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한국사

열강의 경제침탈 3부 - 일본의 철도 부설권 집착

시북(허지수) 2014. 1. 8. 23:51

 어지간하면 이번 문서에서 다 정리될 수 있기를 바랐는데, 참 열강의 경제침탈이 많긴 많네요. 아무래도 내용이 많이 길어져서, 3부와 4부로 끊어야 겠습니다. 역시나 어려운 내용은 아니고, 복습을 겸해서 1890년대의 이야기를 재밌게 살펴보려 합니다. 어서 출발합시다.

 

 지난 문서에서 시간을 뒤로 10년 쯤 지나보내고, 우선 격동의 1894년으로 진입해 봅시다. 동학농민운동이 있었고, 갑오개혁이 있었고, 일본이 청일전쟁에서 이기게 되는 그 무렵 입니다. 최근 문서들은 쭈~욱 경제파트만 보고 있으니, 갑오개혁 때 추진되는 경제개혁에는 뭐가 있었는지 복습해 봅시다. 도량형 통일, 은본위제 시행, 조세의 금납화가 있었네요. 하하, 반복되는 복습 측면이 있으니, 부담 없이 접근하는 거 잊지 마시고요. (*은본위제 하나도 모르겠거든요! 라고 한다면, 잠깐 갑오개혁 문서를 슬쩍 보고 와도 좋을 꺼에요.)

 

 조세의 금납화를 복습겸, 조명해 볼께요. 이전까지 세금을 납부하는 방식은 현물 위주였습니다. 쌀이나, 천 같은 것을 주로 세금으로 냈다면, 이제는 돈으로 내라는 거에요. 그렇다면!? 이 때부터는 은행기능이 중요해집니다. 국내에서도 민간 자본에 의한, 은행들이 들어옵니다. 조선은행, 한성은행, 천일은행 들이 세워집니다. (*여담으로 오늘날 신한은행, 우리은행들이 이 당시 백여년 전의 은행들과 연결고리가 있다는 사실도 재밌고요.)

 

 그러니까 간단히 말해, 1894년 갑오개혁 이후, 우리나라에도 하나 둘 은행이 만들어졌고, 사람들이 은행에 가서 자신의 돈을 예금하기도 하고, 이런 모습들이 나타난다는 점. 정책의 변화로 인해, 일상의 풍경들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워요. 그러고보면, 76년 강화도 조약 이후, 이런 큰 변화까지 20년도 안 걸렸어요. 마찬가지로 전에 언급했듯이 93년-94년 쯤만 해도, www와 세계가 연결되는 인터넷 시대가 열릴지 상상도 하기 어려웠단 말이지요. 세상은 그렇게 변화할 수 있다는 점은 참 유익한 통찰을 줍니다.

 

 예컨대 2035년 쯤에는 무엇이 우리 삶에서 중요해 질까요? 미래학자는 아니지만, 한 번 쯤 생각해 본다면 흥미롭지 않을까 싶어요. 사람 사는 모습은 다 비슷하겠지만, 새로운 풍경이 펼쳐질 수 있다는 점이 재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집에 들어갈 때, 지문이나 홍체인식으로? 스마트폰 암호도 지문과 홍체 인식으로? 하하, 웃자고 하는 농담입니다. (한국사는 절대로 재밌는 내용 이랍니다! 역사는 매력적인 통찰들이 여기저기 숨어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여담 그만하고, 다시 근대사로 돌아와, 1896년 아관파천이 일어나고, 이 때부터 열강의 경제침탈은 극에 달합니다.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면서, 그 대가로 매우 쓰디 쓴 결과를 가져오지요. 고종을 보호해 주었으므로, 러시아에게 굉장히 많은 것을 내줘야 했습니다. 그리고! 러시아에게 이권을 이만큼 쑥 주고나니까, 다른 나라들이 가만히 있질 않아요. 왜나하면? "최헤국대우"라는 것이 설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최혜국대우, 자동 조약 갱신, 이건 덫과 비슷해요. 한 번 잘못 걸리면, 나라를 갉아먹는 비참한 상황으로 내몰리게 됩니다.

 

 최혜국대우는 미국과 조약할 때 처음으로 들어갔고, 이후 다른 나라들과 조약할 때에도 줄줄이 최혜국대우가 들어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조선은 1896년 이후에 연쇄적으로, 열강들에게 이권을 줄줄이 내줘야 했습니다. 이권 침탈이 절정에 이르는 근본적 뒷배경에 최혜국대우 조항이 자리잡고 있었음! 이 점이 3부까지 오는 긴 문서를 할애하면서 다루는 핵심 내용 중 하나입니다.

 

 자, 그러면, 이제부터 상상 초월, 본격 조선의 퍼주기가 시작됩니다 ㅠ_ㅠ... 먼저 러시아가 아무래도 가져간 것이 많습니다. 삼림채벌권을 가져갔고요, 용암포와 절영도를 조차(땅을 빌려가는 거에요. 거기다가 석탄 기지를 세워서 석탄공급을 확보하는 것)해 가고자 했습니다. 또한, 한-러 은행도 세우려 합니다. 특히 용암포 사건을 주목해 볼께요.

 

 러시아는 (조선-만주 국경지역의) 용암포 조차를 하면서, 일본이 만주지역으로 진입하려는 것을 막고자 했습니다. 다르게 말해, 용암포는 러시아 기지가 있으니까, 일본 너희는 다른데 알아봐 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반면, 일본 입장에서는 용암포 조차로 인해, 러시아와 긴장관계에 놓이는 발단이 되기도 했습니다.

 

 일본의 오랜 꿈이라고 한다면, 조선에 이어, 만주를 넘어, 대륙으로 진출하려는 계획인데, 지금 러시아가 딱 정면으로 가로 막고 있는 형태니까요. 그래서 훗날 1904년경 러시아와 일본은 전쟁으로 치닫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조금 과격하게 접근해 본다면, 일본의 경우, 조선의 이권도 독차지해야 했고, 만주와 그 너머도 내다보려고 했으므로, 그 막대한 이권을 위해서는 대국 러시아와도 싸우겠다는 겁니다.

 

 어디까지나 이번 문서에서 중요한 것은 경제침탈이니까, 우리는 지금 러시아에게 삼림 내주고, 국경지대 땅 빌려주고, 러시아 은행 들어오는 것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시작에 불과했지요. 최혜국대우 조항이 동시에 여러 나라들에게 켜집니다. 조약으로 인해, 비슷한 혜택을 다른 나라에게도 또한 퍼줘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프랑스는 광산채굴권을 가져가버립니다. 96년에 경의선 부설권도 프랑스가 가져갑니다. 마음 아파하기에는, 속상해 하기에는 아직도 이릅니다!

 

 미국은 경인선 부설권을 가져갑니다. 운산금광도 가져갑니다. 미국 사람들은 금을 좋아하네요. 그죠? 예전 미국의 서부 개척시대에도 보면, 금을 찾아서, 라는 골드러시 문화가 있다보니까, 조선에서도 금을 발견해서 냅다 가져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운산금광은 당시 막대한 금 매장량을 자랑하고 있었지만, 그래봐야 이제 남의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국사는 재밌어야 하니까! 믿거나 말거나 여담인데, 이 때만해도 조선인들은 수작업으로 금을 캐고 그랬는데, 미국사람들은 기계로 두두두 엄청나게 금을 캐가니, 이것도 하나의 문화충격이었습니다. 조선사람들이 이것을 바라보며, 엄청난 금에 놀라며 손을 대려고 하니, 미국인들은 단호하게 손대지 마라고 노 터치를 외쳐댑니다. "오마이갓, 노터치, 노터치!!!" 그 뒤로부터는, 금이 쏟아지는 풍경을 보고 "우와, 노다지!!! 노다지!!!" 라고 조선 사람들이 외쳤다는 뒷이야기가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이걸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웃기지만 슬픈 이야기라서, 웃프다? 저도 조금 늙었는지, 요즘 친구들 유행어는 잘 못 따라갑니다. 쿨럭. 여하튼 미국이 운산금광 가져간 거, 기억 잘 되겠죠. 하하.

 

 지금 대표적으로 굵직한 것만 보고 있는 것이라, 세세히 들어가면, 영국도 나오고, 독일도 나오고, 하여간 조선 경제가 힘을 잃어가며 다 뺏기는 모습이랄까요. 또한, 당시 대표적 제국주의 열강들인 러시아, 프랑스, 미국이 이렇게 큰 것들을 가져가고 있는데, 일본이 가만히 있을리가 없습니다.

 

 일본의 가장 큰 관심은, 다른 거 다 제쳐두더라도 "철도부설권"에 굉장한 눈독을 들입니다. 그렇다면 대체 왜 일본에게는 철도가 매우 중요했을까요? 잠시 뒤에 살펴보도록 하고요. 일본은 철도부설권에 막대한 공을 들였기에, (서울-부산간) 경부선 부설권 뿐만 아니라, 프랑스와 미국이 갖고 있었던 경의선(서울-신의주), 경인선(서울-인천) 부설권도 몽땅 다 사들이고, 빼앗으며 가져옵니다. 한 마디로 철도길 대부분을 일본이 다 깔아서 개통시켰다고 보면 됩니다. 아니, 왜?

 

 이유가 있습니다. 일본은 자본주의가 계속 발달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일본의 쌓여가는 자본들은 국외로 나가서 팽창하려는 기회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본을 투자 하기에 가장 좋은 것 중 하나가 바로 "철도" 입니다. 일본은 이유 있는 집착을 보여주었고, 조선은... 땅 바치고 종질한다는 당시 신문기사도 볼 수 있을 만큼, 눈물의 철도길이 되어갑니다.

 

 이제 이번 문서의 하이라이트, 조선 입장에서는 당장 철도를 개설할 수 있는 기술도 부족했고, 돈도 부족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일본에 의해 차관(빚)을 빌려오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일본 돈으로 철도가 지어지고 있었으니, 혜택도 일본이 가져가는 것은 참으로 씁쓸하지만 당연했겠지요. 조선은 "역둔토"라고 해서 일본에게 유지관리명목의 땅을 줘야 했습니다.

 

 역둔토의 개념은 철도가 있으면, 중요한 위치마다 각각 역이 들어설 거 잖아요. 그러면, 이 철도역의 경비를 해야 한다며, 해당하는 땅을 일본이 가져간다는 의미가 들어가 있습니다. 또한, 조선은 땅 뿐만 아니라, 차관으로 빌려온 돈에 대하여, 이자를 꾸준히 일본에게 줘야 했고요.

 

 게다가! 제일 중요한 건, 1910년 조선이 식민지로 추락하게 되자, 깔아놓은 철도를 통해서 각종 물자를 운반하는데 (일본 입장에서) 아주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가령 자기네들에게 필요한 물자는 철도에 왕창 실어서 필요한 곳에 보내는데도 아주 수월해졌고요. 결론적으로, 철도부설권으로 인해 일본은 작은 투자를 해놓고는, 장기적으로는 막대한 이윤을 획득했던 셈입니다.

 

 고종의 아관파천 이후, 이렇게 많은 것들이 빼앗기고 있으니, 참담한 상황에 내몰리는 조선. 일본의 야욕은 이후 더욱 커집니다. 그 이야기는 4부 문서에서 계속... 아직 못다한 이야기. 토지 약탈 계획 및 화폐 정리 사업 이야기가 더 이어져서 말이에요. 하하.

 

 오늘의 영감 - 제가 좋아하는 작가님의 표현을 잠깐 빌려오고자 합니다. "우리는 무엇에 눈멀어 있는가? 그리고 새로운 것에 눈뜨면 얼마나 기쁠까?" 인간은 누구나 한계가 있기 마련이라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잘하는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지식이 힘이 아니라, 때로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관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무엇을 얼마나 아는가 라는 질문보다는, 무엇에 눈멀어 있는가 라는 질문을 참 좋아합니다.

 

 지나치게 바쁘게만 살다보면, 어느새 우리는 행복에 눈멀어 있어서, 오늘의 소중함을 경시하며, 미래를 과소평가하며 괴로워 할 때가 있습니다. 속도가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서, 저는 "인내"에 눈멀어 있었습니다. 즉각적인 만족, 원하는 만큼의 즐거움이 있기를 원했고, 중요한 문제를 생각할 시간을 비워놓지 못했습니다. 현실을 잊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쥐고 있으면 편안해 졌습니다. 어쩌면, 정신승리법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포기들이 물방울처럼 모이고 쌓일 때, 연인들은 그들의 순례를 마칠 수 있다. - 알랭 드 보통

 

 저는 시작한 것들을 대부분 마치지 못했습니다. 어느 순간, 질문을 바꿔보기로 했습니다. 나는 왜 이런 삶을 반복할 수 밖에 없는가? 라는 질문 대신에, 어떻게 하면 마치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가? 라고 답을 찾아나섰습니다. 가끔 운명처럼 다가와, 마음을 울리는 답들이 있습니다. 포기들이 쌓일 때, 사랑하는 것들을 마칠 수 있다는 것. 제가 발견한 소박한 답이 혹여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감히 덧붙여 봤습니다.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