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스타열전

#45 천재, 데얀 사비체비치

시북(허지수) 2019. 12. 18. 14:43

 

 구 유고슬라비아의 축구스타, 천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데얀 사비체비치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90년대를 대표하던 판타지스타 였습니다. 오늘은 재밌는 그의 이야기로 가볼까요.

 

 프로필

 

 이름 : Dejan Savićević
 생년월일 : 1966년 9월 15일
 신장/체중 : 178cm / 70kg
 포지션 : FW / MF
 국적 : 몬테네그로 (활동당시 유고슬라비아)
 국가대표 : 56시합 29득점

 

 천재 데얀 사비체비치의 이야기

 

 사비체비치는 1986년, 스무살 때부터 국가대표로 발탁될 정도로 실력이 좋았던 선수였습니다. 1988년에는 "FK 츠르베나 즈베즈다" (세르비아 어로 붉은 별을 의미) 에 입단하게 됩니다. 영어권에서는 "레드스타 베오그라드" 라고 부르기도 하는 그 팀입니다. 이 때부터의 활약은 눈부십니다. 자그마치 리그 3연패! 사비체비치 선수는 드라간 스토이코비치 등과 함께 유고슬라비아의 간판스타이자, 영웅이었습니다.

 

 사비체비치가 뛰던 즈베즈다팀은 국내무대에서만 강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1990-91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 그들은 뮌헨도, 마르세이유도 물리치면서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합니다. 사비체비치는 눈부신 활약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러한 멋진 모습을 자랑하던 사비체비치는 이듬해인 1992년에 AC밀란으로 이적하게 됩니다. AC밀란에서도 3번의 리그우승을 비롯해서 많은 타이틀 획득에 공헌합니다. 동료였던 로베르토 바조도 그를 두고 천재라고 말하며 높이 평가했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인지도가 낮았던 것일까요? 그것은 역시 국가대표로서 출장을 제대로 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유고슬라비아는 내전으로 혼란스러웠고, 이 때문에 유로92도, 94년월드컵도, 전성기를 달리고 있던 유고의 영웅 사비체비치는 참가할 수 없었습니다. 참으로 불운한 일이었습니다. 유로92 때만해도 전문가들이 우승후보라고까지 평가했던 팀이 바로 유고슬라비아였는데 말입니다. 혹자는 사비체비치가 1994년 월드컵에만 참가했더라도 마라도나 또는 반바스텐 정도의 전설을 만들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평가가 너무 오버하는거 아니냐구요? 자 그렇다면 그가 왜 천재라고 불린 것인지 한 번 살펴보도록 합시다.

 

 왼발을 절묘하게 구사했던 사비체비치는 드리블 돌파에 능했습니다. 멋진 밸런스감각으로 빠른 속도로 드리블 돌파를 하고, 왼발로 공을 자유자재로 컨트롤하면서 훌륭한 크로스를 올리거나, 강렬한 슛을 날리는 모습. 일품이었습니다. 왼발잡이면서도 오른쪽 측면에서도 자신있는 플레이를 보여주었으며, 사비체비치의 움직임은 절묘함 그 자체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기묘한 드리블에다가 좀처럼 감을 잡을 수 없는 이상한 타이밍에 슛이 날아가니까, 리플레이로 보지 않으면 어떻게 넣었지? 라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킬만큼 특이한 방법으로 넣은 골도 상당합니다. 감각적인 패스도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냉정하게 말해 골 결정력은 실제로는 좋지 않은 측면도 있었습니다. AC밀란 시대에 주전 공격수로 활약한 적이 있었는데 별로 골을 넣지 못했습니다 (...) 그런데도 왜 그를 천재라고 높이 평가할 수 밖에 없느냐 하면, 그는 보통 선수들과는 뭔가 다르게 플레이 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1994년 챔피언스리그에서는 크게 일을 냅니다. AC밀란과 FC바르셀로나의 대결,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었습니다. 현지에서는 오렌지삼총사가 떠난 AC밀란의 열세가 예상되었고,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이는 당연한 예상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사비체비치는 환상적인 중거리 루프슛을 날리는 등 맹활약했고 AC밀란은 FC바르셀로나를 4-0 으로 완전히 대파했습니다.

 

 AC밀란은 챔피언스리그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리게 됩니다. 이 당시의 바르샤는 요한크루이프 감독이 이끌던 이른바 엘드림팀이라 불리는 호화멤버로 국내리그 4연패에 빛나는 손꼽히는 강호 중의 강호팀이었지만, 축구장에서 보기 드문 플레이스타일을 가진 선수였던 천재 사비체비치가 이끌던 AC밀란에게 압도적으로 패하고 말았습니다. AC밀란은 열광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시절에 또 하나의 불운이 찾아옵니다. 바로 부상이었습니다.

 

 20대 후반인 이맘때 무렵부터, 부상으로 고생을 많이 하게 됩니다. 사비체비치라는 걸출한 천재가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부진하거나, 경기장에 나오지 못할 때에는 AC밀란이 원래의 흐름대로 경기를 못 풀어나가는 경우가 상당했습니다. 1995년 챔피언스리그도 그러했습니다. AC밀란은 이번에도 결승전까지 진출했습니다. 부상으로 사비체비치는 결승전에 나올 수 없었는데, 이 날 결승전 아약스와의 경기에서 0-1 로 AC밀란은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AC밀란의 팬들은 천재의 부상에 너무나도 아쉬워 했다고 합니다. 1년전인, 1994년에 그가 있었기에 결승전에서 압승을 거두었던 그 강렬한 장면들이 너무나 선명했기 때문이었겠지요.

 

 이후에는 부상으로 많은 경기를 소화하지 못했습니다. 선수생활 마지막은 오스트리아리그에서 보냈으며, 2001년에 은퇴하게 됩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대개는 이렇게 개성 넘치고, 너무나 창조적이며 자유분방한 선수들은 불화를 겪거나 갈등이 있기 마련입니다. 사비체비치의 경우 수비를 그다지 잘 못하는 편인데다가, 심지어 AC밀란 시절 카펠로 감독의 수비지시를 무시하는 장면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사비체비치는 조금 특이하게도 별로 미움을 받지 않았습니다.

 

 부상으로 인해 실제로 AC밀란에서 제대로 뛴 경기는 많지 않은데도, 팬들은 참으로 사비체비치를 좋아했습니다. 팀동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앞서 밝혔듯이 동료 로베르토 바조의 "사비체비치는 천재였다"의 발언 외에도, 팀동료 중의 어떤 선수는 사비체비치를 두고 인격자라고 평가하기도 했었습니다. AC밀란의 회장님도 사비체비치의 열렬한 팬이었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 밀란의 10번은 바로 사비체비치의 몫이었습니다. (이후 AC밀란의 10번은, 네덜란드인으로는 처음으로 챔피언스리그 100회 출장을 넘긴 축구대통령이라고 불리는 세도르프가 이 번호를 달고 있습니다)

 

 사비체비치. 별명 자체가 천재였던 이름. 너무나도 뛰어난 재능을 가졌지만, 그 이름을 알릴 기회가 적었던 비운의 구유고슬라비아의 영웅. 어쩌면 그가 세계에 명성을 날린 시간은 너무나 짧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짧은 순간의 반짝임은 환상 그 자체였습니다. 전설적 엘 드림팀 FC바르셀로나를 대파했던 그는 AC밀란에서 너무나 사랑받았던 영웅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94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AC밀란 회장님께서 직접 격려했던 일화도 유명합니다. "너는 천재니까, 어떻게든 해봐라!" 그리고 정말 천재다운 놀라운 활약을 펼쳤습니다.

 

 실력만으로 본다면 90년대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음에도, 나라 안팎의 복잡한 사정이 얽혀서 유로도 월드컵도 제대로 뛸 수 없었고, 인지도로 인해서 유럽최우수선수상도 받지 못했습니다. 만약 그가 부상만 없었더라면, 아니 다른 유럽국가에서 태어났더라면... 아마도 놀라운 역사를 썼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역사에 만약은 없겠지요. 있는 그대로의 천재 사비체비치를 기억하고 존중하는 것이 오히려 팬으로서의 자세가 아닐까 합니다. 글을 마치면서 유튜브에서 사비체비치의 동영상을 준비해 보았습니다. 유심히 보면 정말 공을 다루는 재주부터가 남다릅니다. 오늘 이 천재 선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감사합니다.

 

 2008. 04. 07. 초안작성.

 2019. 12. 18. 가독성 보완 및 동영상 업데이트 - 축구팬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