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울병의 재발은 훨씬 위험하고 가혹한 것이었다.
두 번째로 찾아온 조울병은, 누군가 나를 해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약을 끊고 난 뒤, 불현듯 찾아온 몹쓸 생각이었다.
꽤 먼 곳의 도서관까지 여행처럼 잘 다녀오는 길이었다.
그런데 풍경이 갑자기 매우 낯설게 느껴졌다. 여기까지는 컨트롤이 되었다.
"그럴 수 있어. 하지만 나는 이 멋진 책을 빌렸잖아. 여기에 집중해"
그런데 이 버스가 나를 이상한 곳으로 데려다 줄 꺼 같았고,
그 불쾌한 감정에 시달리다가 금방 내리고 말았다.
그리고 아주 먼 거리를 걸었다. 걸어서 족히 3시간은 되는 거리였다.
거대한 도시의 자동차들이 하나같이 나를 칠 것만 같아서 겁이 났다.
최대한 인도쪽에 붙어서 뛰었다. 그리고 2시간쯤 걸었을 때부터는, 정신까지 탈진해 버렸다.
하... 하늘이 곧 무너져. 세... 세상이 곧 멸망해. 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계속 앞으로만 가.
아! 지금 잠시 돌아보면, 탄식이 나온다. 이게 무슨 성경 속 나오는 예언가도 아니고. 씁쓸하다.
나는 병원 응급실에서, 하느님 죄송합니다를 외치고, 또 외치는 어느 환자를 실제로 본 적이 있다.
그럴 때보면, 참 응급실의 의사 선생님들 역시 일종의 "성직"이 아닌가 거꾸로 생각되기도 한다.
아무튼, 잠시 환기를 마치고... 달리고, 달려서, 어느 종합병원 앞까지 도착했다. 잠시 쉬었다 가고 싶었다.
병원이니 아무튼 안심도 되고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주변 풍경이 또 말을 건네는 것이 아닌가. 비상구를 안내하는 표지판을 보면,
그리로 도망쳐야 할 것 같고, 당연히 아시다시피 그리로 가면 엘리베이터 대신에 계단이 있을 테고...
이번에는 계단을 따라서 오르막길을 올라가야 할 것 같았다.
그 심연의 가혹하고 끝없는 충동은 나를 끝없이 폭풍처럼 들볶았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올라야만 한다. 그렇게 조울병의 탄환이 내 심장에 정통으로 박혔다.
지갑을 버렸으며, 산지 얼마 되지도 않은 핸드폰을 버렸으며...
(지갑은 신분증 덕에 운좋게 되찾았지만, 한편 버려진 핸드폰은 그 후 되찾지 못했다.)
앗! 이 대목은 조금 독자님들은 놀라우시죠? 하지만, 뭐 그 뒤는 더 놀랄 수 있습니다!
거기까지는 다 좋다. 나는 하마트면 생명까지도 버림당할 뻔 한 것이다.
조울병의 실제 목숨을 잃는 비율이, 일반 사람들보다 좀 더 높다는 통계도, 슬프지만 읽은 바 있다.
거의 옥상에 다다랐을 무렵, 기적처럼 병원 직원이 먼저 발견했다.
병원 직원은 직감적으로 비상상황임을 인지해 연락을 돌렸고,
나는 옥상의 밤하늘을 쳐다보고 있다가 구조되었다고 한다.
글로서 제법 진지하게 옮기는 것은 처음인데도, 그 아찔함은 심장이 덜컹!
아버지는 남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을, 마치 비열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 만큼이나 싫어하셨다.
병원에도 민폐, 경찰에게도 민폐, 이제 응급차를 타고 가는 것에, 클로즈(폐쇄)병동까지...
아버지께서 눈물을 글썽이며 사과하시던 순간은 그래도 잘 기억하고 있다.
자식된 입장에서 참 불효자구나, 늘 생각될 뿐이다.
아버지 당신께서는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음을, 그저 한탄하며,
그 날, 처음으로 내게 손찌검을 했다. 그조차 화가 난다거나, 아프지가 않았다.
나는 혼란으로 가득했으며, 며칠 밤을 거의 자지 못한 상황이었으며, 판단의 총명력을 다 잃고, 재처럼 되어 있었다.
미안해요. 당신의 헌신적 인생을 통해서 조차, 좀 더 예쁘게 꽃피지 못한 이 모습을, 반성하며 살아갑니다.
긴 터널을 지나고 있구나 라는 감각, 계속되는 싸이렌 소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사가 깊게 들어오는 것.
세 가지가 꽤나 풍경 사진처럼 잘 기억난다.
깨어났다. 병동이었다. 강제 입원은 죽음의 위기가 있고, 당분간 안정이 필요할 때 반드시 거쳐가는 곳이었다.
그리고, 사실은 내 개인적인 생각을 이제와 조금만 쓴다면, 인생에서 감옥 같은 생활을 경험해 본다는 것이,
"끔찍함"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할 수 있는 일이 거기선 진짜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나는 책을 가까이 했고, 사람을 가까이 하며, 작은 학교로 삼기로 했다.
뭐, 범죄자들이 모여서, 다음에는 어떻게 한 탕 쳐볼까를 모의하는 것도 아니었고,
단지 마음 어딘가가 제대로 작동되지 못한 사람들일 뿐, 우리는 얼마든지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으니깐.
또 거기에서는, 내가 아주 고르고 고른, 진짜 좋은 책을, 충분히 느린 속도로 읽어야 했기 때문에, 그것도 좋았다.
강요된 규칙적인 생활들, 그리고 무척이나 절제된 하루 하루들은 묘한 안정감을 주었다.
죽음의 문턱에 있다보면, 죽으면 해결될 것 같고, 터널 효과에 의해서, 주변이 어둡게 보이는 아주 몹쓸 단점이 있다.
그런데 어떻게든 살아가려고, 오늘만 살자, 오늘만 살자를 몇 번씩 외쳐가며, 하루치를 겨우 견디며 가다보면,
사람은 거기에 적응해 나가고자 열심히 뇌구조를 바꾸어 간다.
마음을 다해 소원을 빌었다.
언젠가 이 클로즈 세계에서 벗어나게 해주세요.
그래서 다시 세상을 살게 된다면, 나는 정말 두 번째 인생을 살게 될테니까,
그 때엔, 훨씬 더 재밌게, 세상에서 하고 싶은 거 다 해보며 살께요!
내가 사랑하는 친구 중 한 명은, 지난 봄에 큰 무지개를 거리에서 발견해서 사진으로 찍어 프로필로 해놓았다.
그런데 그렇게 큰 무지개는 대체로, 비가 온다거나, 흐린 날이 있어야만이 발견되는 것이 아닐까.
인생에서 기쁨만이 계속 된다면, 어쩌면 우리의 뇌는 마비되거나, 썩어버릴지도 모른다.
우리의 모습이 무지개처럼 예쁜 모습이 되기 위해서는, 결국 고통의 세계를 겪어야 하는게 아닐까.
아주 모순된 소리로 들릴 수 있겠지만,
나는 그래서, 지금은 내가 가진 병에 대해서, 으이구, 네 덕분에...
나 이제야 인생이 얼마나 귀중하고,
건강할 때, 노력하는 게, 얼마나 소중한 것이며,
아파도,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함을 배워간다고 쓴다.
소원을 빌었지만, 아무튼, 곧바로 이루어지진 않았다!
만화처럼 하루나 이틀만에 풀려나면 좋았을텐데!
아직도 가끔 기억난다. 약 드셨죠? 네? 자, 아~ 크게 해보세요. 삼켰죠? 어디 봅시다.
꿀~꺽. 약 절대 빼 먹지 마세요! 알겠죠!
여러분! 이번 시간은 자유시간입니다! 하고 싶은 거 하세요! 늦기 전에 하세요!
에라, 그렇게 그 날도 책을 반은 강제로 읽고야 만다. 꼭꼭 천천히 씹어먹듯이 말이다.
하도 읽어서, 지금까지도 생각이 난다. 인생에서의 공부란, 익숙해져 가는 사고습관에서 벗어나는 것.
이해하지도 못할 내용을 억지로 넣고, 곱씹던 것이 생각이 나서 애써 블랙유머처럼 덧붙여 보았다.
죽지 말고, 살아가자.
또 실패했고, 또 어딘가 떨어졌어도,
그럼에도 인생이 정말 많이 소중하다는 것.
우리는 살아 있어야 오늘의 풍경이 결국 무지개로 바뀌어 간다는 것.
힘든 시간에는, 단 5초만이라도, 내가 찾아냈던 작은 진실을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
속상해 울고, 마음이 슬프고, 흐린 내 인생을 절망해도...
그럼에도 살아 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