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ross the Storm of Bipolar

1장. 나는 시간여행자가 되었다

시북(허지수) 2025. 8. 4. 07:10

 

(가칭 프로젝트) 조울의 폭풍우를 지나서 살아남기

 

1장. 나는 시간여행자가 되었다

 

내가 시간여행자가 되었군.

다른 세상을 볼 수 있게 되다니.

 

그 눈뜸의 시간을, 나는 지금도 선명히 기억한다.

이상한 세계로의 진입.

 

매일 영화를 챙겨볼 만큼 상상력을 즐기던 나에게, 꿈만 같은 일이 펼쳐졌다.

10년 전, 2015년. 어머니는 비교적 이른 치매 진단을 받으셨고, 나는 병을 돌보느라 많은 것을 포기한 채 삶을 견뎠다.

 

그때부터 의사 선생님들의 책을 가까이 두고 읽기 시작했고, 그들의 조언대로 ‘보호자의 삶도 중요하다’는 가르침을 지키려 애썼다. 틈이 나면 영화를 보며 내 마음을 위로했다.

 

<스틸 앨리스>라는 영화를 보며, “이 세계에 나만 고통스러운 게 아니구나.”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와 병원에 다녀오는 길. 풍경이 낯설었다. 아는 동네인데, 마치 한 번도 걸어본 적 없는 길 같았다.

 

어머니를 집에 모셔드린 후, 나는 산책을 나섰다. 그런데 길을 잃고 말았다.

정확히 말하면, ‘현실감각’을 놓아버린 것이었다.

실로, 아찔한 순간이었다.

 

“음, 결국 흑백영화의 한 장면으로 들어왔군. 나도 영화 속 캐릭터가 한 번 되어볼까나?”

나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반갑습니다. 고맙습니다.” 인사를 건넸다. 누구에게나, 아무 이유 없이.

 

첫 번째 행운은, 이 모습이 ‘교회의 선한 분’께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연락은 돌고 돌아 아버지에게 닿았고, 나는 동래봉생병원으로 긴급 이송되었다.

 

좋은 아버지를 둔 것에, 나는 지금까지도 마음 깊이 감사한다.

“너 미쳤어?”가 아니었다. 판단되지 않는 일에는 판단을 멈추고, 전문가에게 맡긴 것.

그 덕분에, 많은 병들이 그러하듯이 골든 아워를 지켜낼 수 있었다.

 

선생님은 약을 처방해 주셨다. 세월이 한참 흐른 뒤, 내 기록을 다시 살펴보며 휘날리듯 적힌 영문 진단명을 읽었다.

Bipolar disorder.

조증과 우울증을 함께 안고 살아가는 삶.

 

그런 걸 내가 겪게 될 거라곤,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아직 안정화 단계는 아니었기에, 약은 길게 처방되지 않았다.

 

그 시기에도 혼란은 계속됐다. 기분은 자꾸만 들떴고, 쉽게 억눌러지지 않았다.

그렇다.

말하자면, 무언가에 갑자기 깊이 꽂혀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세상이 내게 말을 걸고 있다는 착각.

그게 나에게 다가와서 말을 건넨, 조증의 처음 얼굴이었다.

 

- 2025. 08. 04. 초안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