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혹성탈출 (Planet of the Apes, 2001) 리뷰

시북(허지수) 2016. 5. 3. 01:33

 

 이번 주말에도 볼만한 영화들이 많아서 행복한 고민을 좀 했습니다. 뭘 볼까나... 그러다가 레전더리 영화 혹성탈출에 눈이 갔습니다. 2001년도에 만든 SF는 어땠을까, 호기심이 있기도 했고, 설정 자체가 재밌기도 했습니다. 유인원들이 지배자가 되었고, 인간이 노예생활을 한다는 전개가 마음을 사로 잡습니다.

 

 영화는 인간이 강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과학이 있고, 문명이 있기 때문에 강하다는 것, 육체적 힘이 아무리 유인원이 뛰어나더라도, 총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었음을 말해줍니다. 유명한 책 제목이지요. 총, 균, 쇠, 이런 것들이 사실은 세계를 움직이는 건지도 모릅니다 :)

 

 스토리라인은 이렇습니다. 레오라는 군인이 전자기 폭풍에 휘말려서 이상한 행성에 도착하고, 이 의문의 혹성에서 탈출해 나가는 스릴을 멋지게 담고 있습니다. 혼자만 탈출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동료들이 등장하고 있어서, 이들과의 케미라고 할까요, 협력들을 살펴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예컨대 유인원 학자로 등장하는 아리는 존재감이 강렬한데요. 그의 외침은 신랄합니다. 인간이 그렇게도 잔인하니까, 지구라는 별에서는 유인원이 일부러 말을 안 했겠지? 여기까지는 웃어 넘길만 하지만, 다음 말은 더욱 충격입니다. 인간? 지능이 그렇게 높은데 왜 그렇게 잔인한 행동을 하는거지? 별 생각 없이 영화를 보다가 중간에 쾅 하고 얻어맞은 듯한 충격이 옵니다. 똑똑하고 예민한 감수성, 참, 좋습니다.

 

 ※이 리뷰는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가득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반드시 주의하세요!

 

 

 혹성탈출을 주로 이야기 하고 있다지만, 그 근본에는 인류가 동물보다 정말로 더 나은가를 되묻고 있는 셈입니다. 흔히 인간 답지 못한 행위를 할 때는, 저 짐승만도 못한 녀석 이라면서 동물비유를 하곤 하는데요. 인류는 머리는 똑똑할지 몰라도, 도덕성이 몰락하면 처참하게 쾌락만 추구하게 되는 슬픈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오늘날 이렇게 인류가 불행해지고, 우울감이 늘어난 것도, 상대적 박탈감이 만연해 있고, 사회가 정글처럼 변해있기 때문입니다. 시사매거진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절절하게 와닿습니다. 법은 왜 있는 자의 편을 드는가요. 이것은 이렇게 다시 쓸 수 있습니다. 법은 왜 기득권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나요. 왜 똑똑한 자는, 자기들에게 유리하게끔 제도를 이용하는가요. 아주 오래된 속담, 팔이 안으로 굽는게 비정한 현실이라는 뜻이겠지요. 이것을 바꾸는 것이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행위가 될 것입니다.

 

 자, 이제 영화이야기로 들어와서 레오가 떨어진 이 행성에서는, 지배자가 유인원이다 보니, 친인파 학자로 등장하는 아리가 설 곳은 참 드물게 되었고요. 유인원에게 유리한 각종 정책이 쏟아집니다. 인간은 무가치 하고, 냄새 나는 노예로 취급되어서 팔려나갑니다. 인간과 유인원의 공존을 외치다가는 아이들에게까지 야유 소리를 듣는 풍경이 참 씁쓸합니다.

 

 생각해보면, 아리 처럼 언제나 시대를 앞서나가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이런 소리들은 야유를 받을 때도 있습니다. 신분을 차별하지 말자 라고 외치고, 차별이 철폐된 것이 불과 100년, 200년도 되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역사는 긴 시간 차별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금수저니 흙수저니, 삶에 대한 체념과 불만의 목소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출발선이 다르니까, 도착하는 위치도 달라지는 것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저마다 일단 나부터 먼저 살아야 한다는 의식이 선명한 것만 같습니다.

 

 자, 레오와 아리 일행은 협력을 하며 굳건히 희망을 향해서 도주를 감행합니다. 필사적으로, 가능성을 찾아서 떠나기도 하고, 훌륭하게 강을 건너기도 합니다. 레오는 헐리우드 주인공 답게, 약자를 잘 챙깁니다. 유행하는 대사를 빌려서, 약자와 노인과 미인을 지키는 것이 임무 같습니다. 그렇게 다시 세계를 바꾸기 위한 희망까지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가 영화의 하이라이트 겠지요. 진실이 드러나는데, 레오는 시간여행을 했던 것이 되었고, 사실은 되돌아갈 가능성은 사라지고 맙니다. 그래서 극적으로, 유인원과의 싸움을 선택하게 된다는 것. 레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가능성을 선택해서, 자신이 존재하는 세계를, 한 걸음 진화한 천국으로 바꾸어 나갑니다. 밀턴의 표현을 빌려서, 그는 지옥을 천국으로 바꿀 힘을 가진 주인공이었던 겁니다. 그 장면이 참 멋있었습니다. 내가 찾아낸 유일한 답이기 때문에, 이 가능성에 모든 것을 걸겠어. 한마디로 주인공 답습니다.

 

 영화는 유인원이 행성의 지배자가 된 배경으로, 인간이 유인원을 데리고 지능 실험을 여러 번 했던 것을 손꼽고 있습니다. 일종의 비판점이겠지요. 동물을 상대로 실험하는 것은 문제가 없단 말이냐? 라고 말이지요. 결국 이 정도의 타협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동물도 할 수 있는데 까지 아끼고, 잘 대우해 줘야 한다는 이야기가 적당할 것 같습니다. 영화의 짧막한 메시지처럼, 인류가 숲을 다 잘라내어 침팬지들의 갈 곳을 없애버리면, 그에 대한 대가도 언젠가 받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내용을 확장해 더 강력하게 쓴다면, 권력자들이 약자들의 갈 곳을 다 없애버린다면, 심판을 피할 길이 없다는 것이지요.

 

 막판의 재밌는(?) 반전은 사실, 예측 가능한 것이기도 하지만, 참 뒷맛까지 씁쓸하게 남겨줍니다. 평행세계 같은 것일까요. 저는 그런 (유인원이 지배하는 불평등한) 세계에 살고 있다면, 이 세계를 바꾸기 위해서 노력할 수 있을까? 라고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우리는 아마도 예스 라고 답할 것입니다. 노예로 사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오늘의 일상성을 소중하게 대하면서, 오늘을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 노력했는가? 라고 확장해서 물어본다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지구라는 별에 태어난 이상, 그리고 사람들과 협력하면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오늘을 잘 보내는 것이야말로, 무엇보다 든든하고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매일 자신에게 격려를 보내는 것 정도가 최선일 수 있겠지요. 가능성이 있는 한, 아직 포기하지 마십시오. 다가올 미래는 아직 알 수 없는 것이므로. / 2016. 05. 03.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