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욤 뮈소 원작, 시간여행이라는 판타지. 인생을 되돌리고, 다르게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삶을 어떻게 해볼 것인가. 영화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는 소재 부터가 무척이나 흥미로웠습니다. 영화는 주인공 수현이 참 좋은 의사가 되어 있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의료 봉사를 통해서 오지의 아픈 이들을 애써 도와주고, 덕분에 한국에서는 다른 의사 선생님들이 수현의 빈자리를 뒷감당(?) 해야 하고요. 따뜻하고 여린 마음으로 인해, 그 덕분에 좋은 의사가 되었다는 극중의 명대사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네요.
이렇게 잘 나가는 소아과 과장님 수현에게, 어느 노인이 알약이 담긴 통을 선물로 건네줍니다. 호기심에 약을 먹었다니 아니나 다를까, 1985년. 정확히 30년 전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거기에는 젊은 날의 수현이 살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지점에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생이란 누구에게나 실은 아픈 순간이 있는 게 아닐까. 뜻대로 되지 않는 일도 있기 마련이고요. 설령 슬픔, 아픔이 있었다 해도, 그 자체로 참 소중한 인생. 지금 열심히 살아내는게 제일 중요하겠지요.
※이 리뷰는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가득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반드시 주의하세요!
젊은 수현은 동물원에서 돌고래들을 조련하고 있는 연아양과 함께 아름다운 젊은 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연아는 적극적으로 수현에게 고백합니다. "나 네 아이를 가지고 싶어, 결혼하고 싶단 말이야" 그런데 수현은 머뭇거리고 망설입니다. 수현에게 가족의 기억이란 비극 그 자체였기 때문입니다. 폭력을 일삼았던 아버지와 가출한 어머니, 그래서 당장에 연아와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갈 자신이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일단 미루고, 언젠가 어떻게든 되겠지 라고 때를 기다리려고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행복하고 눈부신 날들 대신에, 비보가 전해집니다. 수현은 시간 여행을 통해서, 연아에 대한 비밀을 젊은 수현에게 털어놓습니다. 연아가 죽게 된다고. 그러니까 잘 대해주라는 것입니다. 완전히 믿을 수 없는 소식. 그러나 연아를 살리기 위해서, 두 사람은 신의 한 수를 선택합니다. 연아와 이별하는 것. 그 대신 동물원에서의 사고를 완전히 막아내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연아와 잘 되면 안 되나요? 거기에는 또 하나의 사정이 있습니다. 수현에게는 수아라는 소중한 딸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이 아이의 탄생을 위해서도, 연아와는 잘 되면 안 된다는 것. 자, 그런데 젊은 수현은 이별을 감당하지 못하고 방황합니다. 이 점은 수현을 너무나 사랑했던, 연아도 마찬가지인데, 그녀는 제발 마음을 돌이켜 달라고 간절하게 호소합니다. 그러다가 비오는 어느 날, 연아가 교통사고로 중태에 빠지고 맙니다. 결과는 사망. 연아를 살려보려고 노력했지만, 결과는 똑같은 것일까요.
수현은 약물을 계속해서 복용하며 85년으로 또 다시 돌아갑니다. 연아의 사인을 알아낸 후, 수술을 통해, 마침내 연아를 극적으로 죽음에서 구해냅니다. 그리고 매우 놀라운 대사를 들려주지요. 이게 내 마지막 수술이었고, 이 수술을 통해 연아가 살았으니 그것으로 된 거야. 라고. 나이 든 수현 역시 애연가로 살다가 그만 폐암 말기, 삶의 마지막 순간을 보내고 있던 것입니다. 혹자는 그래서 이 작품을 금연홍보영화 라고 재치 있게 평하기도 합니다만... 일단 넘어가고.
덕분에 2015년에도 연아는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며 평생을 후회했었던 한 가지가 무엇일까, 그 점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핑계를 대며, 행복을 자꾸 미루기만 했던 게 아니었을까요. 내 아버지가 이것 밖에 안 되는 사람임을 숨기려 했던 게 아니었을까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세월이 지나고서야 수현은 깨달았을 겁니다. 아,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목숨을 잃을 수도 있구나, 아 과거에 내가 불우한 가정이었다는 것이 뭐 그렇게 큰 오점이었을까, 지금 행복하게 살면 얼마든지 되는 것인데...
그리고 나이 든 수현과, 나이 든 연아는, 친구 태호의 살신성인(?) 하는 도움으로 인해, 극적으로 재회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보다 못한 태호가 전설적인 대사를 날리거든요. "야, 담배 좀 그만 펴!" 이제 조금 더 삶을 누릴 수 있었던 수현은 연아와 마지막으로 재회한다는 이야기. 수현의 말이 맞을 겁니다. 30년 동안 한 순간도 연아를 잊은 적이 없었다고. 그래서 딸의 이름도 수아라고 그대로 정했겠지요. 젊은 날의 사랑은 그토록 예뻐서 평생토록 간직되고 추억된다는 것이 인생이겠지요. 무엇보다 그 젊음을 더 미루지 말고, 할 수 있는 일들은 해보라고 적극 권하고 있습니다. 몸에 나쁜 담배는 끊고, 마음에 행복이 되는 애정은 담고.
방문요망이라고 쓰자, 30년 뒤의 자신이 방문해서 이야기를 건네줍니다. 우리도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요? 30년 뒤의 자신이, 혹은 죽기 직전의 자신이 와서 무슨 이야기를 해줄 것인가? 결국 해답은 가까운 사람들,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따뜻하게 잘하라고 전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실은 언제까지나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아닐테니까요. 그렇게 우리가 조금은 더 다정한 사람이기를, 조금은 더 성실한 사람이기를, 그런 메시지가 전해오는 듯 합니다. 부지런하게 달려와주는 연아처럼, 우리의 삶 역시 운명 앞에서 발로 살아갈 수 있기를 응원하며! / 2017. 02. 28.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