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는 정말이지 아스날의 늪(?)에 빠져버린 탓에 계속 이어서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솔 캠벨, 융베리, 피레스에 이어서 이번에는 골키퍼 옌스 레만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2006년 월드컵에서는 칸을 제치고, 레만이 독일의 정골키퍼로 활약하면서 많은 조명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럼 어서 레만의 이야기로 출발해 봅시다.
프로필
이름 : Jens Lehmann
생년월일 : 1969년 11월 10일
신장/체중 : 190m / 87kg
포지션 : GK
국적 : 독일
국가대표 : 61시합
올리버 칸(좌), 옌스 레만(우)
롤러코스터 같은 괴짜골키퍼 - 옌스 레만의 이야기
레만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은 사실 조금 어렵습니다. 평가가 엇갈리는 선수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는 레만을 훌륭한 레전드 골키퍼로 부를 만하다 라고 말하며, 어떤 이는 실력은 좋다지만 정신적으로 문제 많고 틈틈히 실수도 많았던 선수였다 라고 평합니다. 냉정하게 말해서, 둘 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뭐, 그럼에도 옌스 레만은 한 때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던 골키퍼 였고, 그 능력만큼은 최고로 부를 수 있다고 봅니다. 차분히 발자취를 따라가 봅니다.
1988-89시즌 독일 2부리그에 있던 샬케04에서 프로 데뷔를 시작하였고, 3시즌이 지나서 레만은 거의 전경기에 출장하면서 팀의 1부리그 승격에 크게 공헌하게 되었습니다. 1991-92시즌 레만의 분데스리가 데뷔가 펼쳐집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크게 주목받지는 않았고, 오히려 좀 특이한(!) 생각을 가진 친구였습니다. 1993년 샬케04가 전반에만 3점을 실점하자, 레만이 휴식시간에 교체 당하는데, 이 때 레만은 그 길로 전차를 타고 집으로 가버립니다. 감독은 열받아서 레만을 10경기 동안 명단에서 빼버렸고, 겨우 시즌 8경기 출장하기도 했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습니다.
9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레만은 확실히 성장해 나갑니다. 긴 손과 발을 사용한 넓은 수비 범위가 그의 장기였습니다. 게다가 골키퍼 치고는 공을 다루는 테크닉이 있으며, 킥력이 좋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1994-95시즌에는 페널티킥을 차겠다고 나서서, 골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웃음) 레만의 이름이 세계에 알려진 것은 1997년 UEFA컵을 손꼽을 수 있습니다. 샬케는 계속 승리를 거두었고, 발렌시아 등을 잡아내며 마침내 결승전까지 진출했습니다. 그러나 상대는 하필 인터밀란이었지요. 당연히 압도적 불리가 예상되었습니다. 인터밀란에는 자네티, 이반 사모라노, 죠르카예프 등의 스타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축구는 뚜껑을 열어봐야 결과를 알 수 있는 법. 홈에서 1-0 승리를 거두었던 샬케는, 원정에서는 0-1로 패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경기는 승부차기로 돌입하는데... 레만은 경이적인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었고 인터밀란은 승부차기를 두 개나 놓치지요. 샬케04 - 사상 첫 UEFA컵 우승!!! 제대로 필 받은 레만은 "미친 존재감"을 자랑하면서, 크레이지 모드에 돌입. 순간적인 반응력이 최고라고 평가받습니다. 가까이에서 슛을 때리면 막기가 여간해서 쉽지 않은데, 레만은 근거리 슈팅이 오더라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다가 갑자기 엄청난 반사신경으로 공을 쳐내곤 했지요. 그야말로 압권입니다. 베짱이 대단하지요. 찰 테면 어디 차봐라는 것! 1996년에는 UEFA 최고의골키퍼로 선정되었습니다.
영광의 UEFA컵 첫 우승이라는 값진 기록과 함께 재밌는 에피소드는 이어집니다. 1997-98시즌에는 중요한 더비 경기에서 0-1로 소속팀이 밀리고 있었지요. 후반 추가시간에 골대 따위 필요없다면서, 아예 필드 플레이어로 나섭니다. 그리고 경기 중에 헤딩슛을 날리면서 골을 만들지요. 위치선정하는 움직임이나, 정확한 헤딩, 그야말로 깜짝 공격수였습니다. 극적으로 경기는 1-1 동점으로 끝났고, 샬케 팬들은 열광합니다. 저 매드 옌스 (Mad Jens) 때문에 우리가 신나는구나! ( 관련영상→ http://www.youtube.com/watch?v=LEEHQgsTUJk )
레만의 존재감은 어느덧 유럽으로 크게 알려졌고, 레만은 1998년 세리에의 AC밀란으로 이적합니다. 그러나 자리를 잡지 못하고, 반년만에 귀국하지요. 더욱이 귀국하면서 옮긴 클럽이 하필 샬케의 더비팀인 도르트문트 였습니다. 샬케는 배신자라면서 욕하고, 도르트문트도 과거에 우리를 물먹였던 더비팀의 골키퍼를 데려오냐며, 처음에는 양쪽에서 욕먹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뭐, 레만은 원래 이런 저런 눈치보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나는 내 갈 길 간다. 마이 웨이~
도르트문트에서 레만은 계속해서 높은 퍼포먼스를 발휘하며, 진가를 인정받았고 리그우승에도 공헌합니다, 국가대표로도 발탁되어서 굵직한 주요대회 때마다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물론, 대표팀 주골키퍼는 올리버 칸등이 버티고 있었기에, 후보신세 였지만요. 2003년 레만은 프리미어리그의 아스날로 이적했고, 이 때부터 아스날의 무패우승 등의 황금기를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한번씩 불안한 모습도 아예 없지는 않았지만, 잘 하는 날에는 또 거의 신처럼 잘하는 레만이라서, 상당히 인기가 높았습니다. 큰 경기에서는 수 많은 위기를 선방하면서, 팀을 위기에서 건져낸 적도 많았지요. 2005년 FA컵 결승에서는 아스날이 맨유에게 일방적으로 경기를 끌려다니면서도, 결국 승부차기까지 돌입. 마지막에 웃은 것은 아스날이었지요. 레만이 스콜스의 PK를 막아버렸습니다.
2005-06시즌은 역사적인 기록이 탄생합니다. 미친 존재감 레만은 챔피언스리그에서 8경기 연속 무실점 행진을 이어가며 빛나는 활약을 펼쳐나갔고, 아스날은 결승전에 올라갔습니다. 4강에서는 페널티킥도 막아버리는 등 도무지 사람이 아니었지요. 레만은 수비 뿐만 아니라, 때때로 재빠르게 정확한 킥을 전방으로 날리며, 역습을 노리는데도 큰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살다보면 너무 잘 나갈 때는, 경계하고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레만은 챔피언스리그 대망의 결승전에서 대형사고를 치고 맙니다.
바르셀로나와의 경기에서 레만은 전반 18분만에 에투를 걸어 넘어뜨리면서 퇴장당하고 맙니다. 사상 첫 챔스결승전 퇴장선수로 역사에 이름을 새기지요. 썩 유쾌하지 못한 일인데, 더욱이 아픔은 이어집니다. 아스날은 1-2로 역전패 당하면서, 눈앞에서 사상 첫 챔스우승이라는 영광의 순간을 놓쳐버립니다. 역시나 결과론일 뿐이지만, 레만이 버티고 있었으면 2실점 까지는 안 할 수도 있었을 거라는 평가도 이어집니다. 한편에서는 레드카드가 너무 심했다고 싸우고, 한편에서는 레만의 경솔한 플레이를 탓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실상 챔스 결승까지 올라가는데 레만의 공은 실로 대단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경기에서, 퇴장당한 골키퍼로 기억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레만은 그 시즌에 그야말로 강렬한 퍼포먼스를 펼쳤던, 말하자면 2006년 가장 인상적인 골키퍼였습니다.
눈부신 실력을 자랑하면서, 레만은 마침내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올리버 칸을 제치고, 정골키퍼로 월드컵 무대에 서게 됩니다. 30대 중반이 훌쩍 넘은 나이로 드디어 국가대표 정골키퍼! 그럼에도 그는 기회를 멋지게 잡으며, 올리버 칸 못지 않게 정말 잘했지요. 8강전 아르헨티나와의 승부차기 승부에서도 레만은 미친듯한 선방으로 2개나 막아내면서, 아르헨티나를 집으로 돌려보냅니다. 브라보 레만! (비밀이 있는데, 독일의 골키퍼 코치가 아르헨티나 선수들의 슈팅 버릇이 적힌 메모지를 레만에게 건네줬다고 합니다. 레만은 축구스타킹안에 그걸 넣어두었다가, 틈틈히 계속 참고하였고, 결국 2개나 막아내지요. 이 메모는 후에 10억이 넘는 가격이 붙여졌다고 하네요. 여담이었습니다~ 뭐 원래 레만은 PK를 상당히 잘 막습니다. 아스날 시절에는 킥 잘한다는 제라드가 차는 PK도 막고 그랬지요.) 여하튼, 독일의 4강진출에 큰 공을 세웠고, 대회 올스타팀에 선정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10년만에 또 다시 2006년 UEFA선정 최고의골키퍼로 인정받았습니다.
2008년부터 레만은 아스날에서 출장 기회가 줄어들면서 벤치신세를 면하기 힘들었고, 결국 2009년 독일으로 돌아가서 슈투트가르트에서 활약합니다. 나이가 들어도 그의 기이한 행동들은 계속되는데, 상대팀 선수의 신발을 골대 위에 숨겨놓지를 않나... ( 이웃 바셋님 참고→ http://basset.egloos.com/1530343 ) 경기 중에 갑자기 그라운드 밖으로 뛰어나와서 광고판 뒤에 몰래 숨어서 소변을 보고 경기장 안으로 돌아가지 않나... (놀랍게도! 심판에게 안 걸려서 경고는 안 받았습니다 -_-) 승질난다고 관중의 안경을 빼앗다가 고소를 당하질 않나...
그 외에도 예전의 일들을 살펴보자면, 상대팀 태클에 엄청난 헐리우드 오버액션으로 아픈 척 하다가, 경고를 받지 않나... 갑자기 공을 물어뜯지를 않나... 푸욜을 향해서 날아차기로 위협하지를 않나... 등등 기이한 일들을 자주 일으키곤 했습니다. 퇴장경력도 한 두번이 아니라 좀 됩니다. 축구계의 돌 플러스 아이로 불리는 선수 중 한 명이지요 :)
2010년 3월, 40대 나이의 레만은 현역 은퇴를 발표했고, 2009-10시즌을 끝으로 이제 그라운드를 떠났습니다. 이제 길었던 이야기를 정리해야 겠지요. 의외로 한 번 만나보고 싶은 인물이 간디고, (문명시리즈의 그 간디가 아닙니다!) 영화 쉰들러리스트를 좋아한다는 레만이지요. 허허... 정확하게 위치를 잡아서 상대의 슈팅코스를 좁히고, 엄청난 순발력으로 들어갈 슛까지도 긴 손으로 막아내버리는 모습! 동영상을 안 볼 수가 없겠지요. 마치면서 동영상을 덧붙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레만에 대하여 여전히 어떤 선수로 평가할지는 어렵습니다. 그것은 독자님의 몫으로 남겨놓겠습니다. 다만 그가 한 때 세계최고의 골키퍼들과 나란히 섰었던 미친 존재감의 골키퍼 였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겠지요. "축구스타"라는 말에도 잘 어울리고요. 오늘 준비된 괴짜골키퍼 레만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입니다. 늘 애독해 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리며, 행복한 하루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