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피케이: 별에서 온 얼간이 (PK, 2014) 리뷰

시북(허지수) 2017. 4. 15. 02:13

 

 인도 영화 세 얼간이는 여전히 마음 속에 남아 있는 훌륭한 명작입니다. 주인공의 남들과 다른 시선과 천재적인 열정으로 살아가길 권하는 것은 참 힘찬 메시지 였지요. 이번 영화 피케이 별에서 온 얼간이 역시 아주 매력적인 영화가 되었습니다. 의심하지 않는 맹목적 종교에 대한 유쾌하고 냉철한 비판이 멋있습니다. 그리고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초점을 선명하게 하는 태도에 반할 것만 같습니다.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을테지요.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기, 사랑하는 시간 - 그 찬란한 시간을 낭비하면서 살아가기 입니다.

 

 영화의 출발은 외계인 남자 한 명이 지구에 탐사하러 온 것에서 시작됩니다. 그런데 오자마자 봉변을 당하고 맙니다. 비행선을 부를 수 있는 리모콘을 첫 날부터 도둑 맞아 버립니다. 지구가 그러고 보면 참 무서운 곳 같습니다. 그리고 알고보면 표준적인 관점을 암암리에 강요하고 있음을 곳곳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이 외계인은 이제 지구에서 피케이(술 취한 녀석)로 불리게 되면서 지구생활을 익혀나갑니다. 그의 눈에 지구란 이상한 점이 있었고, 특히 신에 대한 관점은 정~말 너무 기묘했습니다.

 

 ※이 리뷰는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가득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반드시 주의하세요!

 

 

 처음에는 옷이 없어서 들썩거리는 차량에서 옷을 도둑질 하고, 돈이 부족하다보니까 사원의 헌금통을 노리다가 쫓기는 신세가 되기도 합니다. 잠 잘 곳이 마땅치 않았는데, 때로는 고의적으로 경찰에게 밉보일 짓을 선보여서 감옥에서 비를 피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해야 리모콘을 찾을 수 있을지 막막했을 그 때, 사람들은 한결 같은 답을 하기 시작합니다. "신에게 물어보세요. 답을 주실꺼에요."

 

 사원에 들어가서 고액을 헌금하고, 신에게 리모콘을 돌려달라고 매우 구체적으로 간청했음에도, 돌아오는 것은 내쫓김이었네요. 피케이는 잠깐동안 매우 당황했으나, 신이 다양하다는 소리를 듣고, 다양한 시도를 해보기로 결심합니다. 기독교 교회에도 찾아가보고, 물로 세례를 받기도 하는 등, 답을 찾기 위해서 노력하지요. 나중에는 절망감에 빠져서, 아예 모든 신들에게 기도하기로 작정합니다. 리모콘만 찾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못하랴? 길 위에서 데굴데굴 굴러보는 등 자신의 신앙심을 적극적으로 어필해 보는데도, 신은 너무 침묵모드 입니다.

 

 그래도 피케이는 운 좋은게, 자구 라는 착하고 배려심 있는 아가씨를 만났습니다. 호기심 넘치는 자구는 경찰서 감옥까지 찾아와 피케이의 사연을 취재하려고 하는데요. 그가 외계에서 왔다느니, 6시간만에 힌디어를 익혔다느니, 당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진지하게 늘어놓고 있답니다. 급기야 자구는 정신과를 찾아가보는게 좋겠다는 격려를 해주고 떠납니다. 하지만, 피케이는 놀랍게도 외계인 답게(?) 필살기 하나 정도는 있었으니 바로 손 잡고 마음 읽기가 가능하다는 점, 놀라운 소통 기술입니다. 그리고선, 돈을 급히 구하고 있는 노인의 사례를 정확히 읽어냄으로써 마침내 자구의 신뢰를 얻게 됩니다. 자, 지구에서 사귄 첫 친구라고 봐도 되겠지요.

 

 피케이와 자구가 함께 하는 시간들은 노래 가사로 표현되어 나오는데, 사랑은 함께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라는 대목이 좋았습니다. 이를테면, 함께 거리를 걷고, 음식을 나눠 먹으며, 영화를 시청하는 등 사소해 보이는 것들 속에도 "함께라서" 즐거움이 피어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자구가 슬픔에 빠져 있는 순간이 오는데, 피케이가 자신의 별에서는 동작으로 슬픔을 이겨낸다며, 우주댄스(?)를 가르쳐줍니다. 슬픔에 파묻히기 보다는, 그래도 오늘을 힘내어 보라는 말없는 위로가 신기합니다.

 

 피케이는 우연찮게 시바 신 분장을 하고 있는 사람을 발견하게 됩니다. 드디어 "신과의 만남"이 성사되었던 것이지요. 열심히 추격전이 펼쳐지고, 시바 신을 쫓아가다가 정말 재밌게도 자신의 리모콘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힌두교 사제가 고액을 주고 이 물건을 샀고, 저절로 빛을 내는 신의 도구로 홍보되고 있습니다. 뿔난 피케이는 자신의 것이라 거세게 항의하다가 내쫓기기만 합니다... 거대 종교 집단과 피케이, 자구의 싸움은 험난하네요.

 

 놀랍게도 피케이는 종교에 대해 정면으로 문제제기를 합니다. 예컨대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다는데, 저 멀리 다른 사원으로 가보라는 사제의 견해는 부당하지 않은가, 이것은 잘못된 방법이다 라는 겁니다. 진짜 우리가 신의 자식들이라면, 아픈 이를 곁에서 돌보고 위로하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옳다고 정공법으로 응수합니다. 마찬가지로 길바닥에서 뒹굴뒹굴 구르는 것도 이상하다고 항의하며, 결국 인간이 만들어 낸 종교들이 아니냐고 마침표를 찍어줍니다.

 

 더욱 극적인 것은, 자구가 사랑했던 남친과 재회하게 되는 대목입니다. 훈남 남자친구 사프라즈는 파키스탄 사람이었고, 그러므로 (극단주의) 이슬람을 믿는게 아니냐며, 가족과 사제로부터 오해를 받았지요. 그런데 자세히 알고보니, 정작 국경과 종교를 초월해서 그것도 오래도록 자구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구는 훌륭한 남편을 얻었고, 아버지의 자랑스러운 딸이 되었습니다. 반면에, 편견을 심고, 두려움을 주어, 자신의 건물만 배불리려 했던 사제는 정말 나쁜 인간 되는거지요. 피케이는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마무리는 꽤 슬픕니다. 피케이는 자구를 좋아했거든요. 지구에서 거짓말 하는 방법을 마침내 익혔습니다. 그래서 당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며 억지 이야기를 해가며 눈물로 지구를 떠납니다. 하지만 그가 가르쳐준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될 것입니다. 최대한 정직하게 살아갈 것, 신을 찾아보라는 소리가 들리면 바로 떠나버릴 것!

 

 반전일 수 있으나, 실은 저는 개신교인 입니다. 이런 은유적 표현들이 있습니다. 신은 인류에게 물질적 평등을 끝내 주진 못했으나, 시간적 평등은 줄 수 있었다. 누구에게나 같은 시간이 주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인간관계를 통해 낭비할 때, 의미를 찾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의 침묵에 대해서는, 제가 무지한 탓에 별로 알지 못합니다. 다만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인간은 동물과는 다르며, 사람을 우선적으로 소중하게 대해야 한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화는 신이 해결해 줄 것이라고, 막연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보다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시간을 행복으로 채워갈 것을 주문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피케이는 사랑했던 자구의 목소리를 담아놓으려 했을테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라도 행복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의 표현을 빌려, (시간을 선물 받은) 신의 사랑스러운 자식들이기 때문에.

 

 삶의 어느 순간에, 우리는 적극적으로 시간을 낭비해도 괜찮지 않을까, 때로는 그런 시간들이 살아가는데 있어 뜻밖에 유익할 수 있다는 표현을 기억합니다. 저는 그런 위로에 의지해, 영화를 껴안으며 살아가는 시간들이 참 좋습니다. 오늘 리뷰는 딱 여기까지 쓸 수 있겠네요. 이쯤이 오늘의 제 한계인 것 같습니다. 하하. / 2017. 04. 15.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