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여교사 (MISBEHAVIOR, 2015) 리뷰

시북(허지수) 2017. 3. 12. 22:51

 

 영화 여교사를 보고 나니, 뒷맛이 영 개운하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때로는 질투로 눈이 멀기도 하는 것 같아요. 영화의 장점은 긴장감과 속도감 있는 전개가 펼쳐지고 있어서 지루할 부분이 없고, 배우들의 열연이 좋습니다. 인간의 끝을 달리는 효주선생을, 김하늘이 섬세하게 표현해내어서 일면 그녀를 이해하고 공감할 여지가 생긴다는 것이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효주는 계약직 교사로서, 쉽지 않은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담임까지 맡게 되어서 업무량이 늘어 집에도 더 늦게 가게 되었는데... 어휴, 집에는 백수 남자친구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뒹굴거리고 있습니다. 작가를 꿈꾼다는 남친은 아직 한글 문서 1장도 써넣지 않고, 효주에게 기대어 사는 존재. 지칠대로 지친 효주는 잔소리가 폭발합니다. 여기까지야 뭐, 충분히 효주 입장이 이해됩니다. 자, 그런데...

 

 ※이 리뷰는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가득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반드시 주의하세요!

 

 

 학교에 이사장 딸 혜영 선생이 등장한 것입니다. 오자마자 화학 정교사 랍니다. 요즘말로 완벽 금수저랄까요. 고급차를 타고 다니고, 예쁜 옷을 입고 다니고, 남친까지 완벽합니다. 예쁜 외모로 순식간에 학교 스타가 됩니다. 그리고 혜영은, 효주에게 선배라며 친한 척을 하고 있습니다. 효주는 정말이지 이 혜영이 미울만 합니다. 조금만 있으면 정교사 자리가 날 수도 있었는데, 그것을 빼앗아 갔고, 해맑게 계속 친한 척이라니... 급기야 혜영이 주는 값비싼 선물을 냉큼 던져버립니다. "넌 내가 우습게 보이니? 아님 이런 식으로 돌려 엿먹이는거니?"

 

 영화를 보면서 두 여교사는 극명히 대비됩니다.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과, 모든 것들 다 누리는 사람의 차이는 실로 컸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사건이 발각됩니다. 혜영이 무용특기생인 재하라는 학생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지는 것을, 효주 선생이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교사로서 더는 참을 수 없습니다. 저 제정신 아닌 것들을 교육시켜주겠어! 울면서 잘못했다고 비는 혜영. 무서운 선배 앞에 딱 걸렸네요.

 

 이후, 재하는 효주가 직접 데리고 다니면서 무용을 배우게 만듭니다. 가뜩이나 빠듯한 월급을 아껴가며 재하에게 투자하는거지요. 재하 아버님은 참 좋은 선생님이라며 효주를 정중히 대우하지만, 재하 이 녀석이 뭔가 이상합니다. 어머님이 안 계시고 힘든 처지라는 자신의 약점을 완전히 역으로 이용하여, 효주의 마음을 얻으려고 하는 셈입니다. 안 그래도 남친마저 집떠난 효주는, 우연한 계기로 제자 재하를 집으로 들이게 되는데... 그렇게 두 사람은 또 한 줄의 막장 스토리라인을 그려넣습니다.

 

 여하튼 재하는 무용 콩쿨에 나가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며 이제 대학으로 가는 길이 열렸습니다. 이 좋은 날 효주는 꽃다발까지 준비해 왔는데, 그만 못 볼 꼴을 보고 맙니다. 재하가 자기를 놔두고, 젊고 예쁜 혜영 선생과 다정하게 놀고 있는 장면을 목격한 것. 영화는 계속 질주하며, 재하는 처음부터 혜영 선생만을 쭉 좋아한 것이고, 효주와는 좋은 척만 하며 만나왔다는 것. 다시 말해 영화 포스터의 문구를 빌려, 혜영은 되고, 나는 안 된다는 거.

 

 효주의 안 되는 인생은 계속 됩니다. 학교에 재계약 공문이 급히 내려오는데, 효주의 이름만 쏙 하고 빠져버렸다는 거에요. 이쯤되면 누구나 압니다. 이사장 딸인 혜영의 뻔한 복수가 칼같이 시행되었다는 것. 혜영은 승부수를 던집니다. 사실이 밝혀지면 난 학교 그만두면 될테고, 다른 일 얼마든지 하면 되고, 효주와 재하도 부적절한 사이인 이상, 사실을 밝힐 수 없음을 혜영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충격의 전개는 이어집니다. 효주는 퇴근하는 혜영의 차를 가로 막은 후, 무릎까지 꿇고, 자신이 잘못했다고, 스스로 기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효주의 이를 악문 생존을 위한 진지함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두 여교사는 친해진 것처럼 위장되어 있지만, 사실은 주종관계가 되어버렸지요. 차 한 잔 내달라고 마치 비서에게 시키듯이 하는 혜영의 마지막 태도가 오만방자의 끝이었다면, 이어지는 대사들은 화를 자초합니다.

 

 "재하 같은 핏덩이 완전 어리지 않아, (놀기에는 좋아도) 그런 애를 사랑할 수 있을리가 없잖아, 그런데 정말 선배는 그 아이를 사랑했어요? 아 피곤해!" - 간만해 보았던 자극적인 마무리라 상당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자신의 삶이 부정당했을 때의 비참한 기분. 그리고, 때마침 폭발하는 머리, 아니 주전자. 모든 것을 편안하게 누려온 혜영은 그렇게 안녕 되었습니다. 또한 자신의 마음을 이용한 재하를 향한 또 하나의 복수이기도 했겠지요.

 

 이 영화는 이렇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삶이 무겁고 힘들게 느껴진다면, 편안하게 살고 있는 누군가가 미워지고 싫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 호오(좋고싫음) 감정은 자연스러울텐데, 그것을 조절하는 것은 자신의 책임도 있다는 것입니다. 효주가 평소 비정규직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라는 사회적 문제도 배경으로 계속 자리 잡았습니다. 출산휴가를 쓰고 교직에 돌아온 선생님의 웃음소리가 교실에 울려퍼진 것과는 선명히 대비되게, 효주는 학생의 휴대폰을 압수하려다가 황당한 욕설이나 듣지 않나... 그런 그녀의 악몽 같은 현실이, 또 다른 악몽을 만든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봤습니다. 좋은 환경에서 일하는 것도 정신건강상 큰 복이 아닐까 싶었네요. / 2017. 03. 12.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