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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Review]/영화

노잉 (Knowing, 2009) 리뷰

친절한 시북(허지수) 2019. 10. 31. 02:56

 

 제 리뷰에는 영화 본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안 보신 분은 뒤로가기 하셔도 좋습니다 :)

 

 조금 생각할 거리가 있다보니, 오전에 영화를 보고 난 후 한참 시간이 흘러 심야에 키보드를 두드려 봅니다. 해외 리뷰 중에는 매우 직설적인 감상평도 있네요.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하기야 태어난 것도 기적이고, 별일 없이 사는 것도 참 좋은 일이라는 생각을 역시 하게 됩니다. 저 개인으로 말하자면, 아픈 날도 제법 있었기에, 아프지 않은 날에 감사를 찾아봐야 하는 것은 물론입니다. Daum리뷰에서는 보고 싶은데 볼 곳이 없다고 하소연 하셨는데, 아무튼 운 좋게 채널 스크린에서 방영해 줬습니다. 먼저 감사부터 쓰겠습니다.

 

 처음에는 1959년의 세련된 미국 모습에 좀 놀랐습니다. 예전 인터넷 동호회 등에서 보던 과거의 미국 사진 모습은 참 잘 살아서, 20세기 내가 제일 잘 나가는 나라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타임캡슐로 각자의 사진을 묻고, 50년 뒤인 2009년에 꺼내보는 참 소소한 내용이었는데, 암호처럼 적혀 있는 문서 하나가 말썽입니다. 2009년 시점에서 이제 영화는 전개되는데, 다른 사람은 그냥 넘겨버릴 숫자퍼즐을 과연 MIT 교수 주인공이 그 비밀을 알아차리고야 맙니다. 그리고 한 번 알게 된 내용에서 다시 장님이 되는 건 불가능했죠.

 

 영화는 필연을 강조하고,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왜 어머님은 아프신가, 왜 나는 병약한가, 그런 파괴적인 질문 앞에서 무력감이 드는 것이지요. 운명에 저항할 수 없다니! 하지만 중요한 것은 사실 보다는 관점과 태도라고 했습니까. 그렇다면 바꿔쓸 수 있겠지요. 어머님이 아프신 것으로 인해서 내가 볼 수 있게 된 것은 무엇인가. 라고요. 오늘 병원에 어머니를 모시고 가면서, 추억을 만들 수 있겠고, 대화를 나눌 수 있겠지요. 영화 속 가족 장면처럼 부모 자식 간에 서로 대화도 없는 경우가 더러 있다고 하네요. 말하자면 모든 일에는 그림자와 함께 햇살이 있는 셈입니다. 영어식 표현 중에 구름도 빛나는 면이 있다는 거죠.

 

 호기심. 주인공은 진실을 알기 위해서, 영화 답게 시원하고 과감하게 달려들고, 눈으로 직접 재난이 펼쳐지는 것을 목격하고, 마침내 확신의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너무나 소중한 아들을, 다음 세대가 잘 살기를 응원하면서 놓아주는 감동적이자, 종교적인 장면이 펼쳐집니다. 그리고 주인공도 누군가의 아들이었기에, 부모님과 다시 얼굴을 마주하게 되지요. 그렇게 살아갈 수만 있다면, 그 인생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 하더라도 축복이라 쓸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정신의학 쪽 연구 중에는, 인간은 지금까지 겪어 온 일들이 유전자에 담겨져 내려오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종교를 갖고 계신 분이라면, 홍수로 인해서 인류가 멸망 직전까지 갔다던가, 죄악으로 가득 찬 도시가 절멸되었다던가의 이야기를 알고 계실테죠. 살아 있음은 사실 언제 끝날지 모르기에 귀중한 것이고, 또 그 편이 훨씬 더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인간의 지혜로움이 그 쯤에서 한계치에 도달해 있다는 게 다행이지요. 지금부터 수십년이 더 지나서 의학 연구가 더 발달되어 수명을 훨씬 더 정확히 예측하게 되면, 오히려 역설에 빠져서 불행할 수 있지 않을까 혼자 한 번 상상해 봤습니다.

 

 결국 기댈 곳이 하나라도 있는 편이 행복. 이라는 느낌을 받는 영화였습니다. 아! 그렇다고 알콜에 기대지는 말고요. 부끄럽더라도 솔직하게 따뜻한 마음을 전하면서 살아갈 수 있기를.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서 살아 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할 수 있다면 무엇보다 좋겠습니다. 세계가 끝나는 것이 무섭지 않습니다. 오히려 오늘 하루를 불평하며 낭비하는 것이 더 무섭다고 과격(?)하게 써놓으며, 이쯤에서 마치려 합니다. 장문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2019. 10. 31. 리뷰어 시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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