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은 선생님의 소소한 표현들 중에는, 마음에 슬쩍 다가와 공감을 건네주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행운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져내리는 것도 아니고, 노력해서 획득할 수 있는 것도 아닌 것 같다. 당장은 시간낭비처럼 여겨지는 사소한 모험들이 하루하루 누적되어 스스로의 운명을 써가는 것이리라." 사람의 인생이란, 멀리 떨어져서 본다면, 지금 순간들이 쌓여서, 존재를 이루고 있다는 의미일테고, 그렇게 본다면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가는 것을 슬퍼하기 보다는, 소중히 여길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쩌면 인생의 진수는 미와 추가 조응하는 접점에 있는지도 모른다 (p.199)" 현대사회가 추를 외면하고, 미에 환호하기 때문에, 우리는 정작 자신의 심연을 들여다 보기에 두려워 합니다. 나한테 부족한 모습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면서, 모든 것을 잘하고 싶은 부질없는 욕망에 사로잡힐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애정결핍을 느끼고, 인정결핍을 느낍니다. 이를 만회하고 위로하기 위해서, 허무함을 달래거나 잊을 수 있는 길을 찾아 헤매입니다. 삶은 그토록 멋지다는데, 이 순간이 너무 슬퍼보일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미" 라는 개념이, 고정적이고 영구적인 것이 아니라는 말에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다르게 표현한다면, 생의 많은 부분에서 추한 순간과 아름다운 순간이 펼쳐지고 있으며, 단지 그것이 인생이라는 느낌입니다. 잘 웃어 주지 않는 인생에, 어느 날 햇빛이 따스하게 비춰지고 있구나 라고 느껴질 때, 우리는 이것을 행복이라 부를만 합니다. 그렇기에, 슬픈 순간이 있다고 한들, 우리는 살아갈 희망을 놓치 않을 수 있습니다. 삶은 결코 추로 도배된 것이 아니기에, 또한 "미美"로 고정된 것이 아니기에.
저자 : 이주은 / 출판사 : 이봄
출간 : 2013년 10월 10일 / 가격 : 15,000원 / 페이지 : 288쪽
미술책이다보니, 영감을 자극하는 그림들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마리 로랑생이 그린 "주신의 여사제"가 무척 쾌활하고 발랄하게 느껴졌습니다. 사랑은 삶의 그 어떤 논리보다 우선할 수 있다는 친절한 설명도 근사했습니다. 논리를 조금 덜어낸다면, 우리는 이런 말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죽기보다 더 아픈 건, 잊혀진다는 것"
잊혀진다는 것이 얼마나 아픈 일인가, 내가 존재했었던가, 존재하지 않았을 때와 똑같이 사람들이 살아간다면, 인생은 얼마나 의미를 잃어버리겠어요. 이렇게 의미를 고찰하게 만드는 이야기들이 참 인상적입니다. 그 사람을 잃었을 때, 아주 슬퍼한다면, 그 존재는 얼마나 인생을 값지게 살았던 걸까요. 한참 연애로 달콤한 시절을 보내던 젊은 로랑생의 그림이 이토록 명랑할 수 있다는 것. 그렇게 생각하니, 저는 단순한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아마 김정운 교수님 책에서 보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좋은 글, 재밌는 글? 그건 내가 신날 때 쓰면, 어쩐지 보는 사람도 좋아하고 재밌더라! 입니다. 반대로 내가 머리 아프게 한탄하면서 쓰는 글이 재밌을 꺼라는 건, 착각이라는 거에요. 조금 과감하게 접근한다면, 우리의 감정에 따라서 세상은 다르게 보인다는 것. 괴테 같은 사람들도 유럽 남부로 내려가보니까, 이렇게 다정하고 친근한 삶도 있구나! 라고 감탄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감정을 잘 조절하는게 중요하겠지요. 그래서 이 책 제목이 저는 참 마음에 듭니다.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해" 내가 어떤 감정인가 이해해보고, 설명할 수 있게 된다면, 우리는 자신에 대해서 조금 더 "가능성의 존재, 사랑하기에 넉넉한 존재"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인간의 약점 중에 하나는, 무엇인가를 좋아할 때, 좋은 건 알겠지만, 왜 좋은지 설명하기는 상당히 어려워 합니다. 그래서 간혹 "그냥 좋아" 라고 넘어가기도 하고요.
내가 왜 이것을 좋아하는지 친절하게 전달할 수 있다면, 얼마나 더 좋을까, 얼마나 더 행복해질까, 그런 욕심이 최근에 좀 있었습니다 :) 남들이 좋아하는 것을 아무리 따라해 본다고 해도, 어쩐지 깊은 만족을 주지는 못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무엇이고, 왜 좋아하게 되었는지를 깊이 생각해 본다는 것은, 놀랍게도 무의미한 시간 죽이기를 없애줍니다. 우리는 알게 될 것입니다. 즐겁게 살아가기에도 혹은 의미있게 살아가기에도 시간은 넉넉하지 않음을...
마지막으로 삶을 지탱하는 원동력에 대해서 언급하려 합니다. 세간티니의 그림에서는 날개 달린 사랑의 신이 나옵니다. 그런데 신(神)이 어쩐지 쓸쓸해 보입니다. 게다가 먼 발치에서 행복한 연인이 걸어오고 있습니다. 이 대조적인 장면은 행복이 무엇인지, 삶을 지탱하는 것이 무엇인지 힌트를 알려줍니다. 거대한 날개를 달고 하늘을 누릴 수 있다고 한들, 영원히 살아간다고 한들, 결국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아름다운 연인에 비해서는, 초라한 신이라는 점, 저는 묘한 여운을 받았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오늘날 사람들이 돈을 왜 그렇게 좋아하는가? 라는 질문에 혹자는 "돈이라는 것을 통해서 사랑 받고 싶은 욕구, 인정 받고 싶은 욕구를 쉽게 충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라고 표현합니다. 스마트폰이 왜 그렇게 좋은가? 라는 질문에 혹자는 "만질 수 있고, 볼 수 있고, 필요한 것을 채워주기 때문이다, 친구이고, 애인이다."라고 표현합니다. 이 말들에는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는데, 현대사회가 되어도 여전히 우리는 외로움을 힘겨워 한다는 점입니다. 상상력을 보탠다면, 우리는 자유롭게 세계를 누비며 물건을 사고 팔며 날개 달린 신이 되어가지만, 그럼에도 행복한 순간은 저절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 말 한 마디가 이 책에서 가장 감동적인 대목이었습니다. "떠돌이가 된 세간티니는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는 상태로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겨우 글쓰기를 제대로 익혔다. 그가 글쓰기를 배워야 했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사랑하는 한 여인에게 멋진 편지를 쓰기 위해서. (p.244)" 그 순간, 세간티니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설레는 순간이 되었음은 당연하겠지요.
어딘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스쳐지나갑니다. 우리는 글을 읽을 줄 아는데도, 어째서 즐거워하지 않는 걸까요. 우리는 볼 줄 아는데도, 어째서 기뻐하지 않는 걸까요.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연습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익숙해지고, 점차 무디어져서, 존재를 당연하게 여기게 되고, 새로운 자극을 향해 또 눈을 돌리고... 저는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가치에 경직되지 않고, 여러 가능성들을 동시에 내포한 세기말의 문화는 21세기적인 융합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또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불확실성은 다양성과 잠재성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에필로그)" 이 순간의 불확실성은 그만큼 우리가 다양한 선택 앞에 놓여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우리가 거기서 살아가야 하는 이유, 기뻐하는 이유를 발견해 나간다면 좋겠다 싶습니다. 이제 이만 리뷰를 마칩니다. / 2014. 01.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