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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였고, 최고가 될 레이카르트 이야기.

시북(허지수) 2008. 6. 4.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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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k Rijkaard : From Wikipedia (IT)


 프랑크 레이카르트, 오늘은 조금 애정을 담아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오렌지삼총사 중 한 명이자, 챔스리그를 선수와 감독으로서 모두 제패한, 정말로 세계에서 한 손가락 안에 드는 경험을 가진 인물. 최고의 선수였던 레이카르트 이야기 입니다.

 프로필

 이름 : Frank Rijkaard (프랑크 레이카르트, 예전에는 라이카르트 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생년월일 : 1962년 9월 30일
 신장/체중 : 190cm / 80kg
 포지션 : MF, DF
 국적 : 네덜란드
 국가대표 : 73시합 10득점

 명선수이자 명감독, 재미있는 레이카르트 이야기

 역시 오렌지삼총사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88년부터 AC밀란은 황금시대를 맞이합니다. 리그 무패 우승, 챔피언스리그 2연패 등등. 그 중심에 반 바스텐, 루드 굴리트, 레이카르트 네덜란드 삼인방이 있었습니다. 반 바스텐과 루드 굴리트는 공격적 포지션이라서 발롱도르까지 수상하는 등 큰 주목을 받았지만, 레이카르트는 투표에서 3위로 밀리면서, 유럽최우수선수상인 발롱도르는 수상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활약은 정말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레이카르트는 팀의 중심이었습니다. 체격도 워낙 뛰어났고, 수비력이 정말 발군이었습니다. 수비형 미드필더(볼란치)로 맹활약하며 상대팀 공격을 잘라내는 모습이 너무나 훌륭했습니다. 그를 두고 수비형 미드필더의 거울이자 교과서라고 극찬을 하기도 했습니다. 키가 컸지만, 공 컨트롤도 굉장히 잘했습니다. 세트 플레이 시에는 과감하게 득점을 노리기도 했습니다. 그가 있는 중원은 정말 팀에게는 큰 기둥과도 같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술적인 눈도 탁월해서, 득점을 연결하는데 탁월한 실력을 보여주었습니다. 힘, 스피드, 기술, 오버랩까지... 정말 다방면에 뛰어난 올라운더였지요. 수비는 말할 것도 없이 뛰어났고, 게다가 공격까지도 잘 했습니다. 기회가 닿는대로 골도 잘 넣었지요. 왜 사람들이 전설의 세 명(반바스텐,굴리트,레이카르트)을 한 데 묶어서 극찬하는 것일까요. 정말 뛰어났던 세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레이카르트는 정말 훌륭했던 선수였습니다. 단지 수비적 위치라서 주목을 상대적으로 덜 받았을 뿐이지요 :) 그렇기 때문에 필자는 더더욱 레이카르트를 집중 조명하려고 합니다. 하하. 참고로 이 당시 AC밀란은 역대 최강의 팀이라는 엄청난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레이카르트의 시작은 요한 크루이프가 이끌던 아약스였습니다. 데뷔전부터, 골을 터뜨리면서 주목받던 10대 소년은 곧바로 주전으로 뛰어난 활약을 펼칩니다. 아약스에서 8년동안 몸 담으면서, 3번의 리그우승과 위너즈컵까지 우승경험을 가지게 됩니다. 이 때는 수비수로도 활약을 펼쳤습니다. 20대 중반이 되자, 여러 클럽팀에서 오퍼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스페인 사라고사 팀에서도 임대이적으로 활동하기도 했지요. 그리고 1988년 유로가 열립니다. 네덜란드는 이 유로에서 당당히 우승을 차지합니다. 당시 결승전에서 반 바스텐의 예술적인 골도 유명했지만, 레이카르트의 놀라운 수비력도 많은 사람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소련은 단 한 골도 넣을 수 없었지요.

 큰 주목을 받게 된 레이카르트는 1988년 유로 우승을 경험하고, 명문 AC밀란으로 이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알다시피 공수가 완벽에 가까웠던 AC밀란은 화려한 황금기를 보내게 됩니다. 1990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도 유명합니다. AC밀란은 오렌지삼총사 3명과 이탈리아 선수들로만 구성된 멤버로 벤피카와 결승에서 맞붙었습니다. 6번 캡틴 바레시, 수비형 미드필더 8번 레이카르트, 공격진에는 9번 반바스텐, 10번 굴리트. 아 게다가 말디니 코스타쿠르타 안첼로티도 있었습니다. 드림팀이지요 -_-; 그리고 이 날 결승전에서, 귀중한 결승골을 넣은 남자가 바로 오늘의 주인공 프랑크 레이카르트 였습니다. 1-0 승리. AC밀란 사상 첫 챔스 2연패! 수비력도 정말 뛰어났지만, 이렇게 중요한 골을 터뜨려 주기까지 하니, 흠잡을 데 없는 교과서 같은 명선수였지요. 혹자는 당시 바레시가 수비의 핵인 두뇌였다면, 레이카르트는 팀의 심장이었다고 극찬하면서, 두 선수 모두에게 아낌없는 갈채를 보냈습니다.

 1990년에는 또 하나 유명한 사건이 있습니다. 레이카르트를 위한 변명이라는 입장에서 이야기를 펴보겠습니다. 바로 1990년 월드컵입니다! 독일과 네덜란드가 맞붙었습니다. 88년 유로에서 독일은 네덜란드에게 통한의 역전패를 당한터라서, 이번 월드컵에서는 완전 단단히 벼르고 있었지요.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16강전에서 정말 딱 부딪힌겁니다. 당시 독일의 에이스 공격수 루디 펠러와 팀의 중심이었던 레이카르트는 결국 한바탕 일을 만듭니다. 격전으로 펼쳐지던 경기는 루디 펠러와 레이카르트 모두 옐로카드를 두 장씩 받으면서 퇴장 당하고 맙니다. 전반 22분이었지요. 퇴장 직후, 레이카르트는 루디 펠러에게 침을 뱉는 장면이 전 세계에 방송됩니다. 헉... 이런.

 네덜란드의 중심축이던 레이카르트가 퇴장 당한 것은 치명적이었습니다. 후반전 클린스만과 브레메에게 골을 허용하면서 1-2 패배, 이번에는 네덜란드가 짐을 싸야 했습니다. 시합 종료 후, 레이카르트에게 인터뷰가 쇄도합니다. 아니 대체 왜 그랬냐고, 퇴장이면 퇴장이지, 침까지 뱉어야 했는가! 인터뷰에서 레이카르트는 루디 펠러가 인종차별적 폭언을 해서 이성을 잃었다 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팀과, 후에 루디 펠러에게도 사과합니다. 네덜란드 입장에서는 월드컵 우승을 놓친 두고 두고 아쉬웠던 90년 월드컵이었을 것입니다. 90년 월드컵에서 우승은 바로 이 독일이었습니다 :)

 한편, 레이카르트는 1993년에는 친정팀 아약스로 복귀하게 됩니다. 젊은 아약스 팀에게 자신의 경험을 전수하면서 아약스의 리그 2연패에 공헌합니다. 정신적 지주로 마지막까지 맹활약 했던 레이카르트와 아약스팀은 1994-95시즌에는 27승 7무의 무패우승을 자랑합니다. 또한 1995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레이카르트는 클루이베르트의 결승골을 어시스트 하면서, 이번에는 아약스 소속으로 다시 한 번 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립니다. 그리고 이것이 그의 현역 마지막 경기였습니다. 현역시절 챔피언스리그 우승 3회, 그것도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해내면서 맹활약 했던 선수, 유로 우승에도 큰 공헌을 했던 선수, 한편 월드컵에서는 참 안타까운 에피소드를 남긴 선수, 그가 바로 세계최고의 미드필더이자 수비수였던 레이카르트 였습니다. 그 뛰어난 활약 덕분인지 네덜란드 여왕으로부터 메달을 받은 적도 있다고 합니다. 레이카르트가 뛰던 마지막 4년 동안 소속 팀은 모두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그의 영향력과 공헌도가 어느 정도 였는지, 우리는 여기서도 짐작해서 알 수 있습니다. (92,93밀란 리그우승, 94,95아약스 리그우승)

 현역 은퇴 후에는, 1998년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을 맡으면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합니다. 바로 히딩크 감독의 후임이었지요. 레이카르트는 유로 2000에서 네덜란드 팀을 이끌면서 멋진 모습을 보여줍니다. 조별리그에서는 프랑스까지 격침시키면서 3전 전승으로 8강에 진출합니다. 8강에서는 클루이베르트, 오베르마스 등의 거침없는 활약으로 유고를 6-1 로 대파. 결국 레이카르트가 이끌던 네덜란드는 4강전에서 이탈리아와 피할 수 없는 승부를 펼칩니다. 0-0 무승부. 승부차기 까지 간 끝에... 이탈리아가 승리를 거둡니다. 네덜란드 4강 탈락. 암스테르담에서 경기를 지켜보았던 관중들도 너무나 슬펐던 경기였을 것입니다. 기대가 정말 컸었을텐데...

 그리고 레이카르트는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을 사임합니다. 이후 스파르타 로테르담을 거치게 되는데, 여기서는 저조한 성적을 거두면서, 욕도 무지 먹었습니다. 스파르타 로테르담은 레이카르트 감독의 지휘아래 창단 이래 처음으로 2부리그 강등을 당해버립니다. 최악의 감독이라는 악평까지 들어야만 했습니다. 명선수들이 감독해서 말아먹은 경우 숱하게 많지 않습니까. 어쩌면 이로 인해서 레이카르트는 감독은 혼자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게 아님을 깨달았는지도 모릅니다. 불과 1년만에 스파르타 로테르담 감독직에서 물러났지만은... -_-; 하지만 그것은 레이카르트의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여기서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03년. 드디어 FC바르셀로나의 감독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제 레이카르트는 스탭의 중요성을 절감했지요. 그리고 전술의 달인 헹크텐 케이테와 함께 손발을 맞추기 시작합니다. 당시만 해도 FC바르셀로나는 침체기에 접어드는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높았습니다. 팀도 6위까지 떨어졌지요. 어쩌면 레이카르트는 독이 든 성배를 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여기서까지도 팀을 살리지 못한다면, 최악의 감독으로 역사 속에 그대로 묻혀버릴 수도 있었지요. 하지만 그는 달랐습니다.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정말 멋지게 명가를 재건합니다. 여러가지 다국어를 구사하는데다가, 선수들의 마음을 다잡는데도 뛰어났습니다. 어쩌면 지난 날의 실패가 사람을 한결 더 크고 부드럽게 만들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레이카르트 감독의 FC바르셀로나 2004-05시즌, 6년만에 다시 한 번 프리메라리가 정상에 서게 됩니다! 게다가 그 다음해도 우승을 차지합니다. 리그 2연패! 뿐만 아니라 2005-06시즌에는 첼시, 밀란, 아스날 등을 물리치며 챔피언스리그 정상에까지 오르게 됩니다. 이제 호나우지뉴, 에투 등의 새로운 스타들이 이끌어가는 바르샤는 새로운 명가로 거듭났습니다. 바르샤로서도 요한 크루이프의 엘 드림팀 이후로, 두 번째 챔피언스리그 우승이었지요 :)

 프랑크 레이카르트는 선수와 감독 양 쪽 모두로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해 본, 정말 극소수의 멤버 중 한 명입니다. 알려진 바로는 전 세계에서 불과 5명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는 명선수인 동시에, 명감독으로 이름을 높였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우승 이후로, 바르샤는 우승을 번번히 놓치면서 주춤하기 시작합니다. 부진이유 중에 하나가 전술을 담당했던 코치 헹크 텐 케이테가 팀을 떠난 것도 중요한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기도 합니다. 결국 이후 우승을 놓치다가, 2008년에 치명타를 맞이하면서 감독직을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사실상의 경질이라고도 합니다. 지난 달, 레알 마드리드와의 더비 경기에서 1-4 참패를 당하고 말았지요. 제가 그리도 열심히 잘될꺼라고 응원했는데... (흑흑) 이 결정타로 말미암아서 안 그래도 간당간당하던 레이카르트는 정들었던 바르샤 감독직을 물러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레이카르트는 아직 젊습니다. 여전히 손꼽히는 40대 명장 중 한 명입니다. 충분히 다시 한 번 최고의 감독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기회는 남아 있습니다. 현역시절 레이카르트는 마지막 선수생활을 4년 연속 리그우승으로, 현역 마지막 경기까지도 챔스우승으로 이끌었던 선수였습니다. 그의 감독생활은 이제부터가 또 다른 시작일 것입니다. 필자가 좋아하던 리오넬 메시를 토닥이면서 위로하던 레이카르트의 모습을 아마도 필자는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제 앞으로는 그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지만요... 다시 한 번 멋지게 명감독으로 부활해서, 새로운 역사를 계속 써내려 가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레이카르트 화이팅!!!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글을 마칩니다. 유튜브에서 레이카르트 영상을 찾아서 덧붙입니다. 그가 어디로 가든지, 포기하지 않고, 더욱 멋진 모습으로 정진해 나가기를 바라봅니다. 애독해 주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