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에서 최근 지식인 활동이라는 것을 해봤습니다. 사람들이 질문을 올리면, 알맞은 답변을 달아서 도움을 주는 일인데, 생각보다 재밌고, 뿌듯하기도 하고 괜찮은 경험이었습니다. 그런데 질문 중에는 당혹스러운 질문도 있고, 정답이 없는 질문도 있습니다. 이럴 때 현명한 대답을 잘 하는 사람이 되면 근사하겠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은 이것은 질문입니까? 라는 책을 리뷰해 볼까 합니다. 영국 명문대에서 인재를 선별할 때 던지는 질문들이라고 하는데, 기상 천외한 질문들이 있고, 생각해볼 거리가 있다는 측면에서 한 번쯤 읽어봐도 좋을 책일 것입니다. 자세한 내용으로 출발해 봅시다.
저자 : 존 판던 / 역자 : 류영훈 / 출판사 : 랜덤하우스코리아
출간 : 2011년 8월 30일 / 가격 : 13,500원 / 페이지 : 368쪽
질문이 60개나 있는 관계로, 호기심을 자극했던 내용들 몇 개를 중점적으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단연 흥미로웠던 것은, 국내 빈곤계층과 외국 빈곤계층 중 어느 쪽을 돕는 것이 더 중요할까? 라는 문제입니다. 예산은 제한적이니 더욱이 항상 논란과 갈등을 낳는 문제입니다. 멀리갈 필요도 없습니다. 당장 우리나라만 해도 북한에 인도적지원을 하는 문제로, 종종 논란이 되어 왔습니다. 국내에 빈곤층도 많은데, 북한을 도울 돈이 어디 있느냐 라는 의견도 꽤나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문제는 사실 심각합니다. 매일 2만5천명의 어린아이가 가난으로 사망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이것이 일상이 되다보니, 이제는 별로 자각하지도 않고 살아갑니다. 이 책의 장점은 이런 "세상의 사실들"을 한 번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는 것에 있습니다. 답이 없다고 포기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사실은 답은 있지만, 실행하지 않는 것이 아니냐고 부자 나라들의 통치권자들에게 경고하고 있기도 하고요 :) 그렇습니다. 빈곤의 문제는 이미 세계의 지혜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와 있는지도 모릅니다. 다만, 우리가 해결하려는 마음이 없을 뿐이겠지요. 결론적으로 정답은 없지만, (개인적인 견해로는) 적어도 양쪽 모두를 도와야 하고, 그 노력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적인 결론은 내릴 수 있겠습니다.
노인들이 건강보험 재정을 악화시킨다는 것도 꽤나 흥미로운 문제입니다. 설령 건강보험 재정에 젊은이들의 돈이 더 들어가고, 노인들이 보다 상대적인 혜택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모두를 위한 건강보험이므로, 노인들 탓을 할 수 없다고 저자는 강하게 이야기 합니다. 노인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더라도, 그 삶의 가치가 젊은 이들보다 미약하다는 생각은 위험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삶의 문제를 실용성으로 재단해 버리는 경우,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들이 실용성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 하나 무너져 내린다는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극단적으로 (실용성, 효율성의 극대화를 추구하며) 돈을 벌기 위해서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서 살아간다면, 이것이 올바른 방향일까요? 가족의 저녁식사라는 소박하고 귀중한 가치는 의외로 대단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여하튼 저자의 결론은 노인을 소홀히 대하는 사회라면, 그 사회를 먼저 병원에 보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저도 비슷한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 약자를 소홀히 대하는 사회라면,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 귀를 닫아버린 사회라면, 결코 공정한 사회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정의란 무엇인가 라는 책의 비유에 나와있듯이, 사회적 약자를 어딘가에 가두어 버린채, (혹은 무시해 버린채) 우리끼리 행복하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제대로 된 사회라고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희생과 피눈물 위에서 행복의 제국을 건설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니까요.
건축을 통해서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는 시선은 처음 알게 되었는데 신선하고 즐거웠습니다. 벽을 높게 세우고, 서로를 감시하는 어두운 골목의 CCTV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공동 공간을 만들고, 서로를 편안하게 볼 수 있게 끔 건축한다면, 범죄율이 확연히 떨어진다는 것은 아주 멋진 접근입니다. 현대 사회에서의 범죄는 단절에서 발생하고 있으므로, 서로를 연계시켜서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한다면, 범죄 없는 끈끈한 공동체도 꿈만은 아닐 것이라 생각해 봤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질문은 탐욕에 대한 질문입니다. 과연 탐욕은 좋은 것일까요, 나쁜 것일까요? 최근에는 탐욕을 나쁘게 보는 시선이 확산되어 가고 있다지만, (예컨대 월가에서 등장한 우리는 99%다, 1%의 탐욕에 반대한다는 시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욕심을 가지는 것이 권장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부자 되세요~ 라는 새해 인사가 유행을 이루었던 것이 불과 몇 년전이었습니다. 어떤 자기계발서에는 부자가 되는 비결로, 반드시 "욕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같은 책에서는 사람은 유전자 차원에서 부터 이기적이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철의 수상 마가릿 대처는 사회 같은 건 없다 라고 발언하기도 했지요. 정리하자면, 탐욕이 경제발전과 개인발전에 필요하다는 시선입니다.
자신의 몫을 챙기지 못하는 사람, 따지지 않는 사람, 이런 사람들을 바보라고 여기기까지 하는 시대. 이른바 경쟁적 개인주의가 낳은 산물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 모두가 행복해 졌다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까? 탐욕스러운 사람이 되면, 좀 더 자기 몫은 챙길 수 있겠지요. 그러나 결국 행복은 잃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자가 말하기를, 사람들이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너그럽지 않은 사회, 그리고 돈을 버는 일이 하루를 사는 이유가 된 사회는 "절대로" 행복한 사회일 수 없다고 강경하게 언급하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이 부분을 몇 번이나 읽으면서 공감하였습니다. 돈을, 탐욕을 우선하는 것은 사회에 해가 되기 때문에, 이런 분위기로 세상이 흘러간다면 경계해야 한다는 저자의 시선에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 전해주어야 할 것이 있다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7가지 방법이 아니라, 더 풍요로운 삶을 만끽할 수 있는 7가지 방법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풍요에는 물질적 풍요가 인생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덧붙일 것입니다. 물질적 안정이라는 것은 중요한 기반일 뿐이며, 진짜 중요한 것은 자신이 무엇을 향해서, 또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임을 알려줄 것입니다. 묘비 명에 100만달러(10억) 모으기에 성공한 사람, 여기 잠들다! 라고 목표를 두고 살아갈 것인가요? 저라면 차라리, 너그럽고 유머를 사랑한 사람 여기 잠들다! 라고 쓰여있는 것이 3배는 멋있어 보입니다. 뭐, 이것은 가치관의 문제이므로 정답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묘비에 뭐라고 쓸지 정도는 생각해 볼 필요는 있겠습니다.
이야기를 이제 마칠까 합니다. 키에르케고르가 말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급하게 행복을 찾기 때문에 급하게 행복을 지나쳐버린다" 우리 시대의 삶이란 지나칠 정도로 빠르게 지나갑니다. KTX를 타고 가면 창밖을 음미할 여유가 없습니다. 아니 이제 기차의 창밖풍경이라는 말도 과거의 유물이 되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럼 느리게 살라는 말입니까? 그것은 어쩌면 뒤쳐지는 것을 의미할 수 있으므로, 꼭 그렇게 반대편으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겠지요. 허무와 우울의 철학자 니체의 답이 멋진 것 같습니다. 행복의 열쇠는 가장 최소한의, 꽃잎처럼 연약한, 공기처럼 가벼운, 도마뱀의 재빠른 움직임 같은 숨결과 순간을 음미하는 거라고... 결국 오늘 이 순간에 행복한 사람이 그 다음 날도 행복한 것이라 저는 믿습니다. 멀리 있는 어떤 뜬구름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오늘 리뷰는 장문이 되어버렸네요. 색다른 질문들을 만나보기 위한 책, 이것은 질문입니까? 호기심 많은 독자라면 한 번쯤 고민해 볼만한 주제가 있는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 2012. 03. 리뷰어 시북.
저자 : 존 판던 / 역자 : 류영훈 / 출판사 : 랜덤하우스코리아
출간 : 2011년 8월 30일 / 가격 : 13,500원 / 페이지 : 368쪽
질문이 60개나 있는 관계로, 호기심을 자극했던 내용들 몇 개를 중점적으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단연 흥미로웠던 것은, 국내 빈곤계층과 외국 빈곤계층 중 어느 쪽을 돕는 것이 더 중요할까? 라는 문제입니다. 예산은 제한적이니 더욱이 항상 논란과 갈등을 낳는 문제입니다. 멀리갈 필요도 없습니다. 당장 우리나라만 해도 북한에 인도적지원을 하는 문제로, 종종 논란이 되어 왔습니다. 국내에 빈곤층도 많은데, 북한을 도울 돈이 어디 있느냐 라는 의견도 꽤나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문제는 사실 심각합니다. 매일 2만5천명의 어린아이가 가난으로 사망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이것이 일상이 되다보니, 이제는 별로 자각하지도 않고 살아갑니다. 이 책의 장점은 이런 "세상의 사실들"을 한 번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는 것에 있습니다. 답이 없다고 포기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사실은 답은 있지만, 실행하지 않는 것이 아니냐고 부자 나라들의 통치권자들에게 경고하고 있기도 하고요 :) 그렇습니다. 빈곤의 문제는 이미 세계의 지혜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와 있는지도 모릅니다. 다만, 우리가 해결하려는 마음이 없을 뿐이겠지요. 결론적으로 정답은 없지만, (개인적인 견해로는) 적어도 양쪽 모두를 도와야 하고, 그 노력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적인 결론은 내릴 수 있겠습니다.
노인들이 건강보험 재정을 악화시킨다는 것도 꽤나 흥미로운 문제입니다. 설령 건강보험 재정에 젊은이들의 돈이 더 들어가고, 노인들이 보다 상대적인 혜택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모두를 위한 건강보험이므로, 노인들 탓을 할 수 없다고 저자는 강하게 이야기 합니다. 노인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더라도, 그 삶의 가치가 젊은 이들보다 미약하다는 생각은 위험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삶의 문제를 실용성으로 재단해 버리는 경우,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들이 실용성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 하나 무너져 내린다는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극단적으로 (실용성, 효율성의 극대화를 추구하며) 돈을 벌기 위해서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서 살아간다면, 이것이 올바른 방향일까요? 가족의 저녁식사라는 소박하고 귀중한 가치는 의외로 대단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여하튼 저자의 결론은 노인을 소홀히 대하는 사회라면, 그 사회를 먼저 병원에 보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저도 비슷한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 약자를 소홀히 대하는 사회라면,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 귀를 닫아버린 사회라면, 결코 공정한 사회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정의란 무엇인가 라는 책의 비유에 나와있듯이, 사회적 약자를 어딘가에 가두어 버린채, (혹은 무시해 버린채) 우리끼리 행복하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제대로 된 사회라고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희생과 피눈물 위에서 행복의 제국을 건설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니까요.
건축을 통해서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는 시선은 처음 알게 되었는데 신선하고 즐거웠습니다. 벽을 높게 세우고, 서로를 감시하는 어두운 골목의 CCTV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공동 공간을 만들고, 서로를 편안하게 볼 수 있게 끔 건축한다면, 범죄율이 확연히 떨어진다는 것은 아주 멋진 접근입니다. 현대 사회에서의 범죄는 단절에서 발생하고 있으므로, 서로를 연계시켜서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한다면, 범죄 없는 끈끈한 공동체도 꿈만은 아닐 것이라 생각해 봤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질문은 탐욕에 대한 질문입니다. 과연 탐욕은 좋은 것일까요, 나쁜 것일까요? 최근에는 탐욕을 나쁘게 보는 시선이 확산되어 가고 있다지만, (예컨대 월가에서 등장한 우리는 99%다, 1%의 탐욕에 반대한다는 시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욕심을 가지는 것이 권장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부자 되세요~ 라는 새해 인사가 유행을 이루었던 것이 불과 몇 년전이었습니다. 어떤 자기계발서에는 부자가 되는 비결로, 반드시 "욕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같은 책에서는 사람은 유전자 차원에서 부터 이기적이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철의 수상 마가릿 대처는 사회 같은 건 없다 라고 발언하기도 했지요. 정리하자면, 탐욕이 경제발전과 개인발전에 필요하다는 시선입니다.
자신의 몫을 챙기지 못하는 사람, 따지지 않는 사람, 이런 사람들을 바보라고 여기기까지 하는 시대. 이른바 경쟁적 개인주의가 낳은 산물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 모두가 행복해 졌다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까? 탐욕스러운 사람이 되면, 좀 더 자기 몫은 챙길 수 있겠지요. 그러나 결국 행복은 잃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자가 말하기를, 사람들이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너그럽지 않은 사회, 그리고 돈을 버는 일이 하루를 사는 이유가 된 사회는 "절대로" 행복한 사회일 수 없다고 강경하게 언급하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이 부분을 몇 번이나 읽으면서 공감하였습니다. 돈을, 탐욕을 우선하는 것은 사회에 해가 되기 때문에, 이런 분위기로 세상이 흘러간다면 경계해야 한다는 저자의 시선에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 전해주어야 할 것이 있다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7가지 방법이 아니라, 더 풍요로운 삶을 만끽할 수 있는 7가지 방법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풍요에는 물질적 풍요가 인생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덧붙일 것입니다. 물질적 안정이라는 것은 중요한 기반일 뿐이며, 진짜 중요한 것은 자신이 무엇을 향해서, 또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임을 알려줄 것입니다. 묘비 명에 100만달러(10억) 모으기에 성공한 사람, 여기 잠들다! 라고 목표를 두고 살아갈 것인가요? 저라면 차라리, 너그럽고 유머를 사랑한 사람 여기 잠들다! 라고 쓰여있는 것이 3배는 멋있어 보입니다. 뭐, 이것은 가치관의 문제이므로 정답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묘비에 뭐라고 쓸지 정도는 생각해 볼 필요는 있겠습니다.
이야기를 이제 마칠까 합니다. 키에르케고르가 말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급하게 행복을 찾기 때문에 급하게 행복을 지나쳐버린다" 우리 시대의 삶이란 지나칠 정도로 빠르게 지나갑니다. KTX를 타고 가면 창밖을 음미할 여유가 없습니다. 아니 이제 기차의 창밖풍경이라는 말도 과거의 유물이 되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럼 느리게 살라는 말입니까? 그것은 어쩌면 뒤쳐지는 것을 의미할 수 있으므로, 꼭 그렇게 반대편으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겠지요. 허무와 우울의 철학자 니체의 답이 멋진 것 같습니다. 행복의 열쇠는 가장 최소한의, 꽃잎처럼 연약한, 공기처럼 가벼운, 도마뱀의 재빠른 움직임 같은 숨결과 순간을 음미하는 거라고... 결국 오늘 이 순간에 행복한 사람이 그 다음 날도 행복한 것이라 저는 믿습니다. 멀리 있는 어떤 뜬구름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오늘 리뷰는 장문이 되어버렸네요. 색다른 질문들을 만나보기 위한 책, 이것은 질문입니까? 호기심 많은 독자라면 한 번쯤 고민해 볼만한 주제가 있는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 2012. 03.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