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컨빅션 (Conviction, 2010) 리뷰

시북(허지수) 2013. 10. 25. 20:22

 가끔, 사람은 너무 간사해서 "자기중심적으로 세계를 이해하는 게 아닐까"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더러움에 손을 묻히고 있으면서도, 전혀 자신의 삶이 물들어가고 있는 줄 모릅니다. 가장 큰 비극은 스스로 가능성을 제약해 버리는 것이지요. "이거봐요, 현실이니까요. 내 인생은 어쩔 수 없다고요. 노력해봐도 다 끝난 거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당차게도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영화 컨빅션의 주인공 배티양 입니다. 그는 세상과 다르게 생각하며, 홀로 세계와 맞섭니다. 크게 기대하지 않고, 영화를 보았던 저는 뒷부분부터 자꾸 눈물이 흘러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습니다.

 

 누군가 부당하게 삶의 행복을 짓밟았을 때, 얼마까지 싸워나갈 수 있을까? 한없이 거대해 보이는 세계의 벽, 일상의 벽을 만났을 때, 좌절 속에서도 계속 걸어가는 힘은 무엇일까? 나아가 공공의 편익이라는 명분 앞에서, 소수가 매장당하는 건 결코 정당화 될 수 없음을 통렬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힘없는 개인이 무슨 큰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컨빅션을 보고 나서, 때묻은 나약한 생각을 씻을 수 있었습니다. 될 때까지 한다면, 계속 요구해 나간다면, 기적 같은 일은 일어납니다. 중요한 것은 "쉽게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배티와 케니는 어려서부터 사이 좋은 남매였습니다. 같이 붙어다니면서, 악동짓을 하기도 하면서, 서로를 의지하고 커나갑니다. 그리고 성인이 된 어느 날, 오빠 케니가 1급 살인죄라는 엄청난 누명을 쓰고, 감옥에 무기한 갇혀버립니다. 아마 법이 좀 더 엄격한 곳이라면, 케니는 사형을 면치 못했을 겁니다. 또한 재판 내용 조차, 아무리 봐도 케니가 무죄라는 것을 증명하기가 너무 곤란합니다.

 

 그렇게, 휙 감옥에 갇힌 케니, 그리고 고교 과정도 아직 이수하지 못했던 젊은 배티양. 이들이 현실을 바꾸는 것은 한 마디로, 무모하고, "불가능" 합니다. 최악의 운이고, 어쩔 수 없었다며, 억울함을 받아들이는 게 훨씬 현실적인 선택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배티의 결단과 기나긴 싸움이 시작됩니다. 나아가 이 작품은 어쩌면, 인생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까지 속삭이고 있습니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시간이 오래 걸릴 지 몰라도, 시도하다가 실패할 지 몰라도, 꼭 변호사가 되어서 오빠를 꺼내줄께." 그 간절함을 마음에 새기고, 배티는 돈을 벌고, 다시 책을 꺼내들어 공부를 시작합니다. 평범한 젊은 여성이었던 배티는, 그렇게 한 걸음씩 느리게 다가갑니다. 대학 입학 자격을 취득했고, 로스쿨에 진학해서, 반드시 변호사가 되려고 노력합니다. 이 과정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어느새, 사이 좋았던 남편과도 멀어지고, 잘 따르던 두 아들과도 멀어집니다. 어려운 결단을 하고, 열심히 노력했건만, 주어진 현실은 더욱 비참한 것만 같습니다. 실력이 부족해 학교에선 학사경고, 이제 남편과는 따로 살고, 참 소중한 아이들까지 엄마의 마음을 몰라줍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털썩 주저 앉아서 펑펑 울고, 침대에 누워서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동안 얼마나 괴롭고 힘들었는지를 역설적으로 느낄 수 있고요.

 

 놀랍게도, 다행히 하늘도 무심하지 않았던지, 매력적인 좋은 친구 아브라가 있었습니다. 아브라는 배티가 주저 앉아 있을 때, 좌절하고 쓰러져 잇을 때, 성큼 다가와 그렇게 포기하지 말라고, 억지로 몸을 일으키고, 편을 들어줍니다. 좋은 벗은 억만금보다 귀하다는 말은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에선, 아브라와 배티의 모습을 지켜보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습니다. 또한 옳은 일을 추구할 때, 함께 하는 사람들이 소수라도 있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생각하게 되고요.

 

 배티는 법정에서 오빠가 유죄판결을 받은 이후,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고, 정말 긴 세월 끝에 마침내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오빠를 구해내겠다는 일념으로,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스스로 노력해 획득한 것이지요.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감탄이 나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인지, 현실은 더욱 더 차갑고 냉정했습니다.

 

 케니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이른바 "확실한 증거"가 필요했는데, 이미 십년도 더 지난 일이라서, 당시 사건 자료들은 모두 절차에 따라 폐기된 상황이었습니다. 배티가 그렇게 필사적으로 살아온 것이 대략 16년...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던 것이지요. 누가 봐도 케니를 꺼낼 수 있는 방법은 보이지 않았고, 가장 친한 절친 변호사 아브라 마저도, 이제 그만 현실을 직시하라고 조언합니다. 무죄를 입증할 증거가 없는데, 어떻게 꺼낼 수 있단 말인가요. 말하자면, 이렇게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생에서 모든 것을 걸어가면서까지 열심히 노력해 왔고, 많은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한 사람을 살려보고자 힘써왔는데, 결국 허망한 물거품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배티는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지 않습니다. 급기야 규정된 절차 대신에, 모든 가능성을 직접 시도하기에 이릅니다. 전산상 "보관기한이 끝나 폐기된 자료"로 판명되었다고 해도, 실제로 창고 구석구석까지 뒤져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그 집념은 결코 포기를 모릅니다. 갈 수 있는 곳은 전부 가보고, 사건 자료가 보관되어 있는 곳에선 끝까지 담당자를 붙들고, 혹시나 폐기가 안 되어 남아있는 기록들을 살펴봐 달라고 매달립니다. 배티도 대단하고, 곁에 있는 아브라도 대단합니다. "사람의 목숨이 걸려있어요." 라고 혼신의 연기를 펼치는 연기력도 출중합니다!

 

 기적은 일어납니다. 절차적으로는 폐기가 되어 있었지만, 운좋게도 케니 사건의 자료가 남아있었던 겁니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가 쉽게 흘려넘기는 말이 있습니다. "직접 부딪혀보기 전까지는 모른다!" 시도해 보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더욱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고대의 시인 오비디우스가 "곤경은 천재를 일깨워준다"고 노래했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꺼이 곤경 속으로 들어가려는 용기 있는 부딪힘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배티는 그렇게 결국 가능성을 매번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시작할 때, 아무것도 몰라도, 부족한 면이 있어도, 그것은 부차적인 것입니다. 계속 노력해 나가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이후에도 배티는 DNA검사를 최대한 빨리 마치기 위해서, 헌신적 노력을 거듭해갔고, 오래 전 조작된 증인들의 이야기들도, 진실로 바꾸어 나갑니다. 마침내 케니는 극적으로 무죄판결을 받았고, 국가는 막대한 피해보상을 해주었습니다. 대략 20년의 세월 동안, 세상과 맞서온 한 사람이, 결국 오빠 케니의 세계를 바꾼 것입니다. 감옥에서 나온 케니는 심금을 울리는 농담을 던집니다. "또 20년 더 감옥에서 살아도 되겠는걸, 바깥에서 이렇게나 한결같이 나를 위해서 애쓰고, 사랑해주는 사람이 존재한다면 말이야."

 

 저는 이 대사를 이렇게 표현해보고 싶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란, 힘든 날이 참 많고, 때로는 지옥같이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살아가는 이유를 발견하고, 굴복하지 않는 힘을 얻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한결같이 "자신의 인생을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만큼 경이롭고 멋지고 아름다운 것인가를, 컨빅션을 보고 절절하게 느꼈습니다.

 

 괴물 같이 덮쳐오는, 부당한 일을 만나, 하염없이 마음이 부숴질 때가 있더라도, 다시 굳건히 일어나 살아가는 이유는, 우리가 사랑받고 있기 때문이며, 나아가 사랑할 대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케니가 자유의 몸이 되어, 몰라보게 부쩍 큰, 예쁜 딸 맨디를 바라보며 진심으로 미소짓는 장면은, 가슴 먹먹한 빛나는 명장면입니다. 물론, 호수를 앞두고 대화를 나누는 엔딩도 뭉클하긴 마찬가지고요. 진심, 진실이라는 단어 속에는, 가슴 설레는 의미가 담겨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리뷰를 마치며, 저는 지니간 케니의 청춘기를 떠올려 봤습니다. 어린 딸을 안고, 신나게 춤을 추는 장면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어떤 미친X가 와서 막말을 퍼붓고 시비를 걸자, 뚜껑 열린 케니는 다짜고짜 한 방 먹여버립니다. 그러고보면, 케니는 별로 착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타고난 말썽꾼 기질을 자랑했고, 즐겁게 인생을 살아가고 싶었을 뿐입니다. 또한 케니는 한없는 딸바보로 살아갔으며, 감옥에서도 끝까지 자살하지 않고, 힘겹게 버텨가며, 긴 세월을 꾹꾹 견뎌냅니다. 그리하여, 드디어 사랑하는 여동생, 사랑하는 딸과 함께 좋은 날을 맞이할 수 있었네요. 그러므로, 참으로 인생 자체가 기적일 수 있구나! 사람이란 얼마나 대단한가! 소박한 영화임에도 저는 계속 바보처럼 울며 웃게 됩니다.

 

 참 고마웠던 작품이었습니다. 포기할 줄 모르는 한 사람이, 20년에 가까운 세월을 노력해 나간다면, 진짜로 국가 (정확히는 부당했던 부패한 권력) 를 이길 수 있구나 싶었습니다. 저는 "해봐야 얼마나 바뀌겠어" 라는 말을 머릿 속에서 아예 없애버리기로 했습니다. 그런 비겁한 말로 합리화하는 자신의 얼어붙은 냉소적인 마음을 쓰레기통에 냅다 던져넣기로 했습니다. 배티의 아들은, 후에 엄마의 진심을 바라보며,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도 말야 동생이 그런 억울한 일을 당하면, 목숨 걸고 덤벼들꺼야." 한 사람이 올바르게 살아가고 있다면, 세상은 그토록 감동스러워 진다고 생각합니다. / 2013. 10.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