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극동방송 4회 설교 원문 / 아브람과 롯 / 홍종일 목사
요즘 교회들 중에서 분쟁이 있는 교회가 많이 있습니다. 교인들이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아 서로 싸우는데 교회의 분리가 결코 쉬운게 아닙니다. 그래서 한 교회 안에서 한 장소에서 예배를 드리면서도 서로 마음에 미움이 가득한 경우가 있습니다. 분열과 갈등이 있는 곳에 미움이 있는 곳에 성령의 역사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러므로 그 교회는 성령이 계시지 않습니다. 성령의 역사도 없습니다. 참으로 슬픈 경우이기는 하지만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바에야 차라리 평화롭게 분리하여 서로 서로 마음을 함께하여 기뻐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더 맞습니다.
오늘 본문은 아브라함과 롯이 서로 헤어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들은 이 분열의 위기에서 매우 슬기롭게 행동합니다. 서로의 화기를 상하지도 않습니다. 오늘 이 본문은 교회의 구성원들이 서로 싸워서 헤어지게 될 때 서로 화기를 상하지 않고 형제애를 간직하면서 헤어지는 사례를 보여줍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아브라함과 롯이 헤어집니다. 그러면 아브람과 롯이 서로 헤어지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아브람과 롯의 가축들이 많아서 좁은 땅에서 함께 충분한 먹이를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아브람과 롯의 목자들이 서로 싸워서입니다.
게다가 그 땅에는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 역시 함께 거하였기 때문에 그 땅만으로는 살기에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땅은 좁은데 사람은 많고 가축도 많습니다. 땅은 급격히 사막화되고 물은 부족해 집니다. 빈약한 초지에 적은 풀을 가지고 가축들이 서로 뜯어 먹겠다고 싸우니 목자들도 당연히 서로 싸우게 될 것이고 주인들도 싸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롯은 서로 헤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아브람과 롯의 재산이 왜 많아졌습니까?
창세기 12장에 보면 아브람과 롯이 함께 고향을 떠난 기사 외에 가나안에 정착한 뒤로는 무리의 우두머리로 아브람만 나오지 롯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서로 재물이 많아지고 무리가 많아지면서 서로 싸우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람과 롯의 재물이 갑자기 급격하게 불어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가나안땅에 기근이 들었기 때문에 아브람은 일족들을 이끌고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자기의 목숨과 재산을 안전하게 지키기위해 자기의 아내를 자기의 누이라고 속이고 이 과정에서 아브람의 아내 사라의 미모를 탐낸 애굽왕과의 갈등을 겪게 되고 결국은 다시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돌아 오는데 이때 애굽왕은 아브람에게 사죄의 의미로 많은 재물을 주게 됩니다. 아브람의 두 번째 부인인 하갈 역시 이때 애굽왕이 아브람에게 준 궁녀였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아브람은 애굽왕이 준 재물을 가지고 부유해졌고 그는 이 재물을 혼자서만 차지하지 않고 롯에게도 분배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부유하게 된 것이지요.
그러나 이러한 불로소득은 아브람과 롯의 공동체를 흔들게 되고 결국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일부의 형제들을 영영 잃어버리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이 재물 때문에 갑자기 부자가 되자 이 재물이 문제를 일으킨 것입니다.
서로 매일같이 싸우는 이들을 그치게 할 방법이 없습니다. 풀을 먹지 못하면 가축들이 죽을 것이고 그 가축들을 살리기 위해서 목자들은 최선을 다한 것 뿐입니다. 풀을 먹는 가축들을 죽여서 마릿수를 제한하기 전에는 답이 없습니다. 그러나 가축들은 유목민들에게는 너무 너무 귀중한 것입니다. 죽일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결국 이들이 서로 헤어져서 각자 살길을 모색하는 수 밖에는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이곳 외에 아직도 넓은 땅들이 있습니다. 그리로 가면 서로 풀을 가지고 다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면 아브람과 롯은 서로의 땅을 어떤 방법으로 나누었습니까?
먼저 어른이며 더 세력이 큰 아브람이 자기의 조카이며 세력이 약한 롯에게 땅의 우선적인 선택권을 양보합니다.
공동체에서 세력이 큰 쪽이 세력이 적은 쪽을 배려해야만 서로 화기를 상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비록 쪼개졌지만 서로 재산을 차지하고 공동체내에서 주도권을 차지하려고 동족상잔을 일으키지는 않았습니다. 오늘날 교회 내에서 싸우는 이유를 보면 주도권 다툼이나 자존심 싸움일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물론 불법에 맞서는 의로운 싸움이나 하나님의 진리를 수호한다는 명분도 있기는 하지만 한 교회내에서 헤어지지 않고 싸우는게 주도권 때문이지요. 누가 더 많은 것을 가질 것인가?
아브람은 사방의 땅을 보면서 어느 쪽으로 정할지 조카 롯이 선택하도록 한 다음에 자기는 롯이 선택하지 않은 쪽으로 가겠다고 합니다. 저들은 땅을 이용하기는 하되 소유하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은 마치 이 땅의 재물을 이용하기는 하되 소유하지는 못하는 청지기와 같습니다. 그런데 이 청지기는 재물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잘 사용해야 하며 삶의 목적을 물질과 쾌락이 아니라 사랑과 공의라고 하는 더 큰 곳에 두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물질에 우선권을 둔 롯의 공동체는 세월이 흐름에따라 결국 붕괴하고 맙니다.
그러면 롯은 어디에 정주합니까?
롯은 소돔성에 정주하였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소돔을 목표로 떠난 것은 아닙니다. 그는 목자였고 수많은 가축과 목자들과 그들의 가족을 가진 부족장입니다. 그러므로 도시 안에서는 할 수 있는게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처음 아브람과 헤어질 때 도시와 도시사이의 들로 떠난 것입니다. 창세기13:12의 ‘도시들’이란 말은 도시의 들판이란 말입니다.
유목민으로서 스스로 자급자족하지 못하고 옆의 도시로 양털이나 고기같은 것을 가지고 다른 것으로 교환을 하러 도시에 출입하다가 마침내 롯은 소돔성내로 들어가서 정주하게 됩니다.
항상 모든 것이 부족한 유목민들이 소돔성의 발달된 물질문명을 접하게 되고 그들이 주는 쾌락에 젖자 하나님의 공동체는 너무나 쉽사리 해체되고 말았습니다.
롯은 이후 목자가 아니라 소돔성의 판사가 되어서 소돔성의 시민으로 지내게 되고 롯의 부족들은 이 과정에서 뿔뿔이 흩어지게 됩니다. 즉 롯이 소돔을 탈출하게 될 때 천사는 롯의 부족원들의 탈출에 대해서는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때 이미 롯은 모든 부족원들이 떠나버린 빈껍데기 족장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많은 히브리인들이 소돔사람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헤어진 교회가 대의를 지키지못할 때 자치하면 공동체가 와해되고 세상으로 흡수될 수 있습니다.
이는 롯의 공동체가 인간의 눈으로 형제간의 사랑과 양보의 미덕보다 물질적인 풍요와 세속의 쾌락을 우선시 한 것으로 결국 이들은 죄악의 근원으로 점 점 더 끌려가다가 마침내 소돔성내에 완벽히 동화되어 버렸고 롯의 직계가족만이 겨우 세상과 하나님사이의 경계선에 아슬아슬하게 위치해서 부끄러운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교회가 서로 분리하면 한쪽은 멸망한다는 게 아닙니다. 둘 다 잘될 수도 있고 둘 다 안 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분리의 목적이 뭔가하는 것이고 분리되고서도 하나님의 대의를 잘 지킬 수 있는가 입니다.
우리가 오늘 이 본문을 보면서 형제들이 서로 분리될 때 배워야 할 교훈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양보의 미덕을 발휘하라는 것입니다. 이때는 강한 쪽이 약한 쪽을 배려해야 합니다. 그래야 약한 쪽도 모욕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두 번째는 분리할 때 물질에 우선을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교회의 재산을 서로 더 많이 차지하려고 싸운다면 이는 남의 것을 서로 차지하려고 싸우는 강도와 같습니다. 원 주인은 주님이신데 주님의 것을 가지고 종들이 서로 더 차지하려고 싸워서는 안됩니다.
세 번째는 헤어지고 나서도 서로를 위해서 서로 기도하고 어려울 때 돌보아 주라는 것입니다. 교회가 새로 시작하게 될 때는 어려운 점도 많고 부족한 것도 많습니다. 이때 서로 서로 도와 주시기 바랍니다. 비록 여건이 좋지 못해서 헤어지게 되었더라도 우리는 서로 원수가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한 형제입니다. 그리고 한 하나님 아버지를 섬기므로 앞으로도 영원히 함께 세상과 맞서야할 운명 공동체이며 천국에서 결국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헤어질 때도 상대방을 모독하고 인격을 짖밟는 언사를 해서는 안됩니다.
저는 이땅의 교회 안에 분열과 싸움이 없기를 바랍니다. 서로 하나되어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모임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혹여 그것이 안돼서 헤어지게 되더라도 원수처럼 싸우고 상처를 주지는 않기를 원합니다. 한 하나님 아버지를 섬기는 형제들끼리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싸운다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한없이 아프게 하는 것이며 성령의 역사를 제한하는 행동입니다. 아무쪼록 이 땅의 교회들에 화합과 평화가 넘치기를 바랍니다.
한가지만 명심합시다. 우리는 한 하나님 아버지를 둔 형제입니다. 우리들 각자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영은 이제 우리를 하나로 묶고 결국은 한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합쳐 질 것입니다. 우리는 형제요 자매입니다. 하나님 안에 함께 있습니다.
- 홍종일 목사님 2015년 설교 원고 / 2019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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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올린이의 이야기 (시북의 이야기)
나뉘고서도 서로 잘 될 수도 있다는 점이 신기합니다. 양보하고, 욕심을 버리고, 서로를 돌보아 줄 수 있다면, 새로운 두 공동체가 멋지게 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오늘의 짧은 코멘트는 여기까지 달겠습니다 :) / 2019.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