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부산행 (Train To Busan, 2016) 리뷰

시북(허지수) 2016. 7. 31. 00:28

 

 영화 부산행을 보았습니다. 슬펐습니다. 착해 빠진 사람이, 희생되어 가고, 약아빠진 사람이, 살아남으려고 하는 모습에서 강한 감정들이 흘러갑니다. 분노이기도 하고, 슬픔이기도 하고, 반성이기도 합니다. 좀비보다 더 무서운 인간 한 명이 등장합니다. 그는 자신의 생존을 최우선 순위로 여기며, 다른 사람들을 밀치고, 해치며, 선동까지 해버립니다. 오래된 속담처럼, 미꾸라지 한 마리가 맑은 물을 완전히 진흙탕 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주인공 석우(공유 분)는 사실 현대사회에 정확하게 들어맞아 있는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그는 딸아이에게 비정함을 가르칩니다. 지금처럼 위급한 상황에서는, 할머니들에게 양보 같은 미덕을 발휘하지 않아도 괜찮아 라고 이야기 합니다. 상화(마동석 분) 아저씨가 급히 달려올 때도, 문을 먼저 닫으려고 하는 등, 자신의 생존을 우선하는 펀드매니저 입니다. 그러나 석우는 반성할 줄 알았습니다. 같이 살자는 외침에 응답할 줄 알았습니다. 언젠가 삶은 응답하는 것이라는 강연을 들은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응답해야 할까요.

 

 ※이 리뷰는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가득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반드시 주의하세요!

 

 

 저는 영화에서 할머니 두 분이 참 마음에 오래도록 남았습니다. 두 사람의 오랜 우정은 달걀 하나로 행복을 느끼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영화에서는 불운하게 두 사람이 떨어지게 되었고, 마침내 남에게 퍼주기만 좋아한다던 할머니는 터무니 없이 희생되고 말았습니다. 좀비가 되어 표정없이 서 있는 모습이 이 영화에서 가장 슬펐던 장면입니다. 생존 경쟁을 차마 하지 않으려고 했던 할머니... 그는 분명 어디서나 선하게 살아왔던 인물일테지요.

 

 그리고, 그 할머니의 선의(善意) 덕분에 남은 여생이 즐겁기만 했던, 또 한 분의 할머니는 망연자실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아! 당신이 살아 있어서 나는 얼마나 행복했던가요? 그런데 이게 뭔가요? 남에게 다 퍼주기만 하더니, 결국 좀비가 되어서 거기 서 있나요? 여길 봐요! 살아남고자 발버둥치고, 이기적인 인간들이 판을 치고 득실거리는데, 나는 이런 지옥 같은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요. 함께 차라리 죽어서, 당신 곁에 갈래요. 그리고 문을 화-악 하고 열어버립니다.

 

 분명히 할머니들은 조연이었습니다. 영화는 주인공 석우의 활약을 중심으로 전개가 되는데, 그 할머니 두 분을 떠올리면 괜히 마음이 짠해집니다. 저는 나이듦에서 제일 소중한 것이 우정이라는 가치라고 들은 바 있습니다. 이 장면을 통해, 사람은 소중한 존재를 잃어버리면 살아갈 희망조차, 완전히 잃어버리는 구나 라고 아련하게나마 느꼈기 때문입니다.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하여, 영화 부산행은 그 가치에 충실하고 있습니다. 석우는 딸을 지켜야 했고, 상화는 임신한 부인을 지켜야 했습니다, 야구부 학생은 진희라는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열심히 펼쳐집니다. 그래서 저 멀리 다른 칸 화장실에 소중한 이들이 갇혀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서, 그 좀비굴을 향해 두려움을 극복하고 남자들이 뛰쳐들어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이가 없는 세상이란, 앞서 언급했듯이 슬픔의 지옥일테니까요.

 

 인상적인 장면 - 상화가 했던 말이 있습니다. 딸 아이가 좀 더 크고 나면, 왜 그렇게 세상에서 악착 같이 돈을 벌면서 살아가는지 이해해 주지 않을까? 라고 질문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남편, 그리고 가장이라는 것은 그렇게 가정에 제대로 충실하지 못하는 못난 모습을 보이면서도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한다는 책임감! 그것이 주는 무게를 언젠가 자식이 이해해 준다면 되지 않을까 라고 질문을 던집니다. 한마디로, 우리 욕먹어도 열심히 살자 입니다. 돈 힘들지만 열심히 모으자 입니다. 각자가, 우리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입니다.

 

 영화 후반, 마침내 석우의 딸은 살아남았습니다. 있는 힘껏 노래를 부름으로써 구원을 얻습니다. 노래! 참 중요했습니다. 상상력을 보태면, 현대 사회는 영화와 같은 좀비들이 없지만, 치열한 경쟁 사회가 되었습니다. 양보 라는 말은 쉽게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만에 하나, 내 자리를 남에게 내어주는 것은 바보나 하는 행위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양보를 해줘야 합니다. 우리 다음 세대를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임산부에게, 아이에게, 희망을 안겨주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인터넷에 글을 남기는 사람으로써, 자주 희망에 대해 남기기를 원했습니다. 가슴 아픈 결말 앞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요. 누군가가 이렇게 조언했습니다. 이 영화 찜찜하더라고! 그 말에는 희망 없음이 담겨 있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요? 그러므로, 좀 더 일찍 지옥과 같은 이 상황을 막아야 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노력을 미리 미리 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자기 자신만 챙기지 말고, 혹시나 주변 사람을 밟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야 하겠습니다. 혹시나 어느새인가, 기생충처럼 살고 있는건 아닌지 되돌아 봐야 하겠습니다.

 

 실은 얼마 전, 연상호 감독님의 돼지의 왕을 본 적이 있습니다. 나는 이렇게 험한 경쟁 사회에서, 어쩌면 너무 느슨하게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나 혼자 마치, 탈경쟁 사회를 떠다니듯이 사는 것이 아닌가, 매우 반성적인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또래의 남들은 돈을 벌고, 돈을 빌려서 라도 마이 카를 누리는데, 저는 대중 교통으로 충분하잖아 라고 합리화 하곤 했으니까요. 그러니까, 여자사람에게 인기도 없고 하는 거겠죠 :) 그래도 뭐, 괜찮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었고, 열심히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좀 바보 같긴 하네요.

 

 이제 글을 마무리 해보고자 합니다. 영화에서 석우의 딸이, 자리를 양보하는 장면, 그리고 작은 사탕을 얻는 장면을 베스트 컷으로 꼽아봅니다. 어떤 순간에도 사실은 배려라는 것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을 믿어보려 합니다. 나는 그런 가치에 충실한 사람으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결국 좀비보다 더 무서운 게 사람의 마음일 수 있으므로. 우리가 어딘가에 눈 먼 괴물이 될 수는 없을테니까요. 한 손에는 도전, 그리고 한 손에는 배려, 이 문구, 참 좋아합니다. 화이팅 입니다. 고된 살아남기, 지치더라도 다시 힘냅시다. / 2016. 07. 31.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