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누리교회

2012년4월8일/무화과 저주사건(마가복음11:11-20)/홍종일목사

시북(허지수) 2012. 4. 10. 12:37

영암교회 홍종일 목사님 설교 2012년 4월 8일 부활절 예배

왜 무화과를 저주하셨나?

성도 여러분

오늘 저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전의 승리의 행진과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사건을 기록한 본문을 가지고 말씀을 전하려 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무화과 나무가 예수님으로부터 저주받았다는 것에 대해서 초점을 맞추려는 것은 아닙니다.

뭐 우리 주님이야 신이시니까 그가 저주하면 무화과도 저주를 받습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 역시 믿음만이 있다면 산을 옮길수도 있습니다. 다만 우리의 믿음이 거기에 미치지 못할 뿐이지요.

우리가 흔히 착각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이 신이기 때문에 배고프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고 고통도 없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오늘 우리는 한그루 무화과 나무로 부터 거슬러 올라가 주님의 사랑과 고뇌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마가11:11-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 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매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시니라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마태21:17-

그들을 떠나 성 밖으로 베다니에 가서 거기서 유하시니라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

1.예수님은 왜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셨을까요?

그것은 예수님께서 무화과 열매를 얻지 못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에서 무화과는 ‘가난한자의 양식’이라고 불려집니다. 그래서 가난한 자는 누구나 이 무화과를 따먹을 수 있도록 허락되어있었습니다.

본시 무화과는 보통 3월말에 싹이 나서 5,6월에 열매를 맺고 8-10월 사이에 수확을 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3월말에서 4월경에 열매를 구한 것은 시기적으로 너무 빨랐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부활절이 4월초라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아직 무화과가 열리지도 않았을 것이고 열렸다고 해도 그것이 익어서 따 먹을 수 있으려면 아직 몇 달 더 있어야만 합니다. 당연히 예수님도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고난주간 전에 이일을 행하셨습니다.

그런데 무화과는 열매가 먼저 나고 난 다음에 잎사귀가 나거나 적어도 잎과 동시에 열매가 맺히기 때문에 푸른 잎사귀가 있다는 것은 당연히 열매가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사람들에게 주는 것입니다. 계절상으로는 아직 멀었지만 항상 예외라는게 있지않겠습니까?

무성한 무화과의 잎사귀는 ‘혹시’하는 기대를 가지게 만들 수 있습니다.

13절에 보면 “멀리서 잎사귀있는 한 무화과 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하여” 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예수님역시 이런 희망을 가지고 무화과를 살피셨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나무에는 비록 잎사귀는 무성했지만 어떤 열매도 있지 않았습니다.

자 여러분

이렇게 본다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얻지 못했다고 예수님께서 저주하신 것은 조금 사리에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본문의 저자인 마가역시 이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역시 같은 13절후반부에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그렇습니다. 무화과가 열릴 철이 아닌데 무화과를 얻지 못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여러 가지 궁금증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신적 예지를 가지신 예수님께서 어떻게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있는지 없는지를 알지 못하셨나, 제철도 아닌데 열매가 없다고 나무를 저주하시다니’ 등등

여러 가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러한 궁금증에 대한 답변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무화과나무는 우리가 오늘 이야기할 내용의 시발점이 될 뿐입니다. 사실 이 무화과 나무 저주 기사는 이스라엘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의 급박성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그러나 단지 그것만으로 끝나서는 이 사건 뒤에 나타나는 예수님의 인간적 고뇌에 일부러 눈을 감는 행위가 될 것입니다.

2.예수님은 시장하셨습니다.

저는 여기서 왜 예수님께서는 무화과 나무를 보시고 열매를 얻으려 하셨는지에 한번 초점을 맞추려 합니다.

본문과 같이 무화과 저주사건을 다룬 마태복음21:1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라고 기술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구절은 “이른 아침” 과 “시장하신지라” 라는 구절입니다. “이른 아침”은 히브리어로 ‘프로이’라는 말로 새벽3시에서 6시 사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것을 보면 우리는 예수님께서 아침식사를 하지 못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옛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당시의 유대인들도 하루에 두끼만을 먹었습니다. 솔직히 하루에 세끼를 제대로 먹게 된 것은 비교적 근세에 들어와서의 일입니다.

그래서 하루에 두끼를 먹었던 옛날에 한끼를 굶는 것은 상당히 고통스런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자세히 본다면 예수님과 제자들은 한끼만을 굶지 않았을 확률이 아주 큽니다. 두끼를 굶었을 확률이 있다는 거죠. 왜냐면 주님은 저녁때가 넘어서 성에서 나오셨기 때문입니다. 즉 베다니에 도착하셨을때는 이미 날이 저물어서 식사를 하실 수가 없었다는 말이지요. 그는 노숙을 하셨을 것이거든요.

점심이 없는 시절에 두끼를 굶었다는 것은 예수님이 지금 만 하루를 꼬박 굶고 계시다는 것을 뜻합니다. 제자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본문 11절에 “때가 이미 저물매 열 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구절과 마태21:18절의 “이른아침과 시장하신지라” 라는 구절을 연계시켜서 로버트선이란 학자는 예수님과 제자들은 베다니의 길거리나 야외에서 노숙을 했을 확률이 아주 높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만일 주님이 베다니의 어떤 집에서 유숙을 했다면 당연히 그들이 주님에게 아침을 대접하지 않았을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만일 노숙하셨다면 아마 저녁도 드시지 못했으리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때가 이미 저물매, 다시 말해서 저녁때가 지났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저녁을 굶고 베다니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그들을 맞아 주지 않아서 노숙을 했고 그리고 아침 전에 예루살렘성으로 가고 있습니다. 이게 바로 본문의 배경그림입니다. 예루살렘성은 지금 유월절 잔치기간입니다.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유대인들 때문에 터져나갈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 역시 예루살렘에서 주무시지 못하고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베다니로 주무시러 나오는 것입니다.

3.그러면 왜 주님은 노숙을 하셨을까요

그것은 베다니에서 아무도 주님을 맞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주님께서 일부러 사람들의 집을 찾지 않으셨을 확률도 있기는 합니다. 가난한 베다니사람들에게 열세명의 식사준비는 굉장한 부담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마 주님은 그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노숙을 택하셨을지도 모릅니다

여하튼 주님은 아무도 맞아들이는 이 없는 한적한 곳에서 추위와 배고픔을 이기셔야 했을 것입니다. 사막기후가 굉장히 좋지 못한 것은 낮에는 너무 덥고 밤에는 반대로 너무 춥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배고프시다는 것을 우리는 상상이나 할수 있습니까? 물고기 두마리와 떡 다섯덩이로 장정만 5000이 넘는 무리를 먹이셨던 능력의 주님께서.

그러나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배고프셨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서는 오병이어의 이적을 발휘하시는 분이지만 자기를 위해서는 돌로 떡 한덩이도 만드시지 않은 분이셨습니다. 완전한 신이지만 동시에 완전한 인간이신 주님은 추위와 굶주림으로 고통받으셨습니다. 그런데 그가 하시려고 하는 일은 그러한 박정한 인간들을 위해 어떻게 하면 십자가를 지고 죽으실까하는 것이었습니다. 웃기지 않습니까?

우리를 위해서는 높고 영광스런 하늘보좌도 버리시고 낮고 천한 말구유에 오신분이시며 33년간 이땅에서 우리들에게 아낌없이 사랑을 주시고는

그것도 모자라서 마지막에는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신 그런 사랑의 주님이셨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위해서는 어떤 이적도 베풀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무도 대접해 주지 않는 베다니에서 춥고 배고프셨습니다.

4.사람들은 하루만에 그들의 태도를 바꾸었습니다.

여러분

불과 하루전에 주님께서 예루살렘성으로 입성하실 때 그들은 어떠했습니까? 베다니 옆동네 벳바게 사람들은 주님에게 나귀새끼를 무상으로 제공했으며 ,제자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의 등에 펴고

나머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땅에 펴며, 가지를 꺾어서 깔았으며

순례자들은 종려가지를 흔들며 주님의 행렬을 열렬히 환영하지 않았습니까? 한두명이 아닙니다. 적어도 수만명의 사람들이 주님을 환영했습니다. 그가 이번에는 반드시 왕위에 오르실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세상이 올 줄로 여겼습니다. 벳바게에서 2-3분정도 차로 더 가면 베다니가 나온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벳바게와 베다니는 바로 옆마을입니다.

그들은 주님의 앞뒤를 따르면서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라고 소리높이 외치며 주님을 열렬히 환영했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왕으로 대접했습니다. 온 예루살렘이 예수님의 입성으로 소동했습니다. 오랜 로마의 식민지에서 벗어나 독립왕국을 이루고 그 옛날 다윗같은 멋진 임금이 되어서 거대한 영토를 아우르는 거대한 왕국의 국왕이 되실 걸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정신없이 그를 따르며 환영한 것입니다.

그러던 것이 불과 하루 전인데 지금 주님은 몸 누일 곳을 찾지 못하시고 야외에서 유숙하시며 아침을 굶으시고 시장하셔서 무화과 열매를 찾으려 하셨던 것입니다.

도대체 하루만에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10절에 보면 “ 오는 우리조상 다윗의 나라여”라는 말이 나옵니다.

여기서 우리는 처음 유대인들이 주님을 자기네를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키고 옛적 다윗 임금때의 강력한 나라를 만들 정치적인 메시야로 생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들에게 소중한 것들을 아낌없이 드리며, 겉옷을 땅에 깔고 종려가지를 흔들며 주님을 환영하고 따랐지만

주님이 그들의 기대를 저버리시고 단지 11절의 표현대로 단순히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보시고는 때가 이미 저물매 열두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로 나가시”고 말았기 때문에

그들은 더 이상 주님에게 잠자리와 식사를 제공하지 않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생각에 주님을 환영한다는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이었으니까

그들의 기대대로 로마군인들을 몰아내지도 않고

왕좌에 앉아서 제2의 다윗왕국도 선포하지 않고

단순히 성전을 둘러보시고는 나가셨기 때문에 사람들은 주님에 대한 정치적환상이 깨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오히려 성전뜰에서 장사하는 자와 돈바꾸는 자들의 상을 뒤집어 엎고 가축들을 몰아냄으로서 대제사장과 서기관들, 그리고 로마당국의 분노를 유발한 위험인물로 낙인찍혔기 때문에,

그분과 관계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은 하루아침에 태도를 돌변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5.베다니까지 주님을 배반했습니다.

여러분

이 베다니에는 예수님께서 죽은지 사흘만에 무덤에서 살려주신 나사로 남매가 살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마리아와 마르다가 사는 동네. 뿐만 아니라 주님이 지극히 사랑하신 고장이었습니다. 주님이 예루살렘성에 오실때는 대게 이 동네에서 유하셨습니다. 음, 아마 너무 친하고 그리고 충분히 주님의 일행들에게 대접을 할만 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러나 그러한 사랑을 아낌없이 받았던 베다니조차도 주님에게 아무런 유익을 구할 수 없다고 판단하자 주님을 배반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른 새벽에 무화과 열매를 찾으시게 까지 되었습니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 베다니에 있지는 않았습니다.

역시 주님과 함께 예루살렘성으로 종려가지를 흔들며 동행하지도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을 맞아들이지 않아서 그분을 길거리에서 유숙하게도 하지 않았고

하룻밤 잠자리와 한끼 따뜻한 식사를 아끼지도 않았습니다

당연히 우리는 주님을 외면한 적이 없노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놀라우신 사랑,

영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

높고 영광스런 하늘보좌를 버리시고 오늘 이 낮고 천한 자리에 오셨는데,

마지막 피와 물 한방울까지 아낌없이 우리를 위해 쏟아주셨는데

지금 우리는 과연 주의 부활을 어떻게 기념하고 있습니까?

그의 부활은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성탄절처럼 상업적으로도 활용되지 못하고 그냥 새벽 연합집회하나로 끝내기에는 주님의 사랑과 죽음 그리고 부활은 우리에게 너무나 큰 사건이고 은혜입니다.

우리 권사님들은 잘 아시겠지만 제가 어릴때만해도 권사님들은 부활절날 흰한복을 입고 교회에 왔습니다. 사실은 주님의 상중임을 기억하는 것이지요. 부활절 전주는 고난주간이므로. 그러나 오늘날 흰 한복을 입고 교회에 오는 사람들은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부산은 모르겠는데 목동제일교회나 창신교회에서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분을 생각한다고 하면서

단순히 삶은 달걀하나 받는 날로 생각지는 않습니까? 설마 단순히 절기헌금을 받는 날로만 기억되지는 않겠지요?

주님이 내게 유익이 되면 그앞에서 온갖 죽는 시늉까지 다하다가 주님이 내게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언제 그랬더냐는 듯이 냉정하게 주님을 배반하고 돌아서는 2000년전 유대인들 같지는 않습니까?

이제 우리는 이 무화과 한그루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랑하셨지만 사랑받지는 못하셨던 주님을 생각하는 그런 부활절

그 놀라우신 사랑을 이제는 조금이라도 돌려드릴 수 있는 그런 부활절

최후의 순간에 자기의 사랑하는 이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셨지만 그 외면한 사람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셨고 사흘만에 부활하신 주님을 기억하는 부활절이 되도록 합시다. 성경은 그를 사랑이라고 하십니다 그래요, 인간의 사랑을 넘어서는 신적인 사랑. 그 사랑 때문에 그는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모욕을 받으셨으며 마침내 사망권세를 이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렵지 않습니다. 그가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시거든요. 그래도 우리를 사랑하셨던 그 주님의 은혜에 감격하는

그런 부활절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 영암교회 홍종일 목사님 설교 2012년 4월 8일 부활절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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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올린이의 이야기

저의 사랑하고 존경하는 은사이신, 홍종일 목사님과의 인연은 제가 10대 시절인, 1999년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약 13년 전입니다. 그 때는 홍 목사님이 30대였고, 전도사 시절이었지요. 그 후 목사님은, 목동제일교회와 서울창신교회 부목사, 미국유학 박사학위까지 거쳐서, 고향 부산에서 목회를 시작하셨습니다.

하필(?) 지금은 기독교가 무엇보다 많은 비난을 받는 시점에 말이지요. 차라리 미국에서 목회를 하시는 것이 편하셨을텐데 라는 생각은 지금도 합니다; 한국에서는 사실상 많은 부분에서 종교란 이름을 갖다붙여서 옳지 못한 일들을 워낙에 많이 했고, 지금도 하고 있기에, 세상의 모진 비난은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마지막 기대였겠지요. 종교 너마저 썩었구나... 라는 사람들의 좌절감은 꽤나 무거운 슬픔의 무게입니다. 정의는, 가치관은, 기준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기에, 나밖에 믿을 것이 없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지식이 짧은 저로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어차피 신은 없고, 인생을, 시간을 쾌락에 불태우는 시대는 위험하지 않나 종종 우려합니다. 한국 사회의 많은 부분들이 어서 정상적인 (혹은 상식적인) 자리를 찾아야 하는데, 그 중에서 종교만이라도 올바르게 서 있다면, 얼마나 세상이 더 살기 좋을까 를 생각하곤 합니다. 음식이 미세한 소금만 있어도 훌륭한 요리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겠지요.

여하튼 너무나 오랜만에 직접 이렇게 좋은 설교를 들을 수 있어서, 또 옮겨서 기록으로 남겨 놓을 수 있어서 저는 삶의 행복이 하나 늘었습니다. 훗날 잘 간추려서 설교집 같은 형태로 출판될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지금은 그저 출발선에 있으니, 한 걸음씩 일단 행하는 것이 우선이겠습니다. / 2012. 04. 10.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