 더욱 대단한 인기를 끌게 됩니다. 그는 시련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노력했고,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이런 드라마 같은 실화를 만든 것입니다.
 
 한편 잉글랜드는 한일월드컵 본선에서 베컴의 페널티킥으로 아르헨티나를 침몰시키며 조별리그 1승을 따내며, 16강전에 진출합니다. 16강전 상대는 조별리그에서 4골을 넣은 욘 달 토마손이 버티고 있던 덴마크! 덴마크는 프랑스를 2-0 으로 완파하는 등 기세를 올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극적으로 힘겹게 여기까지 왔던 잉글랜드의 적수가 되지 못했습니다. 퍼디난드의 선제골을 비롯해서 전반에만 3골을 몰아넣으며 3-0 으로 덴마크에 완승을 거두며 8강전 진출. 이어서 최고의 빅매치 중 하나로 꼽혔던 잉글랜드와 브라질의 8강전 경기가 열립니다. 원더보이 오언의 선제골이 터집니다. 브라질이 휘청거리기 시작합니다. 잉글랜드의 투지는 정말 강했습니다. 하지만 우승을 차지하게 되는 브라질 역시 만만한 팀이 아닙니다. 전반 추가시간에 히바우두의 골이 터지고, 후반전에 마법같은 호나우지뉴의 프리킥 골이 들어갑니다. 이 명경기는 끝내 잉글랜드가 1-2로 역전패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후 브라질은 터키와 독일을 한 골도 내주지 않고 완파하며 우승을 차지합니다. 만약은 없지만, 그 날 호나우지뉴가 아닌 베컴의 마법같은 프리킥 골이 터졌다면, 그래서 잉글랜드가 이겼다면 그것도 또한 대단한 명장면으로 기억되었을 것입니다. 필자는 호나우지뉴를 참 좋아하지만, 그 날은 잉글랜드를 응원했었습니다. (웃음)

 또 다시 4년이 흘러, 2006년 독일월드컵. 30대의 베컴은 잉글랜드의 간판 스타 중의 한 사람이자 팀의 캡틴으로, 독일월드컵에 참가합니다. 제라드, 조 콜 등 호화진용이었던 잉글랜드는 이번에도 역시 우승후보였습니다. 조별리그도 1위로 16강 진출. 16강에서는 베컴의 골로 에콰도르를 침몰시키면서 8강에 진출합니다. 베컴의 국가대표 활약상은 굉장히 뛰어납니다. 다시 말하지만 베컴은 굉장히 열심히 경기를 뛰는 선수입니다. 그의 국가대표 통산 17골(2008년3월기준) 중에는 이와 같은 잉글랜드의 결승골이나 본선진출을 확정시킨 골 등 굉장히 중요한 골들도 있습니다. 한편 잉글랜드 대표팀은 8강전에서 포르투갈과 승부차기까지 가는 혈전 끝에 패배하고 맙니다. 램파드, 제라드, 캐러거 등 유명스타들이 연이어 승부차기에 실패하면서 1-3 으로 통한의 패배를 맞이합니다. 두 대회 연속으로 8강전에서 아쉽게 탈락했던 잉글랜드 였습니다.

 독일월드컵 이후 베컴은 대표팀 주장에서 물러나는 것을 선언했습니다. 새롭게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을 맡은 맥클라렌 감독도 새로운 멤버를 보강하면서 베컴을 대표명단에서 제외했습니다. 잉글랜드를 이끌던 베컴의 시대는 이렇게 끝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베컴이 빠진 이후 조금 묘하게도 잉글랜드 대표팀은 상당한 부진을 보입니다. 그전까지는 유럽에서 그래도 최고클래스의 강호로 명성을 날렸으나, 다소 주춤거리기 시작합니다. 반면에 연습을 쉬지 않았던 베컴은 2007년 경부터는 다시 한 번 최고의 컨디션을 보여주면서 레알마드리드의 핵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던 시기였습니다. 맥클라렌 감독은 다시 한 번 베컴을 부릅니다. 이렇게 그의 국가대표 커리어는 좀 더 이어져 나가게 되었습니다. 비록 주장은 아니었지만 베컴은 여전히 잘 찼습니다. 2007년 6월 1일 브라질과의 친선경기에서 복귀한 베컴은 새로운 주장 존 테리의 골을 어시스트 하는 등, 변함없이 빼어난 실력을 보여줍니다. 유로 2008 예선전, 에스토니아와의 경기에서는 크라우치, 오언의 골을 훌륭하게 어시스트 하는 등 오른쪽 사이드에서 종횡무진 맹활약합니다. 맥클라렌 감독은 [지금 베컴보다 잘차는 오른쪽 미드필더는 온 세상을 찾아도 없을 것이다] 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잉글랜드 대표팀의 운명은 가혹했습니다. 유로예선 7승 2무 3패... 비교적 좋은 성적이었지만, 유럽에는 강호가 많았고, 떠오르는 강팀 크로아티아가 조 1위를 차지했으며, 히딩크 감독이 이끌고 있는 러시아에게 승점 1점차로 밀리면서 충격적인 예선 탈락의 쓴 잔을 맛보아야했습니다. 조만간 개막하게 될 유로2008에서 우리는 이렇게 잉글랜드 대표팀을 볼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맥클라렌 감독은 이로 인해서 해임되었고, 후임으로는 레알 마드리드 시절의 앙숙(?)인 카펠로 감독이 부임하게 됩니다. 대표에서 제외되는 게 아닐까 하는 관측이 많았습니다. 게다가 LA갤럭시는 미국팀이라서 이동거리의 부담도 상당했습니다. 뭐, 늘 그렇듯이 베컴은 그런 우려들에 별로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언제나처럼 연습에 연습. 거기에만 열심이었습니다. 대표로 불러주면 열심히 하겠다는 것을 몸으로 말했습니다. 2007년 연말부터는 잠깐동안 아스날의 연습구장에서 파브레가스 등과 함께 연습하기도 했었습니다. 이러한 진지한 연습 모습을 보고 아스날의 웽거 감독은 베컴은 어느 팀에서라도 충분히 활약할 선수라면서 높이 평가했습니다. 한편 옛날부터 맨유외의 다른 잉글랜드팀에서 뛰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던 베컴이었기 때문에 아스날 연습구장에서의 연습은 잉글랜드 내에서도 상당한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2008년 1월. 드디어 카펠로 감독은 대표팀 명단을 발표합니다. 아쉽게도 베컴의 이름은 없었습니다. 우려가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카펠로 감독은 2010년 남아공월드컵을 준비하는 상태였으므로,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카펠로 감독은 베컴을 여전히 마음에 두고 있었던가 봅니다. 아니, 베컴은 충분히 활약할 훌륭한 선수라는 것을 레알 마드리드 시절의 경험을 통해서, 아스날 웽거 감독의 최근 평가를 통해서, 또 여러가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서 잘 알고 있었던 것이겠지요. 그리고 2008년 3월. 대표로 다시 소집됩니다. 2008년 3월 26일, 프랑스와의 친선경기에 출장한 베컴. 그는 이렇게 드디어 국가대표통산 100경기에 출장하면서, 잉글랜드 선수로서는 5번째로 센추리클럽에 입성합니다. 수 많은 어려움에도, 그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필자가 감히 말하건대 "쉬지않는 연습" 이었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베컴은 화려한 연예인이 아닙니다. 축구선수로서 정말 열심히 노력하는 훌륭한 선수입니다.

 베컴은 종종 왼발의 실력이 떨어진다고 비판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빛나는 훌륭한 오른발이 있습니다. 베컴은 종종 스피드도 떨어지고 테크닉도 별로 없는 선수라고 욕먹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빛나는 크로스 실력과 뛰어난 프리킥 실력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베컴에게는 선수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인 "프로선수로서의 정신력"이 있습니다. 경기장에서 최선을 다하며 언제나 진지하게 연습하고 노력하는 자세가 있습니다. 그래서 필자는 베컴을 좋아하는, 베컴의 팬이기도 합니다. 역적이라고 온갖 협박에 시달리면서까지도, 훌륭한 축구선수의 꿈을 잃지 않고 그 목표를 향해서 쉬지 않고 노력했던 그의 자세를 존경합니다. 그렇게 베컴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잉글랜드의 대표적인 축구선수로서 위대한 역사를 이룩해 냈습니다. 아아 베컴. 필자는 베컴의 센추리 클럽 입성에 진심어린 박수를 보냅니다. 한 사람의 축구팬으로서 말입니다.

 글을 마치며 영상 두 개를 준비해보았습니다. 첫 번째 영상(10분)은 유튜브에서 조회수 약 290만을 달리고 있는 베컴영상이고, 두 번째 영상(1분)은 잉글랜드의 2002년 한일월드컵 본선진출을 결정지었던 베컴의 환상적인 골 영상입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한 번 감상해 보시는 것도 좋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글은 위키피디아를 베이스로 하여서 작성된 글입니다. 잘못된 점이나 수정되어야 할 부분에 대한 지적도 환영합니다. 장문의 글 읽어주셔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베컴 컬렉션 (10분 03초)


베컴 잉글랜드를 구하다 (53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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