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3상 회의 (미국 소련 영국) 에서, 결정되는 것들이 무엇인지 잘 살펴보아요. 꼭 기억할 것이 세 가지가 있는데요. 첫 번째, 한반도에 임시정부를 수립하겠다 라는 결정. 두 번째, 신탁 통치가 결정 됩니다. 신탁 통치를 하는 나라들로는 미국, 소련, 영국, 중국에 의한 신탁 통치라는 거였고요. 마지막으로, 미소 공동위원회를 개최하겠다는 거에요. 자, 그런데 모스크바 3상 회의의 소식들이 알려졌을 때 남한에서는 말이지요. 이 신탁통치에 대한 내용만이 부각되어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처음에는 국내에 있었던 좌익이나, 우익이나, 모두 다 신탁 통치에 대해서 반대하게 됩니다. 신탁 통치라고 한다면, 다른 나라가 대리로 다스리겠다는 거니까, 또 다른 식민지처럼 느껴졌다는 겁니다. 일제 강점기가 얼마나 길었나요, 신탁통치 받기 거부를 주장하면서, 우리는 우리만의 자주적인 독립정부를 원하는 것이 목표였단 말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강대국들에 의한 신탁통치는 일제와 뭐가 다르냐고 하면서 좌익, 우익 모두 3상 회의를 거부하고, 신탁 통치에 반대합니다.
이 때, 좌익 중에서 대표적인 박헌영이 평양으로 넘어갑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소련의 의중을 알고 싶었던 겁니다. 확인해 본 결과, 모스크바 3상 회의에서는 신탁통치만 결정된게 아니었고, 임시정부 수립이라는 또 다른 조항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거죠. 박헌영이 내려오면서 좌익은 입장을 바꾸게 됩니다. 좌익은 임시정부 수립 여기에 초점을 맞추게 되는 것이지요. 좌익은 신탁통치는 어쩔 수 없다. 어쨌든 우리가 행위를 한 게 없으므로, 소련과 미국의 점령군 형태로 개입되어 있는 현실에서, 신탁통치를 하는 조항은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다라고 받아들이고, 임시정부 수립을 하면 된다 라고 본 것입니다. 똑똑한 임시정부가 수립되면, 신탁통치라는 기간은 얼마든지 줄일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 좌익의 입장이라 볼 수 있습니다. 임시정부 수립에 좌익이 초점을 맞춘다 여기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익진영에서는 신탁통치가 들어가 있기 때문에, 3상회의를 받아들일 수 없어합니다. 신탁통치를 빼내라고 하는 겁니다. 우익은 신탁통치 반대에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같은 결정이 나와도 바라보고 있는 입장이 이렇게나 다른 모습이 펼쳐지고 있네요. 이후에는 좌와 우가 격렬하게 대립하게 됩니다. 좌우 대립의 극심한 모습들과 아픈역사라면, 1946년부터 쭉 전개되는건데요. 그 출발을 살펴보면, 모스크바 3상 회의에서 부터 전개되는 좌우 대립이라는 것들이 이후에 좌와 우의 이념대립, 남과 북의 분단, 나아가 6. 25 전쟁이라고 하는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연결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이념보다는 사람이 우선시 되어야 하는데, 광복 이후에는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이념이 우선시 되는 장면들을 씁쓸하게도 보게 됩니다. 첫 출발점이 모스크바 3상 회의라는 것, 너무나도 안타깝지요. 예를 들면 1946년 3월 1일, 광복 이후 첫 번째 3.1.절 기념식이 왔단 말이에요.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기쁜 날에 말이지요. 좌우 대립으로 인해서, 좌익세력 따로, 우익세력 따로, 삼일절 기념행사를 서로 따로 갖는 황당한 일이 벌어집니다. 좌익은 남산에서 우익은 동대문에서 말이지요. 아! 이를 어찌할고! 그리고 그 기념행사가 끝나자 충돌까지 있었던 역사. 참 이거 아니다 싶죠. 물론, 그 당시 사람들한테는 목숨만큼이나 중요한 이념의 수호였겠지만, 지금 우리 입장에서 봤을 때는 참 가슴 아픈 역사다 싶어요.
한편, 여기서 미군정에 대해서도 살펴봅시다. 미군정이 들어오면서, 맥아더 포고문이 나와요. 포고문에 의해서, 광복되고 나서 친일파에 대한 작업이 선행되어야 함에도, 이 미군정은 친일파에 대한 처단의 기회를 놓치게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기본적으로 미군정은 남한에 대한 정보를 많이 갖고 있지 않았고, 또 행정적인 시스템이 돌아가려면 일제시대 때 행정을 움직였던 사람들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일제에 충성했던 사람들이, 얼굴을 바꿔서 미국에 또 충성할 수 있겠죠. 즉 친일파에 대한 청산의 기회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결국, 친일파들이 생존하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생존했던 친일파들이 좌우 대립의 과정 속에서 어떻게 변신을 하느냐 하면, 놀랍게도 반공투사의 대열에 끼어들게 되는거에요. 심지어 애국자가 되어버립니다. 좌와 우의 대립이 극심하게 전개되는 과정속에서 친일파들이 우익세력속에 침투해 들어가는 거에요. 본디 민족주의적인 우익과 친일파는 당연히 공존할 수가 없는 상황이죠. 그죠. 그런데? 좌우의 대립이 워낙에 심해지니까, 우익속으로 들어가면서 반공투사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공산주의자를 때려잡자, 새로운 남한을 건설하자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전직 친일파들이 말이지요. 정말 놀랍고도 가슴 아픈 역사라 하겠습니다.
정의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고민해야 하는 시점에, 그 정의에 대해서 일부의 친일파들이 완전히 물을 흐리며 흙탕물 정치판을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좌우가 대립하도록 만드는 전략은 2014년 오늘날까지도 얼마든지 펼쳐지고 있지요. 이렇게 흙탕물 속에서는 기회주의자들이 판을 친다는 것, 우리가 명심해야 겠습니다. 하여간 민족정기를 바로잡는 기회들을 놓쳐버리는 것을 봤습니다. 따라서, 친일파들에 대한 처단이 후순위로 밀리게 되는 것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1946년에는 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열리게 됩니다. 여기에서는 미국과 소련이 대립을 합니다. 과연 누구를 참여시킬 것인가를 놓고 힘겨루기를 합니다. 소련은 모스크바 3상 회의 지지세력만 위원회에 들어와야 한다고 봤고요. 어, 이 대목 국내 좌익과 비슷하지요. 즉 소련의 입장은 자국에 유리한 세력만 들어오길 원했던 거지요. 쉽게 말해서 1차 미소위원회에서 어떻게든 사회주의 좌익만 들어오면 오케이다 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당연히 미국은 전혀 입장이 다릅니다. 누구든지 원하면 다 들어올 수 있어야 한다 라고 맞붙습니다. 모스크바 3상 회의 거부한다고 해도, 정부 수립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은 사람 있으면 다 들어오면 된다 라는 겁니다. 우익은 단체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물량적으로 본다면 우익단체를 많이 참여시킴으로서 미국 입장에 가까운 정부를 만들고 싶어했었지요. 참 알기 쉬운 결론이지만, 서로 자국에게 유리한 정부를 만들고 싶어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성과를 내지 못하고 결렬되면서 휴회에 들어갑니다.
이 때 중요한 발언이 나옵니다. 이승만의 정읍발언이 나옵니다. 핵심은 남한만의 정부수립을 준비해야 한다 라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승만이라고 하는 인물은 굉장히 정치감각이 뛰어난 인물입니다. 정세파악을 굉장히 잘하고, 어떻게 시국이 돌아가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판단력이 다른 정치인들에 비해서 상당히 뛰어납니다. 다만 이승만의 감각이 이토록 빠르기 때문에, 그 발언이 나오게 되는 배경을 보면 이렇습니다.
미국과 소련이 대립되고 있는 상황이라면, 결론이 안 날 거 같아요. 게다가 북한은 1946년 2월에 벌써 북조선 임시 인민위원회가 만들어 졌거든요. 이른바 민주개혁이라는 걸 내걸고 토지개혁을 한다며, 무상몰수 무상분배에 입각한 개혁을 하고 있었어요. (물론 나눠주는 것이 소유권이냐 경작권이냐 라는 논란은 있습니다) 게다가 친일파에 대한 숙청작업도 전개하고 있습니다. 지난 문서에서 살펴봤듯이 북한에서는 명백하게 사회주의를 지향하고, 준정부적인 성격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압도적으로 소련의 힘과 지지를 등에 업고 김일성을 중심으로 세력이 재편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북한에서는 민족주의 세력들은 흡수당하거나 제거되거나 했겠고요. 그러면 남한은? 남한도 남한만의 정부 수립을 준비해야 한다고 이승만이 정읍발언을 한 것입니다! 여기에는 남한에서 소련 세력을 축출해야 한다 라는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합니다.
여하튼 이 발언은,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남한도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는, 앞을 바라보는 모습도 있었겠지만) 한편으로는 남과 북의 분단이 기정사실화 된게 아니었는데, 단독 정부라는 새로운 화두가 던져진거에요. 좌우의 대립이라는 것이 남과 북으로 확연히 나뉜 시점은 그래도 아직까지는 아니었거든요. 한반도에 어떤 통일 정부를 세울 것인가에 대해서 국제사회와 함께 논의를 하고 있었는데, 남북이 단독정부를? 분단을? 그럴려고 일제와 싸운거야? 이런 상황에서 이승만이 새로운 화두를 던진 것이 상당히 큰 충격이었다는 것이었지요. 자, 그러면, 이제부터는 그 대응으로 좌우 합작운동이라는 것이 나타나는데... 현대사 이야기 4부에서 계속~
오늘의 영감 - 따뜻한 말 한 마디에 큰 감동과 위로를 얻을 때가 있습니다. 다음은 김송은 칼럼니스트의 글입니다. "작가 고다 요시이에는 자연이 가져온 대참사와 인간이 일으키는 온갖 비극을 겪으며 에두르지 않고 좀더 직접적으로 말하기로 작정한 것 같다. 우리에겐 사랑과 용서가 필요하다고.
세상이 악한데, 비극을 막을 수 없는데, 왜 착하게 살아야 하냐고 항변하는 주인공에게 “사라지는 것은 없기 때문”이라고 말해준다. 지구의 선행이 빛의 그림자가 되어 1200년 후, 1200광년 떨어진 행성의 누군가에게 가닿기 때문이다. 혹 그렇지 않더라도 작가는 지구인에게 희망이 있음을 믿는다, 믿고 싶다, 믿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선한 것을 심은 곳에는, 반드시 선한 것이 돌아온다는 그 정직함이 참 좋습니다.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