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하루가 여행 같다면 얼마나 즐거울까를 상상해 봅니다. 예컨대 (p.15) "여행지에서 나는 목표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더 알고 더 느끼는 데서 단순한 기쁨을 느낀다. 그런데 삶 속에서 나는 수 많은 것들을 오로지 수단으로 삼는다. 여행지에서 나는 확실한 길만 찾아가지는 않는다. 불확실함이 많은 데 불평하지 않는다. 그런데 삶 속에서 나는 확실한 것만 찾는다." 여행자의 태도로 살아보기 위한, 정혜윤 작가님의 여정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그럼 저는 그 중에서 인상적으로 와닿았던 대목을 가져와 보고, 반사해 놓고자 합니다.
다음은 제 마음을 사로잡는 치명적이고 매혹적인 이야기. "항상 나 자신으로만 머물려 하면 결코 아무것도 매개할 수 없다는 사실만은 알게 된 것 같아. 나는 완전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받아들이고 매개하기 위해서 끝없이 나에게서 뭘 덜어내야만 했어. 나 또한 하나의 세계라면 빼낸 다음에야 더해질 수 있는 세계, 비워낸 다음에야 새로워질 수 있는 세계라고 생각해. (p.64)"
채우고, 덧쓰기만 계속할 것이 아니라, 나에게서 덜어낼 것을 발견하고, 그 부분을 다른 것으로 비로소 채워넣어 간다는 그 아늑한 느낌이, 저로썬 생각의 감옥에서 탈출하는데 용기가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좋은 선택을 고민하기에 앞서서, 나쁜 선택을 덜어내는 여유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덜어낼 수 있을까?"
저자 : 정헤윤 / 출판사 : 난다
출간 : 2011년 07월 27일 / 가격 : 12,000원 / 페이지 : 284쪽
제가 생각해 본, 질문의 답은 "동시에 많은 것을 이루려고 하지 말자" 였습니다. 마음 아프더라도,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선택한 것에는 집중하자 였습니다. 이것은 삶을 단순하게 만들어 주었고, 오늘을 중요한 날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신기했습니다. 나 자신에게 자꾸 뭔가를 더해서 위대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전혀 아닌데도, 오히려 나 자신에게 쓸데없는 짐을 지우지 않으려고, 자꾸 뭔가를 빼가는 과정 속에서, 저는 삶이 무척이나 감사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렇게 다 빼도, 괜찮구나, 새로운 세계 속으로 걸어갈 수 있구나. 라는 게 놀라웠습니다.
어쩌면 많은 경우에, 우리는 너무 많은 기대를 짊어지고 살아가기에, 역할극만 하다가, 아름다운 시절을 흘려보내는건 아닌가 싶었습니다. 저는 내려놓아라, 마음을 비워라, 이런 이야기를 하고자 함은 아닙니다. 그것과는 약간은 다른 측면에서, 스스로를 괴롭히지 말았으면 좋겠다 라는 느낌입니다. 적어도, 자신에게는 솔직해져도 괜찮다는 것. 억지로 떠안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어떤 일이 내게 기쁨이 될지 알 수 없으니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살아갈 수밖에.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말이야. (p.77)" 작가님은 가장 좋은 일은 언제나 뜻밖에 있었다고 표현합니다. 그렇게 접근한다면, 바라는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는다고 해서, 지나치게 실망하거나 좌절할 필요도 없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뜻밖의 좋은 일이 다가올지도 모르니까요. 저는 최근에 이와 비슷한 일들이 제법 많았습니다. "이렇게 즐겁고 신나해도 될까?" 싶을 만큼, 행복한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단, 하나만이라도 예를 들어본다면, 독감으로 계속 아파하던 사람이 어느순간 다시 예전의 밝은 모습으로 돌아와 있을 때, 다행이다는 생각을 넘어서는 기쁨 같은게 있습니다.
저는 이 표현이 좋습니다. "무엇을 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보느냐다" 예컨대 앙코르와트에서 우리는 신기한 돌무더기를 볼 수 있겠지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소원을 비는 캄보디아 사람들을 궁금해하면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질문이 따라붙습니다. 대체 이들에게 앙코르와트는 무엇인가? 왜 이들은 이렇게 행동하는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보는 관점에 따라서, 우리는 훨씬 덜 과시적이고, 덜 속물적이고, 덜 불행할 수 있다는 작가님의 따뜻하고 친절한 시선에서, 저는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예컨대, 나는 여기를 갔다 왔고, 이것을 보았어. 라는 말 대신에, 우리는 완전히 다른 표현을 할 수 있을테지요. 나는 그 곳에서 사람들을 통해서, 어떻게 살아가야 좋을지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고, 나에 대해서 알게 되었어, 그 순간은 놀라움이었어. 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이제 에필로그를 덧붙이며, 이번 리뷰를 마칠까 합니다. "세상 끝 허름한 기차역 나무 한 그루라도 사랑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기 자신 또한 아무리 보잘것없이 여겨져도 사랑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니." 생각해보면,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닐 때가 많습니다. 작가 알랭 드 보통은 일상에서 사용하는 물건들을 바라보면서도 거기에 얼마든지 가치가 담길 수 있음을 예리하게 짚어줍니다. 다르게 말해, 스스로의 물건들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안다면, 자신의 모습도 아껴갈 수 있을테지요. 스마트폰에 다양한 앱을 깔아서, 매력적으로 활용하듯이, 우리 자신에게도 다양한 가능성을 실험해보며, 자신의 가능성을 해보지도 않은채, 섣불리 판단하지 말아야 겠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주어진 삶을, 이렇게 여행처럼 계속 살아갈 수 있다면, 우리의 모습 자체가 누군가의 눈에는 여행지이자, 하나의 낯선 풍경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 어쩐지 가슴 설레이는 표현이었습니다. 명랑하고 쾌활한 삶에 경의를. 그리고 세상이 아무리 참혹하고 불친절해도, 올바르게 살아가려는 자가 있음에 경의를 표하며. / 2014. 01. 리뷰어 시북.