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내게 말을 건넨다는 뜻은,
가끔 마음 아픈 일이다.
어떤 사람은 어느 날 십자가를 보고, 마음이 끌려서,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교회를 한 번 가봤다가,
예수님을 믿는 장로교회의 깊은 신앙인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영화 같은 이야기와는 먼 반대였다.
버스를 타고 창밖을 바라보는데, 거리의 큰 간판이 나를 쳐다보며 웃고 있는 것 같았다.
힘내, 넌 잘 할 수 있어.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런 흥분들은 어찌나 강렬하게 현실감각으로 다가왔는지, 얼굴마저 새빨개질 정도였다.
그래, 나는 뭔가 멋진 일을 할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은 황홀한 도취를 선사하는 법.
집으로 돌아와서 방을 바라 보았다. 내가 왜 이런 게임기를 하고 있는걸까 생각되었다.
당시 꽤나 돈을 들여서 샀던 닌텐도Wii 게임기와, 슈퍼마리오 갤럭시 시리즈가 어쩐지 낯설었다.
게임기와 전자기기들이 밝히고 있는, 빨간색 불빛, 녹색 불빛이 무척이나 신경을 건드렸다.
이것들 혹시 나를 감시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일본에서 도청하고 있는 거 아냐?
그릇된 망상은 점점 심연까지 뿌리를 내려갔고, 이상한 열매를 내게 던지려 했다.
조용하고도, 무척 끈질기게, 끈끈이 풀처럼, 엉겨서 달라붙은 나쁜 생각은 나를 괴롭혀 댔다.
나는 견디지 못할 불안감에 휩싸였다.
심각한 현실 왜곡이었다.
전쟁터 같은 곳에 나가 있으면 불안감이 몰려오고,
그래서 노트북 같은 것을 쳐다보다가도, 알 수 없는 충동을 억제하지 못해서,
거기에 군인이 칼을 던져버리는 경우가 간혹 있다고 한다.
일반인의 시점으로 좀처럼 납득되지 않는 파괴 행위는, 인간의 불안 속에서는 자라갈 수 있다.
마음 아픈 일이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닌텐도Wii 게임기가 나에게 말을 건네 버렸다.
와! 같이 놀자! 라는 이와타 사장의 다정하고 선한 목소리가 아니라,
나의 내면에서 자라난 위험한 왜곡 목소리가 말을 건네왔다.
"너 한국 사람이잖아. 일본 게임이나 하고 있어서 되겠어. 이런 도청기계, 자료수집기계에서 벗어나!"
나는 잘 드는 가위를 하나 가져왔다. 손이 떨렸지만, "싹뚝" 선을 자르고 나니까, 비로소 안심이 되었다.
그 순간 나는 도청에서 도망쳤으며, 드디어 승리했다고 선언했고, 비로소 나를 지켰다고 믿었다.
그 후로도, 조울증의 파도가 마치 쓰나미처럼 높게 덮쳐올 때는,
기술발전으로 이제 지나가는 작은 물체가 또 나를 듣고 있구나 라고 악마가 말을 건넨다.
그 때마다 두 가지를 외친다.
하나, 좀 닥쳐줄래. 세상은 나한테 관심 없거든.
둘, 시끄러워. 백만에 하나의 가능성으로, 실제 도청이 된다 하더라도, 나는 말야. 중요한 일을 해야 해서, 그런 거 신경 끄고 살아.
여기서 재치 있는 독자님은 벌써 눈치 채셨을 것이다.
아니? 왜요? 게임기의 전원선을 조용히 뽑는 아주 좋은 방법 놔두고, 왜 멀쩡한 게임기 선을 잘라서 망가뜨리는 거죠?
그래서 조울병은, 혹은 조증은, 결코 낭만이나, 아름다움, 가령 예술가의 혼처럼 다루어선 안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때로는 자기 파괴적인) 아주 위험한 행동까지도 함께 수반한다는 것을 인지한다면,
그러므로, 마치 당뇨나 혈압처럼 꾸준히 적극적으로 관리되어야 한다는 것이 가장 적절해 보인다.
그것이 병에서 자신을 돌보고 지키는 살아남기의 길이 아닐까 늘 생각한다.
잠깐은 재밌는 이야기지만, 긴 시간이 흘러서, 한국 닌텐도에 연락해서, 게임기Wii 부품을 구하는 과정을 거쳤다.
게다가, 2025년 여름인 지금 현재 내 방에는 벌써 닌텐도 스위치2 최신 게임기와 타이틀들이 준비되어 있다.
그러면, 나는 최신 도청장치를 또 구입한 걸까?
아니 뭐, 굳이 말한다면, 나는 웃음의 기계를 또 구입하고 만 것이다!
단골 게임 매장의 이모님은 웃으며 유머를 건넨다.
"삼촌은 말야, 정말 복도 많지. 아직도 공부하는 (늦깎이) 학생이라면서
이렇게 최신 게임기 살 돈도 얼마든지 있고, 부모님이 이해까지도 해주시고 참 좋겠다!"
여기서 유머의 핵심 포인트가 하나 더 있는데, 공부도 하고, 일도 하고, 바쁘게 살아내느라,
정작 게임기는 한 달 넘게 밀봉이라는 것.
정말이지 밀봉된 마리오카트월드 가 울고 갈 일이 아닐까 싶다.
이제 다시 생각해 본다.
세상이 말을 건넨다는 것은
또한 가끔 기쁜 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뜻밖에 펼쳐지는 선물이나 친절, 웃음에 살아간 힘과 위로를 얻는다.
언젠가 이 작은 에피소드가,
누군가에게 닿아서,
자기 파괴를 넘어서, 자기사랑으로 건너가는 소소한 힌트가 된다면...
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니 너무나 기쁜 일이 될 꺼라고, 지금은 미소로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