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문서는 서론부터 천천히 들어갑니다. 1929년에는 세계 대공황이 있었습니다. 공황이라는 게 무엇인가요. 경제에서 나오는 수요공급의 법칙이 완전히 망가진 상황을 말하는 겁니다. 공장에서 생산되는게 아주 많아서 물건은 넘쳐나는데, 정작 사람들은 돈이 없어서 살 수가 없는 상황이 된거에요. 그러면 물건은 팔리지가 않잖아요. 물건만 한가득 창고에 쌓여있는 상황을 상상해 봅시다! 급기야 매출이 안 나오니까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해고되고 말았습니다. 아이구, 해고된 노동자들이 무슨 큰 돈이 있겠어요. 여전히 생산된 물건은 팔리지가 않고, 물건은 계속 쌓여갑니다. 또 다시 회사들은 파산하고, 노동자들은 계속 짤리고,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 대공황의 공포가 세계를 덮친 것입니다!
당시 수요를 살리기 위해서, 사람들의 구매력을 올리기 위해서, 미국은 뉴딜정책을 도입합니다. 나라에서 대규모 기간산업들 (다리를 만든다거나, 도로를 깐다거나 등등) 에 노동자들을 불러모아 일을 시키고, 임금을 지불하는 식이지요. 그렇게 국가에서 적당한 수요를 만들어 냈고, 사람들은 쓸만큼의 돈이 다시 생기다보니까, 다행히 물건이 팔리기 시작합니다! 유럽의 경우는 특유의 블록경제를 도입합니다. 한 나라에서 생산이 너무 초과된다 싶으면, 옆 나라(블록)에 팔고 하는 식으로, 공급과잉을 조절해 보려고 합니다. 드디어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면, 일본은 공황이라는 경제적 위기 앞에서 어떤 카드를 꺼내들었을까요!
미국이야 워낙 땅이 넓고, 기간 산업을 추진할 만한 역량이 있었지만, 일본은 그 정도까지 대규모로 기간산업을 펼칠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일본은 유럽처럼 주변국에게 남는 물건을 팔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습니다. 결국 일본은 강제로 자신들의 과잉공급을 해결하기로 마음 먹습니다. 계속 만들어서, 계속 강제로 팔아치울 수 있는 방법! 전쟁이었습니다. 군수물자 만들고, 실업도 해결할 수 있었고, 전쟁은 대공황이라는 일본 경제 위기를 해결할 달콤한 독약이었던 겁니다.
1930년대부터 일제에 의한 전쟁이 확대되는구나! 그 느낌을 잘 이해해 두시고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1937년에는 중국과 전쟁치고, 1941년에는 미국과 전쟁을 펼치는데, 아무리 일본이 아시아의 독보적 맹주였다고 해도, 가미카제 자살특공대를 동원한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인구 숫자 자체가 어렵습니다. (그 제가 어릴 때 무용담으로 흔히 나오던 17대1로 싸워서 이겼다는거, 에이, 그런 거 허풍일 때가 많다니까요. 1대1로 어떻게 이겨요!) 하여간, 아무래도 인원이 부족한 일본은 급기야 식민지 사람들을 전쟁에 끌어들이려고 합니다. 쉽게 말해, 조선인들 전쟁하는데 총알 받이라도 좀 해!
일본이 자기네들 전쟁하는데, 일본을 위해서 목숨 걸고 전장터로 나가라니? 이런 황당한 일이 어디있습니까. 그죠? 일제는 이제 조선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세뇌하는 입장으로 돌입합니다. "너희들 말야, 이제부터 일본인이야, 그리고 천황의 신민이란 말야, 그러니까 조국을 위해서 몸바쳐 싸우도록 해!" 즉, 조선인이라는 의식 자체를 지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민족말살통치의 전반적 배경이 되겠습니다.
1930년대 이후, 조선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치안 쪽은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예컨대 치안유지법으로 잡혀갔을 경우, 이제는 "조선사상범 보호 관찰령"이라고 해서 형기를 다 마친 사람들도 끝까지 보호 관찰한다며 감시를 계속합니다. 의식 있는 조선 사람들은 절대로 가만두지 않겠다는 거에요. 신문도 막아버리면서, 조선일보, 동아일보도 폐간처리 (1940년) 됩니다.
그리고 유명한 창씨개명도 이 때 등장합니다.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라는 겁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 때 창씨개명에 적극적으로 앞장섰던 사람들에는 조선사람도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조선인들이여, 이제는 이름을 바꾸자. 얼마나 큰 일본의 은혜인가. 황국신민이 되자! 자랑스러운 일본인으로 다시 태어나자!" 라고 떠들던 사람들. 이들 중에서는 조선이 낳은 천재로 불리던 이광수 같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었으나, 정작 민족반역에 앞장 서는 사람들. 지식인이라면, 사회적 책임이라는 것이 따르지 않나,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잠깐 여담을 덧붙여서, 공부논쟁의 저자 김두식 교수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통치에 있어서, 주먹으로 통치하는 것만 위험한 것이 아닙니다. 정보의 왜곡이나 독점을 통해 총검통치보다 더 위험한 상황이 만들어 질 수 있는데, 이걸 지적하는 것이야말로 지식인의 의무입니다.) 우리는 이런 점을 주의 깊게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1930년대 창씨개명하고 일본인이 되자는 것이, 과연 혜택으로 볼 수 있는가? 어쩌면 정보의 왜곡이 아닌가? 진정 조선을 위한 길인가? 같은 무거운 고민 말이에요. 뭐, 아무튼 계속해서 살펴봅시다.
궁성요배도 있었습니다. 일정한 시간이 되면 사이렌이 막 울려요. 그러면 일본 천황이 있는 곳을 향해서 절을 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또한 황국신민의 서 가 있는데, "나는 자랑스러운 황국의 신민입니다." 같은 생각을 달달달 외우도록 만듭니다. 자, 여기까지 정리해볼까요. 이름 바꾸고, 천황에게 절하고, 나는 자랑스러운 일본인이다 라고 계속 반복하게 되면, 사람의 생각이 조작될 수 있다는 것. 역사를 배우면서 통렬하게 아픈 대목 중 하나입니다.
오래도록 저는 에이, 사람이 바보도 아니고, 세뇌라니 말도 안 된다! 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유명한 학교 실험에서, 사람은 특정 집단에 소속되어 있는 느낌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몇 가지 암시와 통제만으로도 히틀러의 나치와 비슷한 집단 사고를 오늘날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바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의 관점으로 보면 일제식 세뇌통치가 헛소리 같이 보이지만, 정작 그 시대의 많은 이들은 황국신민이 되었음을 기뻐했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네들이 끌려가는 전쟁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과연 알았을까요... 그러므로, 천황폐하, 권력자가 행복한 나라가 아니라,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행복한 나라가 되어야 건강한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일제의 전쟁 발악, 그러니까 조선인을 일본 사람으로 만들어서 병사화 시켜가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아, 맞다, 뭔가 하나 빠졌군요! 지난 문서에서 봤었던, 조선어 교육 어떻게 바꿔야 했을까요? 민족을 없애고, 완전히 일본 사람 만든다면서요? 따라서 시행되었던 조선어 교육 완전 금지시켜버려! 알기 쉽지요? 한편, 이 때 조선어학회 사건도 있었습니다. 조선어를 연구하는 모임이었는데, 여기에다가 일제는 치안유지법을 들이밀고 적용시켜버립니다. 조선어를 연구하거나 가르쳐도, 바로 죄를 만들고 덮어씌워서 "너 지금 체제전복이다!!" 라며 난데없이 끌고 가는겁니다.
현진건의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그 시대의 사람들은 술을 벗하며 서글픈 현실을 견뎌나가지 않았을까... 그런 풍경도 떠올리게 됩니다. 아이고... 물론! 현실이 힘들다고 해도, 현실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태도야 말로, 술을 벗하는 것보다 낫기야 하겠지만요. 하하.
여기까지 대략적으로, 1910년대, 20년대, 30년대의 각각의 통치방식을 살펴보았습니다. 한국사 관련 시험에도 출제 빈도가 높다보니까, 상세하게 전달하려고, 거의 압축하지 않았네요. 일제강점기 정치적 모습과 배경은 살펴보았고, 다음 문서부터는, 일제의 경제 정책을 살펴보겠습니다!
오늘의 영감 - 한 줄의 표현이 마음을 설레게 할 때가 있습니다. 잠깐 소개해 놓고 갑니다.
"내 생각이 내 머리에서 나온 것인지 끊임없이 질문할 필요가 있습니다."
"창의성은 근본적으로 남과 다를 수 있는 용기입니다."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