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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이 소돔을 떠나다 (창세기19:1-16)

 

롯과 소돔에 관한 기사는 우리가 매우 자주 설교나 이야기로 접했기 때문에 잘 알고 있는 기사입니다. 제가 성지순례는 해보지 못했는데 그 동네에 가면 롯의 아내가 변했다는 소금기둥이 있다면서요?

 

참, 그게 정말이라면 진짜로 말도 안되는 기적이겠지만 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소금기둥이 롯의 아내일 수는 없습니다. 뭐 어쨌든 그 나라 관광산업에 보탬도 되고 우리네 신앙에도 보탬이 되니까 그냥 그 소금기둥이 롯의 아내라고 합시다. 진리는 저너머에 있지만 그 기둥을 보면서 롯의 아내를 교훈삼는다면 우리에게는 절대로 손해가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 제가 이 본문을 다시금 살펴보려는 이유는 소돔의 실패를 교훈 삼아 이 땅에서 우리 성도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다시 살펴보며 우리의 각오를 다시 한번 더 다지기 위함입니다.

 

1.롯이 천사를 영접하다

마므레 상수리나무아래 살고 있던 아브라함에게 대접을 잘 받은 천사들은 이제 원래의 목적지인 소돔에 도착했습니다. 의도적이었는지 아닌지 천사들이 소돔에 도착했을 때는 마침 저녁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롯이 성문에 앉아 있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며 이르되 내 주여 돌이켜 종의 집으로 들어와 발을 씻고 주무시고 일찍이 일어나 갈 길을 가소서”

 

성경 본문에는 마침 롯이 성문에 앉아 있다가 라고 했는데 롯이 성문에 앉았던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나그네를 자기 집으로 모시고 가서 유숙케 하려는 목적입니다. 일단 그렇게 생각합시다. 아무리 당시 풍습이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을 선행의 으뜸으로 쳤다고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나그네를 대접한다는 것은 솔직히 의인이 아니라면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구절을 읽으면서 뭔가 비슷한 상황이 생각납니다. 바로 앞장인 18장에서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날이 뜨거울 때에 그가 장막문에 앉아 있다가 눈을 들어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이르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시옵고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에서 쉬소서...당신들의 마음을 상쾌하게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참 삼촌과 조카가 하는 행동이 똑 같습니다. 그냥 나그네를 영접하는게 아니라 머리를 땅에 숙여 절하며 그들에게 가장 극진한 자세로 자기의 집으로 청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성도의 겸손과 사랑을 봅니다.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려고 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혹시라도 나그네가 미안해 할까봐서 ’저렇게까지 간청하는데 내가 저 집에 가줘야지‘라는 생각을 품게 하는 정도로 극진하게 간청하는 모습이 예수께서 선을 적극적으로 행하라고 하신 모습과 일치합니다.

 

롯의 이런 행동은 아브라함과 롯이 함께 하란을 떠나서 가나안으로 왔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선택받은 자로서의 당연한 행동양식이랄 수 있습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간 택자였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다르게 생각하면 롯이 아브라함과 헤어지고 따로 산지가 제법 오래 되었지만 손님을 맞이하는 풍습은 여전히 지키고 있다는 것이 한편 기특하고 놀랍기도 합니다.

성도의 기본을 잊지 않았다고 봅시다.

 

그도 그럴 것이 소돔은 죄악이 너무나 관영해서 하나님이 심판하시려고 천사를 보내어서 현장실사를 할 정도로 악한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옛말에 근묵자흑이라고 죄악의 도성에서 살면서도 여전히 선한 마음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 기특하고 신기하기도 합니다. 아니면 신통방통하다고 할까요?

 

솔직히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힐’ 필요까지는 없지 않을까요? 그냥 나그네에게 가서 웃으며 자기 집으로 청하면 족할 것 같은데 이들의 손님을 청하는 자세는 지극히 공손해서 오히려 당황스러울 정도입니다.

 

롯의 청함을 받은 천사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라 우리가 거리에서 밤을 새우리라”

롯은 처음 이들이 천사인줄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천사들의 대답을 듣고는 더 ‘간청’해서 자기의 집으로 초대합니다.

 

왜 롯이 천사의 말을 듣고 간청해서 자기의 집으로 초대했겠습니까? 거리에서 자다가 정말이지 큰일 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소돔의 거리는 밤에 엄청나게 위험하고 무섭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들이 거리에서 밤을 새우다가는 정말이지 큰 봉변을 당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요, 감사한 일입니다. 성도 롯은 죄악의 도성에 살면서도 자기의 근본, 하나님을 잊지는 않았습니다. 성도가 지켜야 할 본분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확실히 그는 소돔성 사람과는 다릅니다. 그는 소돔에 살았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나라, 천성 백성이었습니다.

 

2.가만 있으면 물든다

천사를 집으로 초대한 롯은, 이것 참 겨우 무교병을 굽습니다. 무교병을 구운 이유를 한번 생각해본다면 이들을 위하여 발효된 반죽이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평소에 자기들이 먹는 빵을 먹으려면 발효가 되어야 하는데 롯의 집에서는 정확하게 그날 먹을 사람들의 분량대로만 반죽을 준비한 모양입니다.

 

이런걸 보면 평소에 롯이 손님을 접대하는 일이 잘 없었던 모양입니다. 아브라함의 경우에는 18:7에서 “아브라함이 또 가축 떼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잡아 하인에게 주니 그가 급히 요리한지라”

 

그러니까 여기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는 불시에 올지 모르는 손님을 접대하려고 키우는 송아지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과 롯의 기본적인 문화는 똑 같습니다. 나그네를 제집에 초대해서 대접하는 그런 방향은 같지만 롯은 워낙 손님이 안와서 그런지 손님이 불시에 들이닥칠걸 대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처럼 진수성찬을 대접한게 아니라 부랴 부랴 발효도 되지 않는 무교병을 대접하는 겁니다.

 

아브라함은 낮에 대접해서 송아지를 잡는게 가능했지만 롯은 저녁이라서 그게 어려웠다고요? 천만에요. 당시 가나안 원주민이나 아람인들도 점심은 먹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도 점심을 먹은지 얼마 안됩니다.

 

점심은 왕이나 대부호의 사치스런 풍습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점심을 대접한다는 건 그리고 그 정도로 화려하게 대접한다는 건 왕의 궁정에서나 가능하지 일반 평민들은 택도 없는 건데도 아브라함의 손님 대접이 이 정도네요.

 

그래서 둘다 갑자기 손님을 접대하는 것은 똑같습니다. 단지 아브라함은 손님을 대접하기위한 준비를 평소에 하고 있었고 롯은 그렇지 않다는 차이만 있습니다.

 

롯을 약간 변호하자면 소돔을 찾는 이들은 선한이가 없고 그래서 소돔의 밤거리의 환락을 그리워해서 민간의 건전한 집에서 묵는걸 안 좋아했기에 롯이 설마 손님이 자기의 초대를 받아 들일거라고 평소에 생각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조상의 관습대로 손님을 대접하고는 싶어도 워낙에 손님이 그 대접과 초대를 받아 들이지 않았다? 않아 왔었다 정도로 봅시다.

 

문제는 이게 아닙니다.

뭡니까?

차마 교회에서 하기 어려운 민망한 장면이 나옵니다.

“그들이 눕기 전에 그 성 사람 곧 소돔 백성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이 사람들 뭐하려고 모였나하면 더러운 음욕을 채우려고 모인겁니다. 그것도 남색의 욕정.

 

몇일 전에 기사를 보니까 기독교 단체를 표방한 곳들에서 “예수도 소수자다”같은 이상한 소리를 하던데 이런 것들이 기독교를 팔다니 정말이지 말세이기는 한 모양입니다.

 

저는 예수님이 사회의 기득권에 도전하는 그래서 ‘소수자’라고 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게이라는 뜻이랍니다. 이 ............... 하나님이 갚아 주실 것입니다.

 

소돔이 그래서 소돔이지요. 우리가 다 잘아는 말이기는 합니다. 자, 여기서 제가 강조하고 싶은게 있습니다.

 

롯이 뭐라고 합니까?

“내게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하건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 내리니 너희 눈에 좋을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일도 저지르지 말라”

 

큰 악을 저지하기위해 더 황당한 답변을 하는 롯을 보고 우리는 풍습, 아니면 문화, 아니면 분위기가 정말이지 무섭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 롯은 천성을 떠나 인간 세상에서 살면서 정말이지 더러운 물이 들었습니다.

 

자기의 딸을 윤간당하도록 내어 주겠다는, 진짜로 말도 안되는 발상을 한다는게 정말이지 무섭습니다. 아마 롯은 손님을 보호한다는 대의를 생각했겠지만 그건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악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 살면 이런 분위기가 낯설겁니다. 그러나 죄악의 도성에서 살면서 저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지 못하고 있다가는

우리도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저들처럼

우리의 죄의식, 윤리의식, 도덕관념이 낮아 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는 주변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싸워야 합니다.

 

그냥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의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듯한 사람으로 아무런 영향력도 없이 지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서의 표시를 꼭 내야 합니다. 물을 들이지 못하면 물이 듭니다.

 

가까운 예로 이런거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바깥에서 아이들끼리 놀고 들어온 자녀가 세상 아이들처럼 욕이 입에 붙어서 자기도 모르게 욕을 한다는거. 이게 그처럼 쉽게 전염되는 겁니다. 바른말 고운말은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겨우 할 수 있는데 반해 욕은 정말이지 쉽게 입에 붙게 됩니다. 그래서 악의 전염성은 코로나보다 열배나 더합니다.

 

그러므로 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리고 멀리해야 합니다. 악을 멸하고 선을 세울 각오로 싸우는 겁니다. 이길 자신이 없다면 아예 악을 멀리 하십시오.

 

3.심판하지 않으면 심판당한다

롯의 제안은 정말이지 패륜의 극치이지요? 그런데 소돔사람들의 대답은 상상을 넘어섭니다. 9절에 “그들이 이르되 너는 물러나라 또 이르되 이자가 들어와서 거류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 이제 우리가 그들보다 너를 더 해하리라 하고 롯을 밀치며 가까이 가서 그 문을 부수려고 하는지라”

 

이 말을 언뜻보면 롯이 판사도 아닌데 판사인 척하고 나서는 것처럼 들리지만 아닙니다. 롯의 직업은 판사입니다. 1절에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다가”라는 말이 바로 그의 직장을 말하는 겁니다. 제가 처음에 일단은 그렇게 생각하자고 말씀드렸지만 아마 그 동네의 판사는 돌아가면서 날을 정해서 재판하는 걸까요? 그래서 마침.

 

판사는 성문 앞 광장에 앉아 있다가 소송을 하러 오는자를 재판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롯이 손님접대를 위해서 일부러 성문앞 광장에 갔다는 말이 아니라 그가 평소의 근무시간처럼 아침부터 저녁까지 성문 앞에 앉아 재판을 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저녁이 되어서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가려고 하다가 천사들을 만났다고 보면 됩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말합니까? 그리고 판사인걸 아는데도 이렇게 거칠게 대한다고요? 법이 무섭지 않답니까?

 

소돔인들의 말을 다시 제대로 번역하면 이런 뜻입니다. “네가 낮에는 판사라도 직장에서 돌아온 밤까지 판사질을 하려느냐?” 맞는 말 같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롯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말도 됩니다.

 

이들은 지금 범죄를 저지르려고 하고있는 중인데도 법을 두려워하지 않는 겁니다. 왜냐면 이 범죄에 온 소돔의 죄인들이 가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보면 롯을 두려워하는 이도 롯의 편을 드는 이도 없습니다.

 

이건 롯의 잘못입니다. 그가 판사로서 소돔의 풍속을 교화하고 사람을 계도할 책임이 있었음에도 그가 제대로 그에게 주어진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 그가 이렇게 위기에 처하게 된 겁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소돔의 멸망에 하나님의 성도가 책임을 질 일이 있다는 겁니다. 그는 판사였습니다. 하나님의 정의로 그가 평소에 판단했다면 그래서 사람들 가운데 정의를 지키지 않으면 손해가 있다고 그래서 정의를 세워야 한다는 마음이 들게 했다면 오늘의 위기는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남색에 미쳐 광란하는 밤을 만든 책임이 일부는 그에게도 있는 겁니다. 그래서 그에게 위기가 닥친 겁니다.

 

그들은 아마 몰랐을 겁니다. 그들이 저지른 그 패악이 소돔이 멸망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걷어찬 것임을.

 

그래요, 심판하지 않으면 심판당하는 법입니다. 악은 수동적으로 방어해서는 답이 없고 선제적으로 공격해서 굴복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악에 우세한 가운데서 악에게 우세를 점하면서 여유있게 상대하다가 궁극적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악하기 때문에 악이 내 마음속에서 깨어나기 전에 먼저 그싹을 잘라버려야 하지 일단 그게 내 마음에서 싹을 틔운다면 그 다음부터 죄악의 유혹을 이겨낸다는건 정말이지 어렵습니다.

 

4.영향력이 없는 그리스도인

천사들은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서 직접 개입해서 롯을 구합니다. 그리고 이제 소돔을 멸망시키기 전에 하나님이 자기에게 시킨 일을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시키신 일은 소돔성에 유일한 롯의 가족을 구원하는 겁니다.

 

제가 언젠가 말씀드렸다시피 소돔과 고모라는 소알까지 모두 다섯 개의 도시국가가 만든 연맹국가입니다. 우리가 소돔과 고모라 라고 말하지만 나머지 세 개의 도시도 더 있습니다. 적어도 다섯 개의 성과 그 인근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이 멸하지 않기로 작정하신 가정이 겨우 한가정이라는 건 정말이지 할 말이 없는 일입니다.

 

이것도 역시 롯의 잘못입니다.

12절에 “그 사람들이 롯에게 이르되 이 외에 네게 속한 자가 또 있느냐 네 사위나 자녀나 성 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 밖으로 이끌어 내라”

 

천사는 지금 롯의 일가와 권속들을 모두 이끌어서 이 성을 빠져나가야 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에게 연락해서 성을 빠져나가려고 합니다.

 

음, 사람이 너무 많아서 탈출한 시간이 부족해야 합니다. 분명하게 롯은 아브라함에 필적할 세력을 가졌었고 서로 경쟁하는 사이였으며 부족을 이끌고 소돔에 귀화해서 판사직까지 맡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혼자서 소돔에 온게 아닙니다. 히브리 부족을 이끌고 온 겁니다. 그러니 당연히 그 성에서 탈출할 때에도 저들을 데리고 가야 합니다.

 

당시에는 나라의 인구를 늘리기위해서 부족을 이끌고 성에 정착하러 오는 이들에게는 높은 벼슬과 많은 재화를 주었답니다. 롯과 히브리 부족의 정착이 그래서 가능한 겁니다.

 

그런데 보세요. 14절에 롯은 그 사람들에게 가지 않습니다. 겨우 아는 사람이라곤 사위들 밖에 없는 모양입니다. 아마 사위 후보겠지요? 정혼자들.

 

그런데 이 사위들은 롯의 말을 농담으로 여겼답니다.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

 

롯은 혼자서만 성도로서의 삶을 유지했지 전혀 소돔성에서 하나님의 성도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판사의 직에 있었지만 전혀 소돔의 악을 하나님의 공의로 심판하지 않았습니다.

 

않았는지 못했는지. 그러다가 결정적으로 예비 사위들, 딸의 정혼자들조차도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는 걸 보면 그의 영향력이 얼마나 형편없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아니면 사람보는 눈이 지독히도 없던가, 둘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사위들의 이런 태도는 평소에 롯의 가진 신뢰도가 그렇게 높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해 줍니다. 평소에도 싱겁하게 헛소리도 잘하고 농담도 잘하니까 그렇게 여긴게 아닐까요? 아니면 거짓말을 제법 했거나? ‘우리 장인어른은 어떤일이 있어도 거짓말은 안한다 ’ 이렇게 신뢰를 주지는 못한 모양입니다.

 

요즘 같은 세상이 아닙니다. 충분히 인간은 신을 두려워하고 신의 벌도 믿고 그런 세상입니다. 그래서 충분히 신의 심판이 먹히는 그런 시절입니다. 그런데도 다른 사람도 아니고 사위들이 장인의 말을 농담으로 여기고 성밖으로 나갈 것을 거부했다는 것은 롯의 삶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롯의 집안이 성밖으로 나간다면, 나중에는 거짓으로 밝혀질 값에 정혼자들과 헤어지는게 싫어서라도 뭔가 후속 조치가 있을법도 한데 그것도 없습니다. 그걸 보면 롯은 사람보는 눈도 형편없었던 모양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히브리 부족의 주도권을 놓고 삼촌 아브라함과 다투던 그 패기는 어디 갔는지 이 사람은 누가 자기를 위하는지 누가 자기를 이용하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성도는 오늘 이런 것을 똑바로 직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결코 세상사람들로부터 이해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구제비로 돈을 내어놓으면 잘한다 잘한다 하던 이들도 하나님의 도에 입각해서 그건 잘못되었다고 저들의 이익과 향락을 막아 치우는 순간에 대적이 될 수 있습니다.

 

누가 내편인지 누가 나의 적인지를 제대로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누가 의의 편에 있는지 누가 악의 주구인지 제대로 봐야 합니다. 우리를 간섭하고 괴롭히고 귀찮게 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의 보호와 인도자가 되시며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시려고 법을 선포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큰그림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는 우리 어깨에 멍에를 제거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우리가 충분히 질 수 있는 멍에만을 지게 하십니다. 아무리 적은 멍에라도 지기 싫지요? 그러나 그렇게 되면 죄성이 가득한 인간은 하나님의 길을 떠나서 자행자지하며 자기의 이익과 쾌락을 위해 다른 길로 가며 죄악을 저질러서 결국은 영멸에 처해질 수 밖에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5.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

아주 제가 좋아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보면 볼수록 진리입니다. 자기를 먼저 닦고 다음은 가정을 제대로 이끄는 겁니다. 그러고 나야 비로소 나라도 생각하고 공동체도 생각하고 민족도 생각할 수 있겠지요? 나라를 먹어야 천하를 향해서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롯을 보세요.

 

한때 히브리족의 지도권을 놓고 아브라함과 대립했다가 아브라함의 휘하에서 살기 싫어서 비옥한 소돔들에 가서 그곳에 거한 족장 롯은 멸망할 소돔의 덧없는 판사직을 받고 살다가 아무에게도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심지어 자기가 데리고 갔던 부족민들까지 죄악에 물들게 만들고 초라하게 자기 가족들만을 데리고 성을 탈출했습니다.

 

그런데 자기의 아내가 뒤를 돌아보다가 그만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26절에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왜 뒤를 돌아 보았을까요? 하나님의 명령에 마음속으로부터 순복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하나님이 내가 돌아보는지 아닌지 모르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그녀는 하나님을 경시한 겁니다. 만홀히 여긴 거지요.

 

또 하나는 두고 온 것에 대한 미련일 수 있습니다. 집과 가재도구는 들고 도망가지 못합니다. 소돔으로 정착하면서 왕으로부터 받았던 귀중품을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아름다운 집을 다시는 보지 못한다는 미련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실패했습니다. 죄악된 세상과의 절연이 바로 하나님 나라 백성의 첫 번째 요건입니다.

 

17절에 보면 천사는 말합니다.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 이 말을 들을 때는 그들이 막 소돔성을 탈출하고난 직후입니다.

 

보통 때가 아니라 위기의 순간에 한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롯의 아내는 그 말을 우습게 여기고 뒤를 돌아보았고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더 큰 비극의

씨앗이 뿌려지게 된 겁니다. 아무리 중요하다고, 지금이 고비라고 해도 말 안듣는 사람은 절대로 안 듣습니다. 지독합니다.

 

정상적이지 못한 가정은 정상적이지 못한 비극을 잉태할 좋은 환경이 됩니다. 그러므로 좋은 가정이 참 중요합니다. 우리 가정에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제일로 둔다면 나머지를 다 주실겁니다. 이건 제 말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이니까 확실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법으로 정하고 그에 따라서 운영되는 가정이야말로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는 성도 가정의 원칙이 됩니다. 가정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구현되는 겁니다. 그런 가정이 모인 하나님의 나라 교회가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 되는 겁니다.

 

우리는 세상으로 파송받은 하나님의 성도이자 세상의 악과 싸우는 믿음의 용사들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을 전진기지로 삼아서 이곳을 지킬 뿐만 아니라 여기를 기점으로 세상에 대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이 바로 전진기지가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기위한 전진기지!

 

그런데 우리가 우리를 보내신 하나님이 요구하는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다면 악이 오히려 우리를 물들이고 우리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넘어뜨리려고 덤빌 것입니다.

 

교회는 교횐데 더 이상 전진기지 역할을 할 수 없는 곳, 아무런 빛이 없어서 세상과 똑같이 칠흑같은 어두움만 있는 곳, 맛을 잃은 돌소금들이 길가에 버려진 무더기! 그래서 심판해야 할 세상으로부터 조롱받고 심판받고 밟히는 쓰레기더미!

 

우리는 절대로 우리에게 주어진 역할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주어진 역할을 포기하는 순간 우리는 오히려 악에게 정복당하고 악에게 동화되어 맛을 잃은 소금과 불이 꺼진 그래서 빛대신 어둠만 남은 빈등잔이 될 뿐입니다.

 

하나님은 이제 촛대를 옮기시고 은총을 거두려 하십니다. 그래서 이런 일을 하시기 전에 롯에게 한번 경고를 하셨습니다. 북방연맹군이 그돌라오멜 왕의 주도로 쳐들어 왔을 때 소돔과 고모라의 연합군이 몰리고 롯이 포로로 끌려갔을 때 아브라함이 저를 되찾고 재산을 돌려 주었을 때 롯은 또 한번의 기회를 얻었던 것입니다.

 

지나고 나면 “아 그때 그랬더라면!” 하고 우리가 후회할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기도한다고 말로만 하고서 하나님의 능력을 제대로 믿지 않았던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제대로 기도하지 않았던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사물의 본질도 사람도 세상도 제대로 보지 못했던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가령 롯의 제안을 거절하고 농담으로만 여겼던 사위들을 생각해봅시다. 저들은 롯이 두 딸을 데리고 성을 나가는 것을 보고 비웃었을 것입니다.

집도 재화도 두고 어쩌면 가지 않으려 하는 노비도 두고 몸만 나가는 롯의 가족들이 웃겼겠지요? 그리고 저런 사람의 사위가 되지 않아서 정말이지 다행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히브리인 족장 출신의 부자 그리고 소돔성의 판사라는 직책과 명예 이런것 때문에 롯의 딸과 정혼 했다면 이제 소돔을 빈손으로 떠나는 롯을 보고 저들은 이 세상이 주는 부와 향락을 더 중시했기에 파혼을 오히려 반겼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불비가 쏟아지고 소돔과 고모라 세상이 무너지는 그 순간에 그는 롯의 제의를 거부한 것을 엄청나게 후회했을 것입니다. “내가 그때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를 따라 소돔을 나갔을걸!‘

 

후회가 아무리 빨라도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소돔과 함께 멸망해 버렸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매 순간 순간 후회하지 않는 선택을 위해서 신중해 집니다. 우리앞엔 항상 선택의 순간들이 닥쳐오기 때문이지요. 말이 쉽지 신이 아닌 인간이 무엇을 선택해야 후회하지 않을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래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물어 보아야 합니다 . 어떻게 물어 봅니까? 기도. 기도외에는 답이 없습니다. 기도가 제일 먼저 있어야 합니다.

 

제가 잘 사용하는 한가지 비결이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이를 팁이라고 부르지만 이 비밀은 아주 간단합니다. 사건에서 한발짝 떨어져서 사건을 보라는 겁니다. 마치 내가 이해당사자인양 관계자인양 흥분하지 말고 하나님의 시각으로 사물과 사건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내려놓아야 합니다.

 

두 번째는 그 사건이나 사물을 보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이 가장 정확하다는 겁니다. ‘잘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이게 아니고 저게 맞을거야!’라는 생각이 들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확실히 어느게 정답인지 알 수 없다면 제일 먼저 든 생각이 가장 정확합니다.

 

우리가 시험칠 때 정말 이런 경험이 많았을 것입니다. 처음 느낌 그대로.

 

세 번째는 선택한 일이 잘 진행이 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건 아니라고 하시는 걸 수가 있다는 겁니다. 일을 진행함에 있어 뭔가 자꾸 빠지고 잘못되고 어긋나고 이러면 그건 하나님이 우리의 결정을 옳게 여기시지 않는 것일 수 있다는 겁니다.

 

물론 이건 순전히 저의 경우에 해당되는 말이고 전혀 성경적이지는 않습니다. 성경적인 근거는 없습니다. 성경은 처세술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렇다고 비성경적이지도 않습니다. 전혀 얼토당토없이 무근거는 아닙니다. 그건 다음에 따로 시간을 내서 말씀드립니다.

 

사람들마다 기도하면서 받는 은사가 있습니다. 어떤이는 꿈으로 어떤이는 말씀으로 어떤이는 마음으로 어떤이는 여건으로 주위 환경으로 다른이를 통하여 직접 말씀으로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나님은 자기의 결정을 우리에게 알려 주십니다. 그건 우리네 마음이 성령의 감동으로 말미암아 깨어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아무리 무슨 징조가 우리에게 다가와서 알려주려고 해도, 바로 잡으려해도 우리가 하나님의 신호에 집중하지 않는다면 다 헛된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집중해야 합니다. 성령의 역사에 집중하고 기도와 말씀에 집중하고 하나님과의 교제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럴려면 제일 먼저 일만 악의 근원이 되는 욕심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그것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그리고 복잡한 세상에서 욕심을 버리고 고요한 가운데 세상과 격리해서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성령님께서 주시는 신호를 알아 차릴 수가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성도라고 특별히 세상 사람과 다른건 아닙니다. 애초에 하나님이 인간을 그렇게 만드시지도 않았겠지요. 그래서 성도가 특별한게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방향이 잘못된 것 뿐입니다.

 

성도는 원래의 자리에 그대로 있고 세상 사람들이 약간씩 엇나간 거지요. 사탄의 유혹에 빠져서.

 

사람의 본성은 뭡니까? 자기중심, 자기 우선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그걸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지 않고 멀리 보고 판단하는 지혜가 있다고 하는 것하고 이웃의 비참함을 차마 보지 못한다는 마음 두가지 정도가 약간 강하게 남아 있다고 보면 됩니다.

 

세상 사람은 사회를 보지 않고 자기만을 보다 보면 결국 자기 자신도, 자기 가정도 살 수 없는 지옥으로 변한다는걸 일부러 생각하지 않는 겁니다. 무한 경쟁과 투쟁의 사회에서는 사람이 살기 어렵습니다. 무한경쟁의 끝은 공멸이요 지옥입니다.

 

제가 요즘 특별한 병이 없는 노인분들을 보면 존경심이 막 들어요. 이렇게 환경이, 먹거리가 오염되고 경쟁이 심화되고 각종 사건사고가 많은 이 시대에서 용케도 지금까지 살아 남았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경쟁에서 승리한 거니까 충분히 존경을 받을만합니다.

 

산업 쓰레기를 30% 섞어서 만드는 발암 시멘트에 일본 원자로에서 나온 방사능이 섞인 발암물에 그걸 먹고 사는 발암 생선에 발암 공기에 발암 스트레스에 광우병까지도 가져오는 발암 고기를 먹고서도 비교적 건강하게 살아남았다는 것은 그 어떤 경쟁에서의 승리보다 더 귀중한 겁니다. 그러니 스스로에게도 상을 줄만하고 자부심을 가져도 됩니다.

 

게다가 코로나까지. 정말이지 어려운 난코스를 돌파한 겁니다. 이게 하나님의 은혜지 뭡니까? 그러니 제발 우리들끼리는 서로 사랑하고 양보하고 여유있게 남도 배려하고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환경이 우리를 공격하는 비상한 시기에 우리끼리라도 마음편하게 해 줍시다.

 

세상이 온갖 위험과 스트레스 유발요인으로 가득한데 가정만이라도, 부부와 부모자식간이라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교회만이라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 험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위로와 교인들의 위안을 얻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도는 한사람 한사람이 하나님의 나라를 대표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귀중한 용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싸워야 합니다.

 

조용히 있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미덕이 아닙니다. 지금은 비상시국입니다. 그러므로 비상하게 처신해야 합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이 아니요 영적인 싸움이지요? 우리의 영은 기도에 반응합니다. 우리의 영은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나온 겁니다.

 

하나님과의 영교가 끊기면 성도가 힘을 공급받지 못하고 고립되고 지치고 힘들어서 결국은 포기하고 전진기지가 폐쇄되고 촛대가 옮겨지고....

 

그렇게 되기 전에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을 활성화시키고 그러려면 새로운 힘을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공급받아야 하고 그러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 기도 기도. 우리의 처음과 나중은 기도입니다. 기도합시다.

 

- 홍종일 목사님 2020년 7월 26일 주일 설교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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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누리교회는 가정교회 운동, 가난한 이웃을 섬기는 운동, 쉼을 소중히 하는 운동 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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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올린이의 이야기 (시북의 이야기)

 

알려진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잘못되었다 라고 소리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궁금증을 가진 사람이 어느 날 다가와서 묻습니다. 왜 당신은 혼자 독특한 이야기를 하는가?

대답이 기억에 남습니다. 내가 소리 치는 이유는, 세상에 물들지 않기 위해서다.

 

하나님을 위해 시간을 준비하는 삶.

작은 실천이지만, 하나님의 응답을 듣는 멋진 일들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 2020. 시북 (허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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