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한국사

일제의 경제정책 1부 - 토지조사사업의 이해

시북(허지수) 2014. 7. 29. 15:24

 일제강점기 이야기 입니다. 복습 빼먹지 않고 있지요? 중요하니까, 다시 한 번 체크를. 1910년대 무단통치 하면, 헌병경찰, 즉결처분, 태형 같은 공포가 떠오르면 OK. 1920년대 문화통치 하면, 보통경찰, 조선동아일보 창간, 도평의회, 부면협의회 등 자치도 있었고요. 기만적이라는 특징이 떠오르면 좋습니다. 조선어교육도 했었고요. 끝으로, 1930년대는 민족말살통치 지요? 조선인을 전쟁터로 내보내려면? 창씨개명, 궁성요배, 황국신민의 서 등으로 "나는 일본인이다"라는 의식을 집어넣으려 했습니다. 우리가 방금까지 정치적 측면을 살펴봤다면, 이제는 경제적 측면에서 일제의 만행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과연, 일제 강점기 동안 우리는 무엇을 빼앗겼던 걸까요? 호기심을 안고, 1910년대부터 가볼까요.

 

 조선이 식민지가 되었고, 일제가 가장 먼저 탐냈던 것은 바로 땅이었습니다. 그래서 일제는 1910년대 곧바로 "토지조사사업" 을 실시합니다. 이런 식으로 10년대는 땅을, 20년대는 쌀을, 일본 자기네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조선에서 쭉쭉 빼먹는 거지요.

 

 간단히 정리하면 "토지조사해서 땅 뺏어가더라!" 입니다. 그렇지만, 이번 문서는 토지조사사업을 입체적으로 이해해보기 위해서, 잠시 개항기 시기의 토지 정책부터 살펴보려 합니다. 먼저 대한제국시기 고종이 탁지부 양지아문에서 양전사업(토지조사사업)을 시행한 적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미 당시에 지계 발급 이라고 해서, 토지소유권을 정하는 계약문서를 만들었다는 것. 비록 지계는 전국적 시행이 되지는 않았지만, 대한제국 시기 때에도, 나름대로 토지소유권을 정해보려는 움직임이 있었다는 것을 이해해 두시면 됩니다.

 

 드디어 본론! 일제강점기 토지조사사업의 특징은, 토지를 갖고 있다면 기한내 신고를 해야 했고, 또한 여기가 내 땅이라는 증거를 제시해야 했습니다. 당시의 조선사람들이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토지계약문서를 작성하려면 상당히 만만찮은 일이었습니다. (예컨대 요즘 종합소득세 신고를 하러 가면, 워낙 전문용어가 많다보니까, 세무서에서 도와주시고 하는 그런 분위기를 떠올려도 되겠네요. 한글이긴 한데, 이게 무슨 말인지, 해독이 안 돼!!! 암호같아!!!)

 

 땅을 가진 농민들이 일제 토지조사사업 때문에, 기한 내에 신고해야 한다고 하니까 황급히 문서를 작성하러 왔습니다. 그런데, 앞이 캄캄한 겁니다. 친절하게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지, 빼곡히 한문만 보이지, 정말 당황스럽습니다. 게다가 증거까지 제대로 써야 하잖아요. 여기서 만약 소홀하거나 부실하게 썼다면, 그 다음부터는 봐주는 것 없이 그 땅이 일제로 넘어가 버리는 겁니다. 신고 안 한 땅들도 일제로 넘어가는 것은 당연했고요. 시작부터 본격적으로 대놓고 수탈해 가지요? 나라를 잃는다는 슬픔이 그런 것입니다. 자고 일어나니 내가 누려왔던 것이 초토화 되는 것이지요. 조선을 식민지로 만든 까닭은, 일제에 의한 경제적 착취가 빠짐없이 들어가 있기 마련입니다.

 

 한편, 토지조사사업을 시행했던 관련기구로,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있습니다. 이 회사는 구한말 1908년에 만들어졌는데, 일제강점기가 되어서도 계속해서 쭉 활동을 해나갑니다. 종종 시험에 나오니까, 기억해 두시면 좋겠습니다. 하하.

 

 그러면 토지조사사업을 시행한 뒤에, 무슨 일들이 일어났을까요? 우선, 농민들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경작권이 전면 부정 되었습니다. 보충설명이 필요하겠네요. 경작권은, 농민이 본래 가지고 있던 땅이 아니지만, 거기서 소작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할아버지가 이 땅을 빌려서 농사를 지어왔다면, 아버지도, 나도, 경작권이 있어서 거기서 계속 소작농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겁니다. 한편, 실질적 땅주인도 경작권을 가지고 있는 소작농에게 "당신들 이제 나가시오" 라고 함부로 건드릴 수 없었습니다. 이런 경작권의 개념을 일제는 부정했습니다.

 

 참, 경작권은 현대에도 존재합니다. 음, 만수르라는 사람이 아주 부자여서 이따만한 산을 샀다고 생각해 봅시다. 임야니까 내 마음대로 나무도 베고, 집도 짓고, 하고 싶은대로 다 할 수 있을 것 같지만요. 사실은, 대대로 그 이따만한 산에서 버섯을 재배하고, 작물을 키우고 하는 사람들이 경작할 수 있는 권리는 보호됩니다. 그래서 만수르라는 사람이 "다 나가버려!" 라고 말할 수 없고, 경작하는 사람들은 법적으로 생계가 지켜지는 것이지요. 돈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진 않아요. 사람이 먼저!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 경작권이 부정되면서 경작하던 사람들은 계약제로 전락합니다. 이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농민이 한 곳에서 2년씩 열심히 경작하다가도, 지주와 의견충돌이 있거나, 혹은 뿔나거나 하면, 계약이 해지되어 버립니다. "너 마음에 안 드니까 계약 끝났어, 나가줘!" 그런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어? 비슷한 이야기,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느낌이라고요? 현대의 비정규직, 계약직 급증도 비슷한 느낌이 있습니다. 고용이 불안한 사회가 되면, 그 결과물에 영혼이 깃들지 않는다 라는 표현을 언젠가 읽은 적이 있습니다. 1910년대의 분위기도 경제적 면에서는 2010년대와 묘하게 닮은 느낌이 있습니다. 언제 짤릴지 모른다는 위기감 앞에서, 농사말고 해본적도 없는 사람들이, 이제는 지주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 애쓰고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더 효율성이 있거나, 더 각박해 지거나, 더 피곤하고 지친 삶이 이어지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일제 토지조사사업은 전국적으로 시행되었고, 근대적 토지소유권 (계약서 있는 내 땅!) 을 확립했다는 점이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거봐라 일제 덕분에 근대화 된 측면도 있잖아! 그러니까 미개한 조선은 감사해! 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결과만 툭 잘라서 본다면 그럴 수 있겠으나!

 

 앞서 언급했듯이 이미 대한제국 광무개혁 때에도 지계를 발급하였고 양전사업을 실시했다는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고종의 양전사업은 러일 전쟁 등 시대적 여파로 전국적 지계확산에는 실패하였으나, 이미 조선은 스스로 근대적 토지 소유권을 확립해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일제 덕분에 근대화? 라는 주장에 중요한 반론을 들 수 있는 것이, 대한제국의 양전사업이라는 점. 그러므로 조선 역시 자본주의의 발달 과정을 진행해나가고 있었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습니다. (*덧붙여, 그럼에도 조선이 식민지로 추락한 원인은 경제 보다는 세도정치 등 정치적 역량부족으로 보는 것이 더 합당하지 않나 싶고요. 정치에 대한 쿨한 무관심이 사실은 그다지 좋은 일이 아닐 수 있다고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토지조사사업을 상세히 들여다 봤습니다. 생각해보면 대원군도 양전사업을 실시했었고, 고종도 광무개혁 때 실시했었고, 일제도 토지조사를 시작부터 손댑니다. 왜 그랬을까요? "세수(재정) 확보!" 때문이었습니다! 얼굴 씻는 그 세수 말고요! 하하. 국가는 재정이 탄탄하게 뒷받침 되어야만, 여러가지 일들을 추진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됩니다. 국가가 어떤 중요한 개혁, 새로운 일들을 시도하기 위해서는, 재정을 확보하는 일이 최우선이라는 것. 이 점도 함께 공부할 수 있었네요.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다음 문서에서 계속~

 

 오늘의 영감 - 일제가 대놓고 빼앗아 간 땅들은 전 국토의 약 40%나 되었습니다. 조선에서 가장 땅 많은 지주는, 일제가 설치한 조선총독부 라는 말이었지요. 씁쓸한 장면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먹고 살 길이 점점 보이지 않고, 절망적으로 몰려있는 상황이지만, 한 쪽에서는 지금 사상 최대의 부를 축적해 놓고 있습니다. 그런 아픈 일들을 오늘날도 볼 때가 있습니다.

 

 2014년 7월 29일 영국 시사주간지에 따르면, 한국의 빅맥 햄버거 가격이 4천100원 정도라서 세계 28위라고 합니다. 아시아에서 제일 햄버거 비싼 나라는 일본도 아니고 중국도 아니었네요. 더 당황스러운 것은, 일본은 3천700원에 햄버거를 사먹을 수 있지만 최저임금은 한국의 2배라는 것이지요. 우리는 경제 성장을 그토록 외치면서, 임금을 눌러가면서 버텨내 왔지만, 정작 한 시간 일해서 햄버거 하나 사 먹을 수 있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혹여 그런 계약직으로 평생 살고 싶지 않아서, 수십만명이 공부에 목숨을 걸고 있는 풍경이 펼쳐집니다.

 

 녹색평론 김종철 선생님의 표현을 반사해 놓고 갑니다. "지금 우리가 고통스러운 것은 우리의 생활수준이 낮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동안 ‘가난’을 저주하고 증오하면서 우리 사회 전체가 일념으로 추구해온 것이 결국은 공허한 물질적 안락이었다는 데 핵심적 비극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하다가 우리는 뜻밖에도 우리의 삶이 전혀 안락하지 않을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인간다운 삶의 근본기반이 망실돼 버렸음도 발견하고 말았다"

 

 우리가 달려가야 할 곳은 나만 안락한 삶이 아니라, 긴 평생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즐거워 할 수 있는 삶이 아닐까 싶습니다. 인간다운 삶, 상식이 통하는 사회, 반칙이 처벌받는 것, 이런 말들이 부디 "사치"가 아니라, "기본"이 되는 모습을 저는 오늘도 조용히 소망해 봅니다.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