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오래된 전쟁영화지만, 진주만을 보게 되었습니다. 전쟁 앞에서 젊은이들의 한 번뿐인 청춘이 엇갈리는 모습이 꽤 안타깝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우정도 비틀어지고, 사랑도 뜻대로 되지 못했습니다. 길게 이어지는 전쟁씬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말해주고 있습니다. 내 앞에서는 절대로 안 된다, 못하겠다 라는 말은 하지 말게. 대통령의 지시사항은 그렇게 이행되어 나갑니다. 목숨을 걸고, 전선으로 계속해서 나아가는 젊은이들, 그것도 자발적 이라는 데, 더욱이 커다란 힘이 실려 있습니다. 이런 젊은이들이 있기 때문에, 미국 이라는 나라가 강대국으로 일어서 있는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머리에 오래도록 남습니다.
실은 영화를 보다보면 알게 되겠지만,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공격한 것이야말로, 치명적인 실수로 드러나게 됩니다. 일본사령관의 말을 그대로 가져오자면, "우리가 잠자는 거인을 깨우게 된 것은 아닌가?" 입니다. 미국은 진주만 기습을 당한 이후, 2차 대전을 적극적으로 참가하게 되었고, 수 년 후, 일본에 원폭까지 투하하며, 전쟁에서 값진 승리를 얻어냈기 때문입니다. 미국측 특수부대 사령관의 말도 참 대단합니다. "도쿄 공격? 비록 우리가 지금의 전투에서는 쓰러질 수도 있겠지만, 미국이 전쟁에서는 반드시 이길 것!" 모든 것을 넓게, 궁극적으로 생각하려는 그 품격, 고결함이 참 부럽습니다. 스토리부터 살펴볼까요.
※이 리뷰는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가득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반드시 주의하세요!
하늘을 시원스럽게 나는 래프와 참 예쁜 간호사 에플린은 좋은 관계로 발전해 나가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다 래프는 영국으로 자원해 멀리 떠나게 되었지요. 두 사람은 서로 애뜻하게 편지를 주고 받아 왔지만, 래프가 도중에 실종되면서, 이 관계는 끝을 맞이하는 듯 보입니다. 오히려 래프의 친구인 대니와 에플린이, 극중에서 가까워지면서 두 사람은 연인관계가 되었지요. 나중에 밝혀지는 사실이지만, 에플린은 대니의 아이까지 가지게 됩니다.
아뿔싸! 그런데, 래프는 극적으로 살아남는데 성공했고, 이들 세 사람은 진주만에서 다시 재회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남자끼리 주먹이 오고 가는 안타까운 사이가 되고 말지요. 누구 하나 크게 잘못한 사람은 없어보이지만, 전쟁이라는 것이 인연의 끈을 비틀어 놓았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제법 긴 시간이 흘러서야, 래프는 에플렌을 떠나보내며, 대니와 좋은 관계를 이루어 갈 것을 권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래프는 군인으로서도, 사람으로서도 참 훌륭한 인격을 가지고 있네요. 친구를 정말로 아낄 줄 아는 마음이 따뜻합니다.
하지만, 마지막 도쿄 공습에 래프도, 대니도 참석하게 되면서 이들의 비극은 계속 됩니다. 대니가 필사적인 적군에 의해 희생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최종적으로는 래프와 에플린이, 대니의 아이를 키워나가는 한 가정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숭고히 받아들이며,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과 함께 엔딩롤이 올라옵니다.
영화에서는 진주만이 폭격당함으로서 3천명 정도의 사람이 희생되었으며, 정신적으로도 큰 충격을 받았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실제로도 군사회의에서 일부 지휘관들은 위축되어서 일본군이 시카고로 쳐들어 온다고 해도 막지 못할 것이라며, 기죽은 한심한 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걷지 못하는 대통령은, 자신의 두 다리를 기필코 일으켜 세워놓으며, 절대로 물러설 수 없으며, 앞으로 나아갈 것만을 요구합니다. 그렇게 도쿄 공격 작전이 시작된 것입니다. 최정예를 선출해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도록 맹훈련을 시킵니다. 전쟁에서 소수정예가 얼마나 중요한 지는, 우리나라의 1894년 동학농민혁명사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그 당시에도 우리나라는 일본군과 관군이 정말 소수였음에도, 동학군이 밀려오는 기관총 총알에 그대로 쓸려나가며 피바다가 되고 말았습니다. 역사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대패였지요.
그만큼 소수정예가 가지는 힘은, 또 상징적인 힘은 대단한 것입니다. 그래서 도쿄 공격 작전은 과감하면서도, 성공 하느냐, 마느냐에 큰 갈림길이었다 하겠습니다. 이 때, 항공모함에서 비행기가 뜰 때 마다, 환호하면서 박수와 격려를 내보내는 사람들 또한 같은 마음이겠지요. 꼭 성공해서 돌아와서, 함께 건배하며, 자랑스러운 군인이 되자는 뜻이겠지요. 목숨 걸고, 정예 작전에 지원하는 그 용맹함, 젊음의 용기가 대단히 인상적이었네요.
영화는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진주만 폭격 이후, 미국은 혼란에 빠졌지만, 새롭게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도쿄 공격에 성공했으며, 이후 승기를 잡아나가며, 2차대전과 세계사의 주인공으로 발돋움해 나갔다 라고. 나치와 일본. 그들로부터 위기를 맞이했지만, 다시 극복의 지혜를 찾아나가는 것이 20세기 중반의 전쟁사였던 것 같습니다. 미국이 처음부터 강대국이 아니라, 젊은이의 신념들이 모이고, 군 수뇌부의 옳은 판단이 이어지면서, 승리의 길을 향해 걸어가게 되었음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어쩌면 다르게 들리기도 합니다. 때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 앞에서도, 결코 가만히 있지만 말고, 다른 방법을 찾아봐라, 그리고 열심히 정예요원처럼 독하게 노력하다보면, 머지 않아 다른 길이 열릴 수 있다고 유혹하듯 아름답게 속삭이고 있습니다.
이에는 이 라는 말이 있습니다. 기습에 대하여, 기만에 대하여, 미국은 강경 조치를 서슴치 않았습니다. 우리도 과거 기만적인 일본의 모습을 식민지로 겪었기 때문에, 현대의 일본의 우경화, 군사강국, 군대를 보유하는 보통국가가 되어가는 모습이 좋게만은 보이지 않습니다.
일본은 독일과 다르게, 과거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 대신에, A급 전범이 묻힌 야스쿠니 참배를 계속 해나가는 모습에 유독 참담한 마음이 듭니다. 자기네 세대에서 위안부 문제를 끝내겠다며, 말로만 사과를 하고 끝내려는 태도가 영 못마땅합니다. 아무쪼록, 저는 전쟁이라는 비극적 역사가 부디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간호사 에플린이 정신없이 죽어가는 사람들 앞에서, 거의 절망적으로 일하게 되는 것이야말로 전쟁이 무엇을 가져다 주는지 어떤 말보다, 훨씬 더 생동감 있게 전해주었습니다. 이로써 부족한 리뷰글을 마칠까 합니다. 장문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전쟁 OUT! 평화에 감사하며. / 2016. 07. 14.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