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교회 홍종일 목사님 설교 2014년 7월 20일 주일 예배
열처녀 비유 (마태복음25:1-13)
오늘은 너무나도 유명한 열처녀 비유에 관한 말씀을 살펴 보고자 합니다. 이 말씀은 주께서 십자가 고난을 받기 사흘 전에 감람산에서 하신 말씀들 가운데 일부분입니다. 보통 사람이 죽음을 앞두고는 매우 진실되고 중요한 얘기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설교를 하시면서 이 말씀을 하셨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 말씀이 그만큼 중요한 것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제 십자가를 지실 모든 준비가 끝나가는 가운데 제자들에게 천국에 관해서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그래요, 주님은 지금 이제 지상에 남겨질 제자들을 위하여 천국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물론 비유로 말씀하시는 거지만 이 속에 중요한 진실들이 들어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열처녀 비유는 매우 유명한 말씀이기는 하지만 그 말씀에서 과연 우리에게 주는 것이 무엇인가를 묻는다면 글쎄요, 딱히 특별한건 없는 것 같습니다.
미리 미리 준비하자?
유비무환?
항상 찬송하면서 ‘기름등불 들고 주를 맞을 준비 됐느냐?’ 라고 부르짖지만 심각하게 생각하고 이를 실천하는 교인도 없습니다. 그런데요 저는 이 말씀, 너무 유명해서 오히려 식상한 이 말씀가운데에 우리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놀라운 진리가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제 우리 함께 본문 속으로 들어가 봅시다.
1.천국은 이와 같다
우리가 제일 처음 만나는 말은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가 마치 천국과 같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천국이 마치 열 처녀와 같다는 말씀의 맨 앞에 나오는 말이 바로 ‘그때에’ 라는 말입니다. 그때가 어느 땝니까?
‘그 종말의 때에’ ‘예수께서 재림하살 그때에’ 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 주님은 지금 ‘내가 사흘 후에 잡혀서 십자가에 달리게 되고 승천하고 난 다음에 너희를 다시 보러 올 때에’ 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물론 구체적인 때를 말씀하시지 않았고 또 앞뒤 사정 얘기도 없기 때문에 이 말을 듣는 사람 중에 우리 주님의 십자가 수난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천국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분이 이제 천국으로 갈 준비를 끝마쳤다고 본다면 어때요? 뭔가 엄청나게 중요한 천국의 비밀이 여기에 담겨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직접적으로 천국에 대해서 설명하기에는 안되는 뭔가 규칙이 있는듯합니다. 그러나 이 비유 속에 다 들어있습니다.
사실 종말의 때에 천국은 마치 세가지 이야기에 나오는 비유와 같다는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겁니다. 열처녀 비유와 달란트 비유, 그리고 양과 염소를 나누는 임금의 비유가 바로 천국과 같답니다.
여기서 말하는 공통점 한가지
바로, 나누인다는 것입니다. 잔치에 참여하는 자와 바깥으로 쫓겨나는자. 그래요 천국에 들어 갈 수 있는 자와 없는 자로 나뉘게 됩니다.
2.모두가 준비해야 한다
당시에 유대인들의 혼인잔치의 풍습은 먼저 신랑이 신부의 집에 들러서 간단한 종교의식을 치른 후에 신부와 신부의 들러리들을 데리고 자기의 집으로 가서 혼인 잔치를 벌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래서 여기에 나오는 열처녀는 모두 신랑의 신부가 아니라 신부의 들러리라고 보아야 합니다. 한 신랑이 한꺼번에 열명의 신부를 맞이하는 상황이 아닙니다.
당시 유대에서 결혼식은 보통 해가 지고 난 다음에 시작합니다. 그래서 신부의 들러리들은 신부의 집 문밖에 나가서 등을 들고 있다가 신랑이 친구들과 함께 신부의 집에 도착하면 영접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신랑이 언제 도착할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신랑이 늦게 와도 등이 꺼지지 않게 충분한 기름을 준비를 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천국의 비밀은 먼저 예측하지 못한 시간에 온다는 것이고 이를 위해 항상 준비된 자세를 가지라는 말씀이네요.
신부의 들러리들은 모두 각자의 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등은 우리가 그림에서 보듯이 등잔에 심지가 있고 그곳에 불이 붙는 그런 게 아닙니다. 오히려 이 등잔은 일종의 휏불입니다. 그래서 불을 계속해서 붙이기 위해서는 15분마다 기름을 발라 주어야 한답니다. 그러니까 신랑이 늦게 오고 안 오고를 떠나서 어느 정도 기름이 준비되어 있어야 휏불을 계속해서 사용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일상적으로 기름은 준비되어야만 합니다. 신랑이 오면 기름을 든 들러리들이 양쪽을 도열해서 신랑의 앞길을 밝히고 그를 환영하며 그리고는 신부에게로 인도하는 겁니다.
그리고 여기서 신랑은 본서9:15에 의하면 예수님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들러리들이 열명인 이유는 유대인들이 열을 가장 이상적인 숫자, 완전 수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열 명은 일부가 아니라 모든 성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즉 모든 성도가 주의 재림을 위해서 각자 등불을 들고 맞으러 나와야 하고 그가 언제 올지 모르므로 각자 충분한 기름을 예비하라는 말이지요.
여기서 충분한 기름을 준비하는 이유는 신랑이 언제 올지는 모르지만 아마 일찍 오기보다는 생각보다 매우 늦게 올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밤늦은 시각, 우리가 준비한 기름이 떨어질 때 쯤에야 오실거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지 않습니까?
다른 말로 하면 주의 재림이 왜 이리 더딘가? 혹시라도 주의 재림이 없는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지금을 ‘말세지말’이라고 합니다. 말세 중에서도 말세라고 하는 겁니다. 그것은 지금이 가장 마지막 때라는 말이기도 하지만 말세가 그 정도로 오래 계속되어 왔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말세는 주님이 승천하시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계속되어 오고 있는 중입니다.
3.미련하고 슬기있다
여기에 나오는 신부 들러리 열 명 중에서 절반은 미련하고 절반은 슬기로운 것으로 나옵니다. 물론 기름을 준비하지 못해서 신랑이 왔을 때 부랴부랴 기름을 사러 갔다가 결혼잔치에 참여하지 못한 것을 보면 당연히 미련한 행동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미련하고, 슬기있는’ 여인들은 모두 미완료 과거시제로 사용되어 평소에도 미련하고, 평소에도 슬기로웠기 때문에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거나 기름을 준비했다는 것입니다. 평소에는 잘 있다가 그날만 어떻게 하다 보니 기름을 미처 준비하지 못한 게 아닙니다. 평소에도 항상 미련하게 행동했기 때문에 그날도 역시 미련하게 행동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슬기있다’는 말은 영어성경의 표현으로는 ‘센스가 있다’는 말입니다. ‘센스가 있다’ 대강 무슨 말인지 감이 오시지요?
우리는 여기서 주님이 재림하실 때 특별히 내가 뭔가를 잘 해볼려고 할 필요없이 주의 재림은 반드시 언제고 있게 되니까 항상 깨어 있어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 당시의 초대교인들은 하늘에 구름이 조금만 이상해도 ‘주님이 오시는갑다’ 이렇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1999년 마지막 날에도 밀레니엄 마지막날이라고 예배를 드리고 난리를 쳤지만 뭐 지금도 인류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마야인의 달력이 2012년까지만 되어 있다고 인류의 종말이 2012년에 올거라고 난리를 쳤지만 아직도 인류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예전에 다미선교회가 주의 재림이 있다고 난리법석을 떨었지만 여전히 역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히려 다미선교회만 사라졌습니다.
그러니 호들갑 떨 필요 없이 평소에도 항상 신중하고 사려 깊게 행동한다면 주께서 아무리 불시에 재림하셔도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3.미련함과 슬기로움
왜 미련한 자들이 미련하다는 말을 들었냐면 등은 가졌는데 기름을 가지지 않았답니다. 원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녀들 자신들의 곁에)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등을 가진다면 반드시 곁에 여분의 기름을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불이 약해질 때 기름을 바를거 아닙니까? 그걸 하지 않았으므로 미련한 여인이라고 불리는 겁니다.
성경에서 나온 기름은 감람유, 요즘 우리가 잘 아는 올리브기름을 말합니다. 불을 밝히는데 뿐 아니라 병을 치료하거나 손님의 머리에 부어 예의를 표시하는 데에도 사용되는 대표적인 기름입니다.
반대로 슬기로운 이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다’고 합니다. 보다 정확히는 휴대용 병에다가 기름을 담아서 가져 간 것입니다. 입구가 넓은 그릇에 기름을 가져간다면 쏟아 버릴 우려도 있고 들고 다니기도 매우 불편합니다.
그래서 이 슬기로운 처녀들은 플라스크처럼 입구가 좁고 긴 휴대용 병에다가 기름을 넣어서 가져갔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준비성을 가진 여인들에게 신랑이 언제 오던지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항상 준비 되어 있거던요.
4.신랑이 더디 오므로
문제는 신랑이 너무 늦게 왔다는 것입니다. 만일 신랑이 일찍 오거나 보통 상식적으로 예측되어진 시간에 왔다면 전혀 문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등을 들고 다니는 것도 사실은 상당히 귀찮은 일입니다. 들러리로서 함껏 치장한 여인들이 등을 들고 있는데다가 여분의 기름까지 준비하는 것은 모양이 나지 않습니다.
손에 뭘 들고 있어서 귀찮은데 병까지 든다면 양손에 모두 물건을 들게 되어 정말 불편하고 모양도 나지 않습니다. 들러리로서의 아름답게 치장한 보람이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미련한 처녀들은 그냥 단순하게 ‘신랑이 정해진 시간안에 오겠지 뭐’ 하고 생각한 것입니다.
사실상 주의 재림이 늦어지는 이유는 사람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더 많이 주시기 위함입니다. 주께서 십자가를 지시기전에 이미 말씀하셨쟎습니까?
‘신랑이 더디 오므로’
주의 재림이 더디 일어날 것이다.
베드로는 바로 이 말을 성경에 기록해 두었습니다. 베드로후서3:3-4에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주님의 재림에 대한 걱정이나 기대없이 방탕하며 정욕을 좇아 놀게 하려고 주의 재림이 더딘 것은 결코 아닙니다.
만일 성경에서 말하는 등이 휏불이고 이 휏불은 15분마다 기름에 적셔야 한다면 미련한 여인들도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의 기름은 준비하고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그래야 불이 계속해서 타니까요. 문제는 그 준비의 정도가 충분한가 아닌가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마찬가집니다. 모든 성도들이 주의 오심을 위해서 어느정도의 준비는 하고 있습니다. 아니 최소한 그가 재림하실 거라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재림을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최소한의 선행과 기도입니다. 심판때 나의 행동에 대해서 부끄럽지 않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5.빌려 줄 수 없다.
얼마나 신랑이 더디 왔느냐면 미련한 다섯 처녀뿐만 아니라 슬기로운 다섯 처녀도 졸며 자고 있을 정도입니다. 따지고 보면 너무 지체한 신랑의 잘못입니다.
잠은 슬기롭거나 미련하거나에 상관없이 다 옵니다. 그래서 깨어 있는 이들은 아무도 없습니다. 열 처녀들이 한참 자고 있는데 소리가 납니다.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졸고 있던 열명이 처녀들은 놀라서 일어납니다. 그리고 등을 준비합니다. 캄캄합니다. 한밤중에 온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 등불이 가장 필요합니다.
그런데 일어나서 보니까 자기들의 등불에 불빛이 약합니다. 아마 꺼져 있었을 것입니다. 휏불에 기름을 바르고 불을 붙여서 환하게 밝히고 신랑을 위해서 도열해서 맞아야 합니다. 그래서 불을 환히 밝힐 새로운 기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들 중 다섯에게 기름이 없습니다.
그래서 미련한 다섯 처녀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에게 요청합니다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이걸 비유적으로 표현한다면 마치 주의 재림이 너무 더디기 때문에 성도들이 방만한 태도를 가지고 세상에 빠져 주신 성령을 소멸해 가고 있는 모습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는 말은 원문 상으로는 부탁조의 말이 아니라 명령조의 말입니다. 너무 다급한 상황입니다. 밖에서는 신랑이 왔다가 나와 맞으라는 전갈이 들려오고 자기가 든 등불은 지금 기름이 다해가는지 꺼져가고 있습니다. 옆에 있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모두 새로운 기름을 등에 부어서 밝게 빛나는 등불을 가지고 밖으로 나가려 합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명령조로 ‘너희의 기름을 다오’라고 명령하게 된 것입니다.
이때 기름을 준비한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우리와 너희가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고 합니다.
웃기지요? 안 빌려주면 그뿐이지 뭘 이 한밤중에 어딜가서 기름을 사 온다는 말입니까?
슬기로운 처녀들이 좀 건방진 것 같습니까?
사실 아무리 슬기로운 처녀들이라고 하더라도 미련한 다섯 처녀에게 충분한 기름을 제공할 만큼 기름을 준비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만일 다섯 처녀가 자기의 기름병에서 미처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처녀들에게 기름을 나누어 준다면 양쪽이 다 기름이 모자라는 불상사가 생길 것입니다.
아마 이 열 명의 처녀는 한 신부를 위하여 들러리를 서는 친구사이일 것입니다. 평소에는 기름도 빌려주고 떡도 서로 빌려주고 받는 그런 사이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처녀들이 그렇게나 당당하게 친구들에게 기름을 나누어 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다섯은 평소에도 신중하고 사려깊게 준비도 잘하고 나머지 다섯은 신중하지 않고 덜렁대며 준비성도 없습니다. 없으면 친구에게 요구해서 그렇게 보충하며 문제들을 해결해 왔습니다. 그러므로 이번에도 기름이 떨어지면 빌리면 되겠지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가장 중요한 순간에 이 미련한 처녀들의 친구들은 자기들이 충분히 사용할 수 없다는 이유로 급박한 친구의 도움을 거절합니다.
이게 천국이라는 겁니다.
그렇게 평소에는 천국가자고 매달려도 신경을 쓰지 않다가 막상 세상을 심판하실 심판의 날에는 누구도 도와 줄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을 수 있을 때 믿어야 합니다. 교회 갈 수 있을 때 가야 합니다. 일단 시간이 지나면 되돌릴 수 없는 때가 반드시 옵니다. 그때는 이미 늦습니다. 심판의 날이 밝아오면 그때는 아무도 자기를 대신해서 도와 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슬기롭다고 해도 사람인 이상 너희를 도와 줄 수 없어. 사람은 각자가 준비하기도 벅차’ 모든 것을 다 빌릴 수는 없습니다. 구원은 자기와 하나님간의 일대일적 상황입니다. 결코 부모님이나 형제가 대신해 줄 수 없는 문제입니다.
6.문은 닫힌지라
파는 사람에게 가서 기름을 사란다고 이 처녀들이 한밤 중에 기름을 사러 갔습니다. 한밤중에 문을 연 가게가 없었을 터인데도 기름을 사다니! 어쩌면 가게에 가서 닫힌 문을 시끄럽게 두드려서 억지로 주인에게 떼를 써서 사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갔다 오는 사이에 이미 신랑과 다섯의 들러리들이 잔칫집에 들어갔고 문은 닫힌 상태입니다. 처음에는 기름의 양이 중요했는데 이제보니 시간, 타이밍도 중요합니다.
이들은 너무 늦었습니다. 당시 근동의 일반적인 관습은 혼인 잔치때 신랑이 일단 신부를 데리고 혼인 잔칫집에 들어가게 되면 그 집의 문을 닫아 버린답니다.
왜냐면 혹이라도 초대받지 않은 사람이나 불량배들이 혼인 잔치를 방해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뿐입니까 밤에 도적이나 강도들로부터 피해를 당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문을 철저하게 닫아 버립니다. 문밖에서 아무리 두드려도 그 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기름을 준비했지만 이미 너무 늦어 버렸습니다. 아니 어쩌면 기름을 사지도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한밤중에 기름을 판다고 문을 열어 놓는다는게 현대의 대도시에 있는 24시 편의점도 아니고 어려울 겁니다.
천국은 이와 같습니다. 일단 기다릴 때는 엄청나게 오랜 시간 기다리는데 구원의 순간은 번개처럼 왔다가 가버립니다. 이때를 놓치면 두 번 다시 기회가 오지 않습니다.
일단 한번 문이 닫히면 결코 열리지 않습니다.
그때는 ‘주여 주여’라고 부르며 애타게 문을 열어달라고 요청해도 주님의 대답은 한결같을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글쎄요, 그래도 밤늦게까지 신랑을 기다린 신부 들러리들에게 너무 가혹한 대답 같지요. 그게 바로 천국입니다.
신랑과 함께 잔칫집에 들어간 다른 들러리들이 문을 열어 줄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어머니도 아버지도 아들도 딸도 그 누구도 사사로이 문을 열어 줄 수가 없습니다. 기회의 문이 아주 오랫동안 정말 지겨울 만큼 열려 있어서 누구에게나 기회를 주는 듯이 보인 잔칫집의 문이 일단 닫히고 나면 두 번다시 열리지 않습니다. 잔치가 다 끝날 때까지 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잔치는 보통 일주일에서 이주일까지 였다고 합니다. 그녀들은 한순간의 방심으로 이주일 적어도 일주일 천국같은 즐겁고도 풍성한 잔치를 맛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안에서는 웃음소리와 음악소리가 들여옵니다. 그러나 문밖에서는 피곤함과 배고픔이 있습니다.
당시의 가난한 유대인들에게 결혼식은 일생에 가장 즐거운 축제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이 잔치를 위해서 평소에 음식을 조금씩 모아서 엄청난 음식과 포도주를 준비합니다. 악사와 무희들이 동원될 수도 있습니다.
들러리들이 하는 일은 신랑을 신부에게 인도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밤에는 반드시 이들의 앞길을 밝혀 주는 등불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나 중요한 등불이 하필이면 가장 필요한 순간에 꺼져간다면 정말로 곤란한 일입니다.
한밤중에 기름을 파는 곳이 없겠지만 만일 있다고 해도 결코 사가지고 올만큼의 여유는 없습니다. 잔치는 너무 즐겁고 현실은 너무 힘들기 때문에 수많은 불청객들도 이 잔치에 참여하고 싶을 것입니다. 아무런 수고가 없는 사람도 들어가서 뭔가를 먹고 싶어 할 겁니다. 그 아름다운 잔치에 참예해서 즐거움을 맛보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만 수고는 실컷하고 막판에 조금 방심하여 잔치에서 배제된 것입니다.
어두운 곳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갈지라도 결코 그 문을 열고 잔치의 기쁨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노아의 때에 120년 동안 열려진 기회의 문이 일단 한번 닫히자 그 누구도 방주의 문을 다시 열지 못했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기회가 아직 있을 때 그 기회를 잡으시기를 바랍니다.
지금은 지겨워서 왜 이렇게 더디오느냐고 한탄하며 졸 수도 있는데 신랑은 반드시 옵니다. 때론 기다리다가 피곤해서 졸 수도 있습니다. 슬기로운 처녀들도 미련한 처녀들과 마찬가지로 졸았습니다. 존 것 가지고 뭐라고 하는게 아닙니다. 졸 때 졸더라도 기름은 준비되었어야 합니다.
그때를 놓친다면 문은 우리를 버려두고 닫혀 버릴 수가 있습니다.
들러리의 임루를 다할려고 졸지언정 자리를 떠나지 않고 있다가 기름이 떨어지려 해서 기름을 사러 갔다 왔습니다. 충분히 수고했고 이해가 가는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잔칫집의 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신랑이 우리의 외침을 충분히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들러리들이 밤새워 기다린 신랑은 결코 너희를 알지 못한다고 냉정하게 말합니다.
7.그런즉 깨어 있으라
그런즉 깨어 있어야 합니다. 왜냐면 우리가 신랑이 올 시간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언제 주께서 재림하실지를 안다고 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안다고 말합니다. 천만에요 결코 알 수 없습니다. 만일 안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다 이단이요 사이비들입니다.
사실 본문의 비유를 본다면 기다리기가 지겨워서 그렇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그냥 미련하게 등불을 들고 준비하고 집안에서 기다리기만 하면 됩니다. 시간이 오래 걸려서 혹시라도 불이 꺼질 수도 있으므로 기름을 좀 넉넉하게 준비하고 있으면 됩니다. 신랑이 비록 더디게 오지만 길어봐야 오늘밤 안으로는 와야 합니다. 그러므로 꼭 그 시간을 알 수 없지만 반드시 오늘밤 안으로 오는데 준비할 기름이야 뻔합니다.
그 사이에 집을 치우고 음식을 준비하고 옷을 지어놓고 등등의 준비를 하라고 하지도 않습니다. 문 앞에서 줄지어 서 있어라고 하지도 않습니다. 결코 졸아서도 안돼, 움직여서도 안돼. 급한 생리현상으로 자리를 비워서도 안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냥 들러리로서 예쁜 옷을 입고 등불을 밝힐 정도만 되면 준비는 끝입니다.
‘결코 자지말고 억지로 졸린눈을 비비고 있어’라는 말도 없습니다. 그냥 졸리면 앉은자리에서 졸아도 됩니다.
신랑이 오기 전에 ‘신랑이 온다. 준비하고 나와서 맞으라’는 큰 소리를 듣고 깨어서 신랑을 맞으러 나가도 충분합니다. 단지 신랑을 맞이할 자리에서 약간의 기름을 여분으로 챙기고 등불을 가지고 있기만 하면 그는 정말 자랑스럽고 영광된 임무를 다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그 수고와 기다림에 대해서 넘치는 보상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도 이와 같이 특별히 어려운 것을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평소대로 약간은 준비를 하고 성의만 보이면 되는 일입니다.
신랑이 오는 그 자리에, 그 시간에 있다가 그를 맞이하면 되는 일입니다. 슬기로운 다섯처녀는 신부가 아니고 신부의 들러리들입니다. 그러므로 신랑을 맞이해서 특별히 뭔가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잔칫집에서 차려진 음식을 맛나게 먹고 그동안의 수고를 보상받으며 즐기며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필요한 것이 신랑을 신부에게로 인도하기 위해서 앞길을 밝힐 등불입니다. 그리고 이 등불은 기름이 필요합니다. 많이도 필요없습니다. 자그마한 여분의 한병 정도면 충분합니다.
천국은 나뉨입니다. 나누는 것이 아니라 나뉘는 것입니다. 기름을 준비한자와 그렇지 못한자로 나뉩니다.
문안에 들어간 자와 문밖에 있는 자가 나뉩니다. 그리고 문안에 들어갈 기회는 한번밖에 없습니다. 신랑이 오기 전까지 문안에 있었지만 이제 가장 중요한 순간에 문밖으로 밀려간 사람들은 기가 찰겁니다. 평소에 교회 안에서 온갖 궂은 일은 다하고 정작 중요한 주의 재림 때에 교회밖에 있다면 그래서 구원에 참여하지 못한다면 이보다 더 억울한 일이 어딨습니까?
애가 끓고 슬플겁니다. 그러나 기회는 두 번 오지 않습니다.
너무 오래 참기 때문에 , 너무 많은 기회를 주시기 때문에 사랑의 하나님이신 주님은 이제 심판의 순간에는 너무 단호합니다.
그러므로 깨어서 준비합시다.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기억합시다. 비록 더디지만 반드시 신랑이 올 때가 있고 그때를 위해서 기름 등불을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합시다.
언젠가 주께서 우리들에게 말씀하셨지요.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라
빛으로 이 세상의 어둠을 몰아내고 밝히는 역할을 하라
그러려고 하면 등불이 꺼져서는 안되겠지요? 등불이 계속해서 빛을 발하게 하려면 기름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너무 더디다고 생각해서 태평치고 있다가 그때 마침 등불이 꺼져가면 기름이 떨어져 가면 아무에게도 빌릴 수 없습니다.
그래요, 이제까지 빌릴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결코 빌릴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합니다. 그것도 가장 중요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을 빌릴 수 없습니다.
기름은 각자 준비해야 합니다.
다가올 기쁨과 영광을 위해서 우리의 삶속에서 준비하는 우리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때 그때 임기응변식으로 대처하지 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일을 위해서 미리부터 준비해’라고 하며 태만하면 크게 후회할 때가 반드시 옵니다.
평소에는 돈만 주면 기름을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름의 가격도 별로 비싸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밤중에 어디서 기름을 구합니까? 어디서 기름을 삽니까? 하필이면 우리 주님은 가장 기름을 구하기 어려울 때 오신다고요?
그럴지도 모릅니다. 주의 오심은 이와 같습니다. 그렇게나 더디고 너무 오래 오지 않아서 졸다가 깨다가 할 때는 일각이 여삼추였는데 번개같이 주께서 오십니다. 그때 준비하지 않으면 그동안의 수고가 헛되게 됩니다. 깨어 준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함께 기쁨의 혼인잔치에서 그동안의 노고에 대해 옛얘기하며 기쁨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홍종일 목사님 설교 2014년 7월 20일 주일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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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영암교회는 가정교회 운동, 가난한 이웃을 섬기는 운동, 쉼을 소중히 하는 운동 을 하고 있습니다.
부산 기장군 정관면 백운공원 옆 / 함께 하고 싶으신 분은 strongbell@한메일 / stronghjs@네이버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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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올린이의 이야기 (시북의 이야기)
빌릴 수 없다! 라는 말이 새삼스럽게 제게 다가왔던 설교였습니다. 저는 좀 뻔뻔한 편이라서, 필요한 것들을 잘 빌리는 편입니다. 사람들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면, 지금껏 살아오지도 못했을 지 모릅니다. 그런데, 정말로 중요한 것들, 신앙의 결단 같은 것들은 결코 빌릴 수 없다는 것이 조금은 두렵게 느껴졌습니다.
필요한 것을 빌릴 수 없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 뿐입니다. 자신이 직접 수고해서, 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천국으로 들어가는 입장권은 공짜가 없고, 누군가로부터 살 수 있는 성질이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스스로가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살아가려고 한 평생 노력하는 것. 그대는 그렇게 살고 있는가? 라고 주께서 묻는 것 같습니다. 저는 할 말이 없는 나일롱 신자지만, 인생을 대충 살아서는 안 된다는 어렴풋한 느낌만큼은 소중하게 간직하려고 합니다. / 2014.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