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싸우던 선조들의 이야기. 이번 문서는 항일의병운동 이야기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면서 외교권이 박탈되었습니다. 이쯤되면, 거의 한 나라의 주권이 70~80%가 넘어간 상황이라 볼 수 있습니다. 다른 나라와의 동등한 권한이 이미 사라진 상황이 되었고, 이것은 독립된 국가로서의 모습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결코 모든 사람들이 침묵 속에서 현실을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을사조약 체결에 대한 저항이 강하게 나타나는데요. 우선 각 개인의 장면들을 하나씩 조명해 볼께요.
민영환 이라는 사람은 을사조약에 반대하며 비장한 자결을 선택합니다. 당시 국가의 녹을 먹고 있던 사람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쓰라린 현실을 맞이한 것에 대하여 책임지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이타적 자결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민영환의 유서는 한 번쯤 읽어봄직 합니다.
"죽음으로써 우러러 임금님의 은혜에 보답하고, 우리 이천만 동포 형제에게 사죄하노라. 바라건대 우리 동포 형제들은 억천만배 더욱 기운내어 힘씀으로써 뜻과 기개를 굳건히 하여 그 학문에 힘쓰고, 마음으로 단결하고 힘을 합쳐서 우리의 자유와 독립을 회복한다면, 죽은 자는 마땅히 저 어둡고 어둑한 죽음의 늪에서나마 기뻐 웃으리로다. 오호라, 조금도 실망하지 말라" 고위관료의 마지막 모습은, 책임이란 무엇인가를 곱씹게 합니다.
장지연은 시일야방성대곡을 짓습니다. 역시 1905년 그 치욕의 해에, 황성신문에 실렸고요. 오늘 내가 목놓아 통곡한다는 의미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눈시울을 붉게 만들었던 명문입니다. 넘어져가는 나라를 슬퍼하고, 을사오적에 관한 분노를 표출하고, 식민지 노예가 되어가는 현실을 담아서 글을 써나가지요. (*식민지로 추락한 이후, 노년의 장지연은 변절논란이 있긴 합니다만, 적어도 을사조약 무렵의 장지연은 친일단체와 맞서는 태도를 보여준 것은 분명합니다.)
이외에도, 을사조약과 관련된 이야기들로, "나라를 팔아먹은 저 미친XX들 없애버려야 한다"며 오적 암살단도 등장합니다. 나철, 오기호 같은 인물들이 앞장서서 조직했습니다. 극성 친일파 처럼 동족의 등 뒤에 칼을 꽂고서, 자신의 영광을 추구하는 삶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고생스러울 지언정, 올바른 삶이 무엇인지 고민할 것인가? 오늘 문서들에서는 계속 이같은 생각들이 지워지지가 않습니다.
자, 이제 시간이 좀 더 흘렀습니다. 한일신협약 (1907년-정미7조약) 때는 박승환 대대장이 자결을 선택합니다. 한일신협약에서는 대한제국의 군대가 해산되어 버리는데요. 나라의 군대가 해산되는 모습 속에서, 시위대 대대장인 박승환이 이 모습에 격분하며, 자결합니다. 겨우 30대 후반의 장교 박승환은 이렇게 유서를 남깁니다.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신하로서 충성을 다하지 못하였으니, 만번 죽은들 무엇이 아깝겠는가"
이런 흐름 속에서 점차 본격적인 투쟁들이 전개되었습니다. 외교권도 빼앗기고, 군대까지 해산되었고, 망국이 보이는 상황에서, 평범한 사람들까지 싸움에 나섭니다. 특별히 장인환, 전명운의 스티븐스 암살 사건(1908년)을 조명해 보려 합니다. 고아로 자랐던 장인환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비록 내가 배운 것이 없고, 학식이 부족하지만, 조국이 나를 부른다면, 내가 어느 순간이라도 나갈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면 스티븐스는 누구 였습니까? 스티븐스는 1차 한일협약 때 일제의 외교고문으로 파견되었고, 또한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로 삼아가는 과정을 도왔던 인물입니다. 친일파 미국인으로 보면 간단하겠지요. 어쨌든 그가 미국에 귀국해서 "일본의 보호가 한국에게 유익하며 한국인들도 환영하고 있다" 라는 망언을 쏟아냅니다. 이에, 미국에 있던 장인환, 전명운 같은 이들이 암살을 계획합니다.
과연 두 사람이 공동으로 암살을 모의했느냐? 라는 것에는 여전히 다양한 의견이 있습니다. 다만, 구체적인 상황으로 들어가보면 흥미롭습니다. 스티븐스를 향해 전명운이 먼저 총을 쏩니다. 그러나 그 첫 총알은 실패로 끝납니다. 에라!!! 전명운이 총을 손에 들고 스티븐스를 냅다 가격해 버립니다. 그러자, 스티븐스가 깜짝 놀래서 전명운을 추격하기 시작하는데...
이 때 갑자기 총성이 또 들립니다!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장인환이 스티븐스를 쏴버립니다. 두 사람의 활약으로 인해 스티븐스가 암살됩니다. 이들의 목표는 단 하나, 나라를 일본의 식민지로 넘기는데 앞장섰던 스티븐스를 죽이고자, 두 사람은 같은 꿈을 꾸었던 것입니다. 한편으로 참 놀랍고, 또한 뭉클한 일이지요. 하루하루 노동을 하면서 살아갔던 사람들이, 많이 배운 것도 없고, 많이 가진 것도 없지만, 정작 나라를 위해서 이 한 몸 기꺼이 투쟁하던 모습들이 인상적입니다. 장인환은 재판을 받아 25년의 중형을 선고 받았고, 선빵을 날린 전명운은 훗날 어렵게 생계를 꾸려나갔다고 전해집니다. 알다시피 1910년 대한제국은 사라지고 말았으니까요...
굵직한 사건 두 개만 더 살펴볼께요. 1909년에는 이재명이라는 10대 젊은이가, 친일파 이완용을 피습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완용은 흉부를 칼에 맞아 중상을 입었으나, 살아남았고... 이재명은 사형선고를 받아, 이듬해 스무살의 젊음으로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재명은 사형선고 앞에서도, 이렇게 일갈합니다. "왜법이 불공평하여 나의 생명을 빼앗을 수는 있지만, 나의 충혼은 빼앗지 못할 것이다"
또한, 역시 1909년에는 안중근이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를 사살합니다. 안중근 역시 이듬해, 32세의 삶을 뒤로 한채, 사형이 집행됩니다. 그의 마지막 이야기로 마칠까 합니다.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된 의무를 다하며 마음을 같이 하고 힘을 합하여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르도록 일러다오.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덧붙여, 항일의병운동의 이야기는 2부에서 계속 됩니다. 역시나 너무 길어져서, 잠시 끊도록 할께요. 다음 문서에서 계속!)
오늘의 영감 - 제가 너무 감정적인 걸까요. 그저 정리일 뿐인데도, 괜히 울컥한 마음이 듭니다. 저는 괴로운 질문을 한 번씩 던져봅니다. "내가 비슷한 상황에 처한다면, 장인환 혹은 안중근 같은 삶을 선택할 수 있었을까?" 오늘날은 용기 없이 침묵하며 사는게 현명한 처세, 손해 보지 않는 선택을 하는 게 영리한 처세 같은 말이 떠돌지만, 저는 거기에 그다지 동의하지 않습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그것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같은 가슴 아픈 질문들을 던져보고, 그것을 추구하며 살아갈 때, 사람의 인품이라는 게 정말로 존재하고 느껴진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정작 일본인이었던 안중근의 교도관 - 다카오 미조부치는 "안중근을 동아시아의 의인이라고 평하였다" 라는 놀라운 이야기도 있습니다. 죽음까지도 감수하며, 나라의 독립을 위해, 압제와 맞서는 길을 걸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걸, 우리는 분명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문득,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나는 지금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같은 질문들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답도 잘 찾아지지 않습니다. 이럴 때는, 괜히 높은 기준을 세워놓고, 또한 그저 남보기 좋은 위선적인 삶이 아닌가? 같은 오랜 질문도 찾아옵니다.
이주은 선생님의 책에서 이런 짧은 문구를 발견해서, 심히 공감한 적이 있습니다. "자신이 내리게 될 종착역은 목적지와 다를 수 있다는 것" 그렇다면, 어쩌면, 저같은 어떤 사람들은 먼 곳의 종착역이 아닌, 묘한 곳에서 내릴지도 모르겠다 싶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목표를 향해서 움직이다보면, 늘상 그렇게 다른 곳에서 내린 적이 훨씬 많았던 것 같습니다. 하다못해 국사정리도 여기까지 온 것 자체가 생각했던 목적지보다 훨씬 더 오게 되었고요. 우리는 미래가 좀처럼 계획대로 다가오지만은 않기에, 비관하지도 않고, 낙관하지도 않고, 오늘만을 충실히 채워가는게 좋겠다 싶었습니다. 할 수 있는 건 반드시 해보는게 좋겠다 싶었습니다. 산다는 건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