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만화·애니

유리가면 2 감상문

시북(허지수) 2020. 5. 20. 00:54

 

 헤르만 헤세는 인생의 특별함에 대해서 귀중한 지혜를 남겼습니다.

 

 중요한 일은 다만 자기에게 지금 부여된 길을

 한결같이 똑바로 나아가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의 길과 비교하거나 하지 않는 것이다.

 

 유리가면의 마야를 보면서 감동도 하고, 위안을 받는 것은 다른 선택을 과감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2권에서는 극단에 입단한 후, 역할을 연습하는 장면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제가 주목했던 지점은, 마야는 관점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가령 웃어보라는 말에, 다들 배를 잡고 시늉으로 하하하 웃지만 그녀는 다르게 행동합니다. 못을 밟았다고 상상해 보라고 하자, 또 혼자 특이하게 행동해서 선생님께 야단을 맞습니다. 교육이라는 것은 조금 색다르게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잠시 어록을 빌려와, 수잔 제퍼스 박사는 이렇게 주장한 바 있습니다.

 

 우리는 부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현실적이고,

 긍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믿게끔 교육받았다.

 

 제 사례로는 벌써 20년 전의 일입니다만, 아직도 또렷히 기억나는 야학시절의 동 선생님. 학교에서 가르치는 지식이란, 시대에 따라 변하기도 하므로 그것을 절대적인 지식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고 거침없는 젊음의 열정을 보여주셨지요. 제 은사님께서도 과학적 이라는 말이 변할 수 있음을 자주 언급하십니다. 얼마 전 라디오에서도 재밌게 밝혀졌지만, 예전 시대에는 의사의 손 씻기가 중요하다는 관점이 "미친 거 아냐?" 라고 공격받기도 했답니다. 저는 읽고 있는 브레네 브라운 박사님의 의견을 빌려, 자신에 대해서 다정하게 말하고, 따뜻하게 대하며, 사랑하며 아끼는 것은 정말 귀중하다고 말하겠습니다.

 

 자신만의 독특한 연기 스타일이 흑부인 선생에게 눈에 띄고, 라이벌 아유미와의 연기대결도 능숙하게 해내자, 마야는 단번에 주연 역할을 따냅니다. 작은 아씨들 중 한 명을 맡게 됩니다. 그리고 등장하는 마야의 독백은, 정말 멋진 대사 입니다.

 

 "지금까지는 TV나 영화를 그냥 재미있게만 봤는데...

 연기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구나..."

 

 저는 마찬가지의 경험이 있습니다. 글을 읽기는 쉽지만, 글을 쓰기란 어렵습니다. 음악을 듣기란 쉽지만, 제대로 연주해내기란 어렵습니다. 동호회에 소속되어 있기란 간단하지만, 동호회를 이끌어 가기란 마음먹은대로 되지 않습니다. 아아... 어떻게 잘 해낼 수 있단 말인가요! 제가 생각하는 한 가지 답을 던져본다면 "자신을 잊자" 입니다. 나쓰메 소세키의 창작 메모를 언급하면 좋겠지요.

 

 천하에 무엇이 약이 되느냐 하면 자기를 잊는 것보다 마음 편한 것은 없고 무아지경보다 기쁜 것은 없다.

 예술 작품이 소중한 것은 황홀하여 한순간이라도 자신을 잊고 자타의 구별을 잊어버리게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마야의 정말 멋진 유리가면 명대사를 덧붙이면 너무 잘 어울립니다.

 

 "이상한 일이지...

 이러고 있노라면 모든 것을 잊게 되고 마음이 차분해져...

 내 서툰 연기도, 베스의 역할에 대한 것도...

 지금까지 너무 안간힘을 쓰고 있었던 게 아닐까?"

 

 나는 잘해야 된다는, 탈락하지 않게 열심히 해야 된다는 중압감을 벗어 던지고,

 그저 주어진 역할 (혹은 사명) 베스처럼 한땀 한땀 뜨개질 하고, 고양이랑 놀고, 집안일 하며 지내는 일주일.

 그것이 마야에게 인생의 귀중한 진실을 알려줍니다. 예술은 우리 인생의 멋진 선물이라는 점. 저는 이 대목이 너무 좋습니다.

 좋은 책, 좋은 영화, 뭐... 어쩌면 좋은 만화면 어떻습니까. 사는 것은 고단한 일이 많습니다. 항상 미소 지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우리에게 좋아하는 일이 있다면 좋겠습니다.

 

 행복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누리고 있는 극중의 마스미가 무척 담담하게 표현합니다.

 

 "정열을 쏟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건 행복한 거야.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집을 나오면서까지 자신의 정열대로 살 수 있다는 것...

 내겐 금지되었던 삶이야. (소년 시절 부터...)"

 

 그렇게 관점을 옮겨놓고 보니 저도 많이 행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공했든, 실패했든,

 동호회를 운영하면서 좋은 분들과 함께 교류하면서 지내어 그 기쁨이 소중하여, 감사를 저절로 하게 됩니다.

 블로그는 적어도 시간당 10명, 하루 300명씩 오니까, 이만하면 그래도 긴 세월 노력했었구나 조금은 칭찬을 해주고 싶습니다.

 

 드디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작은 아씨들의 공연은 시작되는데... 아뿔싸, 정신을 차려보니 2권이 끝났습니다.

 사놓은 3권의 밀봉을 조금 쉬었다가 또 뜯어봐야 겠군요. 어쩌면 유리가면은 조금 나이 들어서 봐도 좋은 것 같습니다.

 열정이란 그냥 치열하게 달려드는 것이 전부가 아니니까요. 행복이란 많이 가진다고 해서 저절로 찾아오는 것도 아니니까요.

 

 힘을 빼고, 주어진 일을 그저 하루하루 담담하게 살아내는 그 인내 속에 위대한 일이 있지 않을까,

 영국 시인 새뮤얼 존슨의 표현을 빌려서 마무리 해봤습니다. 너무 재밌게 봐서, 너무 길게 쓰고 말았네요!

 추천해주신 동호회 babobyb님께 감사의 마음을 함께 담아.

 - 2020. 05. 20. 만화가 좋은 시북 (허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