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를 따르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자들아
이사야51:1-6
벌써 새해를 맞이한지도 세 번째 주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새해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크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가정내 대기를 하는 입장에서 뭔가 새로울게 없기 때문입니다.
보통 새해는 희망과 변화를 기대하게 합니다. 뭔가 새해에는 좋은 일들이 많이 생길 것 같고 우리에게 아주 좋게 환경이 변할 것 같아서 기대가 됩니다. ‘희망찬 새해’라는 말은 우리가 잘 사용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새해의 희망이 코로나 때문에 지금 순연되고 있습니다. 연기가 되는 것이지요.
취소가 아니고 연기니까 틀림없이 시일이 지나면 희망찬 일들이 많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래요, 집안에서 가만히 세월을 보내면 틀림없이 옛날과 같은 일상이 찾아올 것입니다. 문제는 세월입니다.
우리네 인간의 수명은 유한하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할 때’가 있다는 겁니다. 코로나가 확산 된 것에 우리의 직접적인 잘못은 없습니다. 처음 코로나가 어떻게 퍼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걸 일부러 고의로 퍼뜨린건 아닙니다. 일단 우리는 아닙니다. 하하, 그래요. 우리는 무조건 아닙니다. 우리는 이 사태의 희생자이지 원인 제공자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 사태의 영향을 피해가지 못하고 코로나 사태로 인한 갖가지 재앙을 맞고 있는 그래서 그 재앙 때문에 괴로워하는 피해자입니다. 우리가 불러오지 않은 재앙으로 우리가 피해를 보는데 문제는 결코 우리가 이 재앙을 모른다 할 수 없다는 겁니다.
예배당 문도 열지 못하고 예배 후 식사도 안되고 항상 마스크를 쓰고 다니고 신학교에서 강의할 때도 힘들고 신입생 모집도 어렵고 사은회도 마음대로 참석하지 못하고...
사랑하는 형제들과 식사도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밥도 사주지 못하고 함께 운동도 못하고 시일만 보내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도 뭐 언젠가는 이 코로나 사태가 끝이 날 것이고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기는 할 겁니다. 어쩌면 코로나가 끝나고 사상 최대의 경제활황이 올지도 모릅니다. 이런걸 ‘보복소비’라고 한다면서요? 그리고 그 다음은 글쎄요?
문제는 있습니다. 항상 드리는 말씀이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법을 지키며 사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나에게 불리하다고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고 나에게 귀찮다고 하나님을 벗어나려고 하고 뭐뭐 한다고 하나님이 뒷전이 된다면 이런 재앙은 언제든 다시 재연될 수 있다는 겁니다.
1.내게 들을지어다
오늘 일절 말씀을 보면 “의를 따르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는 내게 들을지어다”라고 말합니다.
본래 ‘의를 따르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는 이스라엘 백성을 말하는 겁니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이 구절은 신자들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언어습관에 따르면 같은 말을 비슷한 두 단어를 반복해서 사용해 강조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러면 의를 따르는 것 하고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것하고 같은 말입니다.
조금 다르게 한번 말해볼까요?
의로운 세상을 만들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서 지켜야하는 겁니다. 세상에 있는 철학이니 교훈이니 금언이니 무엇 무엇이 아니라 제일 우선적으로해야 할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다는 겁니다. 이걸 지키지 않고 이러니 저러니 해봐야 하나님이 없이는 이 세상에 정의가 오지 않습니다.
인간들이 말하는 철학, 논리, 이성같은 것도 역시나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그가 우리를 창조하시면서 넣어둔 성질이지 우리가 자발적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닙니다. 이게 어디서 뚝 떨어진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생기를 우리 몸에 불어 넣으셨으므로 이게 바로 하나님의 품성에서 나온 겁니다.
‘여호와를 찾아 구한다’는 말은 더 직접적입니다. 노골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나를 도와줄 이를 찾아봐야 없습니다. 진정으로 나를 도와줄 이는 없습니다. 도와줄 수 없거나 도와주기 싫거나. 그러니 괜히 인맥을 찾아, 학연과 지연을 찾아 헤맬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나에게 복을 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은 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의 자비와 긍휼은 하나님의 공의에 기초합니다.
내가 복을 달라고 하나님께 빌려고 하면 먼저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지키는지를 살펴보세요. 나는 전혀 지키지 않으면서 그러니까 의를 행하지 않으면서 하나님 아버지에게만 의를 요구하는 것은 너무 뻔뻔한 일입니다.
지금 이 말을 듣는 대상인 이스라엘의 의인, 여호와 하나님을 찾아 구하는 이는 사실은 바벨론의 포로지에서 살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입니다. 포로의 삶이란게 얼마나 힘든 삶일까요? 자기들에게 이런 시련을 준 신에 대한 원망과 현실적인 열악한 환경은 정말이지 여호와를 원망하고 현지의 다른 신을 섬기게 하는 원인이 됩니다.
당시 바벨론은 그쪽 세상에서 가장 번창하고 화려한 고대문명의 중심지입니다. 음란과 우상숭배 그리고 방탕과 사치가 판을 치는 곳입니다. 당시는 각 민족의 흥망성쇠가 신들의 싸움에 달렸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니 지금 이스라엘이 이렇게 바벨론에 포로민으로 잡혀 온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바벨론의 신들에 패한 것이라는 공식이 성립됩니다. 그렇다면?
약한 신, 패배한 신이 아니라 강한 신, 승리한 신을 섬겨야 하는게 당시의 세계관에서는 당연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로지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찾고 그의 의를 구한다는 사실은 이들이 얼마나 신앙심이 깊었는지를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회복과 풍요의 복을 주신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이런 내용입니다.
제가 아는 어떤 목사님이 그래요. 요즘 젊은이들은 십일조를 하지 않는다고. 만일 젊은이들 중에서 십일조를 하는 이들은 정말 믿음이 좋은 사람들이라고. 젊은이들의 입장에서 아무리 돈이 있어도 항상 부족한 거지요. 하고 싶은게 너무 많아요. 갖고 싶은 것은 또 왜그리 많은지!
그런데 그들의 소비에 앞서서 하나님께 십일조를 떼어놓고 드린다는 것은 하나님 중심 교회 중심의 삶의 훌륭한 태도라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보다 더 나이 많은 분들이 드리는 십일조가 빛이 바래는 것은 아닙니다. 좀 웃긴게 사실은 이분들의 십일조 덕분에 음, 말이 좀 이상합니까? 여하튼 이들의 십일조로 교회가 운영되는 겁니다. 그래서 먼 훗날 이들이 하나님에게로 간다면 교회가 많이 위축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습니다.
물론 우리 하나님은 자기가 세운 교회를 위하여 새롭게 준비된 이들을 사용하실 거지만 일반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 만큼 이분들의 교회에 대한 헌신과 믿음은 본받을만합니다.
풍족한 가운데 감사하고 기뻐하는 일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할 수 있습니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물질이 풍부하면 극히 일부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마음이 넉넉해지고 남에게도 후하게 대하는 겁니다.
이건 좀 웃기는 이야기인데 북한 사람들이 저렇게 입만 열면 못된 말을 과격하게 하는 이유는 저들의 삶이 너무 어렵기 때문이지 않을까? 삶이 너무 어려워서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저런게 아닐까 하는 생각. 하하, 아닐 수도 있습니다만.
어렵고 열악한 삶 가운데서 감사하고 기뻐하며 하나님의 의를 구하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어려운 현실 가운데서, 포로지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찾는 이들을 우리 하나님이 외면하시지 않습니다. 반드시 복을 주실 것입니다. 포로지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본토로 귀환하게 하셔서 평화롭고 풍요한 일상을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앞서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의 말씀을 듣고 지켜야 한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셔서 우리가 그의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우리의 행위에 상관없이 무조건 복을 부어주시는 분은 아니십니다.
보세요, 자신들의 죄악 때문에 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 사람들도 우상의 나라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와 있는 것을. 다만 하나님은 자비롭고 사랑이 많으므로 우리가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 용서를 구하면 용서해 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회복하게 하시는 겁니다.
2.혼자있을 때에 내가 그를 부르고
고요한 중에 우리를 부르셨다는 그런 말은 아닙니다. 은밀한 중에 주를 만났다는 그런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우리를 하니님이 부르실 때에 혼자였지만 이제 그 후손이 창성하게 되는 복을 주셨다는 말입니다. 한사람 아브라함을 부르셨는데 수백만 이상의 사람으로 늘어나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다르게 보면 하나님에게 숫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사람을 구원하시고 그로 통하여 거대한 민족을 이루시게 할 수 있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 옛날에만 통했던 말이 아닙니다.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하나님이 원하기만 하시면 얼마든지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 언론에서 우리나라의 인구가 작년부터 줄어들기 시작했다는 발표를 했습니다. 이제까지는 출산율이 세계에서 최저라고 기록되었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28000여명이 줄었답니다.
이미 비혼을 선언한 사람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오포세대니 뭐니 하면서 우리의 젊은이들은 온갖 것들을 포기했고 지배층, 기득권층에 원한을 품고 있습니다. 결혼도 포기하고 연애도 포기하고 출산도 포기하고 취업도 포기하고 또 뭘 더 포기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들은 악에 차서 나 말고 더 이상의 노예는 안된다고 말합니다. 현시대에 무슨 노예니 머슴이니 로얄패밀리 가 있습니까?
뭐 5년간 150조원의 돈을 출산율을 높이기위해 사용했지만 실제로 임산부들이나 산모들이 제대로 지원받지도 못했고 돈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를 정도로 암담합니다. 이건 정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이란 나라자체의 문제입니다. 마치 조선후기의 민란시대와 같이 부자와 지배자에 대한 원망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드높습니다. 이대로는 미래가 암담합니다. 나라의 존립을 걱정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나라는 인구가 너무 많다. 그러니 더 줄어야 된다. 그래서 사람 귀한 줄 알아야 된다. 맞는 말 같지만 우리가 모르는 사실은 지배층의 입장에서 인구는 우리의 출산만 있는게 아니라는 겁니다.
언젠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재벌이 옛날 모 대통령에게 정책건의서를 올렸는데 출산율 저하로 노동력이 감소하고 소비인구가 줄어서 경제가 쇠할 수 있으므로 앞으로 천만명의 외국인을 받아 들여야한다고 했답니다. 그러니 애를 안낳아서 부자와 지배층에게 복수하겠다는 생각은 맞지 않습니다.
목사가 설교나 하지 뭔 나라 걱정에 출산율 걱정까지? 이렇게 생각할게 아닙니다. 저는 죄악에 쩔어 있는 우리가 죄악으로부터 벗어나 깨끗해지지 않는데도 다만 사람들의 입에 맞는 설교만을 할 수는 없습니다. 무조건 복받는다 잘된다. 희망찬 새해에 복을 받을 것이라는 설교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될려면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의 법을 지켜 준행해야 합니다. 먼저 우리사회에 하나님의 공의로 다스려지는 시스템이 세워져야 합니다.
코로나의 확산에 음풍이 만연하고 인구까지 줄어들고 출산율은 말도 못하게 낮고 범죄율도 높고 뭔 일만 생기면 고소에 법정 다툼에 죽어라고 공부해도 제대로 된 취직자리를 구할 수 없고...
그럼에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 돌아오고 하나님의 법을 지켜 바르게 산다면 지금부터라도 얼마든지 우리가 다시금 인구가 증가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얼마든지 서로가 웃으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지상의 낙원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어쨌든 그것과는 별개로 이번 기회에 우리나라의 지배층들이 각성하고 사람 귀한 줄을 알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건 대통령이나 특정 정파를 저격하는 말이 아닙니다. 여야가 서로 싸우지만 우리네 입장에서 그들은 모두 지배층입니다.
사람 없으면 외노자 데리고 와서 일시키지 같은 한가한 소리만 하지 말고 국민들의 삶을 가장 낮은 곳에서 다시 한번 생각하기를 권합니다. 건강한 한사람 한사람이 모여서 건강한 나라가 형성된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느끼게 되기를 바랍니다.
도덕적으로 건강하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을 행하지 않는다면 솔직히 아무리 미사여구를 지껄여도 헛겁니다. 듣기는 좋지만 전혀 구속력이 없는 말은 선전도 아니고 어디에나 쓸까요?
성령의 역사로 온 세상이 성령의 불도가니에 빠져 온갖 불순물과 세속의 물을 다 태워버리고 순결하고 순수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나기 전에는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 만인이 행복한 나라가 되기 어렵습니다.
3. 내 공의를 만민의 빛으로 세우라
정확하게 본문은 우리로 하여금 “내 공의를 만민의 빛으로 세우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내가 내 공의를 만민의 빛으로 세우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세우라고 명령하시는게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자기의 공의로 만민의 빛을 만드시겠다는 다짐이자 선포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세상은 하나님의 공의로 만민의 빛을 삼게 될 것입니다. 세상은 그렇게 하기 싫어도 당연하게 하나님의 말씀은 이루어 질 겁니다. 왜냐면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데 사람이 그것을 따르지 않을 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택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을 듣도록 명령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율법, 즉 하나님의 말씀으로 열방을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이랍니다.
세상적인 기준이 하나님의 심판정에서 통용되는게 아닙니다. 인간들이 국가의 존립을 보장하기위해 만든 세상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곧 율법이 하나님의 법정에서 심판하는 판단기준이 될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 삶의 기준을 삼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나라에서 우리가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뭐냐면 하나님의 법은 절대로 남을 힘들게 하고 나만 잘살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든 말든 나 하고 싶은대로 한다는 그런 일은 용납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적어도 성경에서 하지 말라고 명문으로 적혀 있는 것은 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명문으로 적혀 있지 않다면 하나님의 법이 표방하는 정신을 기준으로 삼으면 됩니다.
첫 번째는 이게 남에게 피해를 주는가? 두 번째로는 이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가? 세 번째로는 이게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데 훼방거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점을 기준으로 삼으면 됩니다.
요즘 한참 언론에서 비난하는 ***선교회나 ***교회의 경우에 이들이 특별히 하나님을 거스린건 아닙니다. 일각에선 그들의 신학이 의심스럽다고 하는데 뭐 그건 알아서 하고...
그러나 이들은 자기들이 하고 싶은대로 하는 바람에 세상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교회를 비방하게 만들었고 잠재적인 선교의 문을 막았으며 전염병을 확산하는 매개체가 됨으로써 이웃을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이런건 안된단 말입니다.
우리가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스스로 자제해야 함에도 이를 잊게 된다면 그 후폭풍이 절대로 간단하지 않습니다. 자기들은 자기들의 행위로 말미암아 벌을 받으니까 억울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런데 나머지 교회와 교인들은 무슨 죄입니까? 하지도 않은 일로 도매금으로 넘어가서 함께 벌을 받고 비난을 받고 전도의 문이 닫히고 핍박을 받고 이러면 너무 억울하지 않나요? 꼭 그런 일을 해야 합니까? 다수의 행복과 대중의 선을 위해서 자제할 수 없나요?
왜 우리만 갖고 그래? 말이 충분히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의 일반적인 단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이며 성도입니다. 그러므로 모범을 보여야 할 책임이 있고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왜 나만 갖고 그래?’ 이런 말은 안됩니다. 절대로 해서는 안됩니다. 이럴 때에 더 앞장서서 방역수칙을 지키고 이웃을 생각하고 교인들을 생각하고 선제적으로 조치를 취하고 여력이 남으면 남을 도와야지 혼자만 잘났다고 이웃을 아랑곳하지 않는 행동은 독선이요 오만이며 고집입니다. 스스로 삼가야 됩니다.
원래 ‘내가 내 공의를 만민의 빛으로 세우리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만민에게 복음이 전파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선다는 그런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신학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그냥 원문 그대로 받읍시다. 하나님의 법이 세상을 다스리는 기준이 된다고 하는 점. 나아가서 이제 새롭게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의 통치 기준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점을 생각합시다.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지금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와 있습니다. 이보다 먼저 대부분의 이스라엘이 속한 북쪽 이스라엘 왕국은 사정이 더 열악했습니다. 바벨론보다 더 잔인하고 악랄한 앗수르에 멸망한 이스라엘은 포로로 끌려갔고 이방인들과 혼혈이 되었고 저들의 밭과 과수원과 우물은 훼파되어서 황무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습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저로부터 이스라엘을 이루게 하셨고 그 나라를 통하여 열방에 하나님의 빛을 비추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들이 범죄하고 스스로의 의무를 다하지 않고 이방을 좇아 저들과 비슷하게 행악하고 음란해지자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경고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열지파가 앗수르에 망한겁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심판을 눈앞에서 목도하고도 남은 유다와 베냐민이 레위가 범죄를 계속하고 회개하지 않자 하나님은 저들도 바벨론의 포로가 되게 하셨고 예루살렘성을 훼파하고 황폐케 하셨습니다.
그러나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저들 가운데 소수의 사람을 택하셔서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건국하게 하실려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런 복을 누리려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이 말씀을 적용한다면 하나님을 믿는 신자인 우리들은 지금의 이 어려움을 이겨내고 새롭게 하나님의 교회를 재건하려면 먼저 하나님 중심, 성경중심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겁니다.
솔직히 세우려면 오랜 세월이 걸리고 어려워도 무너지고 흩어지려면 번개처럼 이루어 집니다. 하나님이 주신 물질적인 풍요가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는데 사용 되어야지 자기의 쾌락과 만족만을 위해 사용 되어지거나 오히려 악을 더 연장하고 음행이 퍼지게 되는데 사용 되어서는 안됩니다.
잘못된 행위
교회의 세속화, 음행, 우상숭배, 교만을 멈추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만드신 구원의 기회를 얻지 못하게 될 수 있습니다. 5절 하반절에 “내 구원이 나갔은즉 내 팔이 만민을 심판하리니”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택하시지 않은 세상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그의 법을 지키지 않을거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만민을 심판하시지요. 내가 다시 올 때 믿는자를 보겠느냐는 말씀도 비슷한 뉘앙스를 줍니다. 참으로 잘 믿기가 그만큼 어려운 말세를 당한겁니다.
4.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므로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심판을 면하고 오히려 심판된 세상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왕노릇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와 사랑으로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법을 지켜 행하기에 힘든 우리 성도들은 더 힘을 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본격적으로 우리에게 내릴 시기가 임박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렇게나 하나님의 법을 지켰는데 저 불신의 무리들이 저 행악자들이 왜 저렇게 잘 사느냐고 불평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렇게 악한 것들이 우리 성도들보다 더 잘살고 행복해 보이는걸 보니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은가보다 라고 넋두리 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심판의 기준대로 우리가 살았다면 심판의 때에 우리가 하나님의 법정에서 잘했다 칭찬받을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복락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가 주시는 솰롬의 세계에서 절대적인 평강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무 초조해 하지 말고 기다리시기를 바라며
너무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의 공의를 믿으시기를 바라며
너무 불안해 하지 말고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굳게 믿고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이제 이 고난이 끝이 보입니다. 임박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의 빛이 어둠과 슬픔 그리고 공포를 몰아내실 것이며 빛과 희망 그리고 희락의 세상을 불러 올 날이 임박했음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더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를 더 굳게 잡고 믿음안에서 더 씩씩하게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지금도 잘하고 있지만 더 조금 더 노력하기를 바랍니다.
이번 기회에 가정예배의 기간에 먼저 내가 하나님의 법을 지키며 그를 기리고 그를 기뻐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있는가를 돌아보고 새롭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정립하고 단단하게 만드는 시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배당이 아니라 흩어져서 각자의 가정에서 가정예배를 드리는건 결코 무의미한 시간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 가정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 수 있고
믿음을 더 굳세게 할 수 있는
그리고 나를 돌아보고
새롭게 목표를 설정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진군하는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기회가 우리 성도들 각자각자에게 임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코로나가 끝나고 여상한 시절이 다시 온다고 해도 우리에게 하나님의 법이 제대로 서지 않고 하나님의 공의가 세워지지 않는다면 또 다시 우리에게 생각지도 못했던 재앙들이 닥쳐올지 모릅니다.
기억하시나요? 하나님은 물로 세상을 심판하신게 아니라 물로 말미암아 노아를 구원하는 기회로 삼으신 것을. 확신하십니까? 하나님은 코로나로 세상을 심판하신게 아니라 코로나로 말미암아 우리 성도를 구원하실 기회를 삼으실 것을.
하나님은 우리의 빛이십니다. 그 빛 안에 있으면 결코 어둠이 우리를 침범치 못할 것입니다. 빛에 거하기를 소망합니다.
너무 오래 성도들을 보지 못해서 저도 너무 답답합니다. 보고 싶습니다. 그러나 우리 조금만 더 인내하십시다. 이번 한주도 하나님의 평강 솰롬의 세상에서 거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홍종일 목사님 2021년 1월 17일 주일 설교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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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올린이의 이야기 (시북의 이야기)
하나님은 왜 유대나라까지 망하게 하지는 않으셨을까...
그것은 믿음을 지켜나간 소수가 있었기에,
그들을 통하여 새로운 세상을 건설해 나가리라 훨씬 앞서서 계획하신 것이겠죠.
코로나 사태가 오고, 개신교는 공공의 적이 되었지만,
그 무거운 현실 속에서도 믿음은 지켜질 수 있기를 바라게 됩니다.
욕하는 다수에 서서 돌팔매를 집어드는 사람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약한 자의 다정하고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 크리스천이기를 꿈꿔봅니다.
- 2021. 01. 시북 (허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