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종이 달 (Pale Moon, 2014) 리뷰

시북(허지수) 2017. 3. 9. 05:33

 

 일본 영화 종이 달, 절대로 해서는 안 될 금융 범죄 영화 인데도, 긴장감이 느껴져서 참 재밌었네요. 2시간이 이렇게 빨리 지날 줄이야! 여러가지 격언들이 금방 떠오릅니다. 어릴 적 버릇은 커서도 계속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는 것. (우리네 상상과는 다르게) 돈으로는 행복을 쉽게 살 수 없다는 것. 오히려 두려움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 매우 섬세하고, 정중하게 그려져 있어서 좋았습니다. 사람 보는 눈을 가지기가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도 좋은 교훈입니다.

 

 서론을 풀어서 써놓고 보니까 뭔가 대단한 것이 담겨 있는 작품으로 여겨지지만, 그냥 가볍게는 10억원으로 즐겨보는 아주머니의 일탈 여행으로 보셔도 충분할 꺼에요. 원작 소설이 있는 작품이다보니, 스토리가 빈틈없이 잘 구성되어 있습니다.

 

 예컨대 처음에 왜 여학생들이 성당에서 성가를 부르고 있을까 뜬금없었지만, 거기에도 영감이 담겨 있습니다. 사람은 받는 것만큼, 주는 것에도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에, 이것도 인간의 약점이 될 수 있다는 시선이 굉장했습니다. 나는 남과 달라, 끝까지 기부하며 책임질꺼야, 이런 근사한 마음도 그 정도를 지나칠 경우에는 내가 잘난 사람이라는 환영에 중독된다는 것. 종이 달은 이처럼 환상 속으로, 가짜 세계 속으로 뛰어들어간 리카의 여행기 입니다.

 

 ※이 리뷰는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가득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반드시 주의하세요!

 

 

 은행원 리카는 평범한 날을 보내고 있고 남부럽지 않은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이제 4년차되는 계약직 사원인데, 영업실적도 열심히 올리며 안팎으로 신임을 쌓아나가고 있네요. 삶을 좀 더 화이팅 해보자며 커플 시계를 사서 남편에게 선물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백화점에 들렀다가 40만원짜리 화장품에 마음을 빼앗긴게 화근이었습니다. 돈이 조금 부족했거든요. 견물생심이라고, 차라리 안 봤으면 나았을텐데...

 

 이 때, 슬쩍 고객의 돈 1만엔(10만원)권 하나 꺼내서 지름을 완료. 이후 이러한 행동이 그녀를 조금씩 달라지게 만듭니다. 들키지만 않으면 괜찮지 않을까... 라는 인간의 나쁜 마음이 안개처럼 스며든 것입니다. 영화는 매우 후반부에 리카의 과거를 비춰주는데, 그녀는 이런 행위가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여고 시절에도, 아빠 돈을 (몰래 빼) 가지고 50만원씩이나 기부를 했던 전력이 있었으니까요. 기부라니요? 좋은 일이잖아, 그러면 OK 입니까? 당시 수녀님은 단호히 말합니다. 그렇게 살아가면 안 돼!

 

 사람들이 제일 기분이 좋을 때가 택배 뜯을 때라는 우스개가 있을 만큼, 우리네는 사는 행위에 만족을 크게 느낍니다. 저는 젊은 날 게임 동호회를 오랫동안 운영했었는데, 하라는 게임은 안 하고, 그저 제품을 사모으는 행위 자체가 좋다는 유저들도 많이 계셨지요. 피규어 박스 하나, 화장품 박스 하나에 우리는 기뻐합니다. 그래서 사는 행위를 다른 말로, 지름 신 이라고 칭하지요. 좀처럼 이길 수가 없거든요.

 

 리카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할머니 고객에게 다정하게 다가가서, 거액의 물건을 살 때는, 하루 정도 더 생각을 해보신 후에 사라고 권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 리카가 잘못된 금융범죄에 손을 대는가 하니, 등록금으로 거액의 빚을 진 연하 남친 코타 때문이었습니다. 이 친구가 대부업체를 이용하며 천만원이 넘는 대출을 껴안고 있다고 하니, 리카가 나선 겁니다. 그 돈 내가 처리해줄께. 이자 안 받을테니까, 조금씩 갚아줘. 그렇게 VIP고객의 돈 2천만원을 슬쩍했습니다.

 

 점점 자신감(?)이 붙은 리카는 프린터까지 구매해 정교한 위조실력을 선보이며, 계속해서 고객의 돈을 빼냅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엄청난 돈들을 남친과 함께 유흥하는데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최고급 호텔에서 3박 4일동안 즐기고, BMW를 몰고 다니고, 호화로운 삶을 누려봅니다. 그러나 즐거움은 잠시 였습니다. 연하 남친 코타는 자신을 버려두고, 또래의 젊은 여자와 놀고 있고, 학교도 때려치는 답없는 백수 인생이었던 것. 좀 더 차갑게 말하자면 그 많은 돈들은 거품처럼 사라져 갔다는 것.

 

 극중의 코조 할아버지의 일갈이 오히려 정답이었다는 것입니다. "가진 돈만 있으면 어떻게든 뺏으려고 달려드는 사람들, 그 중에 하나가 내 손자 코타..." 그리고 거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은 리카였네요. 그렇다면 리카는 행복했을까요? 잠깐 동안은 환상에 젖어서 행복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꿈에서 깨어난 후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는 가짜 인생을 살고 있었구나. 달 조차 지워지는 가짜 인생의 적나라한 풍경 입니다.

 

 그럼 진짜 인생은 무엇이었을까요? 저는 돈을 아낄 줄 알았던 코조 할아버지가 펀드 이자를 가지고, 즐겁게 카메라를 구입하던 짧은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지름 대신에 참을 줄 아는 인내심. 그리고 명연기를 펼친 고참 은행원 스미의 솔직한 대사들이 마음에 남네요, 25년 넘게 일해 퇴직 후, 목돈을 다루게 되면 그 때 가서 밤새도록 생각해보며 계획한다는 것.

 

 그러므로 이 작품은, 오늘만을 탐하며 즐기는 행위는 댓가가 부메랑처럼 돌아올 수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열심히 일해가며 저축도 하고, 미래를 계획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우선순위에 둘 필요가 있을테지요. 영화의 흥미로운 엔딩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지만, 저는 인연으로 해석합니다. 뿌린 열매는 돌아오는 것 같아요. 그러니 처음부터 수녀님의 고견을 들었으면 좋았을테지요. 이렇게 마치면 좋겠네요.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선하게 가자!

 

 압박 속에서도 스미 처럼 주어진 바 성실히 일하고 돈을 알뜰살뜰 모아가는 행위, 그리고 리카처럼 남의 돈을 빼돌려 순식간에 탕진하는 행위가 극명히 대비됩니다. 극중에서 - 갈 수 있는 끝까지 근속을 채워가는 스미의 존재감이 대단했습니다. 800엔짜리 식당에서 소박한 식사를 하며, 틈나면 경제지를 챙겨 읽어가는 모습. 자신이 관심 있고 있어야 할 곳을 향해서 마지막까지 살아가는 스미. 그런 프로다운 태도에 감탄을 보내며, 좀 더 하루를 열심히 보내야함을 느낍니다. 오늘 하루도 소중한 시간이 될 수 있기를. / 2017. 03. 09.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