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연휴라서, 즐거운 영화가 잔뜩 있네요. 오늘은 다이하드4.0 이야기를 살펴볼까 합니다. 제작비만 1억달러 넘게 들어간 액션 영화로서, 일단 눈과 귀가 즐겁습니다. 이야기 하고 있는 주제도, 굉장합니다. 일반적인 범죄가 아니라, 사이버 테러를 중심으로 두고서 영화가 빠르게 전개되어 나갑니다. 속도감도 굉장히 좋아서, 2시간이 넘는 영화가 짧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리뷰에 앞서, 사이버 공간을 두고 재밌는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가상공간에서의 시간은 현실과는 다르게 흘러간다는 것이지요. 예를 들자면, 사이버상에서의 하루는, 현실에서의 일주일과 같은 비중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사이버상에서 고객의 클레임(불만)에 대하여 하루만 늦장대응 하는 경우, 그 파급효과는 현실에서 일주일의 늦장대응만큼 무서울 수 있다는 경고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영화가 스피드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이 이야기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사이버상의 몇 분간의 조작으로도, 현실에서 몇 시간의 허둥거림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이런 즐거운 통찰들도 가득한 멋진 액션 영화지요. 이제, 영화 속으로 출발.
영화의 주연배우인 브루스 윌리스 (존 맥클레인 역) 는 1955년생입니다. 2007년 제작된 영화니까, 당시에서도 이미 50대가 된 주인공이지요. 그래서일까요, 우리 주변의 50대 아저씨들처럼 컴퓨터에 관해서는 의사소통 속도가 느립니다. 사이버 테러 앞에서 그는 어쩐지 길을 잃은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행입니다. 78년생 젊은 피 제임스 롱 (매튜 패럴 역) 이 있으니까요! 두 사람은 서로 손발을 맞춰가면서, 사상 초유의 사이버 테러 앞에서 주눅들지 않고 맞서나가는 모습이 화려하고 근사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볼 수 있을까요. 최신 액션 영화의 정점에 서 있다고도 평가 받았던 다이 하드 4.0만의 색다른 매력들을 들여다 보고 싶네요.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액션영화 하면 등장하는 단골 손님은, 다름 아닌 "악당"입니다. 적이 일단 있어야 때려 잡을거 아니겠어요. 그런데, 이번 이야기는 조금 다른 느낌이 확 납니다. 시작 무렵에는 이 단어가 어울릴 것 같습니다. 영어단어 언노운(unknown). "알려지지 않은" 적의 위협이라서, 그만큼 대응하기가 어렵습니다. 일반적으로, 조직에서는 대응 메뉴얼이라는 것을 만들어 놓고서, 비상시를 대비해서 훈련도 하곤 한다지만, 이 메뉴얼이 통하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이럴 때 빛나는 것은 독특하게도, "인간의 판단력", "인간의 통찰력"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고참 형사 맥클레인의 중요한 결단들을 유심히 지켜보는 것도 영화의 커다란 즐거움이었습니다. 추적하다 길이 막히면 맥클레인은 주저 없이, 보다 현명한 친구에게 물어봅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저는, 지금까지도 소통의 중요한 본질 중 하나가 질문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꽉 막혀가는 사람들의 특징은 질문하지 않고, 따라서 듣지 않는 다는 것이니까요. 내가 하고 싶은 말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 다이 하드에서 배우는 매력입니다.
액션영화 하면 등장하는 두 번째 단골 키워드는, "무적의 주인공" 다시 말해서, 영웅 입니다. 하지만, 영화 스파이더맨이나 다크나이트 등에서 보여주듯이, 영웅이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이해받지 못하는 소외감"이라고 표현하고 싶네요. 좋은 일을 남모르게 열심히 해도, 사람들은 잘 알아주지 않습니다. 설령, 당시에는 환호하더라도 시간이 흐르면 잊혀지기 마련이지요. 맥클레인도 이제 영웅따위는 그만하고 싶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습니다. 물론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리기에 너무 나이가 든 것도 사실입니다만 (...) 영웅은 그저 앞에서 총 맞는 행위라는 그의 해석이 매우 강렬하게 와닿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맥클레인은 이번 영화 내내 부상을 달고 다닙니다. 피가 묻어나는 복장으로 적들과 계속해서 힘겨운 싸움을 해나갑니다. 병원을 가자는 젊은 친구 패럴의 권유에도, 그저 묵묵하게 제 갈 길을 갑니다. 지금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의사가 아니라 경찰이라는 그의 말이 인상적이지요. 다시 말해서, 고쳐야 할 것은 내 몸 하나가 아니라, 망가져 가는 세상 전체라는 것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영웅주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이렇게 공공성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그 마음가짐 하나만은 기립해서라도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이 많은 사람에게는, 그만큼 많은 책임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즉 높은 자리는 더 많은 부의 축적이나 권력의 행사가 아니라, 더 많은 책임으로 사람들을 돌아보아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것을 극한까지 밀어붙인다면, 만 명을 살펴봐야 하는 리더라면, 어깨에 만 명의 책임을 짊어졌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리더는 귀한 것이며, 중요한 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실종된 것 중 하나는 무엇보다도 리더십일 것입니다. 리더십은 통계적 수치들을 올려나가는 곳이 아니며, 전체를 고민하고 책임져야 하는 고독한 자리인 셈이지요.
다이하드4.0의 가장 큰 매력이라면, 바로 사이버 세상에 대한 강력한 통찰을 담고 있다는 점입니다. 모든 것을 연결하고, 어딘가에 저장해 놓는 것이 일상다반사가 되었습니다. 당장 통신사 광고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연결, 연결, 또 연결. 갈수록 점점 이렇게 되어갈 것입니다. 이건 저를 비롯한 많은 분들의 사례인데, 스마트폰에서는 간혹 시스템 오류나 호환 문제 등등 여러가지 원인으로 전화번호부가 통으로 날아갈 때가 있습니다. 한 번 이것을 경험하고 패닉에 빠진 뒤로는, 저는 반드시 구글 전화번호부와 연동해서 저장해 놓습니다. 그러면 그냥 로그인해서 정보만 불러오면 되니까요.
그런데 한 가지 의문, 만약 구글이 해킹당한다면? 에이, 그런 거대한 기업은 절대로 해킹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 누구도 완전히 장담할 수 없습니다. 보안이 취약하다 싶은 곳은, 이미 다 뚫려서, 우리의 정보들은 이 사이버 공간 어딘가를 둥둥 떠나니고 있음을 부정하기도 힘들 지경입니다. 정보를 어딘가에 저장해서 관리하는 "클라우딩" 시스템은 확실히 편리합니다. 하지만, 이 서버 자체가 뚫리게 되면, 우리의 정보는 더더욱 초토화 될 것입니다. 오늘도 수 많은 해커들이 그런 정보 데이터베이스 공간을 집요하게 노리고 있다는 것은 "현실"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현대 사회는 개인 정보가 곧 돈으로 연결되고, 이것을 조작하기 위한 범죄가 점점 지능화 되어가기 때문입니다.
아, 물론 고도의 사이버화 시대가 되어도, 중요한 것은 당연히 직접 가서 해결해야 하겠지요. 이 지점까지도 영화는 근사하게 잘 살려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잘 짜여진 각본의 힘에,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보여주는 거침없는 폭파씬, 시대가 변해감에도 여전히 주먹과 총으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맥클레인의 뜨거운 열정까지, 이 모든 것이 잘 어울려 있기 때문에, 이 작품이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요.
(의외로 장문이 되어가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더 늘어나기 전에 어서 마무리 지어야 겠습니다 (웃음) 저는 불편하지만 정감있는 아날로그적인 감성도 참 좋아합니다. 리모콘의 편리함은 물론 좋지만, 딱딱딱 소리가 나면서 채널이 돌아가는 그 시대의 느낌도 나름의 정취가 있었다고 생각하고요.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가까운 분들에게 정겨운 조언을 종종 듣습니다. 무엇이고 하니, 글만 한가득 채우면 별로 안 좋아하니, 사진과 이미지 등을 중간중간 삽입해서 좀 현대적으로 써보라는 조언이지요. 확실히 이미지 한 장 달랑 걸어놓으니, 좀 구시대적 느낌이 나는 것도 사실입니다. 어쩌겠어요. 불편해도, 저는 이 스타일이 꽤 마음에 듭니다. 쓸데 없이, 제 감성 이야기를 덧붙이는 이유는?)
영화의 마지막이 너무 좋았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의 영웅은 내가 아니라 바로 너 라는 그 대사가, 정말 훈훈하게 들렸습니다. 글자는 인기가 시들어가고, 이미지가 주도하는 세상이 오더라도, 저는 그 속도를 따라갈 재주가 별로 없습니다. 그림과 만화, 사진, 각종 도구 등으로 재치 있게 압축해서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이 시대의 주인공들입니다. 저는 앞으로도 느리지만,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담아서 C급 블로그 정도를 추구한다면, 딱 이상적이지 않나 싶습니다. (웃음) 우석훈 선생님의 책 대목인 걸로 기억하는데, 조금 변용해서 쓰자면, A급 세상를 창조하는 사람, B급 세상를 변화시키는 사람, C급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 정도. A급이 신급의 창의적인 재능이고, B급이 혁명가와 지도자의 재능이라면, 저는 그저 살아가기만으로도 벅찬 재능 없는 소시민일테니까요 :)
그런데 혹시 압니까. 가끔 우리같은 소시민이 용기를 내어서, 멋진 일을 해나갈 수도 있는거 아니겠어요. 그러므로, 이 시대의 영웅은 바로 우리 모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나약하고, 겁도 많고, 어쩌면 가끔은 찌질해 보일지 모르지만, 당신만의 매력으로 무엇인가를 해나갈 때, 세상은 좀 더 밝아질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하하, 오늘은 꼭 좀 희망적인 이야기를 담으면서 마치고 싶었네요. 다이하드4.0에서 즐겁게 살펴본 이야기들은 여기까지 입니다. / 2013. 02.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