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책

그의 슬픔과 기쁨 리뷰

시북(허지수) 2015. 12. 24. 16:33

 

 2015년, 올해 제가 직접 올리는, 마지막 글입니다. 정혜윤 작가님의 열혈 팬입니다. 이 이야기를 저는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가장 곤궁한 자들의 외침에 귀를 막는다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도 알아듣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이 생각도 몇 번이나 머릿 속으로 정리해가며 남겨져 있습니다. "우리는 분명하게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서 목소리를 내야 하며, (할 수 있는 한) 적극적으로 힘써야 한다. 그러므로 나만 은혜받았다며, 잘 살면 된다가 아니다. 나에게만 헤드라이트를 비추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이 사회의 잘못된 모습들에 대하여 어쩔 수 없다며 절망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누군가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을 위해서 헤드라이트를 비추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정혜윤 작가 입니다. 나는 그래서,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가슴이 먹먹하고, 슬펐을 뿐입니다. YES24에 가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아닙니다. 스테디셀러는 더더욱 아닙니다. 정직히 말해, 나는 공공 도서관을 이용했는데요, 그 누구도 이 책을 빌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책이 꽂힌 위치를 눈감고도 찾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타인의 아픔에 귀기울이기에는 너무나 삶이 고달픕니다. "생존"이 걸려 있기 때문에, 나부터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너무나 운이 좋았습니다. 성실히 살아온 부모님이 계셔서, 그나마 도서관에서 이런 귀중한 책을 발견하고, 무료로 빌려읽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혜윤 작가님께는 종종 미안합니다. 그래도 제 책상에 (꼭 읽고 싶은) 침대와 책 잘 간직하고 있으니까, 부디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아래에서 계속.

 

 저자 : 정혜윤 / 출판사 : 후마니타스

 출간 : 2014년 04월 14일 / 가격 : 15,000원 / 페이지 : 296쪽

 

 

 기억나는 대목이 몇 가지 있을 뿐입니다. 버스로 시청 앞을 지나다니며, 플래카드를 본 적이 있습니다. 해고는 살인이다. 그 말에 담긴 것이 나는 어떤 진실이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쌍용자동차 해고자 분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실제로 목숨이 끊어지는 비극을 선명하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가정이 부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처음에 든 의문은 책 제목이었습니다. 왜 그의 슬픔과 기쁨이어야 했는가. 이것은 비극이 아닌가. 그런 생각들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기쁜 대목은 가끔 만날 수 있습니다. 다시 자동차를 만들어 나가는 그 모습, 그 눈부신 열정에서 기쁨이 있었고, 미소가 있었고, 보람이 있었습니다. 일을 한다는 건강함. 그렇게 가정을 꾸려나갔던 것의 소중함. 이것이야 말로 삶의 원동력이고, 기쁨이 아닌가, 정혜윤 작가님은 제게 말을 건네는 듯 느껴졌습니다. 그러므로, 다시 말해, 해고는 살인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세상은 너무 쉽게 이야기 하곤 합니다. 그러면 다른 일자리를 찾으면 되잖아!? 그런 생각에 대해서, 이른바 신자유주의, 기계와 효율우선주의에 대하여, 이 책은 조목조목 말을 건네고 있습니다. 제 식으로 번역하면 이렇습니다. 우리가 쌍용자동차 정규직으로서 자동차를 만들고, 그렇게 돈을 모으고, 살아갔던 것이 얼마나 즐거웠는데. 그래서 해고를 받아들일 수 없고, 다시 자리를 잡고 자동차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 노동자로서 싸워나간다고.

 

 그렇게 정리했을 때, 노동자의 꿈은 너무나 소박하지만, 그 어떤 것보다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요. 성실히 일하며, 보람을 느끼며,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 그런 꿈들이 무너져 내리는 과정이 이 책에는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책을 읽다보면 저는 이이제이 라는 고사성어가 몇 번이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이이제이, 어떤 적을 이용하여 다른 적을 제어함을 이르는 말입니다. 쉽게 말해, 서로 싸우게 만든다는 이야기 입니다. 그러면서 제3자는 물러나서 구경하면 그만이지요.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의 이야기는 비극입니다.

 

 해고자는 복직을 위해서 투쟁하고, 살아남은자 (비해고자, 산 자) 는 자신의 괜찮은 일자리를 계속 지키기 위해서 투쟁합니다. 그런데, 결정적 문제는 해고자와 살아남은자 끼리 서로서로 부딪히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이런 장면이 어딘지 모르게 익숙합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서로 싸울 때도 이와 참 비슷합니다. 그렇게 서로 갈등하고 있는 동안에, 정작 사다리 위에 있는 경영진들은 잘 보이지 않게 됩니다. 사다리는 이미 걷어차 버렸기 때문일까요. 오직 (살아남을 수도 없는) 노동자들의 절규 소리만 들리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이 시대에는, 헬조선, 지옥불반도 같은 게임용어가 등장합니다. 게임이나, 만화영화에서 보는 답이 나오지 않는 비극적 상황이 실제로 일어나자, 저의 동호회 절친은 아예 일본에 건너가 버리기도 했습니다. 살아야 한다는 이유로. 그래서 또 한 번,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1993년 6월 4일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1993 이라는 숫자를 좋아합니다. 공부방에서 매우 아끼던 제자들이 93년 생이었기 때문입니다. 2013년 6월 4일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 100일 입니다. 그런데 해고 노동자 박주헌 (1971년생) 개인에게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 중 하나라고 합니다. 인용합니다.

 

 "나는 이것 할거라고. 내게는 처음 직장이 마지막 직장이라고. 난 거기서 정년퇴직할 거라고. 저는 종교는 없는데 미사를 드려요. 앉아 있으면 편해져요. 기도해요. 오늘 이 자리가 마지막이 되게 해주십시오. 이 자리가 마지막이 되게 해주세요. 그것만 기도해요.(p.206)" 1993년 6월 4일은 노동자 박주헌의 입사일 입니다. 온가족이 모여서 고기를 구워 먹는 날이었고, 그리고 지금은 박주헌이 가장 돌아가고 싶은 날이 되었다고 합니다. 정혜윤 작가는 그렇게 기록해 나갔습니다.

 

 한 사람의 생명은, 세상 전체만큼 귀하다는 격언을 저는 들은 바 있습니다. 쌍용자동차 해고자 이름에는 한상균 이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한상균 이라는 이름을 검색하면 이렇게 뜨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민주노총 위원장. 단식을 중단했다. 이렇게 기사가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만이라도 나는 이 말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성공이라는 것은 중요하고, 또 달콤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배려라는 말은 더욱 멋진 가치가 아닌가요?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외면한 성공은 자칫 위험한 독배가 될 것입니다. 노동자가 존중 받는 멋진 대한민국이 되기를 나는 꿈꿉니다. / 2015년 12월 24일.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