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이미테이션 게임 (The Imitation Game, 2014) 리뷰

시북(허지수) 2016. 1. 30. 21:04

 

 취향 저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장르가 있기 마련인데, 이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은 제가 좋아하는 분야의 영화 입니다. 수학 이야기, 전쟁 이야기, 아름다운 여인의 등장, 그리고 암호! 사람의 취향이라는 것이 정말로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게임이라는 분야를 놓고 살펴보면, 저는 느릿하게 즐기는 게임들을 참 좋아합니다. 한 녀석이 가만히 지켜보더니, 너는 맨날 퍼즐 아니면 시뮬레이션 장르냐고 타박을 합니다. 어느 지인은 슈팅 게임에 빠져 있기도 합니다. 어쨌든 서론은 이쯤해둡시다. 길어봐야 잡담이니...

 

 주인공 앨런은 한 분야에 깊이 빠져 있는 사람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느낀 바로는, 24시간 몰입 상태에서 지내는 고독한 인간형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인간미는 뚝 떨어지고, 자신을 최고라고 생각하는 자부심은 대단히 높은, 천재형 인간입니다. 하지만 그를 마냥 미워할 수는 없습니다. 영화는 앨런의 어릴 적까지 시간을 넘나들면서 주인공에 대해서 따뜻한 조명을 비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극이 진행될수록 포기를 모르는 천재 앨런 튜닝이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이 리뷰는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가득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반드시 주의하세요!

 

 

 컴퓨터 하면, 오늘 날은 빌 게이츠 같은 인물이 쉽게 떠오를 것 같습니다. 제 경우는 워즈니악의 이야기도 생각납니다. "조용한 시간에 혼자 컴퓨터 작업을 골몰하는 시간이 - 최고로 황홀한 시간 - 이었다" 라는 말, 나는 이 말이 너무나 멋지게 가슴을 울려서, 나도 반드시 혼자서 밤늦게까지 골몰할 수 있는 황홀한 것을 찾고 말테다! 라고 청춘을 불태우곤 했습니다. 그런 무모한 도전이 헛되지는 않았던지, 마침내 하고 싶은 일을 발견할 수 있었고, 이제 거기에 부딪혀 나가는 과정을 겪고 있습니다. 전혀 쉽지는 않고, 현실적으로 절망적이기까지 하지만,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포기하지 말라! 라고 한다면, 역시 윈스턴 처칠이 또한 생각납니다. 처칠은 그 유명한 명언,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 라고 명언을 남긴, 영국의 정치가 입니다. 극중에서도 앨런은 높으신 분 처칠 덕분에 연구를 계속해 나가는 장면이 살짝 등장합니다. 아마도 처칠은 끈질기게 붙들고 노력하는 앨런의 편지를 받고선 "자신과 닮아 있는 승리의 가능성"을 발견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원래 같은 취향끼리는 종종 서로 통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제 본격적 영화 이야기 속으로.

 

 2차대전의 한복판, 영화는 아이들을 서둘러 대피시키는 장면에서부터, 전쟁의 비인간성을 고발하면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이제 앨런과 똑똑한 처자 조안은 각자의 길로서 전쟁을 대면하게 됩니다. 그것은 독일 나치군의 복잡한 암호를 해독하는 일이었지요. 그래서 수학자 앨런은 이 문제로 늘 가슴이 가득차 있습니다. 인간은 종종 한 분야에 미치도록 몰입해 있으면, 그 답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아이의 목숨을 살려내는 감동적 영화 로렌조 오일 같은 추억의 명작도 비슷한 느낌을 줍니다. 마법의 언어인, 할 수 있다를 끝없이 외치면서 파고들어가는 인간의 집중력과 인내력. 그것은 타인의 시선으로도, 타인의 손길로도, 결코 훼손되지 않는, 정말이지 신비한 영역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 나도 그렇게 되어야지! 기합이 저절로 들어갑니다. 이 영화는 눈물도 선물하고, 힘도 선물해 주었습니다. 수학과 암호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처음에 밝힌 바대로 취향저격일 수 있으니 추천해 보렵니다.

 

 극의 중후반부, 앨런의 팀은 독일군 암호를 푸는데 성공했습니다. 여기서부터 또 기막힌 하이라이트가 있습니다. 끝까지 냉정함을 잃지 않는 앨런의 비장함과, 목숨의 가치를 통계학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생각을 던져줍니다. 이를테면, 당장 눈앞의 한 사람의 목숨을 구하다가, 전쟁에서 패배해서 천만명이 넘는 사람이 죽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거기에서 매우 고통스럽더라도, 매우 미안하더라도, 전쟁에서 이겨야 한다고 앨런은 말하고 있습니다. 일종의 휴먼 드라마 였더라면, 이 부분을 느슨하게 타협하고 들어갈 수 있었을테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이 부분에서도 가차없습니다. "너의 소중한 형을 지금 곧바로 구할 수 없게 되었어 미안해, 정말 미안해. 대신 전쟁은 꼭 이길께..."

 

 이런 비정함이 있었기 때문에, 비밀 정보부에서도 (전쟁이 끝날 때까지는) 앨런을 끝까지 소중하게 대우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은 그 비극미의 절정을 보여줍니다. 전쟁이 끝나자마자, 앨런은 동성애자 였음이 세간에 밝혀지고, 비밀 정보부는 앨런을 더 이상 지켜주지 않습니다. 유통기한이 이제 지나버렸으니까, 당신은 어떻게든 살아가라고 팽해버리며 한 걸음 피해버리는 것입니다. 그 정부의 끝없는 매서움, 비정함이야말로, 그 무엇보다 슬펐던 대목입니다. 영화는 혼란과 약물로 괴로워하던 앨런이 끝끝내 자살을 선택했다고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누군가는 다르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세상이 모를만한 기이한 방법으로 세계를 움직일 수 있음을 영화는 비장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저는 작년에 도서 미움받을용기를 읽으면서, 인간관계에 대하여 기대를 버리는 대신에 내가 하고 싶었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더 의미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즉, "우리는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야. 타인의 기대 같은 것은 만족시킬 필요가 없다는 말일세." 자신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말입니다.

 

 앨런은 그 점에서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조안과의 관계에서도 정직하게 자신의 입장을 전달할 줄 알았습니다. 결국 정직은 힘이 세다는 점입니다. 비록 죽고난 후 한참 뒤에야 복권 되었지만, 앨런은 국가를 위해 진정성 있는 삶을 살고자 노력했다는 점에서, 긴 여운을 안겨다 주었네요. 앨런 튜닝. 스스로는 어쩌면 불행했지만, 그래서 기계를 의지해서 살아가는 듯 했지만, 그 각별하고 특별한 노력 덕분에, 컴퓨터라는 것이 탄생되었다는 것. 특별한 소수가 사실은 인류에게 얼마나 중요한가, 긴 세월동안 어쩌면 잊지 못할 영화가 될 것 같습니다. / 2016. 01.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