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한국사

민족운동 2부 - 1910년대 국외. 신흥무관학교, 북로군정서!

시북(허지수) 2014. 10. 28. 21:53


 지난 문서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1910년대 국외에는 주요 5군데 거점에 기지가 세워지게 됩니다. 서간도에는 경학사, 부민단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영향을 받아서 신흥무관학교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앞서 보았지요. 선조들이 재산들을 다 탕진하면서까지 세우려고 했던 것. 그 노고가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되었습니다. 중국사람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 전 재산을 쏟아부어서 땅을 사들이고 무관학교를 세우려는 그 엄청난 노력들.

 

 자, 이제 이 기지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이 이후에는, 1920년대 청산리 전투에 참여하는 것이고요, 또 이들이 의열투쟁하고, 폭탄을 일제에 던지는 것입니다. 항일무장투쟁의 화려한 역사는 이렇게 아름답게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 분들이 쓴 어마어마한 자금들은 오늘날 항일무장운동의 역사에 한 줄씩 하나하나 채워나갔다고 봐도 되겠고요.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 조선의 제대로 된 명망가들이 보여주는 모습들이 대단하지 않나요.


 서간도에서는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이 만든 부대가, 서로군정서 입니다. 여기까지 우선 잘 체크해 두시면 되겠고요. 지난 문서처럼 색깔이 입혀진 대목은 시험 출제 빈도가 높다는 점을 또 알려드릴께요. 그러면, 왜 고생하면서까지 이렇게 사셨을까? 대한독립만세를 그토록 원하던 멋진 사람들. 그렇기에,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계속해서 던지게 되는 질문 아니겠어요. 한 번의 인생, 한 번의 젊음을 무엇을 위해 살아볼 것인가. 쉽게 찾아지지 않겠지만, 이 질문, 고민해 볼 가치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자자, 이어서.


 북간도 지역은 1910년대 이전부터 사람들이 많이 살았고요. 함경도 지역의 명망가들이 독립운동기지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여기도 마찬가지로 재산 다 또 쏟아부으면서 학교를 세우고, 군대를 만들어 지원하는 모습들이 있었습니다. 꼭 기억해야할 조직은 중광단 입니다. 대종교 (단군을 믿는) 에서 후원하는 조직이 되겠고요. 그 외에도 대한국민회가 있습니다. 한편 북간도에서는 구한말에 세워진 서전서숙의 뒤를 이어서 명동학교(역시 구한말)가 활약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주목! 북간도의 중요한 부대가 나옵니다 북로군정서, 대한독립군이 나옵니다.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서 우리가 힘을 비축하자, 이것이 근본적 취지 아니겠어요. 실제로 그 부대가 지금 완성되어 나가고 있습니다. 이들이 이후 1920년대의 새벽을, 항일무장운동으로 역사를 써내려가게 되고요. 북로군정서가 청산리전투와, 대한독립군이 봉오동전투와 연결될 거에요. 자세한 것은 또 1920년대 역사 시간에 살펴볼테니, 걱정마시고요 :) 천천히 하나씩 역사의 흐름을 살펴봅시다.


 그러면, 다음 꼼꼼하게 연해주 지역을 봐요. 여기에는 성명회, 권업회가 있고요. 이들의 영향을 받아서 만들어진 정부가 대한 광복군 정부라고 있습니다. 이상설이 주도를 했고요. 1914년에 세웠다가 금방 사라지게 됩니다. 한편 이상설이라는 인물을 주목해 볼께요. 이상설은요, 오래 전 을사조약 파기상소를 올렸고요, 그것도 무려 5번이나! 결국 나라가 몰락해 나가자, 인재를 양성하자고 북간도로 넘어가 서전서숙을 세워나갑니다. 이 때, 고종이 이상설을 불러 헤이그특사로 파견합니다. 헤이그 특사는 전에 배웠듯이 실패로 끝나고 말았지만요.

 

 그 이후에 이상설은 다시 연해주로 와서 정착을 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그는 대한 광복군 정부를 만들려고 했던 셈이니 일생을 얼마나 열심히 발품을 팔고 더 나은 조국을 꿈꾸며 살아가는 것입니까. 지난 번 이회영도 그렇지만, 평생을 조국의 광복에 초점을 맞춰서 살아가던 인생들. 멋지지 않습니까. 이상설은 다양한 장면마다 나오다 보니까 시험에도 자주 나와요. 구한말 격동기마다 중심적 인물이기 때문에 기억해 두면 좋겠네요. 한편 연해주에서는 대한국민의회(손병희,1919)가 있습니다. 이 부분은 천도교와 관련이 있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합쳐지게 되는데요. 다음 문서부터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배울테니까, 일단 배경만 언급해 놓을께요. 여하튼 연해주 지역의 활약을 살펴보았습니다.


 상하이 지역에서는 신한 청년단(당)을 떠올리시면 되겠습니다. 임시 정부의 모체가 된다라고 보시면 됩니다. 여기서 파리 강화 회의에 김규식을 파견하는 활동 등을 하는데,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활동과 차차 겹쳐져 나갑니다. 다음 문서를 대비해서, 배경으로 알아두시면 되겠지요.


 마지막으로, 미주지역에서 꼭 기억해야 할 조직은, 대한인 국민회 (미국 샌프란시스코) 입니다. 아~ 이름이 비슷하기 시작합니다. 어쩐지 단체 이름들이 헷갈리기가 쉽다는 거에요. 그런데 어쩔 수가 없습니다. 조직을 만들려고 하니까, 작명이 어렵습니다. 대한과 독립, 광복 몇 가지로 다들 겹쳐나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색다르기 보다는 시대 상황상 비슷비슷 할 수 밖에 없습니다. ㅠㅠ 이럴 때는, 자주 복습을 하는 훈련만이 해결책이겠지요.


 대한인 국민회는 예전에 하와이로 이주했었던 사탕수수 노동자 들도 있었고, 다양한 미주지역의 사람들이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서로 힘을 모아서, 조직들을 만들고 합쳐 가는 것입니다. 작은 돈일지라도 함께 모이다보면 매우 커지니까 멀리 있다고 하더라도 조국을 되찾고 돕고 싶다는 바람이 그만큼 컸던 것입니다. 이 조직이 만들어진 결정적 계기는 장인환 전명운의 스티븐스 사살이 큰 동기부여가 되어서 만들어졌습니다. 여기서 활동했던 중요 인물로는 이승만, 박용만, 안창호 가 있고요. 이승만은 구미위원부에서 활약을 많이 하고요. 안창호는 흥사단, 박용만은 대조선국민군단(하와이)을 조직합니다. 여기까지 1910년대 국외의 모습을 거의 나열식으로 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의 영감 -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2분의 반사. 신흥무관학교에서 배출된 3,500명은 무료로 훈련되었고, 항일무장투쟁에 설 수 있었습니다. EBS는 이것을 가슴 벅찬 역사로 표현했습니다. ▶ http://youtu.be/M66js1RDnJ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