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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사왕 고레스 원년에 (에스라1:1-6)

 

정말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 지난 2월10일부터 오늘까지 무려 석달간 예배당의 문을 닫고 가정예배를 드리고 오늘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시 본당 예배가 재개될 때까지 오매불망 기다려왔습니다. 그래서 결국 오늘 기다리던 날이 왔고 우리는 다시 예배당의 문을 열었고 모였습니다.

 

그 사이에 부활절을 가정에서 모이는 초유의 사태도 있었고 예배당 문을 여는데 장애가 될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교회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나올 때마다 마음이 조마조마했습니다. 이게 교회에 대한 사회 인식을 나쁘게 해서 결국은 예배당 문을 닫게 만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석달 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우리는 특히 신천지 때문에 더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하필이면 신천지가 문화원으로 위장해서 들어왔는데 건물주가 몰랐나 봅니다. 이 사람들이 처음 입주할 때 말을 안해요. 그래서 저도 긴가민가했는데 자꾸 교회 우편물 함에 신천지교도들이 친선 어쩌고의 편지를 넣을 때 알아챘습니다.

 

여하튼 이번 사태로 신천지의 숨겨진 집회 장소인게 들통나서 계약도 해지하고 아마 다시 볼 일은 없지 싶습니다. 게다가 신천지에 무관심했던 일반인들도 신천지의 실체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비난하게 되니까 이런 면에선 오히려 잘된 일입니다. 이 사람들 다단계처럼 성장세가 무서웠습니다. 아마 청년실업과 신천지의 성장이 관계가 있지 않을까요?

 

옛날 “신천지의 이만희가 죽으면 신천지에서 탈퇴해서 본 교회로 오겠다”던 준성이는 요즘 전화가 안된답니다. 뭔가 떳떳하지 못해서 그런지. 옛날 제가 지도했던 고등부 학생으로 교회에서 고등부 회장까지 했었는데 참 착하고 신실한 친구였는데 제가 미국 갔다오는 사이에 신천지 교도가 되었어요.

 

그 누나네도 그렇고 모 교회에서 돈을 지원해서 해외단기선교도 보내줬는데 그 교회는 제대로 배신 당한겁니다. 정말이지 안타까운 일입니다. 대학도 중퇴하고 어떻게 사는지... 지나 놓고 보니 그 세월도 아득합니다.

 

우리는 오늘 유대인들이 70년간의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어 고토로 돌아오는 부분을 살펴보려 합니다. 우리가 일단은 잘 아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이야기가 아니니까 ‘아! 그렇구나’ 이걸로 끝인 내용입니다. 먼 옛날 남의 나라 이야기가 오늘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요?

 

약 2500년전 그 옛날 유대인들의 해방을 오늘 우리와 비교해 봅시다. 그동안의 코로나 사태로 인한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에서의 해방, 그리고 ‘완화된 사회적 거리두기’에서도 해방. 국내확진 0명.

 

그러나 진정한 그리고 완전한 바이러스로부터의 해방은 아직 멀었습니다. 그래서 ‘생활방역’체제에 접어 들었습니다. 이게 유대인들의 해방과 비슷합니다. 비록 고토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이들은 독립국가로의 완전한 해방이 아니라 페르샤 제국 안에서의 민족자치, 그러니까 신앙공동체로서의 불완전한 해방입니다. 페르샤의 간섭과 영향을 받습니다. 뭔가 코로나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은 아직 안된 지금과 아주 비슷하지 않습니까? 정식으로 코로나 종식이 선포되지 않았지요.

 

그러나 비록 불완전하나마 유대인들은 다시 모여서 성전을 재건하고 하나님 안에서 신앙을 중심으로 완전한 민족 해방의 그날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막연한 기다림이 아니라 아주 구체적인 움직임으로 나타납니다. 포로지에서 돌아와서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고 그리고 함께 모여 스스로의 내일을 소망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신규 확진자의 숫자가 줄어들고 뭐 종식까지는 몰라도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나아질 것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언젠가는, 아마도 여름쯤? 완전한 해방이 오지 않을까요? 뭐 누군가는 이제는 코로나 이전의 옛날로는 절대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하는데 두고 봅시다.

 

우리 김**권사님은 말씀하셔요. “목사님 이제 말세가 아닙니까?” 그러고 보면 이게 말세의 징조일 수도 있습니다. 말세지말이지요. 그러나 뭐라고요? 아직 끝은 아니니라. 난리에 난리의 소문이 있고 기근과 지진이 있으며 메뚜기와 전염병이 창권해도 아직 끝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사랑이 아직 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셔야 할 일이 있다는 겁니다. 뭘까요?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 건설.

 

코로나가 가져온 한가지 긍정적인 사실은 자연정화? 생태계의 회복? 아니고요. 죽음 앞에서의 겸손. 아니 자연 앞에서의 겸손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무시하고 비난하고 난리를 치지만 죽음,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대자연의 손길 아래서 겸손이란걸 배웠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이번 사태를 ‘파괴된 자연을 회복하려는, 인간의 무자비한 약탈경제에 경고를 보내는 대자연의 손길’이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압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의 손길이란 걸. 그가 바로 대자연을 만드시고 지금도 천지를 운행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지요.

 

뭐 이번 사태를 가지고 하나님의 인류에 대한 심판이다. 이런 말씀은 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강한 자보다 약한 자가, 부자보다 가난한 자가 더 피해를 입은 이번 사태는 평소의 하나님의 심판하고는 약간 다릅니다. 그래서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보기는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성경은 반대로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모릅니다. 아직 이게 끝난게 아니니까 전 세계적으로는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심판이 마치 부자와 권력자에게 임한다는 어조로 말씀드렸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와 강함이 죄는 아닙니다. 부자와 권력자가 심판당할 정도면 가난한 자와 약한자는 어떻겠습니까? 아무래도 더 빨리 위협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부와 강함이 죄가 될 수 없습니다. 절대로. 다만 그것을 좋은 방향, 하나님의 선하신 뜻대로 사용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1절에 보면 “바사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러니까 ‘예레미야의 예언이 이루어지게 하시려고’ 라는 뜻입니다. 물론 주께서 하신 말씀을 예레미야가 대언한 겁니다. 예레미야가 뭐라고 했을까요? 예레미야24장 11절에서 “70년동안 바벨론을 섬기리라” 그리고 12절에 “칠십년이 끝나면 내가 바벨론의 왕과 그의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벌하여 영원히 폐허가 되게 하되”

 

유다가 바벨론에 잡혀간지 칠십년이 되자 바벨론은 페르샤에 망합니다. 그래서 바사왕 고레스 원년이 되는 겁니다. 바사는 페르샤입니다. 바사의 고레스가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첫 번째해에 그는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켜서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합니다.

 

참고로 페르샤의 고레스는 민족포용정책을 실시합니다. 그래서 굳이 독립전쟁을 할 필요없이 적당한 내정에의 자치와 그네들의 종교에 대한 존중으로 제국내의 이민족들에게 위험한 독립전쟁보다 제국내에서 안전하게 살아봐라는 정치를 펼칩니다. 그 일환으로 유대인들도 고토로 돌아가서 성전을 재건하게 된 겁니다.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정확히 이루어진 것입니다. 당시 예레미야 때에는 유다의 국운이 쇠퇴하고 도덕심이나 신앙심이 땅에 떨어져서 유대인들은 바벨론과 애굽사이에서 우왕좌왕 했습니다. 둘 다 중근동의 패자들인데 과연 어디에 줄을 서야 자기네들이 살아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저는 이 나라들은 미국과 중국으로 그리고 우리나라를 유대로 비정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저들만큼 약하지 않습니다. ‘귀있는 자는 깨달을진저’라는 성경 말씀이 생각나는 구절 아닙니까? 상황을 보면 비슷하기는 해 보이는데 이스라엘이 북한하고 뭐 비슷하기는 한데... 글쎄요. 확실하지 않은 사실에 너무 집중할 필요는 없습니다.

 

설마 애굽을 일본에 비정하는 분은 안계시겠지요? 너무 황당합니다. 일본은 솔직히 좀 그렇습니다. 이미 너무 많이 약해진 나라입니다. 그리고 일본은 미국의 대리인입니다. 패자가 될 수 없습니다. 자, 현실 비교는 이만하고 다시 성경으로 가봅시다.

 

예레미야는 당시 너희는 절대로 망하지 않을거다. 하나님이 너희를 보호하실거다. 이런 식으로 유대인을 옹호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유대의 다른 제사장들 선지자들은 모두 하나님이 보호하시는 유대는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고 안심하라고 외치면서도 유대인들의 죄악에 대해서는 전혀 비판하지 않았습니다.

 

무조건적인 복과 안전만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달랐습니다. 나라의 멸망과 포로됨을 이야기합니다. 지도자와 백성들의 도덕상태가 신앙심이 거의 바닥수준인데 현실을 외면하고 거짓 예언을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당시 유대인들은 동족 이스라엘도 망하고 난 다음 고립무원의 상태였고 그래서 자꾸 변화하는 북방이 너무 무서워서 차라리 애굽편이 되려고 했습니다. 참고로 북쪽 이스라엘이 열지파고 남쪽 유다가 두지파아닙니까? 그러니 이스라엘이 훨씬 더 크고 강한 나라입니다. 그게 망했어요.

 

그래서 불안합니다. 그걸 잠재울려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 위로가 판을 쳤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대다수 사람들의 바람과는 반대로 예언했고 그 때문에 고초도 많이 겪었습니다.

 

아니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자인 선지자를 핍박해서 바꿀 수 있나요? 절대로 없지요. 하려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여야지. 듣기 싫으면 행동을 바꿔야지 정확히 지적질 하는 사람을 때리고 감옥에 가둔다고 해결되는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그의 뜻대로 행동하고 죄를 회개하고 그래야지 자기들의 행실은 바로잡지 않고 막무가내로 고집을 부린다고 되는게 아니지요.

 

그런데 예레미야는 동포들에게 난리 가운데서도 한가지 위로를 주었는데 그게 바로 70년의 바벨론 포로기간이 끝나면 고토로 돌아와서 살아남은 소수를 중심으로 새로운 신앙공동체를 건설할 것이라는 희망을 준 겁니다.

 

그리고 너희의 원수인 바벨론은 폐허가 된다, 멸망한다는 희망을 주는 겁니다. 도저히 유대인들이 힘을 합쳐서 싸워서 바벨론을 이겨낼 수는 없지만, “어쩔 수 없이 저들의 편이 되어서 잡혀가서 포로 생활을 해야 하지만 그래도 그 원수는 내가 갚아 줄거야” 라는 말입니다.

 

원수를 갚아 주는 걸로 끝이 아닙니다. ‘나라를 다시 회복시켜줄께’라는 희망을 줍니다. 물론 완전한 회복은 아닙니다. 잃어버린 수많은 동족들은 더 이상 다시 모이지 못합니다. 죽은 자들 그리고 혼혈이 된 자들 그래서 민족적 정체성을 잃고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자들 그리고 고토로 돌아와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거부하는 자들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그래도 역시나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으로 고토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같은 역사와 언어를 공유하며 살아갑니다. 오늘날 유대인들은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민족이 되었지요. 로스차일드 가문, 듀퐁 집안 등등.

 

바벨론 포로기를 거치면서 하나님은 선지자를 동원해서 너희가 범죄했기 때문에 나라가 망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요, 하나님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인간들이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저들이 징계를 당했다는 것을 알고 나서 비로소 회개가 시작되는 겁니다. 그 회개의 기간이 끝나고 하나님은 다시 소수의 사람들을 모으셔서 다시 한번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때 고토로 돌아온 자는 채5만명이 안됩니다. 지극히 소수입니다. 당시 바벨론으로 끌려가지 않고 남아 있었던 그 땅에 살던 이들이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70년동안 아마 이민족과 혼혈이 되었거나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잃었거나 했던 모양입니다.

 

성경을 아무리 봐도 포로 귀환민들에 대한 이야기만 있지 그 땅에 원래 남아 있었던 동족을 만나서 어쩌고 하는 이야기는 보이지 않습니다. 포로들이 귀환하기까지 70년동안 그 땅에 살면서 그들이 늘었는지 줄었는지 아니면 정말로 사라져서 민족적인 유의미한 숫자가 안되었는지 모를 일입니다.

 

일단은 당시에 포로를 이끌고 고토로 돌아온 스룹바벨을 새로운 유대의 총독으로 임명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당시에 유대땅에는 독립된 총독이 없었습니다. 사마리아의 총독이 유대도 관할하고 있었고 나중에 유대가 성전과 성벽을 재건하려고 하자 그 땅의 이방인들이 반발하고 방해하는 기사를 봐도 원래부터 그 땅에 유대인들이 별로 없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만일 유대인들이 남아 있었다면 숫자가 수십만이 넘었을 것이고, 70년동안 자녀를 낳았다면 그렇게 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포로귀환민 5만이 전부일 것입니다. 초라하지요?

 

사실 숫자는 중요한 문제지만 더 이상 늦기 전에 회개하고 새로운 사람들로 거듭난 부흥의 공동체에 불가능은 없습니다. 왜냐면 포로에서 돌아온 자들은 그 이방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민족에 대한 사랑을 보존하고 있었던 그리고 새로운 공동체를 건설하고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보려고 모인 곳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말로는 일당백의 용사들이 모인 곳이라는 겁니다.

 

분명히 가난한자, 약한 자, 그리고 바벨론으로 끌고 갈 필요가 없이 그대로 놔두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겠다고 여긴자들을 유대땅에 그대로 놔두었습니다. 제가 생각해보면 바벨론 사람들이 정말 사람보는 눈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정말 70년동안 그대로 놔두어도 전혀 독립운동도 하지 않고 새로운 그리고 주변사람들이 긴장해야할 공동체도 건설하지 않았고 그들의 신앙구심점인 성전도 재건하지 않고 세월만 보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죽했으면 이방인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유대인들이 사마리아 총독의 관할에서 고분고분했겠습니까?

 

성경에서 보다 자세하게 얘기해주면 참 좋겠다고 생각하는 구절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역사책이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여러 말씀과 배경 설명 가운데서 우리가 추측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는 것은 몰라도 좋다는 말이지요.

 

숫자가 중요하지 않고 일단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모였다는게 중요하다는 겁니다. 이제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사람들은 밀폐된 공간에 모이기를 두려워하게되었습니다. 마스크를 벗고 이야기하면 혹 침이 튈까 두려워하고 위생관념이 없다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가장 두려워하는게 기침입니다. 버스안에서 기침을 하게 되면 모든 이들이 낯빛이 변합니다. 제가 서구사람들이 코로나에 잘걸린 이유를 생각해보는데 이들의 의료체계가 낙후되었다는 것도 있지만 인사법, 서로 포옹하고 뽀뽀하는 인사법도 코로나 확산의 원인 중 한 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 하고 위생 관념없이 마구잡이로 행동하는 것하고는 구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실 것이야’라고 하는 것하고 ‘인간이 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를 따르는 것’하고 같이 갈 수 있습니다. 인간의 도리도 결국은 하나님의 지배 하에 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포로지에서 무려 70년을 보내고 마침내 바벨론이 페르샤에게 멸망 당했습니다. 새롭게 왕위에 오른 고레스가 할 일이 없었겠습니까? 그렇지 않고 중요한 일들, 시급한 일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유대인의 문제는 그에겐 겨우 손톱만큼의 중요도만 가졌을 겁니다.

그 나라는 인도에서부터 이디오피아까지 127개의 민족이 거하는 게다가 그 도를 관할하는 20개의 관구도 있는데 굳이 인구 5만의 공동체에 대한 일은 정말이지 정책우선순위에서 밀려도 한참 밀리는 하찮은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가 즉위 원년에 조서를 발표해서 유대인 해방령을 내린 것은 문자 그대로 하나님이 예언을 이루게 하시려고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셨기 때문입니다. 지난주에도 말씀드렸다시피 감동은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성령을 깨우다’는 말입니다.

 

고레스는 민족들에게 자치를 할 정도의 권리와 저들의 종교를 존중해서 각 민족들의 독립 의지를 꺾겠다고 하는 포용 정책을 실시한 사람입니다. 그동안 앗수르나 바벨론이 각 민족들을 억압해서 반란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그냥 역사에서 사라져버릴 뻔한 유대인 사회가 다시 살아나는 계기를 이 사람이 만들어 준겁니다. 표면적으로는 고레스가 실제적으로는 하나님이 하신 겁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배후에서 지금도 역사하십니다. 고레스의 조서를 보면 2절에 여호와를 일러 ‘하늘의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고레스는 유대교인이 아닙니다. 하나님만을 유일하게 섬기는 신자가 아닙니다. 그는 다신론자입니다. 페르샤의 민족신이 따로 있습니다. 바벨론의 민족신 말둑에게도 찬사를 바치는 다신론자지만 그들에게도 최고의 신을 부르는 칭호가 바로 ‘하늘의 하나님, 하늘의 신’이란 말입니다.

 

그 당시에는 전쟁을 신들간의 힘겨루기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진 신의 물건을 이긴 신의 전리품으로 그 신당에 둔 것입니다. 7절에 보면 고레스가 여호와의 성전 그릇을 유다를 멸망시킨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성전에서 꺼내어 자기 신들이 신당에 두었던 것을 꺼내서 준 기록이 있습니다.

 

자기들이 바벨론을 이겼습니다. 그러니까 자기네 신이 최고라고 보아야 합니다. 바벨론의 신이 유다의 신인 여호와를 이겼기 때문입니다. 이게 당시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생각인데 이 사람은 자기네 신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일러 하늘의 하나님 즉 최고의 신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고요? 그는 하나님의 섭리를 맛보았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그 적은 유대, 본거지에 사람도 없고 세력도 없는 유대인들을 왜 그렇게 챙겼을까요? 자기네가 멸망시킨 나라도 아니고 전조 바벨론이 멸망시켜서 자기네 땅으로 이주시켜 아무 말없이 살고 있는 물론 반란도 일으키지 않고 비옥한 유브라데스 강가에서 잘살고 있는 이들을 왜 굳이 돌려보내고 성전재건비용도 주고 왜 그랬겠느냐?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바로 에스라가 앞에서 하나님이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셨다고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고레스가 바벨론성을 함락시키고 보니 그 나라의 총리대신이 다니엘입니다. 이 사람은 총리가 된지 겨우 6시간 밖에 안된 사람입니다. 왕궁에서 연회 할 때 벽에 나타난 ‘신의 손가락’이 쓴 글을 읽고 해석한 공로로 총리대신이 된지 여섯시간 만에 나라가 망했기 때문에 다니엘은 역사상 최고로 짧게 총리를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적국의 총리대신이라면 혹 전범으로 몰려서 사형당할 수 있지 않을까요? 괜히 높은자리에 올랐다가 덤터기를 쓰고 감옥에 갇히지 않을까요? 하나님이 괜히 그에게 높은 자리를 주셔서 오히려 적들에게 주목받게 되었지요?

 

그런데 다니엘은 고레스에게 이사야서를 보여 줍니다. 그 이사야서에 뭐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고레스를 기름부어서 왕으로 삼으시고 천하를 그에게 주었다는 글이 있거든요. 옛날의 왕들은 자기를 높이기위해서 자기의 왕권은 백성에게서 나온게 아니라 하늘이 준거라고 하는 주장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잘못해도 너희는 감히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다는 겁니다. 하늘이 낸 나를 너희가 감히!

 

그래서 왕들은 자기가 태어날 때부터 하늘이 정해준 사람이라는 것에 매우 흥미를 느낍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종이라고 하면서 이사야가 수백년전에 자기를 예언했다는 그 문서를 보고 이 사람이 정말이지 놀란겁니다. 그리고 예레미야서에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의 포로가 된지 70년만에 바벨론이 망하고 풀려날 것이라는 예언에도 놀란겁니다.

 

정말이지 굉장한 신이구나! 그는 천하에서 으뜸가는 신, 하늘의 신이다! 이렇게 된 것입니다. 다니엘이 고레스에게 접근할 수 있는 통로가 된 겁니다. 물론 다니엘은 페르샤의 총리가 되어서 역시 나라를 다스립니다.

 

물론 왕들이 정책을 결정하는데에는 단순한 한두가지 이유만 있지는 않습니다. 여러 가지 상황을 복합적으로 고려해서 결정을 하게 됩니다. 보다 정확하게는 여러 가지 복잡한 이익 집단간의 힘겨루기 이익추구의 틈바구니에서 가장 자기에게 유리한 일을 하는 겁니다. 그 인간의 욕심들 사이에서 하나님은 자기의 일을 이루십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인간의 욕망을 이용하셔서 자기의 일을 하실 경우가 많습니다. 사탄이 원래 욕심을 이용 하지만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넘어서 세상을 움직이시는 겁니다.

주로 인간을 통해서, 신자가 아니고 성도도 아닌 일반 불신자를 이용해서도 얼마든지 자기의 일을 이루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루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역사의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손길, 하나님의 섭리라고 부릅니다.

 

제가 또 죄송스럽습니다. 5월 첫주부터는 교회당에서 예배를 드리려고 했는데 아직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이 끝나지 않았고 또 총리가 간곡하게 연휴기간에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해달라는 방송을 보신 우리 권사님께서 한주 정도 더 쉬는게 좋겠다고 요청을 하셔서 다음주부터 개교를 하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보니까 교회예배를 쉰지가 벌써 10주가 됩니다. 참 엄청납니다.

 

저는 가정에서 행복한 삶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의 해금을 에스라서에 나온 고레스 원년의 유대인 해방으로 봅니다. 완전한 해방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서로 모여서 새롭게 공동체를 걸설할 기회를 얻은 겁니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이제 코로나 이전의 시대와는 달라질거라고. 그럴 수도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져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위해 맞서서 싸울 것이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길 것입니다.

 

이제까지 우리가 했던 삶도 치열했지만 이후로의 삶은 우리에게 더 치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습니다. 그리스도의 용사의 앞날엔 주의 가호가 있기에 어떤 장애도 우리를 막아설 수 없음을 믿습니다.

 

유대인들이 귀환을 했습니다. 원래 고레스는 조서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백성으로 여기는 자는 모두 다 고토로 돌아가도록 허락했습니다. 강제적으로 돌려보낸게 아니라 개별적으로 돌아가도 좋다고 허락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에스라 2장 말미에 보면 유대인들이 가진 재산이나 노비들 그리고 집안의 수장들이 바친 헌금액수가 상상을 넘어서서 막대합니다. 그들이 그런 재물을 어디서 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들의 포로생활이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는 오히려 더 영유로웠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려고 고토로 돌아온 이들은 그 모든 경제적인 여유와 편리한 문명의 이점을 포기하고 오로지 말씀에 의지해서 석달이나 여행하고서 돌아온 것입니다.

 

와보면 아무것도 없지요. 무너진 옛터에 그들은 오로지 신앙열정으로 공동체 재건을 시작한 겁니다. 그런데 또 어디선가 하나님의 섭리의 증거가 보입니다. 재물과 헌물이 쌓이고 양사방에서 도움의 손길들이 보이고 그렇게 하나님의 일은 진행됩니다.

 

당연하게도 이를 사탄이 눈뜨고 그냥 두고 볼리는 없습니다. 때론 방해세력도 있고 여러 가지로 얽히고 설킨 관계로 힘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일단은 모였고 건설했고 시작합니다.

 

인간은 때로 실수도 하고 오류도 범합니다. 완전할 수가 없습니다. 뭐든지 처음하는 겁니다. 우리는 어쩌면 인류사에 아주 중요한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 교회의 행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국가적 위기, 세계적 전염병 도래기에 소형교회가 어떻게 생존하며 어떻게 부흥하며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바르게 행하는지의 기록을 해나가고 있는 겁니다.

 

갈수록 믿음이 약해지고 하나님의 진리안에 바로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적어지고 여건이 나빠지고 세상은 공공연히 힘을내어 교회를 비방하고 물론 비방받을 짓거리를 한 자들 때문에 반박도 어렵고 뭔가 점점 종교의 자유가 침해받는 듯이 느껴지고 방해세력들이 명분과 힘을 얻게 되고...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지만 이들은 다시 공동체를 건설했고 나라가 독립했고 사람들이 세계로 퍼져나갔고 오늘날 세계를 움직이는 민족이 되었지요. 왜 그랬을까요?

 

신앙열정에 불타는 사람들은 숫자에 상관없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올바른 신앙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성령의 이끄심으로 세상을 이기지 못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번 코로나 태에서 참 희한한 경험들을 많이 했습니다. 집단적으로 예배당이 문을 다는 경험은 정말이지 이전에는 하지 못했던 것이고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진기하지만 처음인 경험은 끝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게 끝은 아닙니다.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조용한 삶, 마음의 여유를 가지는 삶,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도 더 고요한 첩첩 두매산골, 도시가 주는 문명의 편리와 자연이 주는 포근함과 넉넉함이 조화를 이루어 절로 힐링을 시켜주는 그런 여유작작한 삶은 이제 끝이 났습니다.

 

사실 정관은 신도시기는 하지만 부산 도심에서 무려 세 개의 터널을 지나야 합니다. 게다가 한쪽은 바다로 다른 두쪽은 산으로 겨우 북쪽으로 길이 하나 나 있습니다. 물론 해안가로 해운대로 통하고 터널을 지나면 부산대쪽으로 통하기는 하지만 지난 코로나 사태에 정관에는 단 한명의 코로나 확진자가 나오지 않은 청정지역이었습니다.

 

정말 신기합니다. 우리 교회가 신천지 위장 교회로 떠들썩했던 것과는 별개로 청정지역이었음에 감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인들도 안심할 수 있겠기 때문입니다. 위장니나 뭐나 아무도 안 걸렸으니까 의심은 해도 피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걸 하나님의 보호하심이라고 봅니다. 그가 보호하시면 어떤 일도 우리를 방해하지 못하는 것을 주께서 보여 주신겁니다. 그러니 나를 믿고 나와 함께 일을 하자! 라는 주님의 권유인 것으로 보여집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있나요? 뭐 할 줄 아는게 있어야 하지요. 그래요, 그러나 그냥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주의 인도하심을 따라 쫄래 쫄래 걸어가기만하면 됩니다. 뭔가 앞에 나서서 거창한 일을 하려고 설치지 않아도 됩니다. 그냥 우리가 믿고 순종하는 모습만 보여 주어도 주께서 기꺼워하시고 복을 주실 것입니다.

 

검역과정에서 발견된 확진자를 제외하고는 0명, 또는 두명 이런식의 날이 계속되어 집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아무쪼록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솔직히 마스크 쓰고 다니기에 너무 불편합니다. 날은 점점 더워지고 마스크 사는데 돈이 들잖아요.

 

부활이다. 해방이다 하면서 예배당 문을 열기만을 기다립니다. 어서 속히 그 날이 무사히 오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직 어둠의 세력은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마치 유대가 페르샤의 거대한 지배하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분명 이전과는 다르게 우리는 함께 모였고 하나님의 전을 재건했고 그리고 제사가 거행됩니다.

 

우리네 행실이 잘못된 것,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 그리고 공동체 사이에 일어나는 소소한 분열과 갈등은 하나님의 품이라는 큰 틀 안에서 해결되어 질 것입니다.

 

열심있고 순수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서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 나갈 그날을 기다립니다. 교회가 아무리 세상에 잘보이려고 해도 세상은 교회의 존재가치를 봉사에만 둡니다. 하나님을 같이 믿어보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괜히 쓸데없이 세상과 짝하려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단지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면 됩니다. 그러면 모든게 저절로 해결됩니다. 내 마음속에 신을 모시고 나의 길흉화복과 내 운명에 대한 심판을 그 신에게 맡긴다는 일은 엄청나게 무시무시한 일입니다.

 

이제까지 자기 스스로 행동하면서 스스로 신인양 하는 사람을 움직인다는게 정말이지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의 자녀들이 자기를 경외하며 나아간다면 반드시 세상을 이길 힘을 주십니다. 지혜를 주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가장 이상적인 길로 인도하십니다.

 

예레미야는 당시에 엄청난 핍박을 받았습니다. 왕궁마당에 있는 깊은 흙구덩이에 갇히기도 하고 매를 맞기도 하고 참으로 많은 핍박 가운데 있었습니다. 심지어 왕과 귀족들 제사장들은 그를 매국노로 불렀습니다.

 

분명히 자기네가 잘못하고서도 그래서 망하고서도 오히려 하나님의 무능탓으로 돌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이방의 우상들을 섬겼고 끝까지 하나님앞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랬던 이들의 후손이 오늘 다시금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위해 하나님이 정해주신 땅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다수의 각성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신념있고 순수한 그리고 지혜로운 소수의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고레스의 조서에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중에 그의 백성된 자는 다”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하는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라는 겁니다 .

 

그런데 정작 올라간 자는 아주 극소수였습니다. 약 5만에 조금 못미치는 정도의 사람들만 올라갑니다. 왜냐면 바벨론에서의 삶도 그렇게 나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니 오히려 더 좋습니다. 심지어 레위인들은 거의 대부분 바벨론에 남기로 합니다. 가봐야 별볼일 없이 계속되는 박봉에 힘든 근무에 척박한 땅에....안가는게 낫다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도로 선택된 자는 다 올라갔고 그리고 성전을 재건했고 그리고 마침내 새로운 나라를 이루었습니다. 그 사이에 역사적 부침이 많았지만 유대인들은 지금 아주 부강한 나라를 이루고 있고 세계의 돈과 지식을 쥐고 흔들고 있습니다.

 

교회를 닫기는 쉬웠지만 다시 열기는 참 어렵습니다. 왜냐면 그동안 예배를 집에서 드리던 습관이 남아서 사람을 유혹합니다. 처음엔 다시 예배를 드리고 싶어서 안달복달하지만 나태와 늦장이라는 인간의 나쁜 습관이 예배당으로 가는 것을 방해합니다. 굳이 가야 하나? 명분도 좋습니다. 아직 코로나 사태가 완전히 끝이 난게 아닌데?

 

그래서 열심있는 그리고 순수한 하나님의 택함을 입은 자들만 올라간 겁니다. 그리고 남아 있는 자들은 함께 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돌아가는 동포에게 예물을 줄 것을 명합니다. 실제로 주었고요.

남아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 동네의 원주민들도 그러니까 페르샤 사람들 바벨론 사람들도 예물을 드리도록 한 겁니다. “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머물러 살든지 그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그 밖의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주고 그 외에도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예물을 기쁘게 드릴지니라”

 

남아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도 그 나라 페르샤 사람들도 주변에 살고있는 이스라엘 귀환민들에게 재물을 주라는 겁니다. 예물을 주라는 겁니다. 어디서 본 것 같지 않나요? 바로 그렇습니다. 옛날 이스라엘이 출애굽할 때 그랬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을 우리는 제2의 출애굽이라고 부릅니다. 에스라도 제2의 출애굽이 생각나도록 이 사건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래요 출애굽은 노예에서 해방되어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는 건설하는 역사적인 시발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이스라엘이 그래서 서게 된 겁니다. 지금 다시 출애굽의 역사가 일어날려고합니다. 이번에는 애굽이 아니라 페르샤 이전의 바벨론 지역에 살던 유대인들이 대거 참여해서 새로운 신앙공동체를 건설하려고 합니다.

 

아직 나라를 완전히 독립된 나라를 건설할 정도는 되지 않습니다. 페르샤 제국의 안에서 공동체를 건설하는 불완전한 민족자치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일단 모이고 구심점을 정하고 여기서 구심점은 성전입니다. 그리고 일심으로 노력해서 성벽도 재건하고 그러면 더 안전해져서 더 많은 사람이 모이고 그러다가 민족적 동일성, 신앙심이 약해지지 않으면 자손이 번성하고 결국 완전한 자주 독립국가를 건설하는 겁니다.

 

먼 훗날 이 공동체는 주권을 가진 이스라엘 나라를 건설했고 역사의 전면에 당당히 등장하게 됩니다. 5만명이 많기는 하지만 원래의 인구에 비하면 1%도 안됩니다. 고레스는 원래 이스라엘 사람들 즉 남쪽 유다만 아니라 이전에 이스라엘12지파에 속했던 사람들 모두가 올라가도록 했습니다. 허락한 겁니다.

 

그런데 거의 대부분 유대인들만 올라갔고 북쪽 이스라엘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갓지파의 일부 정도? 2장에 보면 12절에 아스갓 자손이 1222명이랍니다. 아스갓은 ‘갓은 강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아마 이들이 갓 지파의 후손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그리고 에스라와 느헤미야에서 나온 인구수에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 한 천여명정도 되는데 이들이 개인자격으로 참여한 이스라엘 민족이 아닐까 추측하는 정도입니다.

 

그래서 어려운 겁니다. 자기의 기득권, 바벨론에서 70년동안 쌓은 경제적인 기반이며 혹 직장, 벼슬 이런 것과 경제적 여유를 포기하고 아무것도 없이 새출발해야 하는 그래서 약간은 막막한 새로운 신앙공동체의 재건을 위해서 가는 것은 정말이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런 결단을 하나님이 기뻐하셨고 그들로 하여금 작지만 부강하고 지혜로운 나라를 만들 수 있게 하셨습니다.

 

저도 지나 놓고 보니까 참 감사하고 신기한게 정관에는 단한명의 확진자도 없었습니다. 대구에서 난리가 날 정도였는데 어떻게 이렇게 아무도 안 걸릴 수가 있는지...참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지난 코로나 사태를 뒤로하고 이제부터 새롭게 시작하십시다. 이전과는 다른 전혀 다른 세상을 향한 단초가 될지 아니면 일상으로의 복귀가 될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하고 또 하나 우리의 앞날에 하나님이 복을 주실것이라는 것 이렇게 두가지는 확실합니다.

 

그래요 우리는 오랜 바벨론 포로생활을 끝내고 다시 하나님의 전에 모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모두가 행복하며 이웃에게도 덕을 끼치고 하나님의 법이 우리를 다스리며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믿는 그런 나라르 만들려고 합니다. 상처도 많습니다. 그러나 곧 치유될 것이고 멋지고 강한 하나님의 공동체를 만들 것입니다. 그렇게 될 지어다. 그렇게 될 지어다.

 

- 홍종일 목사님 2020년 5월 3일 주일 설교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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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누리교회는 가정교회 운동, 가난한 이웃을 섬기는 운동, 쉼을 소중히 하는 운동 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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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올린이의 이야기 (시북의 이야기)

 

출애굽이 두 번 있었다는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한 번이 노예 해방이라면, 두 번은 공동체 재건입니다. 게다가 두 번째 이야기는 많은 이들이 함께 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해냈습니다. 무엇인가 생각하는 바가 있습니다. 많은 숫자가 곧 진실은 아닐겁니다. 좀 더 불편하더라도 바른 길을 잘 선택하는 지혜로움이 우리에게 함께 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의 덧붙임은 짧막하게 여기까지. / 2020 .05. 시북 (허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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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프로필사진 김원종 역사적사실을 통하여 여러인물들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루
    어지는 섭리가 하나님의 권능과사랑으로 시공간을 넘어 나타난다는 것을 .....
    2021.02.20 20:27
  • 프로필사진 친절한 시북(허지수) 역사를 배운다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간접체험하는 귀중한 경험이죠. 하나님이 보살피신다는 것을 느끼는 것은 신앙의 정수가 아닐까 합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2021.02.20 23:1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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