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책

리더는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 리뷰

시북(허지수) 2013. 11. 3. 23:34

 미리 언급해 둘 필요가 있겠네요. 저는 오랜 롯데 자이언츠의 팬이자, 예전 로이스터식의 야구를 참 좋아했습니다. NO FEAR! 두려움 없이 그냥 치라는 겁니다! 스트라이크 들어오는데 왜 가만히 있느냐! 라고 호통치던 그런 야구가 낭만으로 느껴지던 시절이었습니다. 만년 하위를 찍어대던 롯데가 연승을 달리기도 하고, 가을야구에 진출하기도 하자, 즐겁고 기뻤습니다. 그런데 당시의 롯데는 제 기억에 의하면 유독 SK 같은 끈끈한 야구를 하던 팀에 약할 때가 많았습니다. 이른바 빈틈이 없게 펼쳐지는 김성근식 야구는 지독한 근성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과거 적장의 책"까지 펼쳐들고 있네요. 내용은, 아주 재밌었습니다 :)

 

 사실 TV 토크쇼에 김성근 감독님이 출현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활살자재(活殺自在)"라는 말을 언급했는데, 많은 감동을 받아서,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살고, 죽는 것이 남에게, 환경에 달려 있는게 아니다, 오직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라는 혹독한 이야기 였습니다. 그리고, 유난히 그 때의 이야기가 따뜻하게 들렸습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문구 중에는, 작가 루쉰이 언급한, 무엇을 사랑하든 독사처럼 칭칭 감겨들어라, 라는 게 있습니다. 저는 자신에게 책임을 묻고, 필사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길은 열린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럼 어서 책의 본문을 살펴볼까 합니다.

 

 저자 : 김성근 / 출판사 : 이와우

 출간 : 2013년 03월 11일 / 가격 : 15,000원 / 페이지 : 240쪽

 

 

 마찬가지로 롯데팬인 동생이 책에 흥미를 보이며, 재밌는 이야기를 해줍니다. "리더는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고? 길게 보면 맞는 말인거 같아. 군대 장교로 있을 때 일이지만, 조직에서는 의외로 사람을 잘 버린단 말이지.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 위주로 조직을 꾸릴 때가 훨씬 많은데, 길게 본다면 힘들더라도 결국 사람을 버리지 않는 쪽이 존경받는 제대로 된 리더라고 생각해. 김성근 말이 맞는 거지." 조직에서 의외로 사람을 잘 버린다 라는 대목에서 저는 탁 꽂혔습니다.

 

 조금 냉정하게 접근할 때, 효율과 최적화를 생각한다면, 또 이른바 경비 절감의 관점에서는, 모두 다 안고 가기에는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없어도 되는 사람이라면, 책상을 치워버리는 것이, 싸늘한 구조조정의 칼날이라 하겠지요. 그래서 막스 베버 같은 사람은 자본주의의 미래를 예측하면서, "최후의 인간들에게는, 영혼이 없는 전문인, 가슴이 없는 향락인, 이같은 말들이 진리가 되지 않을까?" 라고 바라봤습니다. 예컨대, 결과를 내는 전문가 라지만, 정작 가슴에는 영혼 대신에 차가움만이 들어서 있는 존재. 이것이 리더라면, 너무나 잔혹합니다.

 

 한편, 굿 보스 배드 보스 같은 책에서는, 리더에게 "인간미"가 들어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숫자로 평가되어지는 상품이 아니라, 다만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간미 없는 결정으로 밀어붙이며, 결과를 내는 것을 자랑하고 있다면, 어쩌면 형편없는 리더일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놀라웠던 것은 김성근 감독님의 삶입니다. 오늘날 야신으로 존경받고 있긴 합니다만, 사실 감독을 시작한 이래, 20년 넘도록 우승과 인연이 없던 감독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가장 많이 쫓겨난 감독으로도 유명하고요. 그러면 결국 김성근 감독님이 존경받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지 않을까요. 저는 두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첫째, 사람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태도, 둘째, 무슨 상황에서도 야구부터 생각하는 태도. 한 가지 일화를 소개해 볼만 하겠네요.

 

 2001년 9.11 테러가 일어나자, 김성근 감독님은 그것이 영화가 아니고 현실임을 인지한 후, 첫 마디로 던진 이야기가 "그러면 메이저리그는 열리는거냐?" 입니다. 혹자는 이 대목을 놓고 비상식적이라고 비난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그 한 마디가 김 감독님이 탁월한 이유라고 생각했습니다. 비슷한 이야기로는 좋은 작가가 어떤 작가냐에 대해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부터 가장 먼저 한다면, 분명히 좋은 작가가 될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이름난 작가들이 "글의 내용"만 생각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필하게 되는 몰입의 경지가 있다고 언급합니다. 무엇을 먼저 생각하느냐는 그 사람을 말해주는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컨대 야구 지도자를 하면서, 야구보다 골프나 한 번... 이라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곤란하지 않을까요.

 

 뜻밖에 많이 놀랐던 것은, 기다림과 인내를 강조하는 대목입니다. 리더가 발굴의 눈만을 가지고 있어서는 곤란하며,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 그러면서 도쿠가와의 유훈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일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과 같다. 서두르면 안 된다. 무슨 일이든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면 굳이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다." 흔히 아랫 사람이 뜻대로 안 커주면, 기대 이하다, 실망이다 식의 독설이나 채찍을 들 때가 있는데, 어쩌면 그러기 보다는 불만을 아예 접고, 몇 번의 기회를 더 주는게 필요하겠다 싶었습니다. 사람을 키우는데 있어서 채찍이나 당근보다 더 중요한 게, 인내와 기다림이다 싶었습니다.

 

 얇은 책이었지만, 인상적인 대목이 꽤 많았습니다. 저는 근래에 "여분의 힘"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김성근 감독님도 비슷한 이야기를 해서 놀랬습니다. 멀티 포지션이 가능하다는 것은 대단한 경쟁력이라고 본 것입니다. 물론, 하나를 제대로 잘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런데 때로는 거기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다른 부분에서 단련되어 있는 게 있다면,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작은 여분을 갖고 있다는 것은, 현실에서 작동함에 있어서는, 결코 작은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야구에 대해서 다른 눈을 갖게 된 결정적 계기가 잇으니, 이 사연도 덧붙여 볼까 합니다. 대략 10년 전에 보았던 사진이라, 누군지는 기억이 흐릿해졌습니다만, 어떤 무명투수의 상처투성이 왼팔이었습니다. 그 투수는 단지 야구를 더 잘해보기 위해서, 반드시 재기하기 위해서, 그렇게 고단하게 연습을 계속 하고 있었던 겁니다. 사람들은 단지 이름없는 투수가 나와서 잠깐 던지다가 교체되는구나 라고 쉽게 판단하겠지만, 그 한 사람이 가진 노력의 양은 절대로 가볍게 봐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결과만을 볼 때가 많지만, 프로의 가혹한 세계에서 싸워나가는 사람 중에서는 상처투성이가 되어갈만큼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큰 자극이 되었습니다.

 

 최근 이래저래 리뷰를 틈나는대로 쓰고, 가끔 사랑받기도 하는, 무명블로거를 지향하는 리뷰어입니다만, 어쨌든 저는, 그렇게 열정을 가진 무명블로거가 되고 싶다는 바람이 듭니다. 재능이 부족하더라도, 열정의 불이 타고 있다면, 대타로 나와 가끔 결정적인 안타를 치기도 합니다. 그 정도만이라도 해낼 수 있다면, 얼마든지 멋진 인생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현역 선수 중에 올드한 송지만 같은 선수를 좋아합니다. 그 나이에도 오승환을 상대로 홈런을 친다거나, 불꽃 같은 투혼의 송구를 보여준다거나, 열정이 가지는 그 힘이 너무 근사합니다. 실패와 성공이라는 기준이 아니라, 열정 혹은 최선이라는 기준을 갖고 있다면, 삶이 더 매력적이지 않나 싶어요.)

 

 마치며, 김성근 감독님의 철학 중에는 "준비"라는 말을 참 많이 강조합니다. 준비, 그것도 철저한 준비! 저는 기억나는게 있습니다. 일본 경영자 마쓰시타의 이야기 였는데, 경영이라는 것은 다만 "비가 올 때 우산을 쓰는 것이다" 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간단히 정리해, 우산을 미리 준비해 놓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폭우 속에서도 구성원들을 지켜내 준다면, 저절로 인정은 따라오는 게 아닐까 싶네요. 말이 아닌, 우산을 준비하는 것 - 저는 한참 멀었지만, 목표라도, 그런 삶이 참 되고 싶습니다. / 2013. 11.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