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한국사

중세문화사 4 - 고려의 석탑과 공예

시북(허지수) 2013. 4. 27. 21:48

 고려의 마지막 문서를 멋있게 끝내면 좋겠지만, 사실 뭐 대단한 이야기가 있는 것은 아니고, 각종 석탑, 불상, 자기 등을 살펴보는 시간입니다. 후다닥 정리하면, 석탑에는 고려 전기에 월정사 8각 9층 석탑이 있습니다. 고려시대 대표적인 석탑인데 약 15미터 높이에, 상단 부분에 종이 달려 있는게 화려하고 인상적인 위용을 보여줍니다. 강원 평창에 가면 볼 수 있고요. 고려 후기에는 경천사 10층 석탑 이 잘 알려져 있습니다. 원나라와 라마교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크기도 엄청나고, 예전에 볼 수 없던 모양의 탑이기 때문에, 시험에도 종종 등장합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습니다.

 

 석탑외에도 승탑이 유행했습니다. 왜냐하면? 항상 왜냐하면이 중요합니다! 고려 건국 세력은 누구였나요. 호족들과 육두품 이잖아요. 이들은 선종과 풍수지리를 사상적 기반으로 삼았는데, 선종하면 스승에 의한 깨달음이 중시됩니다.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스승을 기리는 승탑이 많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고려의 불상이 특히 재밌는데요. 고려 초기에는 철로 만든 철불과 거대 석불이 유행 합니다. 설에 의하면, 전쟁이 끝나고 고려가 건국되자, 이제 철로 만들어진 무기들은 회수하고, 이걸로 불상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남 하사창동 철불이나, 관촉사 은진미륵 거대석불이 유명한 불상입니다. 상식을 깨는 파격적 불상 은진미륵을, 사진으로 한 번 볼까요.

 

이보시오. 날 보고 그만 웃게!

 

 친근함이 좀 느껴지십니까? 비례에 전혀 신경쓰지 않고, 균형미는 무시되고, 가분수 대두 불상... 그렇다고 절대 만만한 불상은 아닙니다. 높이 18미터, 제작기간 무려 37년, 한국에서 가장 큰 석불입니다! 아주 개성이 넘쳐 흐른다는 것이, 고려 초기 불상의 대표적인 특징 이라 하겠습니다. 지역적 특색을 보여주고 있다고도 평가받는데, 여하튼 자연스럽고, 재밌고, 편안한 느낌을 줍니다. 이 석상을 보고, 고려 초기가 생각난다면, 와우 오늘 문화사 마무리가 확실한 겁니다! (토착적인 성격이 강한 고려 불상 중에는 심지어 큰 돌에다가 눈, 코, 입을 만들고 불상이라 우기기도 합니다. 그만큼 자유 분방한 예술혼을 호족들이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엄중한 신라 후기 불상과는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물론 전부 친근한 불상만 있는건 아니고요, 고려도 문벌귀족 시대가 되고, 지배층이 보수화 되면, 개그는 그만! 엄숙하고 있어보이는 불상이 필요합니다. 문화는 시대적 영향을 받으니까요. 부석사 소조 아미타여래 좌상 같은 경우는 불상답게 생겼습니다. (부석사의 이 불상은 신라 양식과 흡사합니다) 뭐 불상들 이름을 모두 외울 필요까지는 없고, 고려 석불 중에는 파격적인 특징이 있다! 를 파악해두면 충분합니다. 참, 여담으로 부석사에는 고려 불화라고 해서, 너무 잘 만들어진 그림들이 있습니다. 고려의 불화들이 수준이 높았는데, 일제 강점기 때 대부분 외국으로 빼가는 바람에, 현재 국내에 남아 있는 고려 불화는 몇 점 없다고 합니다. 가만보면, 타국 침략에 의해서 문화재들이 희생된게 많습니다.

 

 끝으로 공예. 고려 공예의 최고 경지라면, "고려 청자"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송나라로부터 도입되어 고려만의 기술발전을 통해서, 멋진 자기를 만들어 냈습니다. 자기의 경우 11세기 문벌귀족 집권기에는 순청자가 유행합니다. 깨끗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귀족풍의 멋을 보여준다랄까요. 12세기 무신정권기에는 더욱 기술이 발달해, 상감 청자가 제작되기 시작합니다. 이게 뭐냐면, 은입사 기법과 나전 칠기를 자기에 적용시킨 것으로서... 에, 그러니까 쉽게 말해, 자기 바깥 쪽에다가 홈을 파서 그림을 새기고, 초벌 구이 한 후에, 청자유를 입혀서 또 굽는 방식인데... -_-;;;... 네, 그냥 고려 공예하면, 고려 청자가 대표적인 걸작품이다! 로 합시다 (...흐흐) / 고려 청자는 원간섭기가 되고, 고려가 쇠락해 가면서, 분청사기로 바뀌어 갑니다. 어쨌든 결론적으로 고려의 문화는 전반적으로 귀족적이며 화려하고 아름다운 측면이 있습니다. 조선의 선비 문화와는 다르다고 할 수 있겠지요. 이제 다음 문서부터는 긴 조선시대로의 여행을 떠나봅시다.

 

 오늘의 영감은 즐거운 마음으로 고려 가요(속요)의 분위기를 의역해서 소개합니다. "햇살 좋은 날에, 젊은 너와 내가 사랑을 속삭이며, 자유롭게 연애를 즐기고 있으니, 들켜도 무슨 상관이람! 라라라~" 이런 적나라한 가사들로 인해, 조선시대로 가면 고려가요가 "남녀상열지사"로 격하되면서, 매우 못마땅하게 여겨졌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지금은 남아 있는 고려가요도 몇 개 없고요. 예나 지금이나 남녀간의 뜨거운 사랑, 불타는 청춘은 무엇으로도 막지 못하지요 :) 이걸 표현하는 문화인가, 이걸 금지시키려는 문화인가, 그런 작은(?) 차이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가끔 저는 할 말을 못하게 쉬쉬하는 구조가 어디서부터 발생한 것일까? 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적어도 고려시대는 그 출발점이 아닌 듯 합니다. 오늘은 여기에서 끝.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