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시리즈의 2번째 작품인, 본 슈프리머시 입니다. 케이블 TV에 추천영화로 올라왔길래, 또 한 번 즐거운 마음으로 심야 영화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도저히 12년 전의 작품으로 믿겨지지 않습니다. 굉장합니다. 액션씬은 마음을 사로 잡을 만큼 박력이 넘치며, 군중이 많은 곳에서 유유히 제이슨 본이 사라지는 모습은 그 전개의 빠름으로 인해 두근거림이 전해지는 기분입니다. 특유의 박진감 넘치는 자동차씬도 흥분되기는 마찬가지! 액션 영화로써 이처럼 화려한 볼거리를 담고 있으면서, 이야기는 탄탄합니다. 본 슈프리머시 참 잘 만든 영화입니다. 괜히 Daum평점 9점대를 찍고 있는게 아니었습니다.
초반의 전개는 참 안타까운 측면이 강합니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모습과 두통으로 고생하는 제이슨 본, 그리고 그의 연인 마리가 이유도 없이 지금 쫓기고 있습니다.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현대 자동차가 저토록 화려하게 그려지다니 새삼 놀라웠네요. 아무튼, 그의 아름다운 여인 마리가 이 와중에 뜻밖의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래서 영화는 무겁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끝내 본이, 마리와 다정하게 찍힌 사진을 없애지 못하는 것은, 그것이 특별한 기억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삶의 위로, 라고 짧게 써도 적절하겠네요.
※이 리뷰는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가득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반드시 주의하세요!
이제 억울한 본은 자초지정을 알아야 겠습니다. 내가 누구인지에서 출발해서, 왜 마리와 평범하게 살려고 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는지? 그렇게 본은 목적지를 향해서 거침없이 행동으로 일직선으로 내달립니다. 나폴리에 아주 잠깐 머무르는데, 상대를 따돌리고, 차량을 탈취하는 컷이 채 1분도 안 걸리는 것 같았습니다. 이쯤되면 이 인물이 매우 유능한 특급 정예 요원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과연 CIA는 제이슨 본에게 무슨 짓을 했던 걸까요? 그리고 왜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연달아 이용당하고 있는걸까요?
결론부터 미리 질러본다면, CIA는 본에게 끔찍한 살인 임무를 첫 미션으로 주었습니다. 킬러가 어쩔 수 없이 살인을 해야 한다고 볼 수 있지만, 그 와중에 주변 인물까지 해치게 되고, 이 미션 조차도 도덕적으로 부정직한 임무임이 밝혀집니다. 영화에서는 이 모든 내용을 한 편의 추리소설처럼 파고들어가는 맛이 무척 좋습니다. CIA의 고위간부가 사실은 아주 저질스럽게, 돈을 위해서, 러시아측 조직과 거래를 했다는 점에서 아주 뒷맛이 나쁩니다. 권력과 뒷돈까지 참으로 나쁜 놈들.
그래서 본은 베를린에서 최대한 정보를 얻은 후에, CIA 고위간부를 직접 만나기에 이릅니다. 자신을 차라리 죽여달라는 간부, 킬러는 본질에서 평범한 삶을 살 수 없다고 마지막까지 비웃는 모습이 참 저열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주인공 본은 "마리를 위해서" 라는 멋진 명대사를, 마음에 남을 한 마디를 하며 총구를 도로 거둡니다. 이번 영화의 제가 생각하는 베스트 컷이라 하겠습니다.
또한 러시아에서 정말로 화려한 자동차 액션씬을 찍으며, 젊은 요원과 승부를 겨루는데요. 마리의 복수를 할 기회가 왔을 때도, 총이 아니라 자동차 사고로 인해서 악당이 목숨을 달리하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상하리만큼 본은 절제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어떤 상황을 만나더라도 쉽게 흥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파멜라 랜디 수사 부국장 요원에게 전화를 걸어서, 자신을 왜 계속 추척하느냐고 물을 만큼, 바빠도 여유가 묻어 있는 그 느낌이 참 근사합니다.
이쯤에서 제가 좋아하는 문구를 덧붙여 봅니다. 아픈 기억을 잊는 것은 지혜입니다, 아픈 기억을 대면하는 것은 용기입니다. 신영복 선생님의 글입니다. 지혜가 되었던, 용기가 되었던, 아픈 기억 앞에서 우리는 어떤 긍정적 태도를 취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본은 진실 앞에 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러시아에서 생겼던 첫 임무, 그 사고의 피해자인 딸을 찾아가서, 직접적으로 미안하다고, 사과합니다. 생각보다 훌쩍 커버린 딸은 눈물을 흘리며 진실을 담담히 듣고 있습니다. 킬러로 만들어졌지만, 살인에 대한 사과, 그 역설적 대비가 무척 강렬했습니다. 저는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늦었더라도 사과할 것은 용기 내어 사과하는 게 좋아. 라고요.
이런 행위들을 통해서 본은 세상을 당당하게 살아가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나는 누구인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답을 계속 찾아나가고 싶었던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목표에 의해서 행동하는데는 누구보다 능숙했던 인물이 제이슨 본이라고 한다면, 앞으로 그의 목표는 무엇일까요? 영화는 3부작이니까, 다음 편에 또 이어진다는 점이 참 흥미롭기도 합니다. 이렇게 된 이상 다음 편도 기대하면서 볼 수 밖에 없는 셈이지요. 야호!
오늘 글의 마무리 - 본은 CIA요원을 죽였다는 오해와 누명을 벗었지만, 정작 사랑하는 이의 부재라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생각해 봅니다. 몇 번씩이나 비춰주던 정겨운 사진 한 장이 주는 행복. 이것이 참 귀중하구나 라는 생각을 합니다. 추억 만들기라고 해도 좋겠지요. 우리에게 그런 값진 풍경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다운 제이슨 본의 다음 활약을 다시 또 기대해보며! / 2016. 07. 29.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