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교회 홍종일 목사님 설교 2013년 9월 22일 주일 예배
당신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빌립보서1:3-11)
지난 주에 우리는 추석을 보내었습니다. 한국의 이대 명절 가운데 하나인 추석은 우리에게 도전이요 축복이며 감사의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빌립보 교회에 편지를 보내며 성도들에게 감사를 전하는 바울사도의 마음으로 저의 감사와 고마움을 표하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적은 교회를 이루고 있기는 하지만 여기에 같이 있지는 않은데 우리 교회와 저를 위하여 기도하는 많은 성도들이 각처에 있음을 압니다.
가까이 있다면 서로 왕래하고 인사를 할 고마운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수년동안 오직 주의 이름 때문에 이 부족한 종을 후원해 주신 많은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 아들에게 아직도 긍휼을 끊지 않으시고 은총을 베푸심을 또한 감사합니다.
우리가 다른 이들의 눈에 감사할 여러 조건이 있든지 없든지 우리의 삶이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음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집을 주시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도록 하심 역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어려운 삶 가운데서도 우리를 사랑하셔서 보호하심도 역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쁘고 감사합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이렇게 믿음의 새싹을 감사와 기도라는 거름으로 키워 가기를 원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주신 이 소중한 터에서 하나님의 놀라우신 역사를 이루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바울은 자기의 편지에서 항상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에게 감사하고 이어서 그 지역의 성도들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우리의 모든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것이므로 주께 감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인간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가령 우리가 ‘나는 하나님 아버지의 종이므로 네가 안 도와줘도 누군가는 나를 도와주게 되어있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도움의 손길을 편 이들에게 감사하지 않는 것은 인간의 할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누군가를 돕고 선행을 베풀 때 꼭 그 상대방으로부터 보답을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면 그들은 대게 보답을 할만한 상황도 안될 수 있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이때 주님은 우리에게 누구 다른 이를 통하여 더 많은 것으로 채워 주십니다. 그러나 그 도움을 베푼 당사자게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인간의 도리입니다. 우리가 감사할 줄 아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 기독교인에게 주신 아주 귀하고 아름다운 마음의 하나입니다.
바울은 지금 몸은 비록 빌립보 교인들과 떨어져 있지만 예전에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던 때를 회상하고 또한 그들이 자기에게 연보를 보내준 것을 항상 되새기고 있습니다. ‘내가 감사하며’로 쓸 때 현재형을 사용하여 빌립보 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계속해서 감사한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한번씩 가끔가다가 감사하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빌립보 교회의 교인들만 생각하며 가슴이 먹먹할 정도로 감사하다는 말입니다.
저 역시 생각할 때마다 감사한 이들이 있습니다. 너무나 감사하여 도저히 이땅에서는 그 은혜를 갚을 수 없을 것 같기에 오직 기도합니다. 전능의 주께서 저 대신 그들에게 갚아 달라고요.
바울 역시 이와 같이 빌립보 교인들을 생각할 때마다 감사한다고 말합니다.
다음으로 바울은 4절에서 “간구할 때마다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간구’는 ‘결핍, 부족’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즉 부족함을 채워달라는 간절한 기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아마 바울은 선교비가 부족하여 이를 채워달라고 기도할 때마다 간절하지만 기쁨으로 빌립보 교회를 위하여 기도한 것 같습니다. 선교비가 부족할 때에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면서 아마 자연적으로 빌립보 교회가 생각났을 것이고 이때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더 많이 보내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항상 도움을 주는 빌립보 교인들이 더 복을 받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는 말이지요.
자기의 부족함을 채워 준 그들의 연보가 더 감사히 여겨졌기 때문이지요.
사실상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눈에 보이지 않으면 자연적으로 정이 멀어 지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연보를 보내주고 기도하고 감사하는 것은 우리의 영이 서로 영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가 자기의 부족을 채월달라는 간절한 기도를 할 때마다 간절하고 절박하기는 하지만 기쁨을 가지고 빌립보 교인들을 생각하고 기도한다고 말합니다.
당시 바울은 로마의 옥중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빌립보 교회 역시 평안한 상태가 아닙니다. 교회 안팎으로 여러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믿음으로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에 참된 기쁨을 가지고 빌립보 교인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이렇게 내가 너희 모두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기도한다고 하는 말은 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냥 습관적으로 기도하더라도 이런 저런 사정으로 기도를 빼먹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말에 거짓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항상 기도할 때마다 저를 위하여 사랑을 베풀어 주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 있잖아요.
“목사님 이러 저러한 일이 있는데 기도 좀 해 주세요” 이런 부탁을 받으면 저는 혹시라도 잊어 버릴까 싶어서 그 순간에 바로 기도를 합니다. 그래야 나중에 잊어 버리더라도 기도를 하지 않고 지나가는 실수를 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바울은 로마의 옥중에서 빌립보 교회의 연보와 편지를 보고 너무 너무 기뻐합니다. 그래서 그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기도할 때마다 빌립보 교인들의 사랑에 감사하며 기뻐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님 저들에게 주께서 저를 대신하여 30배 60배 100배로 갚아 주십시오’
바울은 이어서 5절에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인함이라’는 말은 이유를 나타냅니다. 즉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을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하는 이유는 복음 안에서의 지속적인 교제 때문이랍니다. 그것도 복음을 받아 들이던 첫날부터 로마의 옥중에 있는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는 교제 때문에 빌립보 교인들을 위하여 기쁨으로 간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여기서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대목입니다. 인간적으로 서로 소식을 나누고 교제한게 아니라 복음 안에서 교제했다고 하는 대목입니다. 그래요 우리가 서로 하나님 안에서 영적으로 교제하는 것입니다.
이 교제는 바울의 복음사역을 위하여 기도하고 연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교제라는 말에서 사용된 교제는 우리가 잘 아는 단어 ‘코이노니아’ 와 관련이 있습니다. ‘코이노니아’는 교회를 말하는 단어인데 교제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동역, 동참.
다시 말해서 교제한다는 말은 바울의 사역에 빌립보 교인들이 동참한다는 말이고 바울의 동역자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저도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에게 기도로 물질로 후원해 주신 많은 이들은 저의 동역자이자 저의 복음 사역에 동참하는 분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가 지속되는 한 우리는 동역자들의 헌신을 기억하며 감사할 것입니다.
6절의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는 누구를 말할까요? 바로 하나님을 일컫는 말입니다. 주께서 우리 가운데서 착한 일을 사작하게 하신 것이므로 그가 끝까지 그일을 하게 하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일시적으로 누구를 위하여 물질로 후원하며 기도하기는 비교적 쉽습니다. 그러다가 보통 얼마 못가서 흐지부지 되는 경우를 우리는 많이 보았습니다.
그런데요 저는 저에게 붙여진 분들이 정말 복음의 사역자로서 너무 오랫동안 저와 함께 하게 됨을 감사합니다. 이러한 장기간의 후원은 결코 인간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아주 특별한 일이고 아버지의 전적인 은혜가운데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일을 주장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특별한 일을 담당하는 이에게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과 보호가 함께 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기쁨과 감사함으로 기도합니다.
바울의 편지는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내가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한마디로 우리가 서로 만나서 사랑하게 된 것이 하나님의 역사라는 말입니다. 게다가 그 영교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에 완성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생각’은 단순한 생각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일에 감정과 정신을 두고 있는 상태를 묘사하는 말로 깊은 관심을 마음에 가지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7절에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그래요 지금 빌립보 교인들이 항상 바울의 마음 한가운데 좌정해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마음’은 심장을 가리키는 말로 육체와 정신의 좌소를 말합니다. 바울은 지금 로마의 옥중에 있습니다. 빌립보교회의 사랑을 되새기는 것이 그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요. 내가 지금 이렇게 옥에 있지만 지금도 나를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과 나의 사랑은 하나님이 시작하셨으므로 주의 날이 이루어지기까지 결코 끊이지 않을 것이라는 그런 믿음은 바울을 고난 가운데서도 위로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대해 바울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여기서 ‘매임’은 옥에 갇힘을 말하고 ‘변명함’은 복음을 위한 변증을 말합니다. 세상이 가지는 복음에 대한 편견을 제거하고 반론을 극복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확정함’은 복음에 대한 증언의 말씀을 말합니다. 그는 복음을 위하여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가 옥에 갇힌 것은 다른 죄 때문이 아니라 복음을 전했다는 죄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빌립보 교회의 교인들이 자기의 사역에 함께 하고 있음을 알기에 결코 좌절하거나 낙심하지 않습니다. 옥 속에서도 그는 위로를 받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다시 만나서 서로 사랑하게 될 것을 믿고 있습니다.
마치 노사도의 잔잔한 회상의 장면들이 눈앞에 그대로 드러나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멀리 떨어져서 비록 얼굴을 대면하여 보지는 못하지만 저들 역시 우리와 함께 복음 사역에 동참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면 하나님이 결코 우리를 이대로 버려두지 않으시고 궁극적인 승리와 기쁨을 허락하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기의 빌립보 교회에 대한 사랑을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모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하나님이 증거하신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으면 사랑이 식을 수 있습니다. 어찌보면 당연한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금 바울은 멀리 떨어져 있고 어쩌면 영원히 못볼지도 모르는 암담한 상황에서도 빌립보 교인들을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고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결코 거짓되지 않는 사랑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지는 사랑
하나님이 증거하시는 사랑을 지금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전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그러한 사랑을 저의 사랑하는 이들에게 전하고자 합니다.
내 아버지께서 우리 사랑의 증인이 되실 것임을 또한 믿습니다.
끝으로 바울은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뭐라고 기도합니까?
참, 여기서는 한번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빌립보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첫 번째로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사랑이 더 풍성해 지기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연보 더 많이 하고 기도 더 많이 해달라는 그런 사랑의 풍성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사랑은 아가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무조건적이며 이타적인 사랑을 말하는데 바울은 이미 있는 빌립보 교회의 사랑이 점점 더 자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어디까지 자라나야 하면 그리스도의 충만함에 이르기까지.
‘지식과 총명으로’
이 말은 지식과 총명을 통하여 더 사랑하게 되라는 말이 아니라 사랑에 지식과 총명을 겸비하라는 말과도 통합니다. ‘지식’은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보다 완전하고 진보된 깊은 지식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통하여 가능하게 되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말합니다.
‘총명’은 감각적으로 꿰뚷어 보는 통찰력과 분별력을 말합니다. 즉 감각이나 경험을 포함한 도덕적인 이해와 분별력을 말합니다. 바울은 지식과 총명을 겸비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첫 번째 결과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한다고 합니다.
왜냐면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열정에는 반드시 지식과 총명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악에서 선함을 구별하여야 하고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구별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능력이 총명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이러한 총명을 가지고 선한 것과 악한 것을 구별하며 이쪽과 저쪽의 선택의 기로에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삶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연륜과 지혜의 상징입니다.
이제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 지식과 총명을 겸비하기를 바라면서 그 결과로 먼저 지극히 선한 것을 잘 구별하기를 기도합니다.
두 번째로 진실하여 허물이 없기를 기도합니다. 세상의 때가 묻지 않고 순수하게 자신을 지키며 자신을 통해 다른 사람이 실족하거나 넘어지지 않도록 하는 성숙한 신앙의 사람이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세상과 분리되어 바위절벽위에서 하늘의 이슬만을 받아 먹고 사는 성인은 아닙니다. 세상에서 웃고 울며 사랑하고 미워하며 아픔에 겨워하는 한갓 인간에 불과합니다 아직 완전히 성화되지 못하여 성령의 인도로 성화의 길을 가는 죄많은 인간에 불과합니다.
걸핏하면 상처받고 상처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랑에 지식과 총명을 겸비한 빌립보 교인들이 더렵혀지지 않은 순수함을 그리스도의 앞에 서기까지 유지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저의 주위에 있는 좋은 분들이 언제 까지나 순수한 영혼을 소유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안에서 주만을 바라면 사는 놀라운 기적을 맛보는 이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세 번째로 바울은 사랑에 지식과 총명을 겸비한 빌립보 교인들이 의의 열매가 가득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의의 열매는 성령의 능력으로 변화된 인격의 증거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열매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때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몇주 동안 이러한 열매들에 대해서 배운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울은 구약시대부터 사용해 오던 송영의 구절을 인용하며 자기의 기도를 끝맺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저도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들을 사랑하사 의의 열매를 가득 맺어서 저들이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합니다.
저들뿐만 아니라 이 부족한 종과 종의 가정도 하나님을 사랑하며 지식과 총명이 더해져 세상의 선악을 제대로 분별하며 순수한 영혼으로 하나님의 의의 열매를 가득 맺어서 우리의 삶이,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요, 그러면 먼저 우리가 빛의 자녀처럼 살고 모든 이들도 그렇게 살기를 위하여 기도하면 됩니다.
- 홍종일 목사님 설교 2013년 9월 22일 주일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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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기장군 정관면 백운공원 옆 / 함께 하고 싶으신 분은 strongbell@한메일 / stronghjs@네이버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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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올린이의 이야기 (시북의 이야기)
당신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는 게, 무엇보다 인간다움이 아닐까 라는 단순한 생각을 해봅니다. 당신을 만나서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라고 말하는 게, 무엇보다 행복함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우리가 빨리 걸어가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오랜기간 계속 걸어갈 수 있는 까닭은 당신이 함께 하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인연이 닿고, 고마운 일이 계속되고, 사실은 이런 상황이야말로, 기적이라는 말이 맞는지도 모릅니다.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에게 도움을 받고, 그들이 있었기에, 우리의 삶이 보다 행복할 수 있었음을 기억합니다. 혹여 호의를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면, 우리는 정말 되돌아 봐야 합니다. 더 적극적으로 감사를 표현하고, 그 따뜻한 마음을 잘 간직하고 기억하는게 중요합니다. 도와주시고, 격려해주시고, 지금까지도 친절하게 응원해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당신이 있기에 너무나 좋고, 당신을 생각해보면, 하나님께 참 고맙기만 합니다. / 2013. 09.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