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말하는 건축가 (Talking Architect, 2011) 리뷰

시북(허지수) 2013. 2. 13. 03:10

 새벽 1시. 잦은 밤샘 근무로,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데다가, 배가 고팠던 저는 라면을 사러 가고자 점퍼를 껴입습니다. 영화 말하는 건축가에서 라면 먹는 장면이 나와서, 아마 라면이 먹고 싶었나 봅니다 (웃음) 그리고 인근의 동네슈퍼에서 라면을 사서 돌아오는 길에, 어쩐지 하늘이 반짝이는 것 같아서 고개를 위로 들어올립니다. 이상한 광경이었습니다. 밤하늘에 별빛이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전날에 비가 와서 그런지 공기도 차갑고 맑은 느낌이었고, 그래서인지 별빛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지요.

 

 특히 눈길을 사로 잡던 것은 물음표 비슷하게 생긴 6개의 별이었습니다. 중간에 아주 흐릿하게 별이 하나 더 보여서, 문득 일곱개 같기도 했습니다. 스쳐지나가는 생각이 "이거 설마 북두칠성인가? 이렇게 아름다웠던가?" 몇 분을 그렇게 목아프게(!) 하늘을 보다가, 집으로 뛰어들어왔지요. 위키피디아에 들어가서 북두칠성을 찾아본 저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제가 본 것은 정확하게 북두칠성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나저나, 별자리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유는 뭘까요. 그것은 이 영화에서 제가 느낀 단어가 있기 때문이며, 그 단어를 아마 백번쯤은 계속해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단어는...

 

 

 바로 "공존"이라는 단어 입니다. 사전적으로 공존은 두 가지 의미입니다. 1. 두 가지 이상의 사물이나 현상이 함께 존재함. 2. 서로 도와서 함께 존재함. 북두칠성은 대표적으로 1번이 되겠지요. 청량하게 빛나는 여러 별들이 마치 서로 연결되어 있듯이 느껴지는 그 신비로움. 여기서 공존의 힌트를 저는 찾았습니다. 북두칠성에는 흐릿하게 어두운 별도 있고, 눈부시게 빛나고 있는 별도 있습니다. 서로 다른 별들이 연결됨을 느낄 때, 이것이 마법이 되고,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동그란 바퀴를 생각해봐도 좋겠지요. 한 바퀴만 있으면, 앞으로 가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이건, 곡예가 되어 버리지요. 두 바퀴가 연결되어 있으면 좀 더 편하지만 역시 쓰러질 수가 있습니다. 아, 어쩌면 끝없이 달려야 하는 피곤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네요 (웃음) 삼각형이나 세 개가 안정적인 것은, 바퀴가 세 개 정도 있으면 저절로 완성체로 서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자동차처럼 네 개 정도 바퀴가 있다면 신나게 달릴 수도 있겠지요. 한 가지 바퀴만이 허용되는 사회라면, 그것은 비극적일 것 입니다. 곡예사처럼 아찔하게 하루 하루 살아가야 하니까요. 하나의 시선만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은 그래서 위험하고, 아찔한 것입니다.

 

 영화 말하는 건축가는, 건축가이신 고 정기용 선생님의 이야기 입니다. 선생님은 강하게 힘주어 말합니다. 이제 다른 시선도 필요하지 않겠는가? 라고, 그리고 영화는 다양한 선생님의 작품과 시선, 생각들을 보여줍니다. 개인적으로 놀라웠던 경험은 다큐멘터리 형식의 분명 짧은 영화인데도, 거의 4-5시간은 흐르는 듯하게 매우 천천히 시간이 가는 것이었지요. 인상적인 장면들이 많아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두 가지 장면에 초점을 맞추고 싶습니다.

 

 첫 번째는, 건축가가 지어놓은 아름다운 건물을, 바로 옆에서 건물을 쌓아올리며 무참하게 훼손해버리는 장면입니다. 정기용 선생님은 육두문자를 써가며 불같이 화를 냅니다. 건축가와 소통하지 않고, 나무를 우습게 여기고, 자신만의 독단으로 건축물을 망쳐버리는 행정에 대해서 조금도 망설이지 않은채 거침없이 말합니다. 이 개XX. 배려심 없이, 빠른 속도와 결과만을 추구하다보면, 주변이 전혀 보이지 않게 되는 셈이지요. 선생님이 화를 냈던 것은 어쩌면 행정이 아니라 "그 미친 인간들의 욕심" 에 대해서 화를 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두 번째는, 집안을 파고 들어오던 햇살 장면 입니다. 그리고 저는 신영복 선생님의 일화가 떠올랐습니다. 감옥에 있으면서 자살을 생각하지 않았던 이유는 감옥 속으로 들어오던 햇살이 너무나 따뜻하고 아름다웠기에, 그것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었기에 희망을 가질 수 있었음을 신영복 선생님은 이야기 했습니다. 햇살과 인간의 공존. 이것은 사람의 심장을 살아있게 해줍니다. 그래서 이런 생각도 합니다. 오늘날 도시사람들은 사방이 벽인 폐쇄적인 공간에서 햇살을 차단당한채로 살아가고 있어서 점점 괴물로 변해가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지요. 햇살을 받으면서 산책만 자주 하더라도, 사람은 좀 더 행복해지고, 건강해진다고 확신합니다. 아, 우리는 너무 바쁘다고요? 음...!

 

 바쁘더라도 여유를 가지고자 노력해 봅시다 라고 이야기 한다면, 조금 모순적으로 들릴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거 중요합니다. 그리고 생각의 전환을 위해서도, 스위치 같은 마음 속 여유 공간을 반드시 마련해 둬야 합니다. 우울할 때, 기분을 바꿀 수 있는 스위치 말이지요. 함께 공존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다양한 생각을 담아두는 것이며, 나아가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라고 한 쪽 문을 열어보는 시도. 이것이 새로운 시도의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 나오지만, 공공 도서관을 다르게 생각해 본다는 것을 예로 들면 좋겠네요. 도서관에 반드시 책상과 의자만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어쩌면 시끄럽고 웃음이 있는 도서관이 가능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 보는 것이지요. 말하는 건축가를 보고 있자면, 이와 같이 다른 가능성에 대해서 충분히 생각하게 됩니다.

 

 끝으로, 창의성에 대해서도 통찰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창의, originality. 그 원천은 무엇일까요? 저라면 방대한 양의 노트에서 찾겠습니다. 치열하게 한 분야에서 노력했기에, 정기용 선생님은 다른 시선을 가질 수 있었던게 아닐까요? 색다른 시도를 계속해서 해봤기에, 그만의 세계를 창조할 수 있었던게 아닐까요?

 

 선생님은 마지막 가는 길에, 사람도 고맙고, 나무도 고맙고, (숨쉴 수 있는) 공기마저도 고맙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오늘 늦은 밤, 밤하늘을 보면서 북두칠성의 반짝임이 참 고마웠습니다. 평소에 이것저것 바쁘게 사느라 거의 보지 못했던 장면 앞에서, 한없이 압도되기도 했습니다. 밤하늘과 별이 공존하고 있음에 이상하리만큼 강한 끌림과 영감이 오고 갑니다.

 

 리뷰를 마무리 하며, 다시금 공존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공존이 갈등 없는 이상적인 모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것보다는 돌과 돌이 부딪혀서 서로 부드러워 지는 것이 공존이라는 말에 더 어울리는 모습인 것 같습니다. 공존은 결국 다른 말로 "함께 존재함"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가 다양한 생각들이 함께 존재한다면, 아름다울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홀로 어딘가에서 반짝이는 슈퍼스타가 되라고 하기 보다는, 너와 내가 연결되어 있는 존재라고 말해줘야 할 것입니다. 별이 아름다운 것은, 밤하늘을 배경으로 삼고 있기 때문임을 말해줘야 할 것입니다. 나무가 있고, 자연이 있어서, 그 건축물이 더 아름다웠듯이...

 

 어쩐지 새벽이라 참으로 감상적인 리뷰가 되었네요. 일상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정기용 선생님의 모습에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공공건물을 이용하는 사람 즉 주민 모두가 주인임을 꿈꾸었던 사람. 자연과 건축물이 조화로움을 추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 사람을 배려하는 건축물을 창조하던 사람. 일상에서 즐거움을 선물하고자 노력하던 그의 차분한 옆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건물은 자신만의 업적 과시용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건물은 누군가를 배려하는,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 그의 철학과 자유분방한 생각들이 돋보이는 영화 말하는 건축가 였습니다. / 2013. 02.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